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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먼치킨-21화 (21/300)

21화_첫 임무(2)

무너지는 옥상에서 떨어지며 생각했다.

오우거를 잡을 수 있는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거리, 속도, 공격력 등 모든 걸 계산했다고 생각했는데, 단 하나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다.

‘난 몬스터 오우거를 상대하는 게 아니었어. S급 빌런이자, 오우거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상대하고 있었던 거지.’

생김새와 이명이 오우거라서 정말 몬스터를 상대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사람은 몬스터와 달리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고, 전투 중에도 언제든 도망갈 수 있다.

그리고 전투는 육체적 강함의 차이로 승패가 갈리기도 하지만, 심리와 전략의 싸움도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깨우쳤다.

아카데미를 다닐 때만 해도 나보다 강한 상대를 이기기 위해 분석하고, 연구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현장에 오기 전까지 S급 빌런 오우거를 상대하는 걸 알면서 아무런 공부도 하지 않았다.

‘하유신 반성해야 한다. 난 밑바닥이고, 위로 올라가기 위해 남들보다 더 열심히, 더 처절히 살아야 해.’

결심과 의지가 확고해지자 나는 무작정 포스를 몸 밖으로 내뿜었다.

포스가 피부 밖으로 나와 새로운 막을 형성했다.

다리우스 선배와 훈련하면서 터득한 포스 막이다.

포스 소비는 크지만, 건물이 완전히 무너져 압사당하지만 않는다면, 나는 살아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을 거다.

퍽!

다행히 건물은 정말 튼튼하게 지어졌다.

옥상이 무너져 내린 상황에서 더 무너지지 않고, 최고층이 옥상의 잔해를 받아내며 버텼다.

겨우 한 층만 떨어져서 무사할 줄 알았는데, 떨어진 충격보다, 그 뒤에 딸려 오는 파편들이 나를 덮쳐와 충격을 줬다.

겨우겨우 돌무더기를 헤치고 밖으로 나오자, 강문 선배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꼴은 뭐냐?”

강문 선배는 영화와 드라마에서처럼 멋지게 손을 뻗어 나를 일으켜 세우기보다는 휴대폰 카메라로 나를 찍었다.

찰칵

사진 속 나는 엉망이 된 전투 슈트와 한줄기의 코피가 볼 위에 휘날리고 있었다.

내 모습을 외면하기 위해 애꿎은 하늘을 쳐다보다가 오우거가 도망간 빌딩이 눈에 들어왔다.

“선배. 오우거가 저 빌딩 옥상으로 도망갔습니다.”

“응 알아.”

“네?”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한편으로 감격했다.

빌런을 추격할 수 있는 상황에서 동료인 날 구하기 위해 여기로 달려온 강문 선배를 보니 감동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강문 선배···”

나의 꿀이 뚝뚝 떨어지는 말투에 강문 선배가 냉혹하게 재를 뿌렸다.

“뭐해 빨리 안 잡고?”

“네?”

“내가 잡으려고 했는데, 네가 먼저 침 발랐잖아. 빨리 가서 잡아 와.”

오우거를 추격하지 않는 이유가 정말 그 이유라면 이로써 13기동 타격대 선배 중에서 정상인이 없는 게 확실해졌다.

나는 강문 선배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만 했다.

하지만 손을 잡은 순간 강문 선배가 비릿하게 웃었다.

저번부터 느끼지만, 저 웃음은 정말 불안하다.

강문 선배는 오우거가 떨어졌던 옥상으로 나를 원반던지기 하듯 던져 버렸다.

뱅글뱅글 돌며 날아가는 내 모습에 황당함과 함께 어지러움을 느끼는 와중에 강문 선배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려왔다.

“그렇게 계속 돌면서 가다가 떨어지면 죽는다!”

‘죽는다’라는 말에 반응한 나는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다시 한번 온몸으로 포스를 내뿜었다.

쿵!!!

“······컥”

너무 아프면 비명도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지금이 그렇다.

옥상 바닥에 등부터 떨어져서 숨도 턱턱 막히고, 뼈라는 뼈는 다 부서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욱신거리는 몸을 겨우 일으키자, 그래도 뼈가 부러진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오우거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는데, 옥상 비상문이 뜯겨있었다.

쿵!! 쿵! 쿵. 쿵···

오우거를 뒤쫓기 위해 비상문으로 다가가는데, 충격음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급하게 옥상에서 내려와 오우거와는 다르게 느긋하게 엘리베이터를 탔다.

사람이 아무리 빨라도 이런 고층 빌딩의 고속 엘리베이터보다 빠를 순 없었다.

쿵··· 쿵. 쿵! 쿵!!

오우거는 무식하게 무언가를 부수면서 내려가고 있는데, 그게 다 필요 없는 체력소모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오우거와의 2차전을 예상하며 몸을 풀고 있을 때 1층에 도착했다.

“······ 빌런이다!”

“아아악!!”

1층은 아비규환으로 사람들이 메뚜기처럼 펄쩍펄쩍 뛰며 빌딩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그때 철제로 된 비상계단의 문이 부서지며 도망가는 사람들에게 날아갔다.

나는 날아오는 문을 향해 벌처럼 몸을 던지며 검을 내리찍었다.

서걱

문이 반쪽으로 쪼개지며,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큰 충격음에 방금까지 도망치던 사람들이 모두 멈춰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최대한 멋진 모습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다친 사람이 있는지 확인했다.

아직 크게 다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근처에 내가 있어서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방금 철제문 때문에 누군가는 다치거나 죽었을 거다.

그래도 마지막에 멋있게 사람들을 둘러봤으니 조금은 유명해지기를 기대하고 있는데, 누군가 불규칙 다수에게 또는 스스로에게 외치는 듯한 비명이 들렸다.

“도·· 도망쳐!”

한껏 주목받을 수 있었는데, 그 기회를 놓치게 만든 원인 제공자를 혼쭐 내주기 위해 비상계단 쪽을 바라봤다.

거대한 체고의 오우거가 천천히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아직도 도망가고 있고, 나는 오우거와 다시 마주하게 됐다.

“크아아악!”

오우거가 피어를 내뱉자 도망치던 사람들이 땅바닥에 패대기쳐진 개구리처럼 철푸덕 엎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오우거 때문에 많은 인명 피해가 날 것이다.

나는 선빵필승의 마음가짐으로 검기부터 날렸다.

오우거는 검기가 날아오자 피어를 내뱉다가 급하게 멈추고는 검기를 향해 주먹을 냅다 뻗었다.

“크윽···”

1차전에서는 오우거의 주먹에 내 검기가 산산이 분쇄되었지만,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내 검기가 오우거의 주먹을 분쇄했다.

탄검기와 부딪힌 오우거의 주먹은 피투성이가 됐고, 나는 오우거에게 쉴 틈을 주지 않기 위해 포스를 일으키며 달려들었다.

오우거의 주먹은 날카로웠다.

하지만 나는 더 날카로운 공격을 내게 퍼부었던 사람을 알고 있다.

그뿐인가 거의 매일같이 대련도 했었다.

“뭐야? 빌딩 내려오면서 체력 다 쓴 거야? 오우거가 아니라 토끼네.”

상대의 날카로운 공격을 무디게 만드는 정신 공격.

특히, 남자라면 토끼 공격에 이성을 잃기 마련인데, 오우거의 이성은 무너지지 않았다.

“토끼 공격에 무너지지 않다니.”

“······”

“독한 놈!”

어쩔 수 없다. 최후의 정신 공격을 할 때가 왔다.

나는 뼈다귀들과의 싸움에서 얻은 묘리에 맞게 민첩하게 움직이며, 오우거에게 달려들어 공격하고, 피하며, 정신 공격을 가했다.

“단순한 게 완전 지미네.”

“지미는 금수저 아니 다이아 수저인데, 넌 그냥 오우거?”

“이런 지미 같은!”

***

오우거라는 이명을 얻은 이후로 수많은 기동대원과 싸웠었다.

지금 앞에 있는 이상한 놈과는 다르게 정말 위험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들을 모두 피곤죽으로 만들었다.

기동대원들은 죽기 전에 최소한 명예를 알고 죽었다.

그런데 앞에 있는 이 날다람쥐 같은 놈은 달랐다.

저렇게 수다스러운 기동대원도 처음 보지만…

말끝마다 ‘지미’를 넣는데, 처음에는 별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자꾸 들으니 귀에 거슬렸다.

“오우거. 미안하다. 방금 내가 한 말은 취소할게.”

날다람쥐처럼 계속 피하던, 약아 빠진 놈이 갑자기 거리를 벌리며 사과했다.

“···”

“네가 아무리 빌런이지만 ‘지미 같은’은 너무 심한 것 같다.”

날다람쥐의 욕에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했지만, 갑작스러운 사과에 자못 궁금해졌다.

“대체 ‘지미’가 누구냐?”

“···그···있어···그러니까···”

유신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자, 오우거의 표정이 굳어졌다.

“대체 누구냔 말이다!!”

“지미는···”

“지미는?”

“토끼에게 두들겨 맞을 고블린 같은 놈이야.”

유신의 답변을 이해하지 못한 오우거는 인상을 쓰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유신은 이게 기회라고 느끼며 오우거에게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다.

챙!

***

유신은 2차전 초반에 자신의 검기로 어떻게 오우거의 오른쪽 주먹을 피투성이로 만들었는지 궁금해졌다.

계속 유효타라 생각하며 공격했고, 타격감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피해를 줄 수 없었다.

‘지미 이상으로 피부가 정말 질기고, 단단하네.’

하지만, 유신은 오우거보다 더 단단한 사람의 방어를 뚫기 위해 몇 달간 고생했었고, 마지막에는 잠깐이지만 그 방어를 뚫을 뻔하기도 했었다.

오우거를 확실히 잡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강한 한 방이 필요하다는 건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포스가 얼마 남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공격 타이밍에 맞춰서 잠깐씩 끊어서 포스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승모근!’

검기 공격에 오우거의 승모근에서 약간의 피가 스며 나왔다.

‘통한다. 이번에는 옆구리.’

옆구리를 공격한 이유는 간단했다.

강화 가능한 승모근을 베었는데, 단련하기 어려운 부위 중 하나인 옆구리는 확실히 벨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오우거의 옆구리 가죽은 질겼다.

챙!

옆구리를 공격하다 튕겨 나온 공격으로 인해 순간 균형을 잃었고, 오우거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주먹을 휘둘렀다.

나는 고개를 뒤로 젖혀 오우거의 주먹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주먹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갈 때는 아찔한 감각까지 들었다.

이대로 멈칫하면 후속타가 들어오기에 한 발 더 내디디며, 재차 옆구리를 공격하고, 그 반동을 이용해 오우거를 스쳐 지나가며, 오금을 공격했다.

검이 오금을 훑고 지나가자 피가 튀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통했다.

“크윽···”

오우거가 신음을 흘리며 드디어 무릎을 꿇었다.

이제 차근차근 공략하면 별 탈 없이 오우거를 잡게 될 것이다.

하지만, 오우거를 이렇게 만들기까지 나도 다량의 포스를 사용했다.

오우거를 완벽히 제압하려면 포스를 사용해 상처를 내야 하는데, 잠깐도 유지하기 힘들었다.

그냥 이대로 주저앉고 싶지만, 다리우스 선배와의 전투를 통해 손끝 하나 움직일 힘이 있다면, 검을 휘두르도록 교육받았다.

‘이제는 체력보다는 정신력의 싸움이다.’

나는 오우거에게 작은 틈이라도 생기면, 절대 놓치지 않았다.

가끔이지만, 작은 틈이 조금 더 벌어질 때가 있었다.

그때는 포스를 싹싹 긁어서 오우거에게 상처를 선사하기도 했다.

“크윽!”

오우거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상처투성이가 되어서 유신을 노려봤다.

“헉헉헉…”

유신은 거친 호흡을 내뱉었고, 전신이 땀으로 젖었다.

“하아 하악…후읍~”

호흡을 정리한 유신이 오우거의 기세에 지지 않기 위해 마주 노려봤다.

그러자, 오우거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상처에서 왈칵 피가 쏟아졌다.

이제 정말 전투의 막바지에 치달았다는 건 오우거도 유신도 느끼고 있었다.

오우거의 체력이냐? 아니면 유신의 포스냐?

먼저 바닥을 보이는 사람이 지게 되는, 아니. 죽게 되는 싸움이다.

남들이 본다면 오우거가 열세라고 느낄 수 있지만, 유신의 상태도 그렇게 좋은 건 아니었다.

단 한 번의 검기를 일으킬 포스만이 남았고, 그걸 사용하면 포스는 텅텅 비게 된다.

소강상태를 깨트린 것은 오우거였다.

“크아아앙!”

상처투성이의 오우거는 지금까지 아껴 온 체력을 아낌없이 자신의 주먹에 쏟아부었다.

유신은 잠깐 이 건곤일척의 승부를 피할까 생각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오우거에게 자신의 검을 찔러 넣었다.

검과 주먹이 부딪히기 직전 갑자기 오우거가 멈칫했다.

유신은 그 커다란 틈을 이용해 자신의 검을 오우거의 가슴 한복판에 깊게 찔러 넣었다.

쿵!

그렇게 오우거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던 빌런은 유신의 검에 뒤로 넘어갔고, 모든 포스를 다 사용하여 지친 유신은 그대로 고꾸라졌다.

유신은 체력적 한계와 함께 탈력증으로 기절했고, 오우거는 붉은 피를 흘리며 가래 낀 숨을 몰아쉬었다.

그때 강문이 나타나 죽어가는 오우거를 조용히 바라봤다.

“마지막에 왜 멈칫했지?”

강문의 질문에 오우거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다·· 당신이··· 커··커컥···보··허··였어.”

오우거의 답변에 강문은 더욱 표정을 굳히더니 오우거를 일별하고 유신을 챙겨 빌딩을 떠났다.

“크··크크큭···커··커컥!”

세계 현상 수배범이자 S급 빌런 오우거는 차가운 빌딩 안에서 홀로 웃으며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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