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_훈련(5)
“레이즈 언데드.”
오늘은 예순네 마리의 해골 병사와 싸워야 했다.
솔직히 어제의 각오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최대한 많은 해골 병사를 쓰러트리는 것에 목적을 두기로 했다.
해골 병사들을 바라보며 각오를 다지고 있는데, 숫자가 달랐다.
정확히는 해골 병사 서른두 마리와 해골 궁수 여덟 마리가 소환됐다.
“브로~ 언제까지 해골 병사만 상대할 거야? 오늘부터는 다른 언데드도 같이 소환할 테니까 잘 싸워봐~”
그렇게 새로운 다수전이 시작됐고, 패배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해골 병사의 시미터는 뭉툭했고, 해골 궁수의 화살촉은 동그랬다.
시미터에 베이고, 활에 맞아도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다는 거다.
맞을 때마다 움찔움찔할 정도로 아팠지만 말이다.
그렇게 해골 궁수가 포함된 뼈다귀 무리를 물리치는데, 일주일 걸렸다.
해골 병사 서른두 마리와 해골 궁수 서른두 마리를 합쳐서 예순네 마리가 된 뼈다귀까지 올라가는데, 한 달이 걸렸고, 그 조합을 깨부수는데, 또 한 달이 걸렸다.
해골 궁수 다음에는 해골 도끼병, 다음에는 해골 창병, 다음에는 해골 전사가 나타났다.
이기고 지면서 뼈다귀들의 숫자는 불어났고, 녀석들의 무기는 점점 날카로워졌다.
중간에 포스로 몸을 보호하는 법을 깨닫지 않았다면, 죽어도 한참 전에 죽었을 거다.
“드디어 오늘이네요.”
육 개월이 지난 오늘 뼈다귀들의 숫자는 백육십 마리까지 늘어났다.
내 훈련 중에 한 번도 코빼기를 비추지 않았던, 대장과 선배들이 회식 이후 처음으로 모두 훈련장에 모였다.
“브로~ 오늘 이기든 지든 마지막 훈련이야. 잘할 수 있겠어?”
나는 그저 검을 꽉 쥐고선 뼈다귀들을 찬찬히 바라봤다.
‘이길 수 있다. 그저 어제보다 해골 전사가 열여섯 마리 많을 뿐이다.’
“그럼 건투를 빌게.”
다리우스 선배의 말이 끝나자, 해골 궁수들의 화살이 날아왔다.
가만히 서서 해골 궁수의 화살을 막기만 한다면, 순식간에 포위가 돼, 녹다운당할 것이다.
나는 좌측으로 몸을 이동하며, 피하질 못한 몇 개의 화살은 검으로 쳐냈다.
해골 궁수들이 다음 화살을 쏟아 부기 전에 맨 좌측에 있는 해골 병사에게 달려들었다.
퍼석
반응속도가 느린 한 마리의 해골 병사의 뚝배기를 깨부수자, 창이 내 몸을 꿰뚫을 것처럼 뻗어 나왔다.
‘아직까진 어제와 패턴이 같다.’
나는 자연스럽게 몸을 옆으로 누우며 창을 피하고선 검으로 눈앞에 보이는 다른 뼈다귀의 종아리뼈를 가격했다.
파스스스
종아리뼈가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보며 다른 공격이 날아오기 전에 우측 뒤로 몸을 빼며 부채꼴 모양의 검기를 날렸다.
검기에 걸린 뼈다귀들이 가루가 되자, 약간의 여유가 생겼고, 그 틈에 뼈다귀들과 거리를 벌렸다.
***
“우리 막내가 이제야 검 쓰는 법을 알게 됐네.”
“역시 최상의 방어는 공격이다.”
유호와 철호는 유신이 뼈다귀들과의 전투 장면을 보며 한 마디씩 내뱉었다.
“그런데 괜찮으려나? 얼마 전만 해도 검기만 일으켜도 쓰러졌잖아.”
유호의 걱정에 강문이 미간을 찌푸리며 유신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표정을 풀며 미소 지었다.
“그건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군. 포스가 예전에 비해 많이 늘었네.”
“나랑 훈련할 때만 해도 좁쌀만 했는데?”
“나 또한 포스 자극술로 막내를 계속 기절시켰는데도 거의 늘지 않았었다.”
유호와 철호의 의문점을 신무가 풀어줬다.
“내가 백팔 포스 자극 침술로 녀석의 포스를 증폭시켰다.”
“우리 무~ 능력 좋아. 그 침술 나도 받으면 안 될까?”
“안 된다!”
신무의 단호한 외침에 유호가 자신의 검을 쓰다듬으며 입을 삐죽였다.
“우와~ 너무 치사한 거 아니야? 막내는 해주고 나는? 왜 나는?”
“성공률이 10%도 안 된다. 그리고 성공한다고 해도 네가 가지고 있는 포스 양에 그 침술을 받으면, 몸이 터져 죽는다. 또, 침술이 실패하면 운이 좋으면 포스가 전부 사라지고 끝나지만, 보통은 반병신이 되거나 죽을 수 있다.”
대장을 제외한 모든 대원이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신무를 바라봤다.
“야! 너 지금 우리 막내 죽이려고 한 거였어?”
“안 죽는다.”
“성공률이 10%로 안 된다며!”
“이미 부풀려 있는 풍선에 공기를 더 집어넣으면 당연히 터질 수도 있다. 하지만 누가 불었는지 모를 정도로 새것인 풍선에 공기를 집어넣으면, 풍선은 커진다.”
“무슨 말이야!?”
“유신은 깨끗한 풍선이다. 즉 실패율이 더 낮다는 거다. 저기를 봐라.”
신무가 가리킨 방향에는 유신이 서 있고, 벌써 두 번째로 검기를 날려서 뼈다귀들의 포위망을 뚫었다.
“몇 달 전이라면 당연히 좁쌀만큼 든 포스로 저 능력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본인의 한계치까지 이미 풍선이 불어진 적이 있기에 단기간에 포스를 쌓을 수 있었던 거다.”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으면 쌓이지 않는 포스가 저절로 쌓인다는 거야?”
“정확히 말하면 유신의 포스가 만족감을 느낄 때까지 계속 쌓일 것이다. 그것도 어떤 포스 유저보다 빠르게.”
평소와는 다르게 말을 많이 한 신무가 그 이후로 입을 닫았다.
그리고, 유신의 세 번째 검기가 날아가 해골 창병을 무너뜨렸고, 네 번째 검기가 해골 궁수들을 반파시켰다.
다섯 번째 검기에는 해골 전사 세 마리를 가루로 만들었다.
이제 남은 뼈다귀는 육십 마리가 채 되지 않았다.
짧은 기간 동안 뼈다귀들과 싸운 유신의 상태도 그렇게 썩 좋지는 않았다.
거의 치고 빠지고를 반복해서 몸의 상처는 없지만,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있었다.
“어제보다는 안 좋네.”
“강문 그게 무슨 소리야?”
“어제 유신이 검기를 다섯 번 날렸을 때는 멀쩡한 녀석이 스무 마리도 안 됐어.”
“으흠··· 이길 수 있을까?”
유호가 애검을 쓰다듬으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유신을 바라봤다.
***
정작 싸우고 있는 유신은 죽을 맛이었다.
겨우 전사 뼈다귀가 열여섯 마리 늘었을 뿐인데, 어제보다 남은 뼈다귀는 세 배가 넘었다.
평소에도 뼈다귀들을 물리치는 게 쉽지는 않지만, 오늘 꼭 이겨야 한다.
‘선배들과 대장이 지켜보고 있다.’
힐끔 쳐다본 선배들은 자기들끼리 무슨 말을 하고 있었다.
이 거리에서는 잘 들리지도 않지만, 들을 정신도 없다.
뼈다귀들이 다시 전열을 가다듬었다.
평소보다 전투와 전투 사이의 공백이 더 짧게만 느껴졌다.
이제부터가 진짜로 치열한 전투다.
크게 호흡을 들이마시고는 검을 납검한 후, 검병을 꽉 쥐고선 뼈다귀들에게 달려들었다.
‘이제까지 게릴라전이었다면, 지금부턴 전면전이다.’
유호 선배에게 두 가지를 배웠다.
검객이 싸움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발도에서 시작된다는 것과 사람마다 자신만의 제공권이 있다는 것이다.
나 하유신의 제공권 안에 뼈다귀들이 들어왔다.
발검!
내 앞에 있던 뼈다귀들과 그 뒤에 있던 뼈다귀들까지 순식간에 갈라지며, 가루가 됐다.
가루가 휘날리며 시야 확보가 쉽지 않을 때 애써 시야 확보를 위해 기다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며 뼈다귀들을 가격하기 시작했다.
철호 선배에게는 한 가지를 배웠다.
‘최상의 방어는 공격이다.’
나는 뼈다귀들이 나를 공격하기 전에 먼저 공격했다.
시미터가 내 어깨를 노리면, 시미터를 잡은 뼈다귀의 팔을 공격했다.
검이 내 허벅지를 노리면, 자세가 낮아진 적의 어깨를 베어서 공격을 무위로 돌렸다.
목젖을 노리는 창은 창 자체를 부수어 버렸다.
내 무기로 상대의 무기를 막을 필요 없다.
상대의 무기가 내게 닿기 전에 내 무기가 상대에게 닿으면 된다.
신무 선배에게는 포스 다루는 법과 다양한 무기의 특징을 배웠다.
‘포스를 꼭 검에만 담을 필요는 없다.’
내 몸에 깃들게 하면 힘, 체력, 민첩 등이 비약적으로 올랐다.
그렇게 비약적으로 오른 신체 능력을 잘만 활용하면,
퍼석
이렇게 전사 뼈다귀의 검을 피하면서 뚝배기를 깰 수 있다.
포스를 신체와 검에 같이 깃들게 하면 포스 소모가 막심했다.
그때는 아주 잠깐 포스를 검에 담아 검기를 일으켰다.
서걱
전사 뼈다귀의 단단한 두개골이 갈라졌다.
막고 부시고, 피하고를 반복하다가 제공권 안에 있던 뼈다귀들이 뒤로 물러났다.
방금까지 내가 서 있던 자리를 급하게 이탈하자, 그곳에 도끼가 박혔다.
나는 박힌 도끼를 집어 들어서는 앞을 가로막고 있는 전사 뼈다귀 어깨에 박아 넣었다.
콰직
쉽게 박히지는 않지만, 박힌 자리 위로 검을 내려찍자 전사 뼈다귀도 쉽게 무너졌다.
전사 뼈다귀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했는지, 장창이 내 가슴을 노리며 찔러 들어왔다.
이번에는 장창을 부수지 않고, 비껴 막은 후 장창의 창대를 따라 검을 휘둘렀다.
검과 장창 사이에 약간의 스파크가 튀었지만, 검은 목표했던 장창 뼈다귀의 뚝배기를 부수었다.
퍼석
한 방울의 땀이 흘러내려 땅바닥을 적시면, 한 마리의 해골 병사가 무너졌다.
두 방울의 땀이 멀리 튕겨 나가면, 해골 장창병과 해골 도끼병이 쓰러졌다.
세 방울의 땀이 하늘 높게 쏘아 오르면, 해골 전사는 가루가 되어 휘날렸다.
그렇게 유신이 흘린 땀방울만큼 뼈다귀들은 사라져 갔다.
***
“처절하네.”
“처참하군.”
“······”
13기동 타격대가 유신의 발악에 가까운 싸움을 불쌍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 강문이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그래 내가 저 모습 때문에 우리 막내를 스카우트한 거야.”
13기동 타격대와 저 멀리서 언데드를 조정하는 다리우스까지 강문의 말에 표정을 굳혔다.
“왜? 우리가 언제는 도도하게 그리고, 고고하게 싸웠어? 우린 밑바닥의 아귀 같은 놈들이잖아. 어떻게 해서든 이기기만 하면 되는 그런 또라이들! 안 그래요. 대장?”
강문은 자신의 의견을 동조해 주길 바라며 대장을 바라봤다.
대장은 강문의 말에 왼쪽 눈썹을 잠깐 씰룩거리고는 침묵을 유지할 뿐이었다.
전사 뼈다귀의 몸이 가루가 됐다.
금방이라도 넘어갈 듯 숨을 몰아쉬는 유신의 주위에 회백색 뼛가루가 풀풀 날렸다.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몇 마리의 해골 궁수가 부서진 활대를 잡고선 유신이 다가오지 못하게 위협했다.
유신은 한 걸음도 움직이기 힘든지, 그 자리에서 그대로 성의 없이 검을 휘둘렀다.
서걱
여섯 번째 검기가 먼 거리를 격하고 날아가 남은 해골 궁수들을 전부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그렇게 장장 다섯 시간에 걸친 싸움으로 백육십 마리의 해골 뼈다귀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싸움이 끝나자 제대로 호흡을 가다듬지 못한 유신이 다리우스에게 깊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고개를 든 유신은 몸을 돌려 대장 김무혁을 바라보고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그대로 기절하며 쓰러졌다.
털썩
유신이 쓰러지자 지금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대장이 조심히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강문 네가 제일 미친놈인 줄 알았다.”
“에이~ 대장은 무슨 그런 칭찬을.”
“그런데, 너보다 더한 또라이가 들어왔군.”
“······약간 경쟁의식 느껴지는데요.”
강문이 유신을 향해 또라이 레벨에 대해 경쟁의식을 느끼고 있을 때, 대장이 몸을 돌려 컨테이너 박스로 들어가며 유신을 향해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이제 작은 임무 정도는 투입해도 되겠군. 그런데··· 요즘 아무도 정령초를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은데, 누가 정령초 담당이지?”
대장에 물음에 모든 대원이 일제히 쓰러진 유신을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