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_빌리지 디펜스(2)
사람들에게 전투의 긴장감을 풀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 건데, 정적이 흐르니 내가 다 무안하다.
“고조 내가 봤을 땐 귀신이 저러지 않을 테니 사람이 맞구만.”
이러나저러나 귀신이라는 오해가 풀린 것 같다.
그때 마을 사람들 사이를 뚫고, 예쁜 얼굴에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적인 여성이 아까 내 검을 가지고 있던 남성의 목덜미를 붙잡고 다가왔다.
내 앞에 선 여성은 남성을 땅바닥에 거칠게 내팽개쳤다.
“어여! 사과 드리라우.”
“···내래 죄송합네다.”
내 검에 눈독을 들인 남성은 전혀 미안해하지 않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사과했다.
나는 더는 엮이고 싶지 않기에 냉랭한 표정을 지으려 노력하며 왼손을 내밀며 말했다.
“검집.”
남성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여성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한 대 맞고 나서야 내가 뭘 원하는지 파악한 남성은 허둥지둥 자신의 옆구리에 찬 검집을 풀어서 내 손 위에 조심히 올려놓았다.
아직 불편한 오른손 때문에 왼손만을 사용해 힘들게 검집을 허리춤에 착용했다.
그리고는 땅에 박혀 있는 검을 빼 들자, 남성이 흠칫 놀란다.
괘씸해서 놀려주고 싶었지만, 더하면 공포심만 조장하는 것 같기에 검을 오른손 부목에 대고 대충 슥~ 닦아낸 다음에 착검했다.
“후~”
남성은 정말 긴장을 했었는지, 길게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내가 다시 손을 내밀었다.
이번에도 남성은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돌려주는 김에 의료 키트도 돌려주시죠?”
급하게 혁대를 푼 남성이 의료 키트를 돌려줬다.
의료 키트를 확인해 보니, 따로 사용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의료 키트에서 골절상 키트를 꺼내 내 오른팔에 주사했다.
바늘의 따끔함에 눈살을 찌푸리고 있을 때 여성이 다시 남성을 쥐어패기 시작했다.
“내래 도적질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지 않았니!”
“누나 그만 때리라우. 내래 다시는 안 그럴 텐게.”
여성은 한동안 동생을 패고 나서 씩씩거리다가 마지막으로 한 대 더 때리고, 고개를 돌려 나를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봤다.
“리수진이요. 저기 저 바닥에서 기고 있는 부족한 내 동생은 리진수요.”
“아··· 김정운이라는 사람이 아니고 리진수요?”
“바드득! 김정운이요?”
리수진이라는 여성은 김정운이라는 사람에게 악감정이 있는지 표정을 구기며 이를 갈았다.
나는 이 어색한 분위기를 바꿔야 할 의무감이 들어서 뒤늦게 내 소개를 시작했다.
“아! 저는 하유신이라고 합니다.”
다행히 화제 전환이 됐는지, 리수진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고조 남한사람 같은데 왜 하늘에서 떨어졌슴네까?”
리수진의 품평도 싫었고, 낙오됐다고 진실을 말하기는 부끄러워서 말을 돌리기로 했다.
“그런데 아까 마법을 사용하신 분 아닌가요?”
“맞습네다.”
“머리가 정말 좋으시네요.”
“마나 재능이면 다 쓸 수 있는 거 아닙네까?”
“네?”
마나 재능을 타고났지만, 복잡한 수식 연산을 못 해 마법사의 길을 포기한 사람들이 들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말이지만, 이건 배워야 한다.
이런 식으로 자기 자랑을 할 수 있다는 건 꼭 기억해서 나중에 써먹어야겠다.
내가 그렇게 리수진이 말한 명언을 기억하려고 무던히 애를 쓰고 있을 때였다.
“컹컹컹컹컹”
코맹맹이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마을 사람 모두가 마을 밖을 쳐다봤고, 나도 몸을 돌려 소리가 들려온 곳을 확인했다.
“하유신 동무! 물어볼 게 많은데 그건 나중에 풀어야겠슴네다.”
“그렇네요. 이번에는 땅개 코볼트네요. 그런데 수진씨”
“친한 척 이름으로만 부르지 마시라요.”
리수진은 사람을 쉽게 민망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며 그저 고개를 끄떡였다.
“아 네. 리수진씨.”
“와 부름네까?”
“원래 이렇게 몬스터가 많이 나타나나요?”
“그러면 우린 어찌 살겠슴네까?”
나는 리수진의 대답에 민망함을 벗어던지기 위해 목책으로 향했다.
“간나 새끼!!”
갑자기 리수진의 욕설이 들려왔다.
나한테 하는 소리인 줄 알고 고개를 돌리니, 어떤 남성이 리수진에게 귓속말을 하고 있다.
“또 사람들을 조종했슴네까?”
“내래 잘 모르겠슴네다.”
“바드득”
리수진의 이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역시 예쁜 장미에는 가시가 많다.
리수진의 주위에 있으면 외부인인 나한테도 불똥이 튈 것 같기에 코볼트를 정찰하기 위해 숲 쪽을 예의주시했다.
“코볼트를 상대해 본 적 있슴네까?”
리수진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날 부르는 게 아닐 거라는 생각에 애써 무시했다.
“하유신 동무!”
나는 빽하니 악을 지르는 리수진에게 깜짝 놀라 어정쩡하게 고개 돌려 바라봤다.
“네? 저요?”
“내래 하유신 동무를 불렀지 그럼 누굴 부릅네까?”
“아 나구나.”
나는 애써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대답했다.
“실전으로는 처음입니다.”
“고조 시간을 벌어 주시라요.”
“시간이요?”
리수진은 내 물음에 답하지 않고 캐스팅에 들어갔다.
일견 확실해졌다. 리수진은 사람을 민망하게 만드는데 일가견이 있다.
나는 애써 리수진을 무시하고는 코볼트들이 숨어 있는 숲을 향해 다시 고개를 돌렸다.
바위 뒤, 나무 뒤에 숨어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잿빛의 피부에 매부리코의 코볼트들이 보였다.
눈으로 대충 확인하기로는 아까 고블린들보다 숫자가 적어 보였다.
나는 오른손을 들어 주먹을 쥐려고 하는데, 아직 고통이 따라왔다.
어쩔 수 없이 왼손으로 검을 빼 들고 숲과 마을 중간지점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컹컹컹컹”
코맹맹이 개 짖는 소리로 의사소통하는 코볼트들은 고블린들과 같은 난쟁이족에 속하는 몬스터다.
몬스터 백과사전에서는 광산에 자주 출몰하는 광부 몬스터로 땅에 구멍을 파서 이동을···
순간 불안감이 감돌고, 포스를 귀에 집중해서 주위 소리에 집중했다.
“슥슥슥슦”
무언가 긁어내는 소리가 내 뒤편 땅속에서 들렸다.
나는 급하게 몸을 돌리면서 힘껏 점프했다. 그리고는 검에 포스를 싣고는 땅에 박아넣으며 포스를 폭발하듯 터트렸다.
푹!
콰콰쾅!!
“깽깨깨깽”
반경 3미터 크기의 크레이터가 생기며, 그 밑에 있던 코볼트들이 포스의 폭발로 인해 비명을 지르며 죽어 나갔다.
폭발의 반경에서 벗어난 코볼트들은 땅굴에서 나오며 땅을 파기 위해 기형적으로 생긴 손을 내게 휘둘렀다.
나는 손을 피하지 않고,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디며, 코볼트를 베어냈다.
서걱
그렇게 한 마리씩 나오는 코볼트를 베어내는데, 숫자가 고블린을 상대할 때보다 더 많은 것 같았다.
숲에 숨어서 지켜보던 코볼트들은 미끼이고, 진짜는 여기였다.
무차별적으로 코볼트들에게 검을 휘두르고 있을 때 정말 미세하게 발밑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나는 휘두르던 검을 그대로 땅에 찔러넣었다.
푹~!
검 끝에서 피륙을 베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뛰어난 광부라고 해도 이 진동까지는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렇게 한참 코볼트를 베고 있을 때 숲에 숨어서 기회를 노리던 코볼트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컹컹컹컹컹”
땅굴에서 나오는 코볼트를 상대하느라 숲에서 달려오는 코볼트를 어떻게 저지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마을 사람들의 죽창이 날아와 코볼트를 꿰뚫었다.
그때 땅굴에서 튀어나오던 코볼트들이 잠시 멈칫하고, 숲에서 달려오던 코볼트들이 죽창 때문에 머뭇거릴 때 리수진의 신호가 들렸다.
“뒤로 피하시라오.”
아까 전부터 마을 쪽에서 느껴지던 거대한 마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머뭇거리면 마법에 휩쓸릴 수 있을 것 같기에 몸을 돌려 최대한 빠르게 도망갔다.
내가 재빠르게 도망쳐 목책 뒤로 몸을 피할 때 리수진의 마법이 발동됐다.
“어스퀘이크!!”
방대한 마력인 건 알고 있었는데, 그게 어스퀘이크일 줄은 몰랐다.
어스퀘이크는 마나가 있고, 수식을 안다고 다 쓸 수 있는 마법이 아니다.
고서클의 마법이면서, 고등 마법으로 분류되어 있다.
고등 마법을 쓰려면 최소한 더블 캐스팅이 가능해야 한다.
어스퀘이크를 발동할 지형에 대해서 파악하는 레이더 마법을 펼치면서 땅이 갈라지고, 솟구치게 만드는 어스퀘이크를 고속연산으로 계속 계산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깨깨깽~”
“깽!”
코볼트들의 짧은 단말마와 함께 땅 위에 있던 코볼트는 솟아오르는 땅에 찔러 죽었고, 땅 밑에 있던 코볼트들은 압사되어 죽어갔다.
더는 코볼트들의 비명이 들리지 않자, 땅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어스퀘이크라는 대규모 마법이 벌어졌다는 게 거짓말인 것처럼 땅은 평지로 변했다.
“대박!”
나는 벌어지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어스퀘이크를 수습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지금 이 마법을 세계정부와 세계헌터협회의 스카우터들이 봤다면, 리수진을 스카웃 제 1순위로 올릴 것이다.
나는 홀로 먼치킨을 찍은 리수진을 바라봤다.
리수진은 마법이 끝났는데도, 땀을 흘리며, 무언가를 계속 캐스팅했다.
“드드드드득~”
그때 땅에 진동이 일어나며, 방금 죽은 코볼트와 아까 내가 죽인 고블린을 뱉어냈다.
그렇게 몬스터의 시체들이 땅에서 다 솟아오른 다음에야 리수진의 마법은 끝이 났다.
마법을 끝낸 리수진은 거친 숨을 내뱉으며 그대로 무너졌다.
“하악 하악~”
지금 보니 더 대단하다.
마법을 발현하게 도와주는 그 흔한 고목나무 지팡이도 없이 오직 자신의 마나와 수식으로 마법을 완성했던 것이다.
“리수진씨 정말 대단하네요.”
나는 리수진을 칭찬하며 다가가려고 하는데, 리수진의 동생 리진수가 경계 가득한 눈빛으로 내 앞을 가로막았다.
“물러서시라우!”
“내가 외지인이기는 한데, 그렇게 경계할 필요는 없어.”
내 말에도 리진수는 끝까지 경계를 풀지 않았다.
말 몇 마디 하려고 서로 피곤해질 필요는 없기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지 나도 지쳤다.
추락의 격통이 다 낫기 전에 고블린들과 사투를 벌였고, 코볼트와 싸울 때는 언제 어디서 코볼트가 나타날지 몰라 오감을 예민하게 키웠다.
포스와 체력이 부족한 느낌보다는 정신력이 고갈된 느낌이다.
“크윽~”
전투의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오른팔이 욱신거린다.
골절 의료 키트를 주사했지만, 정말 뼈라도 부러졌는지 아직 낫지 않았다.
“자~ 날래 날래 움직이라우~”
모두가 지쳤을 텐데, 마을 사람들은 목책을 벗어나 고블린과 코볼트의 시체를 갈라 마정석을 꺼냈다.
여기까지야 몬스터 사냥 후에 있는 기본적인 행동이기에 무심하게 쳐다보고 있는데, 마을 사람들이 몬스터 사체를 한 곳에 그러모았다.
그 모습을 보니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설마 여기 사람들은 몬스터를 식량으로 사용하는 걸까?
“디그”
리수진이 언제 일어났는지 창백한 표정으로 마법을 사용해 큰 구덩이를 만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리수진이 만든 구덩이에 고블린과 코볼트의 사체를 던졌다.
몬스터의 사체는 구덩이를 메꾸고 작은 동산을 이룰 만큼 쌓였다.
평야에 더는 몬스터 사체가 없는 걸 확인한 후에야 마을 사람들은 행동을 멈췄다.
이 작업을 위해 모든 사람이 동원됐다.
나를 돌봐주던 여인도, 그의 딸 라령이도 나와서 이 작업을 도왔다.
전투 후 쉬지도 못한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누가 봐도 지쳐 보였다.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불평불만을 터트리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리진수에게 다가갔다.
“근데 이건 왜 모은 거야?”
내 말에 리진수가 불쾌감을 표현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동무는 것도 모르십네까?”
“······설마 먹으려고?”
“남쪽에서는 괴생물을 먹슴네까?”
“아니 안 먹지.”
“그럼 왜 우린 먹는다고 생각하십네까?”
“그···그렇네 미안.”
리진수는 나와의 대화가 불편했는지 고개를 팽 돌렸다.
“파이어!”
언제 리수진이 캐스팅을 끝냈는지 시동어를 외치지만, 이미 텅 빈 마나로 인해 불꽃이 피어나지 않았다.
“아직 시간 좀 있으니 쉬시라요.”
“일 없습네다.”
“우리 리수진 동무는 너무 고집불통입네다.”
마을 사람 중 그나마 나이 들어 보이는 장년인에 말에 리수진은 미미하게 미소를 짓고는 다시 한번 캐스팅을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손가락으로 리진수의 옆구리를 찔렀고, 옆구리가 찔린 리진수가 인상을 쓰며 돌아봤다.
“대체 뭐 하려고 그러는 거야?”
“것도 모름네까? 대체 아는 게 뭡네까?”
“모를 수도 있지. 그리고 내가 이건 잘 모르겠지만, 그건 알아. 내가 기절한 사이에 누가 내 검을 훔쳤다는 거.”
“커험~”
리진수가 흠칫 놀라며 헛기침을 했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 놈인 것 같다.
“그러니까 알려주라.”
“태우려고 합네다.”
“그래? 왜?”
“당연한 거 아닙네까? 저렇게 놔두면 시체가 살아남네다.”
“설마 언데드?”
북한으로 오기 전에 위험은 예상했지만, 벌써 마계화가 진행되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