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빼고 먼치킨-29화 (29/300)

29화_빌리지 디펜스(3)

마계화가 진행된 곳은 더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된다.

동물은 몬스터화가 진행되고, 마기가 강해지는 밤이 되면, 시체들이 언데드가 되어 몸을 일으킨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모든 동물이 죽거나 몬스터가 되고, 식물까지 마기를 가지게 되면, 그 땅은 끝이다.

방법은 마계화가 끝나기 전에 그 동력을 찾아야 한다.

내가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리수진이 시동어를 외쳤다.

“파이어!”

리수진의 시동어는 우렁찼지만, 불꽃은 피어오르지 않았다.

나는 메고 있는 배낭을 내려놓고는 그 안에서 조명탄을 꺼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구시대적인 물건이 아직 통용된다는 게 웃기지만, 역시 생존에는 필수 품목이다.

나는 조명탄을 사체에 향하게 하고 그대로 당겼다.

치이익~

피이잉융~

조명탄의 불꽃이 몬스터 사체를 향해 날아갔다.

불꽃은 몬스터 사체와 부딪히며 산산이 깨져갔다.

잔 불꽃은 몬스터를 태우지 못하고, 곧 힘을 잃었다.

유신은 불꽃을 뿜어내는 조명 스틱을 몬스터 사체에 던져서 힘을 잃어 가는 불꽃에 힘을 보태줬다.

치지지직~

조명 스틱의 불꽃이 사체를 태우려고 하지만, 피가 식지 않은 몬스터의 사체들을 태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유신은 배낭을 다시 뒤져서 작은 기름통을 꺼내 아직 불꽃이 꺼지지 않는 곳으로 던진 후, 재빠르게 발검해서 기름통을 쪼갰다.

꺼져가는 불에 기름이 닿자마자 불꽃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불꽃을 키운 다음 마을 사람들을 돌아봤다.

“이걸로 부족할 것 같은데, 마른 장작 같은 건 없나요?”

내 말에 마을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는지, 마을로 뛰어갔다.

나는 캐스팅을 멈춘 리수진에게 의기양양하게 걸어갔다.

이번에는 리진수도 막지 않았다.

“왜 그런진 모르겠지만 혼자 다 하려고 하지 마요.”

“일 없슴네다.”

“네 저도요.”

나는 입가 가득 미소를 지으며 표독스럽지만 예쁜 리수진을 바라봤다.

처음에는 과격하면서 당당한 모습을 보여줬던 리수진이 뭐가 부끄러운지 고개를 돌렸다.

남매 성격이 이렇게 똑같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파다다닥

마을 사람들이 한 아름씩 마른 장작을 가지고 오다가 걸음을 멈추고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파다다닥

나는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닿은 하늘을 바라봤다.

날카로운 앞발을 가지고 있는 성인 크기만 한 멘티스 무리가 날아오고 있었다.

“도···도망치라우!”

누군가의 외침인지 모르겠지만, 그게 신호가 되어서 모두 장작을 내팽개치고 마을로 도망쳤다.

나는 왼손으로 검을 뽑으며, 멘티스에게 달려가려고 하는데, 리수진이 내 옷깃을 잡았다.

“고조 무리하지 마시라요. 저놈들은 사체를 파먹으려고 온 겁네다.”

리수진은 정말 멘티스 무리가 위협되지 않다고 생각하는지, 지친 몸을 돌려 마을 목책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나는 멘티스를 경계하며 뒷걸음질 치며 마을로 돌아갔다.

내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면, 과연 저 많은 멘티스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솔직히 미지수다.

개체 수 한 마리, 한 마리가 C등급인 게 멘티스다.

지금 내 포스면 과연 얼마나 상대할 수 있을까? 다른 건 모르겠지만, 나도 목숨을 걸어야 할 것 같다.

파다다닥

사각사각

노약자들은 집으로 숨고, 마을의 자경단이라는 젊은 남성들만 목책 뒤에 숨어 멘티스가 하는 짓을 몰래 바라봤다.

다행히 멘티스는 더 다가오지 않고, 고블린과 코볼트의 사체를 파먹기에 여념이 없었다.

사각사각사각

멘티스의 식사는 그로테스크하지만, 시선을 뗄 수는 없었다.

언제 멘티스들이 사체에서 이쪽으로 눈을 돌릴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서른 명도 되지 않는 마을 사람들은 죽창을 들고, 경계 어린 눈빛을 보였다.

리수진은 창백한 안색으로 멘티스들을 쳐다보다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무슨 생각인지 이 위험한 장소에서 명상에 들어갔다.

“취이이익!”

숲 쪽에서 들려온 소리에 사체를 파먹던 멘티스들이 행동을 멈추고는 고개를 돌렸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숲에서 약 오십 마리 정도의 오크들이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명상에 빠진 리수진을 잠깐 쳐다본 후에 불안해하는 리진수를 바라보며 외치듯이 물어봤다.

“어떻게 지금까지 마을이 멀쩡했던 거야?”

***

어두운 동굴 안과 어울리지 않게 거대한 공동의 한쪽 벽면에 숲의 제왕이라는 오우거가 서 있고, 그 옆으로 트롤과 오크들이 도열 해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앙에 하유신과 싸우다가 도망쳤던 홉고블린이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벌벌 떨고 있었다.

홉고블린은 오크도, 트롤도, 오우거도 아니고, 빛 한점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공간을 향해 연신 머리를 찧었다.

그때, 빛 한점 들어가지 못하는 어두운 공간에서 새하얗고 가느다란 손이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중력과는 상관없이 홉고블린이 공중에 붕 떠서는 어둠의 경계면까지 다가왔다.

하얗고 가느다란 손은 날카로운 손톱으로 홉고블린의 이마를 쭉 그어 상처를 냈다.

“킥키키킥”

홉고블린이 겁에 질려 외치자, 갑자기 하얗고 가느다란 손이 홉고블린의 머리를 잡고는 수박 터트리듯 터트려 버렸다.

그 모습에 오우거와, 트롤, 오크가 겁에 질려 벽면으로 더욱 몸을 밀착하며 벌벌 떨었다.

어둠에 몸을 숨기고 있던 존재가 한 걸음 앞으로 나오자, 모습이 드러났다.

인간의 형상에 창백한 피부를 가지고 있고 머리에는 두 개의 뿔이 있지만, 그중 왼쪽 뿔이 반은 잘려있었다.

모든 사람은 알고 있다. 인간의 형상에 뿔이 있는 존재.

마기를 풀풀 풍기며, 마왕 강림과 함께 등장해서, 몬스터 땅을 다스리는 존재들.

마족!!

마족은 홉고블린의 피와 뇌수가 묻은 자신의 오른손을 입가로 가져가 핥았다.

그리고는, 홉고블린의 사체를 둥실 띄운 다음 한입에 삼켜 버렸다.

홉고블린의 사체를 삼킨 마족이 눈을 감고 맛을 음미할 때, 마족의 몸에서 검은 마기가 살짝 일어나며 잘린 뿔에 마기가 집중됐다.

마족의 뿔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약간 재생되었다.

“역시 부족해. 조금 더 키워서 먹으려고 했는데, 더는 기다릴 수 없겠어.”

마족은 홉고블린의 피가 묻은 손으로 오크를 가리켰다.

“인간 여자를 빨리 내 앞으로 데리고 와라.”

마족에게 지정 당한 오크가 몸을 떨다가, 뒤늦게 자신의 실책을 파악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취이익!”

오크가 동굴을 떠나자, 마족은 다시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

오크!

태어날 때부터 전사로 태어나는 몬스터.

자연스럽게 붙는 근육이 3대 500은 가능할 정도이며, 늙어 죽는 것보다, 전쟁터에서 싸워 죽는 것을 최대의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존재.

한 몬스터 학자가 오크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오크가 단순 무식하지 않고, 전략*전술을 사용할 수 있었다면, 최후의 결전에서 인류는 패배했거나, 승리하더라도 인류의 수가 지금보다 절반은 줄었을 겁니다.”

지금 인류를 위협했던 단순 무식하고, 근육질의 오크들이 마을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취이익!”

정말 다행인 건 오크들의 돌격이 식사하고 있던 멘티스들을 자극했다는 거였다.

개도 식사할 때는 건들지 않는데, 오크들에게 그런 기본 매너를 바랄 수 없었다.

방금까지 우리를 위협했던 멘티스들이 이제는 오크들에게서 우리들의 방어막이 되어줬다.

“키이익!”

“취이익!”

개체 수는 오크들이 월등히 많았지만, 벌레인 멘티스들은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오크들에게 앞발을 휘둘렀다.

멘티스의 앞발이 오크의 가슴을 베고 찔렀다.

오크들의 몽둥이가 멘티스의 머리를 깨부쉈다.

몬스터들은 자신들끼리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전투를 벌였다.

“뭣들 합네까?”

짧게 명상을 끝내고 일어선 리수진의 외침에 오크와 멘티스의 전투를 구경하던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리수진 동무 어떻게 해야겠슴네까?”

“야들부터 숨기시라우.”

“고조 괜찮지 않겠네?”

“괴생물의 목표는 우리입네다.”

리수진의 확고한 말투에 중년의 남성은 자경단원을 돌아보며 외쳤다.

“낼래 움직이라우~!”

남성의 말에 마을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할 일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뭘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움직이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을 때, 리수진이 내게 다가왔다.

“동무 불꽃탄 하나 더 있슴네까?”

“불꽃탄? 아~ 조명탄이요?”

“있슴네까? 있으면 빨리 꺼내시라요.”

리수진은 부탁하면서 너무나 당당했다.

그 당당함에 나는 조명탄이 없다면, 만들어서 줘야 할 것 같기에 배낭에 남아 있는 여분의 조명탄을 꺼내 리수진에게 건네줬다.

리수진은 내가 건넨 조명탄을 받지 않고, 몬스터 사체가 쌓인 곳을 가리켰다.

“내래 신호하면 쏘시라요.”

거부할 수 없는 리수진에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떡였고, 리수진의 캐스팅이 시작됐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리수진은 저 몬스터 사체를 태워서 오크와 멘티스들에게 타격을 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아무리 몬스터 사체에 약간의 기름이 부어져 있다고 해도, 조명탄의 불꽃은 약했다.

리수진이 마법으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짧은 명상으로 약간 회복된 마나로 무슨 마법을 할 수 있을까?

솔직히 기대하기 어렵지만, 아까 전의 어스퀘이크 마법이 떠오르자, 조금은 신뢰가 가기도 했다.

내가 조명탄을 몬스터 사체에 향하자 때마침 리수진의 캐스팅이 끝났다.

리수진과 내가 눈이 마주치자. 리수진이 고개를 끄떡였다.

나는 가볍게 숨을 내뱉고는 조명탄을 발사했다.

치이익!

피이이융~

다행히 조명탄의 불꽃은 방해 없이 날아가 몬스터 사체에 부딪혔다.

그리고 리수진의 마법이 시작됐다.

“에어 붐”

꺼져가는 불꽃이 다시 피어오르다가, 아까 뿌려놨던 기름에 닿았는지 몸집을 키웠다.

“에어 샤워”

몸집을 키운 불꽃은 그대로 끝나지 않고, 에어 샤워의 기운에 힘을 받아, 옆에서 전투 중인 오크와 멘티스에게 피해를 주기 시작했다.

역시 저레벨 마법으로는 오크와 멘티스에게 큰 타격을 주긴 힘들었다.

그래도 짧은 시간에 이런 마법을 발휘한 리수진이 대단하다고 느낄 때, 리수진이 땀을 뻘뻘 흘리며 고속 캐스팅을 전개했다.

“파이어 월”

리수진의 파이어 월은 일반적인 파이어 월은 아니었다.

활활 타고 있는 몬스터 사체를 매개체로 에어 샤워의 불꽃을 퍼트려 파이어 월을 완성했다.

마법은 역시 대단하다.

아니 리수진이 정말 대단한 것 같다.

하지만 이건 임시방편일 뿐이다.

마법이 끝나면 살아남은 몬스터들이 마을로 진격할 게 뻔했다.

나는 불안한 마음을 품고는 리수진이 해결책을 가지고 있기를 바라며 바라봤다.

주륵~

입가에서 피가 흘러내리면서도 리수진은 캐스팅을 멈추지 않았다.

저런 상태에서도 더 발휘할 마법이 있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

“익스플로··· 컥!”

리수진은 끝내 마법 시동어를 다 외치지 못하고 각혈했다.

그리고, 리수진이 쓰러짐과 동시에 불꽃이 약해지면서 파이어 월 마법이 풀렸다.

마법은 멘티스와 오크에게 피해를 주었지만, 그로 인해 오크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됐다.

멘티스들이 파이어 월의 불꽃에 날개가 타버려서 더는 날지 못하게 됐고, 오크들에게는 그게 기회였다.

파다다닥

전투는 순식간에 끝났고, 날개를 다치지 않은 몇몇의 멘티스는 사체를 물고 하늘 높이 도망쳤다.

“취이이이익!!!”

오크들이 멘티스를 쫓아내고 승리의 포효를 내질렀다.

승리의 포효를 내지르는 동안 나는 오른손을 쥐어봤다.

짧은 순간 제대로 약효가 돌았는지 아직 고통은 따르지만, 움직일 수 있게 됐다.

나는 오른손의 부목을 떼어내고, 몸에 착용한 벨트들을 하나씩 풀어냈다.

그렇게 몸을 가볍게 만든 후에, 검을 뽑아 오른손에 쥐고는 붕대로 감았다.

이렇게 하면 다양한 검로는 사용할 수 없지만, 검을 놓치지는 않을 거다.

쿵쿵쿵

오크들은 표효를 끝낸 후 병장기들을 이용해 바닥을 찼다.

이건 오크들이 진격하겠다는 신호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오크들을 바라봤다.

내 의도를 파악한 건지 리수진이 나를 불러 세웠다.

“뭐하는 겁네까?”

“뭐하긴? 나도 전투 준비지.”

내 말에 리수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차라리 도망치시라요. 도망쳐도 여기서 원망할 사람 하나도 없슴네다.”

“세계정부 제 3원칙, 몬스터와의 싸움은 인류의 의무이다.”

내 말에 리수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의무감으로 똘똘 뭉친 투철한 공무원··· 아니 계약직 공무원이거든.”

나는 리수진에게 상큼한 미소를 지어주고는 목책을 벗어나 오크들에게 다가갔고, 리수진은 그런 내게 외쳤다.

“동무는 단단히 미쳐슴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