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_훈련(3)
한 달이 넘는 짧은 기간 동안 유호 선배에게 배운 것은 ‘간격’이었고, 단 한 번뿐이지만 포스를 발휘하기도 했다.
그렇게 간격에 대한 훈련이 끝나자 쉬지도 못하고, 박철호 선배와의 훈련이 시작됐다.
방패가 주무기인 철호 선배는 말했다.
“최고의 방어는 공격이다.”
주 무기가 방패이면서 최고의 방어가 공격이라는 철호 선배의 말에 의문이 들었다.
“그러면 선배님은 왜 방패를 들었습니까?”
내가 질문하고도 정말 허를 찌르는 질문이라 생각하고 있을 때, 철호 선배의 답변이 들려왔다.
“내가 방패를 든 이유는 내 능력을 쓰기에 방패만큼 좋은 무기는 없기 때문이다.”
“···”
그리고 철호 선배와의 훈련이 시작됐다.
철호 선배의 훈련은 정말 단순했다.
오전 훈련은 철호 선배가 방패를 들고 내가 공격한다.
훈련 명칭은 공격!
“그냥 공격해. 난 방어만 할 테니.”
“공격만요?”
“아까도 말했다시피 상대의 방어를 뚫고 공격을 성공시키는 것이 최상의 방어다. 그러니 공격해라!”
난 최상의 방어를 위해 공격하기 위해 달려들었다가 달려든 속도보다 두 배는 빠르게 튕겨 나가며 바닥을 구르다가 기절했다.
유호 선배는 기절 후 깨어나면 사람 속을 박박 긁지만, 검 쓰는 방법과 대련 시 안 좋은 습관을 설명하고 하루를 마무리 지었다.
철호 선배는 달랐다.
기절하면 양동이에 물을 받아와 내게 물벼락을 선사했다.
“어. 어푸푸푸푸~”
“자! 정신 차리고, 다시 공격해!”
물벼락 때문에 젖은 머리를 털며 자세를 잡았다.
‘대책 없이 급하게 달려들어 봤자 낭패를 보는 건 나다.’
이번에는 적당한 공격으로 천천히 간을 보기로 했다.
“그 공격으로는 날 뚫을 수 없다. 더 강하게!!”
철호 선배는 외치듯이 말하고 방패를 쥐고선 내게 달려들었다.
순간 철호 선배가 치즈 듬뿍 피자의 치즈처럼 쭈욱~ 늘어나는 착각이 들었다.
촤아악~
물벼락과 함께 정신이 들었다.
분명 방금 철호 선배와 대련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바닥에 들어 누워있었다.
“오전이 끝나간다. 자! 일어나서 다시 공격!”
이번에는 호락호락 당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멀찍이 서서 자세만 잡고, 철호 선배를 노려봤다.
탕. 탕.
철호 선배가 방패를 두드리며 어서 공격하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그냥 무작정 바라보고 있다가 훈련장 천장을 보게 되었다.
어떻게 당한지도 모르겠다.
그저 정신을 차려보니, 오전에만 세 양동이째 물벼락을 맞은 게 다였다.
그렇게 정신없는 오전 훈련이 끝났다.
텅. 텅.
철호 선배가 양손에 간이 방패를 착용한 후, 방패끼리 부딪쳐서 나는 소리였다.
“이번 훈련은 방어다. 막아라!”
나는 물끄러미 내 검을 바라봤다.
방어라는 것은 보통 방패로 무기를 막는 것인데, 나는 검으로 방패를 막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렇게 오후 훈련이 시작됐다.
훈련 명칭은 방어!
철호 선배의 방패가 내 얼굴로 다가왔다.
나는 급히 검을 들어서 방패를 막았다.
하지만, 철호 선배의 손은 두 개고, 방패도 두 개다.
다른 방패가 내 복부를 가격하자, 점심을 괜히 먹었다는 생각을 했고, 그 자리에서 뒤섞인 점심 메뉴를 확인했다.
“쯧쯧~ 맷집이 아직 부족하군.”
정말 소름 돋는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철호 선배는 어디서 구했는지 내게 걸레와 양동이를 가져다줬다.
“치워라. 10분 준다.”
한차례의 이벤트 같은 내 흑역사가 지나갔고, 철호 선배가 내게 다시 달려들었다.
그리고, 나는 유호 선배 이후로 철호 선배의 샌드백이 되었다.
샌드백도 맞다 보면 출렁이듯이, 내 럭키펀치가 방패 공격을 한 번 비집고 들어가게 됐다.
그리고 후회가 몰려올 수밖에 없었다.
챙그랑
S사의 고가의 검이··· 점원이 꽤 튼튼하다고 말했던 내 애검이 부러지고 말았다.
이로써, 1년도 안 돼 벌써 검을 몇 개나 부셔 먹었고,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철호 선배와의 훈련 2주차
오전 훈련
촤아악~
보통 세 번 정도 기절하면 오전이 끝났지만, 기절하는 시간이 줄어서 이제 다섯 번 정도 기절했다.
오후 훈련
챙그랑
철호 선배에게서 세 번째로 검이 부러진 이후로는 기동대에 비치된 가검을 사용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 월급을 지키지 못했을 거였다.
훈련 5주차
드디어 오전 훈련에서 기절을 단 한 번만 했다.
그리고 오후 훈련에서 단 한 번뿐이지만, 방어만 한 게 아니라 공격을 시도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공격했지만, 철호 선배는 언제나처럼 단 한마디만 했을 뿐이다.
“잘했다. 공격은 최상의 방어다!”
훈련 7주차
챙그랑
열두 번째 검이 부러졌다.
어떻게 몇 번 부딪히지도 않았는데 검이 부러지는 거지?
“철호 선배 능력이 방패술 맞아요? 무슨 웨폰 브레이커 같잖아요.”
“[브레이커] 이게 내 능력이다. 즉, 무기 파괴는 내 능력이 아니다. 어떤 것이든 파쇄하는 게 내 능력이다.”
“네?”
“자! 다시 간다.”
철호 선배는 무심한 듯 담담히 말하고선 내게 다시 달려들었다.
나는 부러진 검으로 철호 선배의 방패를 막고, 뒤이어 들어오는 공격을 피하며 생각했다.
세상 너무 불공평하다.
[웨폰 브레이커]도 유니크한 능력인데, 그 상위 능력인 [브레이커]라고 한다.
‘완전 전설급 능력이잖아!!’
그리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선배들과의 대련 중에 딴생각하면 난 물수제비를 날리기 위한 돌이 된다고.
그래도 오늘 첫 기절이었다.
철호 선배와의 훈련은 약 3달간 진행됐다.
두 달이 넘어갈 때쯤 드디어 오전 훈련에서 물수제비가 되어도 기절하지 않게 되었다.
석 달째 되는 오늘 오후 훈련에서는 처음으로 무기가 상하지 않았고, 짧은 시간이지만 반격도 했다.
오늘치 훈련이 끝나고 철호 선배는 평소처럼 담담히 말했다.
“이제야 좀 성장했군. 이로써 나와의 훈련은 종료다!”
“선배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 폴더인사에 철호 선배는 고개를 잠깐 숙이는 것으로 답했다.
이제 내일이면 고대하고 고대했던 신무 선배의 훈련이 기다린다.
신무 선배는 철호 선배와의 훈련이 끝날 때쯤 돌아와서 쉬고 있었다.
그리고 친히! 내게 검술을 알려주신다고도 했다.
과연 어떤 훈련이 날 기다릴까?
***
“사람을 가장 잘 죽이는 방법이 뭐라고 생각하나?”
“네?”
“바로 푹~ 억!이다.”
“푹~ 억!이요?”
“그래. 날카로운 칼로 심장을 푹~ 찌르면, 그 사람은 억! 하고 죽는다.”
“푹하고 억했는데. 안 죽으면요?”
내 질문에 신무 선배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쏘아봤다.
그저 푹 억하길래 농담하는 줄 알고 나도 농담을 던진 건데 선배는 농담이 아니었나 보다.
“그러니까 간혹 있잖아요. 심장이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이요. 그래서 한 방에 안 죽으면요?”
내 변명이 먹혔을까? 신무 선배가 조심히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면 푹~ 억! 푹~ 억! 하면 된다.”
“그··· 그렇군요.”
“혹시나 푹~ 억! 푹~ 억! 했는데도 죽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푹푹푹푹푹푹푹푹푹··· 찌르면 된다.”
“네 알겠습니다. 선배님. 사람을 가장 잘 죽이는 방법은 푹~ 억!”
나는 진지한 얼굴로 설명하는 신무 선배에게 더는 농담을 던지지 못하고 진중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신무 선배가 날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다.
“농담을 진담으로 듣다니, 자네는 너무 진지하군.”
신무 선배 농담이었어요? 제발 진지한 얼굴로 농담하지 마세요. 농담인지 진담인지 너무 헷갈립니다.
“이야기가 샜군. 자 지금부터 집중하도록.”
“넵.”
나는 누구 때문에 이야기가 다른 길로 돌았는지 굳이 지적하지 않고 빤히 신무 선배를 바라봤다.
“싸움에서 이기려면 상대보다 강해야 한다. 그러면 상대보다 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더욱 열심히 수련하면 됩니다.”
“맞다. 수련해야 한다. 너는 지금까지 몇 번 기절했지?”
“네? 기절이요?”
“빨리 대답하도록.”
“수·· 수도 없이 많이 했습니다.”
내 대답에 신무 선배는 턱을 쓰다듬으며 혼잣말을 내게 다 들리게 했다.
“그렇게 수도 없이 기절했는데도, 겨우 그 정도인가?”
“네?”
“우선 네 몸속에 있는 포스에 대해서 알려주겠다. 속옷만 남기고 벗은 후 누워라.”
“네??”
나는 황당한 명령에 고개를 들고 신무 선배를 빤히 바라봤다.
신무 선배의 미간에 주름이 생기기 시작했다.
좋지 않은 징조이기에 급하게 옷을 벗으려고 하다가 신무 선배가 이번에도 농담이라는 생각에 행동을 멈췄다.
“선배님 농담은 무기술만큼 뛰어나시네요.”
나의 알랑방귀에 신무 선배의 입꼬리가 미미하게 올라갔다.
역시, 농담이었군.
“내 농담이 무기술만큼 뛰어나기는 하지. 그런데 자네는 정말 농담과 진담을 구별 못 하군. 뭐해? 빨리 벗고 누워.”
나는 신무 선배의 야릇하면서 강압적인 외침에 울상을 한 채 옷을 한 꺼풀, 한 꺼풀 벗어 던지고선 야생의 상태로 돌아갔다.
팬티만 입은 채 차가운 바닥에 눕자, 신무 선배가 다가왔다.
신무 선배가 품에서 동그란 통을 뺀 후, 뚜껑을 열자, 그 안에서 가느다란 침들이 보였다.
수많은 침 중에서 신무 선배가 처음으로 빼든 침은 성인 팔뚝만큼 긴 침이었다.
‘설마 저 침으로 나를 찌르려고 하나? 설마 푹~ 억?’
불안한 생각은 현실이 되었다.
신무 선배는 그 긴 침을 신호도 없이 곧바로 내 명치 쪽에 찔러 넣었다.
따끔한 고통에 인상을 구기자, 신무 선배가 평소보다 더 진지하고 무거운 어조로 읊조렸다.
“반병신 되기 싫으면 입 벌리지도 말고 최대한 가만히 있어.”
협박은 제대로 먹혔다.
나는 따끔한 감각을 참으며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조용해지자, 신무 선배가 본격적으로 침을 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침이 몸에 하나하나씩 박혀 들자, 침을 맞은 곳을 중심으로 몸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만 참아. 침으로 네 몸속에 있는 포스를 자극한 거니까.”
반사적으로 입을 벌려 대답을 하려고 하자 신무 선배가 눈을 부라렸다.
“반병신 되기 싫으면 말도 하지 말고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신무 선배가 다시 한번 강조하자. 나는 한껏 긴장한 채 가만히 천장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통에 있는 모든 침이 내 몸에 빼곡하게 꽂힌 후에야 신무 선배는 흘리지도 않은 식은땀을 닦아냈다.
“대답하지 말고 들어. 온몸이 따뜻하지? 대답 안 해?”
대답하지 말라는 건지 아니면 대답하라는 건지 몰라서 멀뚱히 신무 선배를 바라봤다.
“눈 깜박이는 거로 대답을··· 아니다. 그냥 들어. 몸이 따뜻해졌다는 건 포스가 반응하는 거야. 그러니까 포스를 느껴. 그리고 포스로 지금 네 몸에 박혀 있는 침을 밀어내. 그러면 되는 거야. 알았어?”
반병신이 되기 싫고, 그렇다고 신무 선배의 말을 무시할 수 없기에 차선책으로 두 눈을 사정없이 깜박였다.
“그래. 그렇게 대답하는 거야. 자 이제 점점 포스가 제대로 느껴질 거야. 그러니까 그 포스를 네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면 돼.”
나는 조용히 두 눈을 감고 내 몸을 관망했다.
따뜻한 기운은 점점 그 열기를 더해갔지만, 막상 그렇게 뜨겁다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신무 선배의 말대로면 이 열기가 포스일 것이다.
포스를 자유자재로 움직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해봤다.
무협 소설이나 판타지를 보면 심상으로 에너지를 움직인다고 했다
나는 포스가 움직이도록 계속 머릿속에 되뇌며, 상상했지만, 포스는 요지부동이었다.
분명 핑거붐과 싸우는 막바지에 포스를 검에 실어서 검기를 일으켰고, 그때 자유자재로 사용했다.
하지만, 포스는 앙칼지고 도도한 고양이처럼 지금은 내 뜻을 따라주지 않았다.
포스를 움직이기 위해 심상에 빠져들어도 모자랄 판에 점점 딴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핑거붐을 체포했을 때 처음으로 포스를 사용했던 것일까?
‘아니. 아니야. 그보다 더 예전에 사용했어.’
핑거붐은 단 한 번의 화력으로 카페를 날려버렸다.
그리고, 나는 그런 핑거붐의 공격을 맞고도 살아남았다.
그때다. 분명 포스는 나를 지키기 위해 보이지는 않는 싸움을 해왔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내 검이 홉고블린의 목을 칠 때도 무의식적으로 포스가 움직였다.
홉고블린이 아무리 지쳤고, 목이라고는 하지만, 피육을 가르고, 단 한 번에 홉고블린의 목뼈까지 잘랐다.
그리고 그때 그 일검 후 탈진해서 쓰러졌던 기억이 있다.
‘탈력증’
몸속에 있는 에너지를 다 쓰면 생기는 증상.
분명 그때 난 처음으로 포스를 깨우친 것 같았다.
그래. 포스는 상상이 아니다. 집념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집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원한다. 고로 포스는 움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