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_이태원의 밤(1)
유신이 13기동 타격대 훈련장 한가운데 서서 눈을 감고 있었다.
자세히 바라보니, 유신이 얇은 포스막을 발사하고 있었다.
그렇게, 가만히 서 있던 유신이 눈을 반개해서 뜨고는 자신의 검병을 잡고 순식간에 발검했다.
발검과 동시에 몸 주위에 있던 얇은 포스 막이 이글이글 불타올랐고, 검에서는 검기가 넘실거렸다.
‘불타오르는 포스는 강한 게 아니야. 그저 포스의 낭비일 뿐이지. 포스의 낭비를 없애야 해.’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불타오르던 포스가 조금씩 정제되어 갔다.
그 상태로 유신이 일보를 내딛자, 포스가 다시 출렁거렸다.
‘내가 몸을 내 뜻대로 움직이듯, 포스도 내 뜻대로 움직여야 해. 절대 동요해서 안되고, 포스는 내 심적 변화에 가장 민감한 에너지야.’
유신은 포스가 다시 정제되기까지 기다렸다가 더욱 천천히 일보를 내디뎠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걷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포스의 출렁거림이 사라졌다.
안정되어가는 포스를 느끼며 이번에는 일보를 걸으며 검을 휘둘렀다.
촤아아악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것처럼 포스가 출렁이자, 더욱 천천히 걸으며 검을 휘둘렀다.
그렇게 유신은 포스가 안정되면 조금씩 빠르게 그리고, 조금씩 행동을 늘려가며 포스를 조절해 나갔다.
어느 정도 포스가 안정기에 도달하자 유신은 머릿속으로 최근에 상대한 오우거를 떠올리며 쉐도우 전투를 시작했다.
‘이때 뒤로 물러나기보다는 오른발을 반보 뒤로 빼면서 왼쪽으로 몸을 기울였으면, 오우거의 주먹을 피하면서 팔뚝을 공격할 수 있었을 거야.’
‘이때는 검을 휘두르기보다 포스로 검 끝을 더욱 벼려서 찔러넣었다면, 오우거가 치명상을 받았을 텐데···’
쉐도우 전투가 막바지에 치닫게 되자 유신은 오우거의 왼발목과 오른팔을 자르고 승리하게 됐다.
장장 1시간 동안 쉐도우 전투를 진행하고 승리한 유신은 아직 포스가 일정하게 뿜어지고 있었다.
유신의 이 모습을 일반적인 포스 유저가 봤다면 믿지 못할 것이다.
포스 유저가 됐지만, 평생을 가도 포스를 키우지도 못한 사람이 수두룩하다.
유신은 포스를 개화하고 1년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유신이 보유한 포스는 십 년 이상 목숨을 위협받으며, 몬스터를 물리친 포스 유저와 동일하거나 약간 많은 양을 가지고 있었다.
그뿐인가?
유신의 포스 컨트롤은 점점 경지에 오르고 있었다.
“막내야! 어딨니? 빨리 와봐!”
“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수련이 끝난 걸 어떻게 알았는지 강문이 타이밍 좋게 유신을 불렀다.
급하게 컨테이너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간 유신은 소파에 누워 TV를 보며 불안해하는 강문에게 다가갔다.
“강문 선배 무슨 일인가요?”
“리모컨이 사라졌어.”
“네?”
“뭐해? 빨리 찾아봐.”
TV에서 시선도 떼지 않은 채 다리를 까딱거리는 강문 선배를 보고, 순간 유혹에 빠졌다.
‘한 번 개겨 볼까?’
자신을 13기동 타격대에 꽂아주고, 여기까지 데리고 온 사람이 강문 선배이기에 불손한 마음을 접고 조용히 리모컨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곧 강문 선배가 소파 밑으로 손만 내리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리모컨이 떨어져 있는 걸 발견했다.
하지만, 손수 주워서 건네줬다.
“저 프로그램 진짜 재미없거든. 우리 유신이는 리모컨을 금방 찾아서 정말 좋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리모컨이 있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유신아~”
“네 유호 선배.”
“우리 애기 닦을 거 좀.”
유호 선배의 요구에 나는 내 책상 서랍장을 열었다.
서랍장에는 보조 리모컨과 수많은 붕대 그리고 무명천이 들어 있었다.
그 안에서 가장 깨끗한 무명천을 꺼내 유호 선배에게 건네줬다.
“선배 여기요.”
“오 땡큐~”
“막내 브로~”
“네 다리우스 선배님!”
“그냥 불러봤어. 너도나도 부르길래. 하하하”
“하하하 감사합니다. 선배님. 안 불렀으면 서운할 뻔했어요. 하하하”
속에서는 열불이 났지만, 나는 그저 다리우스 선배를 따라 웃었다.
어쩔 수 없다.
이게 사회생활이다.
그때 신무 선배가 나를 지나쳐 컨테이너 사무실을 나가며, 내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땀 냄새난다. 좀 씻어라.”
솔직히 많이 상처받았지만, 애써 태연하게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아봤다.
“방금까지 땀 흘리며 수련해서 그런가 보네요. 금방 샤워하고 오겠습니다.”
유신은 컨테이너 사무실을 뛰듯이 달려 나가며 샤워장으로 향했다.
그렇다.
1년 만에 10년 차 이상의 포스를 쌓았고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지만, 유신은 13기동 타격대의 막내일 뿐이었다.
유신이 씻으러 간 사이 컨테이너 사무실의 13기동 타격대는 다시 평소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누군가는 근무시간에 누워서 TV를 보고 있고, 어떤 이는 야릇한 표정으로 검을 닦고 있었다.
그래도 조용히 책상에 누워 잠을 자는 사람이 그나마 나아 보일 정도였다.
이런 평범한 상황에서 약간의 소음이 13기동 타격대의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위이이잉
처음에는 모두 무시했다.
위이이잉
그다음에는 인상을 찌푸리고 소음의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위이이잉
세 번째가 채 울리기도 전에 소음의 정체를 확인했다.
유신이 두고 간 휴대폰의 전화 진동음으로 발신자가 ‘신평’으로 떠 있었다.
휴대폰 앞에 모인 강문, 유호, 다리우스는 서로 눈을 마주치고 장난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다리우스가 오른손을 들어 강문의 목을 향해 캐스팅을 시작했다.
“모듈레이션”
다리우스의 손에서 빛이 흘러나와 강문의 목에 깃들었다.
빛이 사라지자, 강문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아. 아. 아. 안녕하세요. 네 저는 하유신입니다.”
신기하게도 강문의 입에서 유신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준비가 끝난 강문은 전화가 끊기기 전에 재빨리 유신의 전화를 받으며 빠르게 스피커 폰으로 변경했다.
“야! 하유신 왜케 전화를 안 받아!”
“바빴다.”
“뭐냐? 평소와 다른 그 말투는? 옆에 누구 있어?”
“···어.”
“설마 저번에 말했던 너희 선배들?”
신평의 말에 강문과 유호, 다리우스의 눈이 빛났다.
평소 유신이 자신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기회였다.
“아니 그러니까 우리 꼰대들 때문에 내가 미치겠어.”
“뭔 헛소리야? 매번 통화할 때마다 우리 선배가 최고네. 날 아껴주네. 든든하네. 여기 들어온 게 내 평생 운을 다 쓴 것 같다고 칭찬만 하던 놈이 오늘은 웬일로 욕이냐?”
신평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13기동 타격대원들은 순간 놀란 표정을 짓다가 점점 흐뭇한 미소로 바뀌었다.
“그게 그러니까.”
“아 됐고, 오늘 금요일인데, 불금을 즐겨야지. 클럽 콜?”
“그건 좀 힘들 것 같은데?”
“와~ 하유신 넌 우리보다 선배들이 더 좋냐? 요즘 주말까지 반납하면서 일하는 사람이 어딨냐?”
장난 가득한 표정으로 통화를 하던 강문이 갑자기 정색하며 표정을 굳혔다.
“내가 조금 있다가 전화할게.”
“야! 야 하유ㅅ···”
강문이 급하게 전화를 끊고는 재빨리 소파에 누웠다.
다리우스는 빠르게 지휘하는 마에스트로처럼 손을 움직여 강문에게 걸린 마법을 해제했다.
유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평소처럼 무명천으로 검을 닦았다.
순식간에 유신이 나가기 전으로 원상 복귀됐고, 타이밍 좋게 문이 열리며 샤워를 했는지 약간 볼이 발그레한 유신이 들어왔다.
“하~ 상쾌하다. 역시 한바탕 땀을 쫙~ 뺀 후에 샤워하면 뭔가 뿌듯하네요.”
유신이 뭉친 어깨 근육을 풀며 선배들을 바라봤다.
평소 유신이 무언가 개운한 표정만 지어도 비아냥거리고 놀렸을 선배들이 오늘따라 조용했다.
좀 자세히 쳐다보니 어색함이 느껴졌다.
강문 선배의 까딱거리는 발 리듬이 오늘따라 엇박자로 움직였다.
다리우스 선배는 펜을 거꾸로 들고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유호 선배는 천으로 계속 같은 부위만 닦았다.
“무슨 일들 있으세요?”
켕기는 게 있는지 강문, 유호, 다리우스가 놀란 토끼처럼 기겁했다.
“무·· 무슨 일은?”
“우리 애기가 여기 얼룩진 것 같아.”
“막내 브로~ 아무 일 없다. 한국어 공부가 어렵다.”
유신은 선배들의 반응이 미심쩍지만 애써 무시하며, 본인의 주 업무를 하기 위해 무명천을 꺼내 정령초를 천천히 닦았다.
몰래 유신을 훔쳐보던 강문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유호는 휘파람을 불며 딴청을 부렸다.
그때 다리우스가 주위 눈치를 보다가 조심히 유신에게 입을 열었다.
“저기 막내 브로~”
“네. 다리우스 선배님.”
“클럽 가봤어?”
“네? 클럽이요?”
“응. 클럽 그 음악 들으면서 춤추는 곳.”
“한 번도 안 가봤는데요.”
해맑은 유신의 웃음에 유호와 다리우스는 안타까워하고, 강문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화를 냈다.
“아니 아직 클럽을 한 번도 안 갔다고? 대체 왜?”
유신은 정령초를 닦던 손길을 멈추고, 잠시 생각하다가 천연덕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시간이 없었다고 할까요? 아카데미 다닐 때는 평일에 공부하고 수련하고, 주말에는 알바하느라 시간이 없었어요. 그리고 헤헤~ 그때는 미성년자였기도 했고요.”
“아니 지금은?”
“에이~ 강문 선배도 참. 훈련 끝나면 집에 갈 힘도 없어서 여기서 쓰러지듯 잠드는데 무슨 체력이 된다고 클럽이에요. 그런데 갑자기 클럽은 왜요?”
강문이 짠한 표정으로 유신을 바라볼 때, 유호는 자신의 애검을 닦던 무명천으로 눈가를 찍었고, 다리우스는 분노한 듯 책상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브로! 이만 퇴근해!”
“네 퇴근이요? 정말 퇴근해도 돼요?”
“아니 생각해보니까 퇴근으로 끝낼 게 아니다. 그냥 이참에 주말까지 쉬고 월요일에 출근해.”
“정말요!?”
“그럼 브로~ 내가 책임진다.”
“그래. 유신아 이만 퇴근해.”
“오늘 꼭 친구랑 클럽 가고. 알았지?”
“클럽이요?”
“그래. 클럽 가서 젊음을 만끽하는 거야.”
“네! 선배님.”
유신은 들고 있던 무명천을 꽉 쥐며 힘차게 대답한 후, 누군가 쫓아 오기라도 할 것처럼 휴대폰을 챙겨서는 컨테이너 사무실을 나섰다.
“다리우스 네 멋대로 그렇게 해도 돼?”
“강문 브로~ 클럽 한 번 안 가본 불쌍한 어린 양에게 이 정도는 해줘야지.”
“그럼 너는 클럽 가봤어?”
“당연히······ 안 가봤네.”
“여기 클럽 가본 사람 있어?”
강문의 외침에 컨테이너 사무실은 잠시 정적에 감싸였다.
“뭐야 가본 사람 없어?”
“강문 브로는 가봤어?”
다리우스의 질문에 강문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TV에서 많이 봤어.”
***
100년 전부터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서울의 밤!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
음주가무의 도시!
그중 다양한 인종이 섞여 있는 이태원!
수많은 사람이 서로에게 인사하며, 젊음을 불태우는 곳!
여기에 유신이 사복을 입은 채 나타나서는 휘적휘적 이태원 거리를 걷고 있었다.
“야! 하유신 여기야!”
저 멀리 신평이 유신에게 손을 흔들었다.
유신은 그 모습에 더욱 휘적휘적 거리를 활보하며 신평에게 다가갔다.
“평이 너 신수가 훤해졌는데?”
유신의 안부를 신평은 헤드락으로 맞아줬다.
“너 무슨 짓을 하길래 나한테 그런 부탁을 하는 거야.”
유신은 목이 조여와 얼굴이 붉어진 상황에서도 그저 기분 좋게 웃을 뿐이었다.
“고맙다~ 근데 이것 좀 풀어주라.”
왠지 괘씸한 유신을 골려주기 위해 신평이 팔에 힘을 줬지만, 유신은 손쉽게 팔을 풀어 버렸다.
“너 원래 힘이 장사였냐?”
“형님이 훈련 좀 빡세게 했다.”
“무슨 훈련을 했길래···아니지, 그게 중요하지 않지. 작전 성공이냐?”
신평의 말에 유신이 강문과 닮은 비열한 표정으로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다시는 나 시키지 말어. 아까 떨려 죽는 줄 알았어.”
너스레를 떠는 신평을 보며, 유신이 어깨동무하며 웃었다.
“덕분에 처음으로 주말에 쉰다.”
“아니 얼마나 빡세면 그런 연기까지 해야 쉴 수 있는 거야.”
“빡세다···?”
유신은 신평의 말에 잠시 근 1년간의 과거를 회상하다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기동대 생활이 그렇게 힘들어?”
“넌 상상도 못 할 거다.”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진짜 힘든가 보네?”
신평의 말에 유신은 애써 기억을 떨쳐내기 위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정면을 응시했다.
“아냐아냐! 고통스러운 과거는 잊고, 지금을 즐기자! 가자 클럽으로!”
유신이 호쾌한 외침과 함께 클럽을 향해 앞장서서 걸어갈 때, 신평이 유신의 뒤통수에 대고 외쳤다.
“야 그쪽 아니야. 이쪽이야.”
“아~ 내가 착각했네. 빨리 가자.”
유신의 행동을 보고 신평은 깨닫게 되었다.
평소라면 그냥 넘어가 주겠지만, 유신과 신평은 친한 친구 사이이고, 친구라면 응당 놀리는 맛이 있기에 알면서도 질문을 던졌다.
“너 클럽 처음이지?”
신평의 말에 유신은 그저 입을 앞만 보고 앞으로 걸어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