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_북으로(1)
이태원의 낡은 건물 앞에 수십 대의 경찰차와 앰뷸런스가 줄지어 서 있었다.
들것에 실려 앰뷸런스에 실려가는 인물들은 아까 유신과 싸웠던 마약상이었다.
그들의 옷은 갈기갈기 찢겨있었고, 상체에 통나무 크기의 시퍼런 멍이 흉측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범죄자를 잡았는데, 제가 왜 잡혀가요?”
“조용히 해! 네 죄명은 무단 침입, 재물손괴니까.”
“쟤들은 마약범들이고, 전 13기동 타격대라고요. 13기동 타격대의 하유신 대원입니다.”
“잔말 말고 빨리 들어가!”
3기동 대원이 유신에게 수갑을 채운 후 대능력 범죄자 차량에 억지로 태웠다.
유신은 차량의 뒤편에 작게 뚫려 있는 쇠창살을 잡으며 외쳤다.
“저 정말 억울하다고요! 전화라도 하게 해줘요~!”
3기동 대원들은 유신의 외침을 철저히 무시하고 차량을 출발시켰다.
현장은 유신의 외침을 끝으로 조용함을 유지하며, 차근차근 정리됐다.
유신과 마약상들이 싸움을 벌였던 건물 복도에는 아직 다 실려 가지 못한 마약상들이 피투성이가 돼서 쓰러져 있었다.
구급대원들은 응급처치 후 그들을 한 명씩 실어 나갔다.
기동대원들과 경찰은 철문을 하나씩 열어보며 현장을 조사하고 있을 때 한 경찰이 급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 수상한 약이 있습니다.”
경찰의 외침에 주위를 수색하던 경찰과 기동대원들이 소리가 들려온 방으로 향했다.
모두가 떠난 복도에 잠시 휑한 바람이 불었다.
휑한 바람은 한쪽 벽면에 성인 키만한 크기로 가로로 길게 뚫린 구멍에서 들어왔다.
바람이 스치고 지나간 그곳에 유신이 쫓던 소매치기가 소리소문없이 바닥에서 솟구쳤다.
소매치기는 구멍 뚫린 벽면을 손으로 조심히 만지며 씨익 웃었다.
“반장님 이거 신종 마약인 것 같습니다.”
“강력 범죄인 줄 알았는데, 마약 사건이군. 응? 거기 누구야?”
반장 외침과 함께 방금까지 소매치기가 있는 곳으로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반장님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야. 내가 괜히 예민했군.”
경찰과 기동대원이 떠난 복도에는 서늘한 바람만이 불 뿐이었다.
***
유신이 기동대 본부 지하 취조실에 앉아, 자괴감에 빠져 넋두리했다.
“또 여기야?”
“집중 안해!!”
“네···”
힘없이 대답한 유신을 향해 3기동 대원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름?”
“하유신이요.”
“나이?”
“한국 나이로 21살이요···”
자괴감에 빠진 유신은 최대한 애절한 표정으로 3기동 대원을 바라봤다.
“정말 전화 한 통만 하면 안 돼요?”
“왜 변호사라도 선임하게? 그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하고, 건물까지 부숴 놓고 지금 뭐?”
“에휴~ 저 체포할 때 미란다 법칙을 말하지도 않고, 최소한의 변론의 기회까지 막는다…이거 참 화젯거리가 될 것 같네요.”
유신의 말에 찔리는 게 있는지 3기동대원이 말을 잇지 못했다.
“저도 그냥 넘어가 줄테니까 그냥…전화 한 통만 하게 해줘요.”
3기동 대원은 한껏 인상을 찡그리다가 자신의 휴대폰을 던졌다.
유신은 3기동 대원의 휴대폰을 받고, 고개를 흔들며 다시 돌려줬다.
“이거 말고 제 전화기요. 요즘 누가 휴대폰 번호를 외우고 다녀요.”
“가지가지 하네.”
3기동 대원은 짜증 내며 증거 물품에서 유신의 휴대폰을 찾아줬다.
유신은 휴대폰을 열어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울리는 그 잠깐 사이 유신은 상대가 제발 전화를 받길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이 시간에 왜 전화했냐? 설마 클럽 간 걸 자랑하려고 전화한 거냐?”
“강문 선배 저 좀 도와주세요!”
***
유신이 강문과 함께 취조실에 나와, 1층 로비로 올라가자 다리우스와 유호가 유신을 마중 나왔다.
“절 걱정하셔서 이렇게들 오신 건가요?”
“요 브로~ 이거 먹어~”
다리우스는 유신의 감동 포인트를 끊으며 검정 봉투를 건넸다.
“이게 뭔가요?”
“두부!”
“네??”
“왜? 브로~ 한국 드라마 보니까 이럴 때 두부 먹던데?”
다리우스가 해맑게 말하자, 유신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게 다리우스 선배”
“크크크”
“흐흐흑”
강문과 유호는 끝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육성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크크크 그래. 두부 먹어야지. 구치소는 아니지만, 취조실은 갔으니 크크크.”
“우리 막내 참 대단해. 클럽 가라고 일찍 퇴근시켜주고, 주말까지 비워줬는데 말이야.”
“우···웃지 마세요.”
유신은 새빨개진 얼굴로 다리우스가 준 두부를 조물락거리며 뭉갰다.
강문은 부끄러워하는 유신에게 다가가 거칠게 어깨동무했다.
“오늘 같은 날 그냥 들어가면 섭하지! 술이나 한잔하자.”
***
그렇게 13기동 타격대원들이 기동대 본부를 벗어날 때 유신이 있던 취조실에는 아이러니한 광경이 펼쳐졌다.
유신을 취조하던 3기동 대원이 고개를 숙인 채 유신이 앉았던 자리에 앉아 있고, 그 앞에 은빛 가면을 쓴 사람이 앉아 있었다.
“저···그런데 무슨 일로 4기동대에서 여기까지···”
쾅!
그때 은빛 가면의 4기동 대원이 책상을 치며 말했다.
“요즘 3기동대가 건수 올리려고 혈안이 된 건 알겠는데, 자꾸 이렇게 선을 넘으면 저희도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아.아닙니다. 저희는…”
변명하려는 3기동 대원의 말을 4기동 대원이 잘랐다.
“그리고, 3기동대에 숙지시키세요. 13기동 타격대가 무슨 일을 하든 신경 쓰지 말라고!”
“그··· 13기동 타격대라는… 아니 그게 아니라, 기동대에 그런 부대가 있는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이유라도…?”
3기동 대원은 4기동 대원의 눈빛에 주눅이 들어서 횡성수설하고 있을 때였다.
“당신들이 함부로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네···?”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니 그냥 그렇게 알아두세요. 아셨어요?”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법을 수호하는 사람들입니다.”
“법을 수호한다는 사람이 미란다 법칙을 말하지 않고, 변호사 선임도 못 하게 한다?”
“아니 그게 아니라···”
“당신의 비리 따위 30분 안에 샅샅이 다 밝힐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법이라고 했는데, 법은 당연히 지켜야죠. 하지만 이걸 꼭 기억하세요. 13기동 타격대는 치외법권의 존재들입니다.”
“그게 무슨···?”
4기동 대원은 3기동 대원을 한동안 쳐다본 후,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어나 취조실을 나갔다.
***
유신이 26번째 애검(훈련용 검)을 뽑아 앞으로 향한 후, 정신을 집중했다.
검에 깃든 포스가 며칠 전과 다르게 안정을 유지한 채 뻗어 나오고 있었다.
포스는 그 상태에서 점점 덩치를 키워나가고, 사람이 들기에는 벅차 보일 정도로 크기를 키웠다.
유신은 웬만큼 커진 포스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콰콰콰콰콰
검풍이 훈련장 일대에 불어 닥쳤다.
사나운 바람이 잠잠해지자, 유신의 포스 검도 점점 옅어지며 사라졌다.
유신이 본인의 일격에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뒤쪽에서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공격이라고.”
고개를 돌리기 전, 13기동 타격대의 선배들 목소리와 방금 목소리를 머릿속에서 빠르게 비교했다.
선배 중에서 동일한 목소리의 인물이 없다는 것 깨닫고는, 나에게 시비를 거는 상대를 향해 인상을 구기며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
바라본 곳에는 검은 옷을 입은 흐릿한 인상의 사내가 서 있었다.
“누가 감히 내 검술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검술뿐만 아니라 기억력도 안 좋군.”
골몰히 생각해보니 기억났다.
“소매치기?”
“소매치기라니 내 이름은 라이언이다.”
“그래! 소매치기 너 때문에 내가 그날 클럽도 못 가고! 아오~ 그래 오늘 성과나 하나 올리자!”
포스를 사용해 몸을 강화하면서, 라이언이라는 소매치기를 잡기 위해 달려들었다.
내 순간 가속의 스피드를 라이언은 상체를 트는 것만으로 손쉽게 피했다.
그걸 기점으로 라이언과 나의 술래잡기가 시작됐다.
뭔가 아슬아슬하게 잡을 것 같으면서 계속 놓치기 시작했다.
이대로 계속해봐야 변하는 게 없을 것 같아 나는 어쩔 수 없이 검을 빼 들었다.
“이제 후회해도 늦었다.”
나는 라이언이 비웃었던 비기를 펼치기 위해 포스를 뿜어냈다.
포스로 대검을 만드는 동안 라이언이 안주머니에서 싸구려 볼펜을 꺼냈다.
“그렇게 느려터진 공격이 실전에서 사용되겠냐? 아후~ 저 덩치만 키운 거 봐라.”
라이언이 말하는 동안 포스 대검을 완성한 나는 앞에 서 있는 라이언의 명복을 빌며 포스 대검을 휘둘렀다.
“문답 무용!”
무시무시한 기세를 뿜어내며 다가오는 포스 대검을 보며 라이언은 무심히 볼펜을 던졌다.
볼펜은 흐릿한 기운을 품은 채 날아가 포스 대검과 부딪혔다.
무시무시한 기세의 포스 대검은 볼펜에게 허무하게 구멍이 뚫렸고, 산산이 쪼개지며,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이···이게 뭐야?”
“뭐긴 뭐야? 네 능력이 허접하다는 소리지.”
유신은 소매치기인 라이언의 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뭐가 허접하다는 거냐. 이건 선배가 직접 내게 알려준 기술이야.”
“웨폰 마스터 신무의 대검과 네놈의 크기만 키운 대검이 같다고 생각하다니 어이가 없군.”
화를 내려고 하던 유신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신무 선배를 알아···요?”
유신의 궁금증은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풀어줬다.
“당연하지. 라이언 쉐도우는 우리 13기동 타격대 대원이고, 유신이 네 선배야.”
목소리의 주인은 강문으로 유신과 라이언이 더는 격돌하지 못하게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선···배요? 소매치기가 선배요?”
“소매치기라니, 그건 임무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거야. 그리고 네가 거기서 난리 쳐서 계획이 얼마나 틀어졌는데!”
“네에?!”
라이언은 유신의 놀람을 뒤로 하고, 자신이 몇 개월간 마약범들을 소탕하기 위해 노력했는지 열변을 토했다.
“내가 말이야. 그놈들 잡으려고 몇 개월 동안 잠복해서 겨우 아지트 알아냈는데, 네가 들어와서 난리를 쳤잖아!”
“그···그래도 일망타진했으니···”
“일망타진은 개뿔!! 너 때문에 그놈들 뒷배 봐주는 윗대가리들 다 놓치고, 마약 제조 공장도··· 하~ 생각할수록 열받네!!”
“죄···죄송합니다.”
“휴~ 됐다. 그래도 대충 중간책들은 잡았으니 그냥 넘어가마.”
라이언이 흥분을 가라앉힌 후 마지막으로 유신에게 눈초리를 줬다.
유신은 그 눈빛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가·· 감사합니다.”
유신이 곤란해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강문은 더 놀려주고 싶지만, 그러면 정말 유신이 울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손뼉을 쳐 분위기를 전환했다.
“자~ 그만하고, 오늘부터 한동안 라이언이 유신의 훈련을 맡아줘.”
“내가 왜?”
“네가 말했잖아. 유신의 포스 응용은 허접하다고! 우리 13기동 타격대의 기술이 허접하면 쓰나. 알아서 잘 가르쳐봐~”
“제길! 뱉은 말이 있으니··· 아~ 짜증 나! 알았어~ 할게.”
유신은 생각했다.
라이언 선배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 좋은 인연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많이 툴툴거리면서도 내 훈련을 맡아준다고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훈련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바뀌었다.
“마약범들을 퇴치할 때도 그리고 나한테 반항할 때 사용했던 그 허접한 포스는 일반인에게만 통하는 거다. 일정 경지 이상의 능력자들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지. 그렇기에 내가 너에게 알려줄 것은 약간의 포스로도 더 강화된 능력을 쓸 수 있는 ‘일점술’에 대해 알려주지.”
“네 선배님 감사합니다!!”
“자! 부딪히고 피하면서 몸으로 익혀라!! 이게 바로 일점술이다.”
“네!?”
말과 함께 라이언은 5대력으로 강화된 쌀알을 유신에게 뿌리기 시작했다.
한 톨의 쌀알에 유신의 포스 막에 금이 갔다.
두 톨의 쌀알에 포스 막은 유리 깨지듯 깨져나갔다.
세 톨의 쌀알은 유신의 복부를 가격했고, 유신은 그대로 튕겨 나가며 바닥을 굴렀다.
쌀알에 담긴 거력을 몸으로 직접 부딪친 유신은 속으로 외쳤다.
‘역시 13기동 타격대는 멀쩡한 사람이 없어!!’
***
2082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이 끝났다.
2085년,
UN과 전 세계 국가들의 노력으로 북한이 평화협정을 맺으며 드디어 지구상의 모든 전쟁이 끝났다.
그리고 북한은 세계가 평화를 맞이하는 2085년 3월 개방을 허락했다.
2100년,
신의 축복이자, 저주가 시작되었다.
15세 이상의 사람들이 능력을 개화했으며, 15세 미만의 사람들도 15세가 되면 능력을 얻게 됐다.
역사적으로 이날을 ‘변혁의 날’로 정하였다.
2110년 3월 7일,
능력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지구에 몬스터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마왕 강림의 시작으로, 북한은 운이 없게도 마족이 들이닥쳐 철저히 무너졌다.
그로 인해 지금의 북한은 몬스터의 숲으로 변했다.
한국 지부는 여전히 군사경계선을 두고 인류와 북한이라는 몬스터의 공간을 분류했다.
파주에 위치한 한 경계선에는 세계헌터협회의 헌터들과 6기동대가 경계를 담당하는 곳이었다.
파다다닥
경계 근무를 서던 6기동대 인원이 옆에 있는 헌터를 돌아보며 의문을 표했다.
“무슨 소리지?”
“왜?”
“이 소리 안 들려?”
“무슨 소리?”
헌터가 기동대원을 따라 귀를 기울였다.
파다다다닥~
헌터는 이상한 소리를 감지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뭐지?”
그때 6기동 대원이 헌터의 복부를 발로 차서 넘어뜨렸다.
그리고, 헌터가 서 있던 자리에 거대한 낫 모양의 앞발이 땅에 박혔다.
“···멘티스?”
헌터가 얼이 빠져 있는 사이에 6기동 대원이 재빨리 멘티스를 처리하고는 본부에 무전을 넣었다.
“섹터 C-43번 구역으로 멘티스 출몰. 수는···”
본부에 무전을 하던 6기동 대원은 하늘을 뒤덮은 멘티스 무리를 보고 한동안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수는··· 백 마리 이상이다. 가족에게 유언장 전달을 부탁한다.”
6기동 대원의 무전이 끝나기도 전에 헌터가 자신의 총을 들고는 멘티스 무리를 향해 무차별로 난사했다.
탕탕탕탕탕
헌터의 견제로 인해 약간의 여유가 생긴 6기동 대원은 등 뒤에 착용하고 있던 도를 빼 들었다.
“아까 목숨 구해줬지? 여기서 살아남으면 술 한 잔 찐하게 사라!”
“크하하핫! 그래 내가 공무원 월급으로는 구경 못 할 술을 사주지. 그러니 죽지 마라!”
“너도!”
헌터와 6기동 대원의 말이 끝나자 멘티스 무리가 그들을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