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_이태원의 밤(2)
이태원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아니면 클럽 앞인지 다양한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유신과 신평은 클럽에 들어가기 위해 사람들 사이에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
서울 토박이인 유신은 TV에서만 보던 화려한 이태원 밤 문화에 현혹돼서는 계속 주위를 둘러봤다.
신평은 그런 유신이 부끄러운지 팔꿈치로 유신의 옆구리를 찔렀다.
“저~ 깊은 산골짜기 시골 촌놈도 너보단 낫겠다.”
신평의 말에 유신은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왜?”
“적당히 해. 클럽 처음 가는 사람 같잖아.”
“처음 맞는데?”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처음인 것처럼 하지 말라고?”
“왜에?”
유신은 1년간의 막내 생활을 통해서 저절로 익히게 된 징그러운 애교를 신평에게 보여줬다.
신평은 본인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가, 원래 유신이 이런 놈이라는 것을 자각하고는 주먹에 힘을 풀었다.
“너 클럽 왜 왔어?”
“당연히 놀러 왔지!”
“그러니까 뭐 하면서 놀 건데?”
‘논다’라는 말에 유신은 곰곰이 생각했다.
난 왜? 클럽에 놀러 왔을까? 어떻게 놀아야 하나?
클럽하면 역시···?
“······ 춤추러?”
“너 춤 잘 춰?”
“아니. 그럼··· 술 마시러?”
“주위에 널린 게 술집이다.”
대책 없는 대답에 신평이 깊게 한숨을 쉬며 유신을 토닥였다.
“유신아 우리는 오늘 술과 음악 그리고 이성이 있는 곳으로 가는 거야.”
“헌팅?”
“어허! 어디서 격 떨어지게! 자 잘 들어 지금부터 우리는 말이야······”
신평은 유신에게 클럽이 어떤 곳이고, 가면 무엇을 해야 하며, 뜨거운 열정과 자연스러운 만남에 대해서 일장연설을 시작했다.
유신은 처음에 신평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낭만적이고, 추상적인 단어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따분함을 느끼고 신평의 눈을 피해 다시 화려한 주위를 살펴봤다.
그러다 정말 우연히 아주 우연히 야구모자를 푹 눌러 쓰고, 검은 옷을 입은, 인상이 흐릿한 남자가 어떤 남자의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훔치는 장면을 보게 됐다.
“야! 하유신 정신 차려! 이제 우리 차례야 들어가야지.”
어깨를 툭 치며 말하는 신평을 똑바로 바라봤다.
“왜··· 왜?”
“소매치기 본 적 있어?”
“당연히 없지.”
“난 방금 봤어.”
“응 그래. 알았으니까 빨리 들어가자!”
“아무리 퇴근 후라지만 난 한 명의 공무원이야. 내 눈앞에서 범죄가 일어났는데, 일신상의 안위를 위해 회피할 수는 없어.”
“뭔 개소리야?”
신평은 황당한 듯 쳐다보며 속으로 생각했던 말을 고의(?)로 입 밖으로 내뱉었다.
유신은 신평이 실수(?)로 내뱉은 말을 그저 고이 접어 가슴 한편에 묻어두고는 소매치기를 잡기 위해 자리를 박찼다.
멀어지는 유신을 바라보던 신평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쉰 후,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고선 뒤쫓아갔다.
“아놔! 오늘 클럽 구경하나 했네.”
유신과 신평이 줄에서 빠지자 클럽 앞에 서 있던 가드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오늘 물 버릴 뻔했네.”
***
클럽 앞에서 한 번의 손장난을 한 소매치기범은 그 이후에 더는 손장난을 하지 않고, 사람들 틈에 섞여서 유유히 걸어 번화가를 빠져나갔다.
정확히 말하면 지나가는 일반 행인들과 다름없이 움직였다.
‘아무리 우연이라지만, 내가 보지 못했다면, 소매치기범은 오늘도 누군가에게 걸리지 않고 조용히 하루를 마무리 했겠지.’
최대한 티 안 나게 뒤쫓고 있을 때, 소매치기범이 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신호등 밑에 멈춰 섰다.
나는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소매치기범에게 천천히 한발씩 다가갔다.
단 한 걸음만 더 걷고, 손만 뻗으면 내 ‘간격’ 안으로 소매치기범이 들어온다.
나는 소매치기범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히 손을 뻗은 후,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으려고 하는 찰나에, 누군가 뒤에서 나를 덮쳤다.
“야! 소매치기범 잡으러 간다면서 꼴랑 여기냐?”
급하게 고개를 돌리니 신평이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잠깐 소매치기범을 내 시선에서 놓치게 됐다.
그리고, 그 짧은 사이 소매치기범은 빨간불인데도, 무단 횡단으로 도망쳤다.
소매치기범이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을 알지만, 그래도 일단 소리를 질렀다.
“거기서!”
당연히 소매치기범은 멈추지 않고 도망갔다.
나는 신평의 팔을 뿌리치며 소매치기범을 뒤쫓아갔다.
도로 위는 갑자기 달려든 소매치기범과 나로 인해 운전자들은 급브레이크를 밟고, 엄청난 소음의 클락션이 여기저기 울렸다.
무사히 무단 횡단을 한 소매치기범과 나는 그 후에도 이태원 이곳저곳을 활보하며 쫓고 쫓기는 형상이 되었다.
그렇게 계속 쫓고 쫓기는 상황에서 소매치기범이 한적한 공원에 들어섰다.
나는 지금이 기회라 생각하고 포스를 다리에 퍼뜨려서 순간 가속을 사용했다.
쾅
순간 가속의 영향으로 딛고 있던 바닥이 부서졌고, 앞으로 쭉 나아가며 소매치기범을 잡으려는 순간 목표물이 사라졌다.
갑자기 사라진 목표물로 인해 균형 감각을 잃은 나는 헛손질과 함께 땅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크···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지?”
팔꿈치가 아려왔지만, 급하게 일어나 주위를 둘러봤다.
방금까지 내 앞에 있던 소매치기범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소매치기범이 사라진 곳으로 가서 땅을 두드려보기도 하고,
“열려라 참깨!”
“아브라카다브라”
주문도 외워봤다.
내가 할 수 있는 이런저런 방법을 다 동원해서 한참을 찾아 헤맸지만, 소매치기범은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내가 귀신을 본 건가? 아님 능력인가? 이게 바로 은신 능력? 그럼 어디 한 번.”
나는 선배들의 조언과 포스의 힘을 믿고는, 쉬려고 하는 포스를 깨워서 눈에 집중했다.
몸속을 회전하던 포스가 눈에 안착하자 세상이 조금은 느리게 보였다.
하지만, 소매치기범의 어떤 흔적도 찾지 못했다.
설마라는 생각에 계속 포스로 눈을 강화하며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때, 저 멀리에서 소매치기범과 같은 모자와 옷을 입은 존재가 낡은 건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소매치기범을 잡기 위해 급하게 쫓아가려다가 멈칫했다.
생각해보니 소매치기범의 능력을 모른다.
상대를 모르기에 조금 전에도 쫓다가 놓쳤었다.
“후~”
우선 길게 숨을 내뱉으며, 다급해진 마음을 진정시키자, 복잡해진 머리가 개운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쌓였던 압박감이 가시게 됐다.
그렇다고 상대에 대해 아는 게 없기에 적당한 긴장감은 유지 시켰다.
마지막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재빠르게 대비하기 위해 포스를 몸 안에서 돌리며 소매치기범이 들어갔던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
강문, 유호, 다리우스가 이태원에 나타났다.
자기들 딴에는 한껏 멋을 내고, 클럽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섰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그들의 차례가 되자 당당히 들어가려고 하는데, 가드가 손을 들어 그들을 막았다.
“죄송하지만, 신분증 확인하겠습니다.”
“앞에 있던 사람들은 신분증 확인 안 하던데?”
“저희 클럽은 나이 제한이 있어서 신분증 확인 좀 해봐야겠습니다.”
나이 제한이라는 말에 강문, 유호, 다리우스의 입가에 웃음꽃이 피었다.
“우리 나이 먹을 만큼 먹었어요. 미성년자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요 브로~ 우리 중 누가 미성년자 같아?”
“훗~ 나군.”
자기들끼리 신나서 신분증을 꺼내 가드에게 보여주고 클럽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가드가 다시 그들을 막아섰다.
“죄송하지만 출입 불가합니다.”
“아니. 미성년자도 아닌데 왜 불가죠?”
“만 30세 이상은 출입 불가입니다.”
“네?”
“오 마이 갓!”
“······”
“자~ 옆으로 비켜주시고, 다음 분 오시죠.”
가드는 강문과 유호, 다리우스를 옆으로 밀쳐내고 뒤에 있는 손님들을 입장시켰다.
그렇게 13기동 타격대는 모두가 사이좋게 클럽에 입장하지 못했다.
***
나는 낡은 건물 안으로 서서히 잠입을 시도했다.
언제 소매치기범이 아까처럼 도망칠지 모르기 때문에 발걸음 하나하나 조심히 내디뎠다.
건물에 들어서자, 누가 봐도 조폭으로 보이는 두 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의자에 앉아 잠을 자고 있었다.
‘럭키!’
나는 건장한 사내들이 잠에서 깨기 전에 조심히 문을 열고 건물로 들어갔다.
복도를 지나쳐 가는데, 낡은 강철 문들이 을씨년스럽게 달려 있었다.
이 삭막한 건물 내부에서 소매치기범을 찾기 위해, 강철 문을 하나씩 열며 확인하려고 했다.
그때, 복도 맨 끝방에서 약간의 불빛과 함께 대화 소리가 들렸다.
“··게 이··· 얻··· 마··· 가?”
나는 혹시 저기에 소매치기범이 있을 수 있기에 대화가 들리는 끝방으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방안을 확인하자 몇 명의 남성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붉은 가루를 만지고 있었다.
“이번 모델 이름은 M-5입니다.”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
“네. M-5는 극강의 쾌락을 선사하는 마약입니다.”
“극강의 쾌락?”
“네 지금까지의 일반 마약과는 다르게 먹는 즉시 효과가 오며, 중독성도 일반 마약의 3배 이상 높습니다. 단지···”
나는 그저 작은 범죄자인 소매치기범을 잡으려고 했을 뿐인데, 마약범이라는 대물이 걸렸다.
“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
“단지, 심각한 마약 중독이 일어날 때쯤, 급사합니다.”
“그러면 고객을 잃게 되는데, 그게 부작용을 최소화했다고? 김 실장 정신이 있는 거야!”
“다행히 급사를 막을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그럼 그렇지. 우리 김 실장이 일 처리를 그렇게 소홀히 하지 않지. 어떻게 해결할 건데?”
“한 다섯 번 복용을 한 후에 정화 능력자가 정화 한 방만 걸어줘도, 부작용은 사라지고, 중독성만 남게 됩니다.”
“오호~ 관리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거군.”
“네 그렇습니다.”
“대체 뭘로 만들었지?”
거드름을 피우며 붉은 가루를 엄지와 검지로 비비며, 계속 질문을 던지는 저놈이 두목인 것 같았다.
“정확한 것은 영업 비밀이지만, 몬스터의 피와 마계 꽃으로···”
위이이잉~
갑자기 진동 소리가 들리자 설명을 이어가던 김 실장이 멈칫한다.
“마계 꽃으로···”
‘위이이잉~’
“대체 누구야?! 휴대폰을 받던가 끊던가!”
휴대폰 진동 소리에 두목이 버럭 화를 내자, 앉아 있던 조폭들이 자신의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는데, 어떤 휴대폰도 울리지 않았다.
그때 문밖에 있던 유신은 신평이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서 울리고 있는 휴대전화를 급하게 끊었다.
신평은 오늘 낮에 자신을 도와줬지만, 잡을 수 있는 소매치기범을 놓치게 만들고, 잠복(?)하고 있는 자신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이건 언젠가 톡톡히 복수는 아니더라도, 크게 얻어먹어야 하는 사건들이었다.
“쥐새끼가 한 마리 들어왔네.”
마약범들과 내 사이에 있던 두꺼운 강철 문이 활짝 열렸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마약범들에게 외쳤다.
“나는 13기동 타격대 대원 하유신이다. 너희를 마약 유통···? 아니 제조 혐의로 체포한다. 너희는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지금부터 하는 말은 불리한 증거가 될 수 있으며,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다.”
내가 당당히 미란다 원칙을 외치고 있을 때, 두목으로 보이는 자가 피식 웃으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혼자 왔어?”
“어···? 네.”
두목의 질문에 순간 드립을 생각했지만, 왠지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얼버무리다가 친절하게 답해주고 말았다.
“뭐 저런 어리바리한 놈이 다 있어? 그리고 13기동 타격대? 그딴 기동대도 있나?”
“그냥 정신이 나간 놈인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러면 오늘 인체 실험 한 번 해볼까? 애들아!”
두목의 외침에 지금까지 내 뒤에 굳게 닫혀있던 강철 문들이 열렸다.
그리고 흉흉한 무기를 든 건장한 사내들이 우르르 나왔다.
살벌한 이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고전 영화의 명대사가 떠올랐고, 끝내 참지 못하고 드립을 날렸다.
“드루와 드루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