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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먼치킨-37화 (37/300)

37화_피난길(2)

나는 고블린 무리에게 달려가면서 고개를 돌려 강문 선배를 한 번 흘겨봤다.

‘포스몬이라니!!’

참 좋은 선배인데, 이렇게 날 놀릴 때는 정말 얄밉다.

고블린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너희에게 가슴 깊이 쌓여 가는 이 스트레스를 풀어야 할 것 같다.

유신이 고블린 무리에게 스트레스를 풀고 있을 때, 강문은 조용히 총을 꺼내 동쪽 하늘을 향해 겨냥했다.

갑작스러운 강문의 이상 행동에 리수진이 흠칫 놀라면서, 한편으로는 의구심을 가지게 됐다.

앞에 있는 강문이라는 강자가 껄끄러운 건 사실이지만, 천생 마법사의 호기심이 어색함을 이기고 질문을 던졌다.

“뭐 하시는 겁네까?”

리수진의 질문에 강문은 동쪽 하늘을 향해 계속 총구를 겨누며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너도 아직 멀었다.”

“뭐가 말입네까?”

“뭐긴? 저게 안 보여?”

강문의 말에 리수진이 총구가 향한 하늘을 유심히 바라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나 아껴서 뭐 할래? 몸보신할 거야?”

“······”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리수진은 고개를 붉힌 후 조용히 캐스팅을 시작했다.

“이글아이”

마법을 발동해 시력을 강화한 리수진이 다시 동쪽 하늘을 바라봤다.

저 멀리 동쪽 하늘에서 다섯 마리의 와이번이 이쪽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타앙~!

한 발의 총성이 들렸고, 맨 앞에서 날던 와이번의 머리가 깨지며 추락했다.

탕탕탕 타앙~!

추가로 들린 네 발의 총성은 날고 있던 모든 와이번을 추락시켰다.

리수진은 마법을 써서 겨우 형체만 보이는 와이번을 이 먼 거리에서 명중시켜 떨어뜨리는 강문에게 공포심까지 느꼈다.

“그게 보이십네까?”

“안 보이는 게 이상하지.”

“······”

“쯧쯧쯧”

강문은 혀를 차면서 저 앞에서 홀로 고블린과 싸우는 유신에게 외쳤다.

“유신아~! 고블린 잡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려?”

“그··· 금방 끝내겠습니다~”

리수진은 행군이 진행되는 동안 강문이 유신을 닦달하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유신이 선두에 서서 몬스터 무리를 물리치는 속도와 양이 자신의 상상 이상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와이번을 처리하는 강문의 모습을 보고 나니 유신이 고블린과 너무 오랜 시간 싸운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 땅은 몬스터화 된 후에 언제나 약육강식이었다.

리수진과 리진수를 포함해 마을 사람들은 강문이 트롤 무리를 학살하는 모습을 봤다.

강문이 여기에 있는 누구보다 강하다는 걸 알게 됐고 그렇기에 대우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보니 대우 수준이 아니라, 떠받들어야 할 정도다.

콩깍지가 씐 리수진은 강자의 품격을 뿜어내는 강문을 조용히 바라봤다.

계절과 어울리지 않는 코트를 걸친 강문은 준비된 자의 모습으로 보였고, 꽁지머리는 신체발부 수지부모를 지키는 것 같았다.

그렇게 리수진이 강문을 찬찬히 바라보고 있을 때, 강문이 기지개 켜며 하품을 했다.

“하암~ 왜?”

“아···아닙네다.”

발갛게 볼을 물들인 리수진은 강문에 대해 생각했다.

이 사람은 치아는 참 가지런하고, 눈매는 매의 눈처럼 날카롭고, 코는 곧게 뻗어 있으며, 이목구비가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룬다.

쉽게 말해서 정말 잘생겼다.

“선배 다 끝났습니다.”

고블린 무리를 처리하고 돌아온 유신은 온몸을 몬스터의 피로 도배한 상태였다.

선두에 서서 홀로 몬스터 무리를 없애는 유신만 해도, 충분히 강자의 반열에 들어서는 거였다.

하지만, 이미 천외천을 본 리수진의 눈에는 유신이 평범해 보일 뿐이었다.

***

낮에는 홀로 수많은 몬스터를 물리치고, 밤에는 몬스터에게 마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식사는 하루에 두끼 아침과 저녁에 콩죽을 먹었다.

끓은 물에 쌀가루를 풀고, 불린 콩을 넣으면 이 콩죽이 완성된다.

그래도 일주일 정도 고생했다고 오늘은 마른고기를 잘게 찢어서 넣고 끓였다고 하는데, 기름기도, 고기 맛도 냄새도 느껴지지 않는 콩죽일 뿐이었다.

좋게 말하면 다이어트 식품이고, 나쁘게 말하면 더럽게 맛없다.

“하아~”

그릇에 반쯤 남은 콩죽을 보며 한숨을 쉬고 있을 때, 강문 선배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신아~”

“네 선배님.”

“음식 투정하지 말고 다 먹어라.”

“음식이라는 게 있나요?”

내 말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움찔했다.

“그게 음식 투정이다.”

“네??”

“저기 어린아이들도 같은 음식을 먹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니 라령이를 포함해 어린아이들은 벌써 콩죽을 다 비우고 부족한지 그릇을 긁고 있었다.

“모두가 같은 음식을 먹고, 단 한 명도 불평불만을 내뱉지 않고 있다.”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같은 실수를 절대 반복하지 마라.”

“알겠습니다.”

몬스터와 싸우고, 전투를 한다는 건, 목숨을 거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나만 목숨을 거는 게 아니다.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이 목숨을 걸고 이렇게 이동하는 거다.

나만 특별할 게 하나 없다는 거다.

그래 하유신 반성해야 한다.

음식이 뭐가 중요하냐. 사람을 살리는 게 중요하지.

나는 내 앞에 놓인 콩죽 그릇을 들고는 그대로 후루룩 마셨다.

“꺼억~”

죽이라서 그런가? 그릇을 다 비우니 바로 소화가 돼서 트림이 나왔다.

간단히 배를 채운 나는 검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배 혹시 모르니까 한 바퀴 돌고 오겠습니다.”

내가 방금 한 실수를 조금이라도 속죄하기 위해 움직이려고 하는데, 리수진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아닙네다. 쉬시라요.”

“괜찮아요.”

내가 리수진을 피해 가려고 옆으로 몸을 틀자, 리수진이 다시 내 앞을 막았다.

“쉬시라요.”

“정말 괜찮다니까요.”

나와 리수진이 실랑이를 하고 있을 때, 강문 선배가 다 비운 그릇을 내려놓으며 리수진에게 명령하듯 말했다.

“그냥 보내줘.”

“넵!”

리수진은 강문 선배의 말에 불쾌감 없는 목소리와 함께 일절 토를 달지 않고 바로 몸을 비켜섰다.

전부터 생각했지만, 리수진은 강문 선배의 말을 참 잘 듣는 것 같았다.

“안가고 뭐 합네까?”

방금까지 날 가로막은 사람과 동일 인물인지 궁금했다.

“휴우~ 가야죠. 강문 선배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리수진의 행동과 강문 선배의 성의 없는 대답에 나도 모르게 기운이 빠져 터덜터덜 정찰을 나갔다.

혼자 정찰하면서 포스에 대해 몇 가지 실험을 해보면서 다시 한번 느꼈다.

포스는 활용도가 참 다양했다.

전투 때는 다양한 공격기로 사용 가능했고, 포스로 육체를 강화해 힘과 민첩을 늘릴 수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포스로 눈을 강화하면, 어두운 밤인데도 시야 확보가 가능했다.

어두운 숲을 정찰하기 위해 시야를 확보했다지만, 눈으로만 확인하기에는 부족하다.

몬스터는 몸을 숨길 수는 있지만, 소리까지는 함부로 숨길 수 없을 거다.

나는 귀에 포스를 강화해서 청력을 극대화했다.

찌르르 찌르르르~

맨 처음 들리는 소리는 ASMR로 유명한 귀뚜라미 우는 소리였다.

솨아아아~

다음에는 가을에 가로수 길에서나 듣던 나뭇잎이 바람에 휘날리며 부딪히는 소리였다.

졸졸졸~

텔레비전으로만 들어봤던 시냇물 소리가 들렸다.

“시냇물?!!”

지금까지 우리는 리수진의 워터 마법으로 식수를 해결해 왔다.

잠깐이지만, 시냇물로 식수를 해결할 수 있다면, 리수진의 마나를 다른 데로 돌릴 수가 있을 것이다.

나는 시냇물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바스락

물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할 때 이질적인 소리가 들렸다.

‘이건 낙엽 밟는 소리다.’

나는 최대한 기척을 숨기고 조심히 물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했다.

잠시 뒤 시냇가에 도착한 나는 나무에 몸을 숨겼다.

시냇물은 크지 않지만, 꾸준히 흐르다가 작은 옹달샘을 만들었고, 옹달샘에는 한 쌍의 고라니가 목을 축이고 있었다.

몬스터화 된 이곳은 다양한 몬스터가 서로의 영역을 두고 싸우는 곳이었다.

한낱 초식 동물이 몬스터들의 먹이가 되지 않고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며 살아있다는 것이 정말 신비로웠다.

그리고 깨달았다.

고라니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너희는 우리의 단백질 공급원이 되어 줘야겠다.

서걱~

포스의 낭비일 수 있지만, 목을 축이고 있는 두 마리의 고나리를 한 번에 잡기 위해 탄검기를 날려 목을 베어냈다.

나는 급하게 옹달샘으로 다가갔고, 맑아 보이던 옹달샘은 고라니들이 흘린 피로 붉게 물들었다.

“미안하다. 너희의 목숨으로 백 명이 힘을 얻고 살게 될 거야.”

나는 죽은 고라니들 앞에서 짧게 묵념하고는 고라니의 몸에 손을 올렸다.

지금부터는 시간 싸움이다.

언제 피 냄새를 맡고 몬스터들이 몰려올지 몰랐다.

나는 손을 통해 죽은 고라니들의 몸속으로 포스를 주입했다.

푸확~

포스가 죽은 고라니들의 몸에 있는 피를 더 많이 더 빨리 뿜어지게 했다.

이렇게 하지 않고, 내가 죽은 고라니들을 데리고 가면, 분명 몬스터가 꼬일 거다.

엄청나게 나오던 피는 어느 순간부터 점점 줄더니 멈췄다.

나는 피가 묻지 않은 흙을 손으로 퍼서는 고라니의 상처 면에 비볐다.

방울방울 나오던 피도 흙으로 덮으니 더는 새어 나오지 않았다.

나는 각기 한 손에 고라니들을 껴안고는 야영지를 향해 최대한 빠르게 달렸다.

***

유신이 가지고 온 고라니 두 마리는 마을 사람들이 배불리 먹을 양은 아니었지만, 모두의 얼굴에 미소를 그리게 했다.

고라니의 뼈로 국물을 내고, 고라니의 살을 잘게 썰어 국을 끓이니,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고깃국이 됐다.

“후우~ 후우~”

“뜨거우니 천천히 먹으렴.”

라령이와 어린아이들은 고깃국이 뜨거운 줄도 모르고 먹었다.

나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웃음 짓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몬스터를 피해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는 위험한 상황인데도, 고작 고깃국에 행복해하고 있었다.

소소함에 행복을 느끼는 마을 사람들을 보니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유신아~ 그거 안 먹을 거면 나 주라.”

내가 잔잔한 감상에 빠져 있을 때 강문 선배가 자신의 고깃국을 다 먹고는 내 그릇을 노렸다.

훈계를 통해 날 일깨워준 강문 선배에게 미소를 지어주고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내 고깃국 그릇을 감싸 안았다.

“아뇨 먹을 건데요. 뜨거워서 식히는 중입니다.”

“쩝!”

자신의 몫을 다 먹은 강문 선배는 아쉬운지 입맛을 다셨다.

그때 리수진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그릇을 강문 선배에게 슬쩍 밀었다.

“내래 배부릅네다. 강문씨 드시라요.”

“됐어.”

“내래 정말 괜찮슴네다.”

“벼룩의 간을 빼먹지.”

리수진은 강문이 자신을 배려해서 고깃국을 받지 않았다고 생각해서인지 미소를 지으며 얼굴을 붉혔다.

나는 붉어진 얼굴의 리수진과 따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강문 선배를 번갈아 바라봤다.

확실하게 둘이 같이 이동하면서 뭐가 있었나 보다. 생각해보니 리수진의 말투도 상냥하게 바뀌었다.

“리수진씨.”

“뭡네까? 하유신 동무”

강문 선배에게는 사근사근하고, 내게는 냉랭하게 답하는 리수진의 목소리를 들으니 약간의 자괴감이 들었다.

“아니 왜 이렇게 차별이 심해요?”

“뭐가 말입네까?”

“나는 동무고 강문 선배는 씨입니까?”

“그래서 어쩌라는 겁네까?”

“저도 하유신씨라고 해줘요. 그게 싫으면 유신이라고 해도 좋고요.”

리수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경멸하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내 말이 그렇게 싫은 건가?

“하유신 동무 염치없다는 생각 안합네까?”

“어? 염치···요?”

내가 한 부탁이 정말 염치가 없나 생각에 빠져 있을 때 한숨 소리가 들렸다.

“휴~”

한숨 소리의 주인공은 강문 선배였고, 지금은 나를 짠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왜? 왜요 선배?”

“됐다. 먹고 쉬어라!”

“선배 그 표정은 뭔데요? 선배~ 선배! 강문 선배!!”

강문은 유신의 말을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야영지 밖으로 향했다.

리수진은 남은 고깃국을 마시듯이 해치우고는 강문의 뒤를 따랐다.

“강문씨 같이 가시라요.”

강문과 리수진이 설거지도 하지 않고 빈 그릇 놓고 사라지자, 유신은 홀로 남아 고깃국이 담긴 그릇을 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커플 지옥! 솔로 천국! 죽창이 필요해!”

***

리수진은 먼저 떠난 강문을 찾아 숲을 헤매고 있을 때 강문은 유신이 고라니를 잡았던 옹달샘에 도착해 있었다.

옹달샘은 고라니의 피로 인해 수많은 몬스터를 끌어들였다.

처음에는 고라니 머리를 가지기 위해 서로 싸웠지만,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기 위해 싸우고 있었다.

그렇게 몬스터들의 식량 전쟁 한복판에 강문이 그림자처럼 나타나더니 품에서 총을 꺼내 들었다.

타앙~!

타앙 탕탕탕······

강문의 사격에 옹달샘에 몰려들었던 몬스터들은 순식간에 생명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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