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_오우거(3)
“크아아악!!”
나는 움직이지 않는 몸을 강제로 각성시키기 위해 괴성을 질렀다.
내 괴성에 오우거는 라령이에게 다가가는 발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봤다.
이때다!
“이런 더럽게 못생긴 오우거 새X야! 쫄았냐? 도망치지 말고 일로 와!!”
나는 오우거에게 어그로를 끌며 검에 포스를 압축시키기 시작했다.
‘제발 내게 와라! 라령이는 두고 내게 오란 말이다!!’
내 바람이 통했는지 오우거가 내게 달려왔다.
나는 오우거가 다가오는 그 짧은 시간에도 얼마 남지 않는 포스를 박박 긁어서 압축시켰다.
오우거의 도끼가 내 머리 위로 높게 올라갔을 때 지금까지 압축시킨 포스를 오우거에게 쏟아냈다.
타앙!
타앙? 일점술을 썼는데 총소리가 들렸다.
일점술의 특수효과음인가? 라는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내 앞으로 꽁지 머리와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검정 코트를 입은 사람이 나타났다.
“강문 선배···?”
“뭐냐 그 꼴은?”
“너무 늦은 신 거 아니에요?”
“말 돌리지 말고 설마 오우거한테 당한 거냐?”
강문 선배가 표정을 굳힌 채,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언제나 조금은 가벼워 보이고, 어떻게 하면 나를 놀릴지 고민하는 강문 선배가 아니라, 엄격한 직속 선배의 분위기다.
“죄송합니다. 아직 제가 모자라서요.”
“알면 됐다. 돌아가면 지금보다 배로 훈련을 늘릴 테니···그렇게 알아둬!”
“······네”
내 대답이 끝나자 강문 선배가 코트에서 붉은 액체가 든 약병을 꺼냈다.
“그건 뭔가요?”
“포션.”
짧게 대답한 강문 선배는 포션 병을 열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내 입에 손수 넣어줬다.
“마지막 남은 거니까 절대 흘리지 말고!”
역시 강문 선배는 13기동 타격대의 하나(?) 밖에 없는 막내인 나를 생각해주고 있었다.
신비한 치료 효과가 있다는 포션을 직접 먹게 되었는데, 어찌 흘릴까?
나는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꿀꺽꿀꺽 포션을 다 받아먹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내 인사에 강문 선배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불안하다!!
언제나 저 미소 뒤에는 조용히 넘어간 적이 없다.
“크어어어엉~!!!”
내가 강문 선배 때문에 불안에 떨고 있을 때 숲 쪽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안 돌아가는 고개를 억지로 돌리자, 수십 마리의 트롤이 괴성을 지르며 숲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몬스터가 이렇게 갑자기? 아 맞다. 유신아.”
“네 강문 선배.”
“방금 먹은 포션. 약빨은 죽이는데, 후유증이 고통이다.”
“네?”
“쓰리 투 원 제로”
강문이 카운터를 끝내자,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하던 유신의 몸이 새우처럼 굽혀지며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아아악~!!”
강문은 그런 유신을 보며,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벼판다.
“시끄럽네.”
“서서서서 크아아악 배~!!!!”
“너 그 약 먹은 게 처음도 아니야. 그냥 평소에는 기절한 후에 먹어서 아픈지 몰랐던 거지.”
유신은 두 눈을 부릅뜨고 원망 가득한 눈빛으로 강문을 노려봤다.
“선배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봐야지. 그 버릇없는 눈빛은 뭐냐?”
“크아아아악!!”
“크어어어어엉!”
유신의 비명과 트롤의 괴성이 돌비 사운드를 이뤄내자 강문이 인상을 찡그렸다.
“조금 시끄럽다고 아직 아픈 막내를 팰 수도 없고!”
이렇게 아프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강문의 발언이 유신의 두 귀에 명확히 들려왔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잖아요. 평소에도 대련이라는 명목으로 개 패듯이 패면서!! 이···이···지옥불에 튀겨 먹을 선배놈아!!!’
유신에게 정말 다행인 것은 강문이 독심술도 그리고 상대의 마음을 읽는 능력도 없다는 거다.
그래서 강문의 표적은 유신에서 트롤로 넘어갔다.
“우선 저 시끄러운 것들부터 처리해야겠네.”
강문이 품에서 총을 꺼내 트롤을 겨냥하는데, 하늘 위에서 파이어 볼이 날아와 트롤과 부딪혔다.
파이어 볼은 트롤을 약간 그슬리게만 하고, 성질만 더욱 돋웠다.
“뭐냐? 저 허접한 마법은?”
“으득! 리수진씨의 마법입니다. 마···나도 없을 텐데··· 으드득!”
“너 버틸만 하냐?”
“아뇨 으득! 죽을 것 같습니다!!! 크윽~”
“우리 유신이 맷집만 늘었어.”
“···으득!”
강문은 유신의 이 가는 소리를 뒤로 하고 트롤에게 몸을 돌렸다.
“크어어어엉!!!”
파이어 볼에 화가 난 트롤들이 괴성을 지르며 마을로 달렸다.
마을과 트롤 사이에 있는 강문은 수십 마리의 트롤이 달려오는데도 느긋하게 총을 겨눴다.
“내가 시끄럽다고 했지!!”
“크어어어···”
타앙~
한 방의 총성이 들려오고 괴성을 지르던 트롤이 달려오다가 그대로 꼬꾸라졌다.
호사가들이 말하기를 트롤은 무한에 가까운 재생력을 가지고 있어서 상대하기 까다롭다고 했다.
하지만, 단 한 방의 총성에 트롤은 머리가 깨져 쓰러진 후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대부분의 몬스터들은 육체적 능력은 월등하지만, 인류보다 지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트롤도 마찬가지로 선두에서 달리던 동료가 쓰러졌는데도,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 달려왔다.
“크어어엉···”
강문은 트롤을 사살할 때 자신만의 원칙에 맞춰 죽였다.
“우선 시끄럽게 하는 놈.”
타앙!
“입 벌린 놈.”
타앙!
“시끄럽게 하는 놈 옆에 있어서.”
타앙!
“너는 특히 보기 흉하다.”
타앙!
“그냥 넌 기분 나쁘게 생겼다.”
타앙!
“우리 막내가 고통 속에서도 나를 노려보네.”
타앙!
“유신이 찾으려고 노숙까지 했다.”
타앙!
“유신이 저놈이 GPS를 늦게 켜서 저 멀리 남한까지 뛰어갔다 온 게 짜증 나네.”
한편 유신은 고통 속에서 생각했다. 절대 강문 선배에게 개기면 안 되겠다는 걸.
탕! 탕! 타앙!
인류보다 지능이 모자란 몬스터는 본능에 충실했다.
트롤들은 순식간에 절반 이상의 동료들이 죽자, 위기를 느끼고는 도망치려고 했다.
“어딜 도망가?!”
강문의 총알이 도망가는 트롤들에게 먼저 다가갔다.
그렇게 트롤들을 정리하고 있을 때 숲 쪽에서 보통의 트롤보다 1.5배는 더 큰 트롤 킹이 등장과 동시에 괴성을 지르며 강문에게 달려왔다.
“크어어어엉~!!”
강문은 트롤 킹이 쿵쿵거리며 달려오는 모습을 쳐다보지도 않고, 도망치는 트롤들을 하나씩 정리할 뿐이었다.
트롤 킹이 강문의 근처까지 왔을 때는 마을을 쳐들어왔던 수십 마리의 트롤들은 모두 시체가 됐다.
트롤 정리가 끝난 강문은 권총들을 다시 소매 안으로 숨기고 시끄럽게 괴성을 지르는 트롤 킹을 바라봤다.
“크어어어엉!!”
트롤 킹은 괴성과 함께 강문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강문은 트롤 킹의 주먹을 향해 자신의 주먹을 내뻗었다.
멀리서 강문과 트롤 킹의 싸움을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몬스터를 학살하던 강문이 무모하게 트롤 킹에게 맨몸으로 싸우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강문이 피곤죽이 됐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
“···이··· 이겼슴네다.”
끝까지 전투를 지켜보던 리진수의 외침에 고개를 돌렸던 마을 사람들이 앞을 바라봤다.
트롤 킹은 오른손과 오른쪽 가슴 그리고 얼굴의 절반이 사라진 채 뒤로 넘어갔다.
“어···어찌 된 겁네까?”
“모릅네다. 고조 주먹끼리 부딪쳤는데, 트롤이 저 모양이 됐습네다.”
트롤 킹을 끝으로 모든 트롤들을 처리한 강문은 기지개를 켜며 유신에게 다가갔다.
유신은 약빨 때문에 아직 고통스러운지 땅바닥을 움켜쥐며 인상을 구겼다.
“고···으득 고생 많으···셨···”
유신은 강문에게 말을 끝내지도 못하고 눈을 뒤집으며 기절했다.
기절한 유신을 들쳐 멘 강문이 마을로 걸음을 옮겼다.
마을로 향하는 길에 자신의 총알에 머리가 깨져 죽은 오우거의 사체를 흘끔 쳐다봤다.
그런데 오우거가 들고 있던 강철로 연마된 도끼가 아직 칙칙하고 검은 기운을 내뿜고 있는 걸 보게 됐다.
“하수인이었네. 하수인이 왜 여기에? 응??”
도끼를 쳐다보던 강문은 도끼 중앙에 손가락 크기만 한 구멍이 뚫려 있는 걸 보게 됐다.
구멍이 뚫린 곳의 연장선을 찾아보니 오우거의 심장에 같은 크기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내가 안 도와줘도 됐었네. 유신이 실력 많이 늘었네.”
강문은 기절한 유신의 엉덩이를 두드리며 칭찬했다.
***
촌장인 리호진과 마을의 장로 겸 연장자들이 둘러앉아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때 회의장 문이 거칠게 열리며 비대한 몸의 김정운이 들어왔다.
“고조 뭣들 하는 겁네까?”
김정운은 들어오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한편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고는 리수진이 회의실에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징그러운 미소 지었다.
한편, 회의 중에 갑자기 난입한 김정운 때문에 리호진이 인상을 찡그리고선 버럭 화를 냈다.
“김정운 동무! 마을의 대소사를 논하고 있는 자리에 갑자기 들어와 뭐하는 겁네까?!”
리호진의 외침에 김정운은 눈을 가늘게 뜨며 리호진을 쏘아봤다.
“벌써 풀렸슴네까?”
“뭐가 풀렸다는 겁네까?”
“짝!”
김정운이 박수를 쳐 사람들의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고는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뿌리며 외쳤다.
“세뇌!”
김정운이 뿌린 회색 가루가 회의실 안에서 눈송이처럼 떨어졌다.
눈송이 모양의 회색 가루가 사람들에게 닿자, 지혜로워 보였던 노인들의 눈동자가 천천히 흐리멍덩해졌다.
“오우거의 피어가 세뇌를 깨버려슴네까?”
김정운이 리호진을 바라보며 질문을 했고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리호진이 고개를 끄떡였다.
“네 그렇슴네다.”
“나 없는 동안 이야기는 어디까지 진행됐슴네까?”
“남한 동무들에게 부탁해. 마을을 버리고 다들 떠나기로 했슴네다.”
“그러면 안 되지 안카슴네까? 내가 어떻게 얻은 권력인데 말입네다.”
“······”
“고조···”
김정운이 팔짱을 끼고 고민하는 동안 모두 멍한 눈빛으로 김정운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그 남한 동무들이 남아서 죽을 때까지 우리를 지켜주면 돼갔소.”
본인의 생각이 만족스러운지 김정운은 아주 천천히 사선으로 박수를 쳤다.
“뭣들 하는 겁네까? 날래 날래 남한 동무들을 여기로 데리고 오라우~”
김정운의 명령에 리호진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그때.
“데리고 오긴 뭘 데려와?”
갑자기 들린 낯선 소리에 회의실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소리가 들린 곳은 김정운이 박차고 들어온 회의실 문 쪽으로, 그곳에는 강문이 껄렁한 자세로 문틀에 기대고 있었다.
김정운은 강문의 여유로운 모습에 흠칫 놀라지만, 내색하지 않고 강문에게 다가가 악수를 권했다.
“내래 김정운이라고 합네다.”
강문은 김정운이 내민 손을 흘끔 쳐다보고는 역겨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더러운 손 치워!”
모욕적인 언사를 들은 김정운은 토실토실한 볼살을 떨며 내밀었던 손을 자신의 안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남한 동무들은 사람을 남부끄럽게 하는 소질이 있슴네다.”
김정운은 말을 하는 동안 안주머니에 있는 회색 가루를 꺼내서는 강문에게 뿌렸다.
“세뇌!”
눈송이가 된 회색 가루는 빛을 내며 강문의 몸에 닿았다.
강문은 더러운 게 몸에 닿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신경질적으로 몸에 묻은 회색 가루를 털어냈다.
“한 번만 더 나한테 비듬 뿌리면 죽여 버린다.”
강문의 낮게 깔린 목소리와 매서운 눈빛에 김정운은 뒤로 넘어지며 벌벌 떤다.
“이···이럴 리가 없슴네다. 내래 능력이···”
“겨우 B등급 세뇌는 여기서나 왕 노릇하는 거야.”
“이···이이···”
김정운은 강문의 경고를 무시하고 다시 한번 회색 가루를 뿌리기 위해 손을 안주머니에 넣으려고 했다.
털썩.
김정운의 오동통한 손이 바닥에 떨어졌다.
뒤늦게 자신이 손이 잘린 걸 파악한 김정운은 두 눈을 부릅뜨며 비명을 지르려고 하는데, 세상이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하~ 듣기 싫은 소리 듣는 게 얼마나 스트레스인데, 더러운 돼지 X끼가 비듬까지 털고 있네.”
강문의 욕설과 함께 김정운의 잘린 머리는 바닥에 닿았고, 김정운의 의식은 날아갔다.
세뇌 능력자였던 김정운을 죽인 건 신무가 탐을 내던 드워프제 잭나이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