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_훈련(4)
벌써 사흘째 유신은 온몸에 침이 꽂혀있는 상태로 누워있었고, 신무는 자리를 뜨지 않고 그런 유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신의 포스는 침을 몸 밖으로 밀어내기 위해 잠깐씩 움직였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시 잠잠해졌다.
“헤이 브로~ 우리 막내 괜찮은 거야?”
다리우스는 온몸에 빼곡하게 침이 박혀 있는 유신을 바라보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신무는 그런 다리우스를 쳐다도 보지 않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말 재능이 바닥이야.”
“바닥? 재능? 쉽게 말해. 한국말은 어려워.”
“재능이 없다고.”
“브로~ 그렇게 심각해?”
고개를 끄떡이는 신무를 보자 다리우스가 표정을 굳혔다.
“보통 포스 강화 침술을 사용하면, 빠르면 1시간 늦어도 하루 안에 포스를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침을 밀어낼 수 있어. 그런데 이 녀석은 유호와 철호가 그렇게 포스 자극 훈련을 시켰는데도, 포스가 바닥이고, 도통 포스를 뜻대로 움직이지 못해.”
“그래?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건데?”
“내일 아침이 되면 딱 나흘째야. 그 안에 침을 밀어내지 못하면, 겨우 각성한 포스도 모두 잃을 거야.”
“포스를 잃어? 그게 가능해?”
“나도 이론으로 듣기만 했을 뿐이지 실제로 이렇게 늦은 녀석은 처음이야.”
사흘째 누워있는 유신을 바라보던 신무는 강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가이아의 관심을 받는 무능력자야.’
아무리 가이아의 관심을 받고 있다지만, 무능력자를 데리고 왔다는 건 변함 없었다.
흔치 않은 [노오력가]라는 재능에 스스로 포스를 개화한 특이 케이스지만, 13기동 타격대의 대원으로는 어울리지 않았다.
아무리 대장과 유사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지만, 대장은 번외다.
대장의 또 다른 재능은··· 아니다. 지금은 유신에게 집중해야 할 때였다.
“안 되겠다. 광···아니 마리를 불러야겠어.”
“브로~ 정말 괜찮겠어?”
“어쩔 수 없지.”
신무가 체념한 듯 깊게 한숨을 쉬고 있을 때 강문이 조용히 그들에게 다가와 끼어들었다.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강문의 무책임한 말투에 신무의 미간을 찌푸려졌다.
“뭐?! 아무리 재능이 없는 녀석이라지만. 강문 네가 데리고 왔어. 그런데 그렇게 쉽게 이 녀석을 버리자고?”
“버리긴 뭘 버려? 저기 봐봐.”
강문이 턱짓으로 유신을 가리켰다.
유신의 몸에 꽂혀있던 침들이 파랗게 빛났다.
그리고 미세하지만, 서서히 침들이 밖으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언제부터 이런 거지? 분명 방금까지는 안 그랬는데?”
신무의 당황스러운 모습을 본 강문이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네가 마리를 데리고 와야 한다고 한 순간부터.”
잠깐 눈을 돌린 사이 유신이 성장했다.
“요~ 우리 막내 브로 아직 만나지도 못했으면서 마리의 무서움을 아는 거네!”
***
선배들이 걱정하고 있을 때, 유신은 집념으로 포스를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어려웠고, 말도 듣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포스는 유신의 집념에 설득되어 그의 의지를 따랐고, 자신을 괴롭히는 침을 밀어냈다.
시술 후, 나흘째가 되어가는 날 107개의 침은 다 빠져나왔고, 처음 유신의 몸에 들어간 장침만이 명치에 그대로 남았다.
유신은 장침에 포스를 집중하면서 침을 없애 버리겠다고 생각할 때, 포스가 장침에 깊게 스며들었다.
장침에 유신의 포스가 모두 스며들자, 장침은 빠져나오지 못하고 가루가 되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그리고 유신은 나흘 만에 눈을 떴다.
“일어났으면 빨리 옷부터 입어라. 추하다.”
내가 포스의 여운을 만끽하고 있을 때 신무 선배의 말에 속옷 차림이라는 걸 깨달았다.
허겁지겁 옷을 챙겨입고, 옷맵시를 다듬고 있을 때, 신무 선배가 등 뒤에 있는 무기 중에서 단봉을 꺼내 들었다.
“그럼 어디 실력 한 번 볼까? 포스를 깨워라!”
갑자기 대련한다고 하니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포스를 사용해 보고 싶기에 자세를 잡고는 허리춤에 걸려 있는 검을 쥐자마자 재빠르게 발검했다.
뽑은 검을 신무 선배에게 겨누고는, 집중해서 포스로 검기를 뿜어냈다.
그렇게 포스가 검을 다 뒤덮어갈 때쯤.
“꼬르르륵~”
배에서 아주 우렁차게 밥 달라는 신호가 울려 퍼졌다.
배고픔 때문일까? 아니면 ‘꼬르륵’ 소리 때문일까? 완성되어 가던 검기가 사그라들었다.
나는 멋쩍은 표정으로 어색하게 웃다가, 다시 자세를 잡고, 포스를 끌어 올리려고 할 때였다.
“꼬르르륵~”
밥 달라는 신호가 또다시 울려 퍼졌다.
‘왜 난 꼭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면, 개그로 승화되는 걸까?’
역시나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배에서는 쉬지 않고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꼬르르륵~ 꼬륵~ 꼬르르르르르륵~”
내 배고픔 소리에 신무 선배는 흥이 깨졌는지 단봉을 다시 집어넣었다.
“알았다. 밥 먹고 하자.”
“네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렇게 신무 선배와의 1일 차(4일 차) 수련이 끝이 났다.
그 후, 약 두 달간 매일 신무 선배와의 대련이 이어졌다.
신무 선배와 대련을 진행하면서, 자랑거리가 아니지만, 한 번도 기절하지 않았다.
‘차라리 기절하는 게 더 편했어.’
매일 매시간 매분 매초 대련 중에 신무 선배는 무기를 바꿔가며 나를 무자비하게 가격했다.
신무 선배가 무기를 바꿔가며 나를 공격한 이유는 간단했다.
다양한 무기에 다양한 공격 루트를 읽고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무 선배와의 모든 훈련이 끝났을 때 내 몸은 시퍼런 피멍부터 시작해서, 찢기고, 베인 자국까지 다양한 무기를 통해 각기 다른 상처를 얻게 되었다.
***
“브로~ 우선 한 마리. 레이즈 언데드.”
다리우스 선배는 이상한 뼈조각을 허공에 뿌리며 외쳤고, 그 뼈조각은 한 마리의 해골 병사가 되었다.
“브로~ 잘 들어. 난 다른 녀석들과는 달라. 그렇게 무식하지 않아. 오늘 이 녀석과 대련할 건데. 이기면 바로 퇴근이야. 오케이?”
“정말입니까? 선배님.”
“리얼리? 리얼리!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자 그럼 우리 막내 브로~ 파이팅!”
다리우스 선배의 응원이 끝나자 해골 병사가 덜그럭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언데드.
무한한 체력을 자랑하지만, 내구성이 약하고, 신성력과 불에 약한 존재.
그리고, 5대력에 상처를 입으면 쉽게 회복하지 못하는 약점이 있는 몬스터였다.
신무 선배와의 훈련 전이었다면, 나는 재생하는 해골 병사와 수십수백 번 싸웠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는 포스를 이용해 검기를 일으켜서는 해골 병사에게 휘둘렀다.
퍼억
해골 병사는 별 반응도 하기 전에 뚝배기가 박살 나서는 기능을 정지했고,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요~ 브로~ 멋있는데, 오늘 훈련 끝! 내일 봐~”
다리우스 선배는 그 말만 남기고선 조용히 훈련장을 떠나 컨테이너 박스로 들어갔다.
‘정말 오늘 훈련이 이대로 끝이라고?’
어리벙벙한 상황에 놓여 있을 때 컨테이버 박스의 문이 열리며 다리우스 선배가 다시 나왔다.
역시 다리우스 선배가 장난을 친 걸 것이다.
자 그럼 이제 무슨 훈련이지?
“막내 브로~ 왜 아직 집에 안 갔어?”
“네? 정말로 오늘 훈련은 이렇게 끝나는 건가요?”
“당연하지. 난 한 입 가지고 두말 안 해. 빨리 집에 가서 쉬어 브로~”
그렇게 다리우스 선배와의 첫날 훈련은 순식간에 종료가 됐다.
솔직히, 너무 일찍 끝난 훈련 때문에 불안감에 휩싸여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며칠 지나지도 않고 바뀌었다.
“그제 두 마리 상대했고, 어제 네 마리 상대했으니까. 오늘은 8마리! 자 나와라~ 레이즈 언데드.”
다리우스 선배와의 훈련의 명칭은 다수전이었고, 내가 이기면 퇴근이지만, 다음 날 해골 병사의 수는 2배로 늘어났다.
어제 네 마리의 해골 병사를 상대할 때까지는 할만했다.
그런데 오늘 8마리의 해골 병사를 보니 긴장됐다.
“다리우스 선배 이거 정말 괜찮은 거죠?”
“걱정하지 마. 브로~ 이 녀석들이 얼마나 내 말을 잘 듣는데.”
나는 미덥지 못한 다리우스 선배의 말에 꿀꺽 침을 삼키고는 조심히 검을 해골병사에게 겨누었다.
그게 신호가 됐는지 해골 병사들이 덜그럭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이제야 다수전 답네.”
흥분에 찬 다리우스 선배의 말을 흘려들으며 조심히 몸속의 포스를 끌어 올렸다.
포스는 몸 주위에 아우라 치듯 밝게 빛난 후, 다시 몸에 흡수되고선 내 의지에 따라 검에 깃들었고, 검기가 되었다.
나는 일렬로 다가오는 해골 병사들에게 부채꼴 모양의 검기를 휘둘렀다.
촤아아악
내 검에서 뿜어져 나간 검기는 그대로 밝은 빛을 뿌리며 해골 병사들과 부딪히고는 사라졌다.
해골 병사들은 검기가 자신의 가슴에 닿자 그대로 멈춰 섰다.
가슴뼈를 기준으로 해골 병사의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됐다.
나는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해골 병사를 바라보며 착검했다.
“너·· 너 그 기술 어디서 배운 거야?”
다리우스의 놀란 모습에 유신은 한껏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애써 진정시켰다.
“어디서 배우긴요. 저번에 신무 선배가 썼던 기술을 흉내 냈어요. 이걸로 오늘 저 퇴근이죠?”
다리우스는 유신의 말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떡였다.
유신은 스스로 멋있다고 착각할 만큼 쿨하게 뒤돌아서 훈련장을 나섰다.
그때, 갑자기 숨이 거칠어지고,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그대로 쓰러졌다.
“서·· 선배님. 다··· 다리우스··· 선배님.”
유신의 외침에 다리우스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유신에게 다가가 공주님 안기로 안아 들었다.
“저·· 왜 그러는···거죠?”
“브로~ 탈력증이야. 방금 사용한 기술은 포스를 어마어마하게 잡아먹거든. 한숨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유신은 다리우스의 설명을 다 듣지도 못하고, 그대로 기절했다.
“막내 브로가 난 놈은 난 놈이네. 훈련 수위를 높여야겠어.”
유신이 다리우스에게 인정받은 날이지만, 인정과 동시에 훈련의 난이도가 급상승했다.
***
열여섯 마리의 해골 병사들은 여덟 마리의 해골 병사들과는 다르게 진형을 갖추고 있었다.
어제처럼 무작정 기술을 쓰게 되면, 다 쓰러트리기 전에 분명 내가 당하고 만다.
나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검기로 한 마리, 한 마리씩 차근차근 해골 병사들의 숫자를 줄여나갔다.
파사삭
마지막 해골 병사를 쓰러뜨린 후에는 지친 나머지 입에 단내를 풍기며 그대로 드러눕고 말았다.
“하아 하악…”
나는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방금 싸움을 복기했다.
열여섯 마리의 해골 병사를 상대하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진형을 갖춘 해골 병사를 상대하는 건, 시간을 많이 잡아먹고, 그 긴 시간 동안 포스를 유지하며 싸우려 하니 포스가 간당간당했다.
내일은 분명 서른두 마리의 해골 병사를 상대해야 하는데, 이대로는 필패다.
‘하유신 떠올리자. 오늘처럼 막무가내로 해골 병사와 싸울 수는 없다. 아카데미 전략 만점의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서른두 마리의 해골 병사가 한 손에는 뼈방패를 다른 한 손에는 시미터를 들고, 여덟 마리씩 사열 종대로 진형을 만들었다.
평소처럼 내가 검을 뽑자. 해골 병사들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서른두 마리의 해골 병사를 보니 약간의 위압감이 느껴졌다.
나는 어제 머릿속에서 종일 돌린 시뮬레이션을 숙지했다.
‘이제 시작이다.’
나는 선공으로 맨 좌측에 있는 해골 병사에게 뛰어들며 검을 휘둘렀다.
좌측 맨 앞에 있는 해골 병사가 검을 막기 위해 뼈방패를 들 때 나는 슬라이딩 하듯 미끄러지며, 해골 병사의 종아리뼈를 부러트리고 황급히 일어났다.
팍
방금까지 내가 있던 자리에 다른 해골 병사의 시미터가 박혀 들었다.
이대로 멈춰있으면, 해골 병사들에게 포위가 될 것이기에 훈련장을 크게 한 바퀴 돌았다.
그렇게 뱅뱅 돌면서 가끔 해골 병사의 종아리뼈만 부러트리고선 계속 도망쳤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종아리뼈를 부러뜨린 해골 병사들의 숫자를 계산하며 쉬지 않고 움직였다.
기초 검술 연습을 할 때보다 분명 휘두르는 횟수는 적지만, 격하게 움직여서일까? 아니면 전투의 긴장감 때문일까? 급격하게 체력 소모가 일어났다.
그래도 이기기 위해서는 발을 쉴 수 없었다.
‘나는 지금까지 위험한 순간 언제나 도움을 받아왔어.’
아카데미에서 지미와의 결투에서도, 홉고블린 무리에게도, 그리고 핑거붐과의 싸움에서도 말이다.
해골 병사와의 싸움은 누가 도와주지 않는다.
첫 해골 병사와의 싸움은 아무런 도움 없이 스스로가 얻은 성취이며, 성과였다.
그때의 그 감동을 위해 나는 오늘도 내 손으로 승리를 쟁취할 것이다.
“나는 아직 배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