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_훈련(2)
발검! 검을 뽑는 행위.
검을 뽑기만 하면 되는 이 단순한 행위가 이렇게나 어려운 줄 몰랐다.
퍽!
얼굴, 어깨, 가슴, 손목, 허벅지, 무릎 등 다양한 곳에 유호 선배의 주먹이 날아왔고, 내 몸은 다채롭게 주먹을 맞아줬다.
“다시 뽑아.”
하도 많이 맞아서 맞은 횟수가 기억나지도 않았다.
그래도 맞다 보니 오기가 생겼다.
‘이번에는 꼭 뽑고 만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유호 선배가 언제 내게 공격하는지 이제 대충 알 것 같았다.
나는 발검을 위해 검병을 꽉 쥐고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 검을 뽑으려고 하는 순간 유호 선배의 주먹이 예상대로 다가왔다.
저 주먹은 내가 어떻게 하든 피하지 못한다.
‘그래. 어차피 피하지 못하며 막자.’
나는 다가오는 주먹을 향해 이마를 들이밀었다.
유호 선배의 주먹과 내 이마가 부딪히게 됐고, 아찔한 감각이 들면서 눈앞에 수많은 별이 반짝였다.
나는 무너질 것 같은 의식을 최대한 붙잡으며, 유호 선배의 허리를 향해 발검했다.
내 회심의 일격을 유호 선배는 간단히 점프해 피해냈다.
다행히 유호 선배의 이격은 없었고, 나는 비틀거리며 뽑은 검을 겨눴다.
“검 뽑았습니다.”
내가 지금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유호 선배는 한발 물러선 상태에서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은 알겠다.
그리고, 나는 흐릿해져 가는 의식의 끈을 놓치게 됐다.
첫 발검 이후, 유호 선배는 더 이상 발검으로 나를 핍박하지 않았다.
단지, 왼손을 들며 외쳤을 뿐이다.
“왼손은 거들뿐!”
복싱에서 왜 잽이 중요한지 알겠다.
유호 선배의 현란한 왼손 잽으로 사정없이 가격당하자, 그대로 녹다운이 될 뿐이었다.
오늘만 벌써 두 번째 기절이었다.
며칠간 잽이라는 폭력으로 기절을 반복해서 그런가? 아니면 내가 못 미더운지 선배들은 날 집으로 보내주지 않았다.
‘아버지의 말이 맞아. 사람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해.’
나약한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오기가 생겼다.
맞아도 너무 많이 맞았다.
어떻게 해서든 유호 선배에게 한 방을 먹여야 분이 풀릴 것 같다.
“잽 잽 잽 잽······”
며칠간 맞기만 하니 유호 선배의 잽도 맞을만해졌다.
처음 맞을 때는 한 방당 별이 여러 개씩 보였는데, 이제는 한 방에 별이 하나 보일까 말까다.
그렇다고 연속으로 맞으면 타격이 없는 것도 아니다.
“잽 잽 잽 잽······”
연속으로 들어오는 유호 선배의 잽을 끊기 위해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보통 이렇게 검을 휘두르면, 검의 반경에서 물러나기 위해 뒤로 빠지는 게 인지상정인데, 유호 선배는 짧게 몸을 숙여 피한 후, 어퍼컷을 날렸다.
어퍼컷은 내 턱을 그대로 가격했고, 난 영화처럼 높게 날았다.
턱을 맞아,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울분에 찬 한마디를 내뱉었다.
“왼손만 쓴다메요.”
“오른손을 안 쓴다고는 안 했어.”
나는 기절하면서 다음 날 훈련 강도를 위해 내뱉고 싶은 진실을 곱씹었다.
‘와~ 치사하다.’
유호 선배와의 훈련은 언제나 맞기만 하는 대련만 있는 건 아니었다.
내가 기절에서 깨어나면 유호 선배는 짧게나마 검 쓰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줬다.
단지 몇 마디 말이 내 가슴에 깊은 비수가 됐을 뿐이지만 말이다.
“발검을 그딴 식으로 하다니··· 검술 능력이 없어서 그런가? 조금 더 목숨을 걸고 뽑아.”
“난 주먹 넌 검. 가장 큰 차이가 뭐야? 리치야 리치. 거리를 두라고, 거리만 두면 네가 더 유리한 상황인데, 왜 주먹에 휘둘려?”
“검술이 너무 정직하잖아. 성이 정 이름이 직이세요?”
“중검은 검을 무겁게, 쾌검은 검을 빠르게, 변검은 검에 변화를, 환검은 페이크야. 이 네 가지만 다양하게 써도, 네 검격 안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아.”
유호 선배가 알려준 중검, 쾌검, 변검, 환검 네 가지 검술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몰라서 따로 물어본 날이 있었다. 그리고···
“이게 중검의 묘리야.”
스트레이트 펀치로 한 방에 기절했다. 그리고 후에 다른 선배들이 내게 한 말은 내 몸이 물제비처럼 바닥을 통통 튀었다고 한다.
“이게 쾌검의 묘리야.”
다행히 쾌검의 묘리에서는 기절하지 않았다. 단지 잽으로 수십수백 방을 맞고 그대로 녹다운이 됐을 뿐이었다.
“이건 변검의 묘리고.”
분명 가슴을 향해 날아오던 주먹이 왜 어퍼컷으로 내 턱을 가격하지? 라는 생각만 하고 기절했다.
“변검의 묘리는 아직 무리구나. 그래도 다음으로 넘어가서 이건 환검의 묘리야.”
왼쪽으로 주먹이 날아왔는데, 왜 오른쪽 광대가 아프지? 이번에는 명치구나. 아놔 심장이야.
그렇게 유호 선배의 주먹으로 검술(?)을 배워 나갔다.
검술의 네 가지 묘리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계속 맞다 보니 검의 간격은 어렴풋이 알게 되었고, 드디어 샌드백에서 벗어나게 됐다.
“잽 잽 잽 잽······”
오늘도 유호 선배는 잽으로 나를 공격했다.
나는 유호 선배의 잽을 검이라 생각하고선, 주먹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예상대로 유호 선배가 주먹을 거두었고, 나는 그 틈에 진각을 밟으며 얼굴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회심의 일격이라 생각했지만, 유호 선배는 고개를 까닥이는 것만으로 내 검을 피하고선 주먹으로 내 배를 가격하려 했다.
한 달간 유호 선배와의 대련을 통해서 맞기만 한 건 아니었다.
나는 무릎을 들어서 유호 선배의 주먹을 막아냈다.
‘선배 이건 몰랐을걸요. 빨리 손 안 치우면 다치십니다.’
속으로 회심의 방어라고 생각했지만, 주먹이 꿈틀거리며 뱀처럼 휘더니 내 가슴을 가격했다.
나는 정확히 1M 정도 날아간 후, 세 바퀴 구른 다음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 한 달간 맞기만 해서 그런지 맷집이 많이 늘었다.
그래도 아픈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우리 막내. 이제야 좀 쓸 만해졌네.”
“그러면 이제 검술 대결인가요?”
내 호기로운 대답에 유호 선배는 피식 웃었다.
“욕심부리지 마. 죽고 싶지 않으면.”
“에이~ 선배 무슨 그런 말씀을···”
“진짠데…”
“제, 일차 목표가 선배와 검을 마주하는 겁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선배는 검을 안 뽑았어요.”
“당연하지. 내가 검을 뽑으며 넌 죽어.”
“설마 선배가 절 죽이겠어요?”
내가 넉살을 떨자 유호 선배가 빤히 바라봤다.
그렇게 한동안 유심히 나를 관찰하니 내가 다 민망할 지경이었다.
“오늘이 한 달째지?”
“네?”
“나랑 대련한 날 말이야.”
“네 내일이면 달이 바뀌네요.”
“좋아. 맛보기 정도는 보여줄게. 그런데 절대 움직이면 안 된다.”
“뭘 움직이지 말아요?”
“지금부터는 대련이 아니야. 그냥 쳐다만 봐. 손끝 하나 움직이지 말고. 안 그럼···”
유호 선배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무거운 분위기를 표출하며 말을 흐렸다.
“···안 그럼요?”
“죽을 수도 있어.”
죽는다는 말을 자주하니, 갑자기 불안해졌다.
“자 잘 봐 이게 내 검이야.”
유호 선배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다음 검에 손을 가져갔다.
그 순간부터 유호 선배의 모습이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언제나 가볍게만 느껴지던 유호 선배에게서 검은 아우라가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눈도 깜박이지 않고 유호 선배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 아주 천천히 검이 뽑혀 나왔다.
채애애애앵
유호 선배의 검신은 일반적인 검과는 다르게 보라색이었고, 보라색 검신이 조금씩 모습을 보여주며 자태를 뽐내고 있을 때 강한 중압감이 나를 짓눌렀다.
처음에는 어깨가 무거운 정도였고, 검신이 3분의 1 뽑히자 바닥이 나를 끌어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검신이 반 정도 나올 때쯤에는 누군가가 나를 사방에서 점점 압축하고 있다고 느끼게 됐다.
이 불쾌하고, 답답한 감각에서 벗어나고자, 반사적으로 들고 있던 검을 유호 선배에게 향했다.
끼아아악!
유호 선배에게 뿜어나오던 검은 아우라가 악귀로 변하며 귀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
내 검이 도망치라고 울었다.
아니 도망치라는 게 아니라 공포에 젖은 내가 떨고 있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침도 삼킬 수 없는 공포에서 함부로 눈도 깜박일 수 없게 됐다.
눈을 깜박이는 순간 내가 처참하게 난자당할 것 같다.
‘아니. 무조건 당한다.’
이마에서는 땀이 흘러나오고 있을 때 검이 다 뽑혔다.
검이 나에게 향하자, 숨이 막혀오기 시작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호흡이 되지 않았다.
열심히 들숨과 날숨을 하려고 했지만, 주위에 단 한 줌의 산소도 없는 것 같았다.
‘유호 선배의 검은 악귀야… 악귀에게서 벗어나야 해.’
그렇게 생각한 순간 지금까지 전혀 움직임이 없던, 아니 움직일 생각이 없었던, 포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포스는 멈춰버린 내 심장을 자극해서 몸에 피를 흐르게 만들고, 굳어버린 폐가 다시 산소를 마실 수 있게 도와줬다.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몇 차례 포스가 내 몸을 돌았다.
몸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며, 숨을 쉴 수 있게 되었고, 떨려오던 몸도 조금씩 진정됐다.
한 차례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에 빠졌을 때였다.
씨익
악귀의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흠칫 놀라 뒷걸음질을 치려고 했지만, 내 생각과 행동보다 포스다 더 빨리 움직였다.
몸 안에 돌기만 하던 포스는 나를 보호하겠다고, 외부로 모습을 드러냈다.
포스가 방어기제를 발휘한 것이지만, 그게 악귀의 심기를 자극했는지 갑자기 나에게 달려들었다.
‘죽을 수도 있구나.’는 안일한 생각이었다.
‘죽는다. 무조건 죽는다.’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고 이대로 죽어 줄 순 없었다.
나는 강한 압박감을 이겨내며 검을 휘둘렀다.
내 검과 악귀가 부딪히기 직전, 악귀가 먼지처럼 사라졌다.
“···어?”
긴장감이 풀려서일까? 아니면 손톱보다 작은 포스를 잠깐 내뿜었다고 포스가 고갈된 것일까?
나는 공허함을 느끼며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게 됐다.
반쯤 풀린 눈으로 훈련장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미 납검을 한 유호 선배가 내게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니까! 나도 모르게 벨 뻔했잖아.”
“선배님 방금 그건 뭔가요?”
“뭐가?”
“아··아우라···악귀”
“그게 보였어?”
유호 선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양어깨를 잡으며 격하게 나를 흔들었다.
나는 몸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상황에서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는 미친놈처럼 웃으며 검을 휘두르더니, 알고 보니 우리 막내. 아우라도 볼 줄 알고 완전 난 놈이네.”
훈련을 시작한 이후 유호 선배의 첫 칭찬이었다.
그 소리에 나도 모르게 긴장감이 풀렸는지 회까닥 뒤로 넘어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아우라를 보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유호 선배와의 훈련에 끝은 단 한 번이라도 내 의지대로 포스를 사용하는 거였다.
‘하~ 힌트라도 미리 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
한 달 만에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금 내 상황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13기동 타격대를 그만둘 수 있을까?’
그때 월급 입금 문자가 울렸다.
생각해보니 벌써 13기동 타격대에 들어온 지 두 달이나 됐다.
한 달은 그냥 그저 그렇게 보냈지만, 다음 한 달은 유호 선배에게 두들겨 맞으며 반강제 기숙 생활을 했다.
저번 달과 비슷한 금액이 들어왔겠지? 라고 생각하며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조작해 은행 어플을 열자 두 눈을 비빌 수밖에 없었다.
[급여 15,977,020원]
알바를 한 달 내내 쉬지 않고 해도 200만 원을 벌기 힘든 세상에 월급이 천만 단위다.
22,980원만 보태면 천육백만 원이었다.
겨우 유호 선배의 토닥임과 가르침을 받았을 뿐인데, 월급이 이 정도라니 웬만한 헌터가 부럽지 않았다.
“선배님들 저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
검과 방패가 부딪쳤는데, 검을 쓴 내가 튕겨 나갔다.
“자! 다시 공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