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_13기동 타격대의 선배들(5)
쾅!
엔돌핀이 내 몸을 속였던 것일까?
지미의 검을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느꼈지만, 검을 부딪치고 나서야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됐다.
한순간의 자만으로 내 몸은 반대편으로 튕기며, 한참을 굴렀다.
구르고 구르다 가속도의 힘이 떨어져서 멈추게 됐고, 떨려오는 몸을 애써 진정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자세를 잡았는데, 검이 반토막 나 있다.
반토막이 난 검이라도 지미의 다음 공격을 대비하기 위해 검을 세우며 앞을 바라봤다.
지미가 검을 휘둘렀던 자세 그대로 멈춰있었다.
쿵!
지미는 조용히 뒤로 넘어갔다.
넘어진 후에야 지미의 가슴 정중앙에 내 반토막만 검신이 박혀 있는 게 보였다.
“지··· 지미!”
나는 부러진 검을 버리고는 지미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하지만, 지미의 검을 막다가 생긴 충격을 다 해소하지 못했기에 몇 발자국 걷지도 못하고 다리에 힘이 풀려 모로 쓰러졌다.
땅바닥과 내 얼굴이 마주치기 직전에 누군가가 나를 부축했다.
조심히 고개를 들어 상대를 확인하니 강문 선배였다.
“…선배님”
“수고했어.”
“지…지미는 괜찮겠죠?”
“……”
“전 지미를 해칠 생각은 없었어요. 그저…이기고만 싶었을 뿐이에요.”
“그거면 됐어. 이기고 싶은 마음.”
“하지만···”
“괜찮아. 저기 봐 벌써 응급처치 들어갔어.”
힘겹게 고개를 돌려 지미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레전드 길드원들이 지미의 가슴에 박힌 검을 순식간에 뽑아내고는 상처에 회복 물약을 붓고 있었다.
“사람은 쉽게 안 죽어. 그러니까 이제 좀 쉬어.”
“다행…이네요…”
***
유신은 힘들게 말을 내뱉고는 그대로 기절했고, 강문은 그런 유신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요~ 브로~ 막내 괜찮아?”
“탈진한 것뿐이야.”
“탈진? 잠깐 그것 움직였다고 탈진한 거야?”
“너도 봤잖아. 몸에 있는 모든 포스를 단 일검에 쏟아부은 거.”
“역시 방금 그건 5대력의 포스지?”
강문은 혹시나 유신이 보이지 않는 상처를 받았는지 확인하며 고개를 끄떡였다.
“어휴~ 우리 막내 브로~ 고생길이 열렸네.”
전투 능력자를 구분할 때 가장 기본으로 보는 것이 5대력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다.
5대력은 각기 다른 능력과 특징을 가지고 있고, 원소력, 차크라, 마나, 내공, 포스를 5대력이라고 지칭한다.
첫 번째 원소력은 불, 물, 바람, 땅 등의 자연의 이능을 사용하는 힘이다.
원소력을 다루는 사람을 선천 능력자라 부르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이들은 태어날 때 타고난 원소력을 몸에 지니고 있고, 15살의 각성 때 발현이 된다.
원소력은 사용하는 사람의 상상력과 가지고 있는 힘에 따라서 무궁무진한 활용도를 보인다.
단, 원소력은 선천 능력이기 때문에 키우는 게 극악에 가깝도록 어렵다.
두 번째는 차크라로 원소력과 다르게 명상을 통해서 키울 수 있고, 5대력 중에서 가장 안정적이다.
하지만, 어느 경지에 오르기 전까지는 그저 몸 안에 흐르는 따뜻한 피와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차크라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가장 안정적이지만 제일 약한 5대력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아이러니 한 점은 5대력 중 차크라가 가장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차크라를 가진 사람들의 생존률이 가장 높았다.
세 번째는 심장에 서클이라는 에너지를 저장하는 마나다.
마나는 마법사의 주문이 아니면, 절대 심장에서 벗어나지 않는 도도한 5대력이다.
그래서 마나 능력을 가진 마법사는 심장의 서클을 키우기 위해서 명상을 하고, 죽어라 공부한다.
간혹, 마나라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으면서, 공부에 젬병인 사람들은 그냥 평범한 일반인 생활을 할 뿐이다.
네 번째 5대력은 내공이다.
무협지에서나 보던 이 내공은 아랫배에 있는 단전에 5대력을 저장할 수 있다.
내공은 육체를 강화하고, 가장 날카로운 공격 기술을 가질 수 있게 한다.
또한, 내공을 다 소진하면 운기조식을 통해서 빠르게 회복도 가능하다.
내공은 각성을 통해 생기기도 하지만, 심법이라는 후천적인 노력으로도 만들 수도 있다.
많은 사람이 심법을 통해 내공을 익히고자 하지만, 심법은 각 단체의 비인부전이며, 비밀 무기이기에 쉽게 알려주지도 않는다.
그리고 극명하게 단전이라는 약점이 생기고, 육체 및 정신적 타격으로도 주화입마에 빠질 수 있는 부작용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 5대력은 포스다.
포스는 5대력 중 막내격으로 마지막으로 정립이 되었다.
마지막에 정립이 된 이유는 사람마다 포스를 활용하는 게 다르고, 성장 속도도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 유수의 능력자 분석 과학자들과 헌터들 그리고 5대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연구를 한 결과 포스에 대한 진실이 밝혀졌다.
원소력은 선천적인 능력이기에 제외한다고 하지만, 차크라와 마나는 명상으로 강화를 할 수 있고, 내공은 운기조식으로 힘을 키울 수 있다.
초창기에는 포스도 원소력과 같이 선천적이 능력으로 구분을 했다. 하지만 몇 가지 연구 결과가 판을 뒤집었다.
포스는 재각성을 통해서 언제든지 얻을 수 있는 능력이며, 오직 단련을 통해서만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걸 말이다.
단련을 통해서 포스 능력을 키운다고는 하지만, 일반적인 단련이 아니라 포스를 가진 능력자가 죽을 고비를 넘겨야 아주 조금씩 늘어난다.
그래서 포스 능력자들은 몬스터와의 전쟁터로 많이 떠난다.
포스를 강화하기 위해 떠난 능력자들은 혼백으로 돌아오거나,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가지고 돌아오기도 한다.
강문과 다리우스가 기절한 유신을 보며 깊은 고민에 빠져있을 때, 유호가 자신의 애검을 쓰다듬으려 말을 꺼냈다.
“막내가 포스라고?”
강문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떡이자, 유호는 자신의 애검을 아기 재우듯 톡톡 두드렸다.
“그러면 누가 먼저 할 거야?”
강문과 다리우스가 그 말에 반응해 유호를 바라봤다.
유호는 자신의 애검을 쓰다듬느라 뒤늦게 그들의 눈길을 확인하고는 기겁했다.
“내가 먼저 하라고?”
“저번 건도 있고, 말 꺼낸 사람이 먼저인 거 알지?”
“제길! 귀찮은데···”
유호의 반응에 다리우스가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를 자신의 손으로 틀어막으며, 간신히 참고 있었다.
다리우스의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유호는 신경질적으로 기절한 유신을 발끝으로 톡톡 찼다.
“우리 막내가 포스 유저면 방법은 하나야. 죽어야지.”
“요~ 브로! 죽이는 건 참아줘~”
“췟!”
손사래 치는 다리우스를 보며 유호는 한없이 안타까워하다가 유신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러나저러나 일단 깨워.”
“알았어 브로~ 일렉트릭 쇼크”
다리우스는 새끼손가락만 한 전기 에너지를 만들어 유신에게 발사했다.
유신은 일렉트릭 쇼크에 맞자, 입에 거품을 물고, 온몸을 부르르 떨다가 서서히 눈을 떴다.
“선배님들 지미는··?”
“우리 막내 브로~ 상대를 걱정하기보다 네 걱정부터 하지?”
“네?”
이해하지 못한 유신은 누워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일어나려고 하는데, 온몸이 저려서 꼼짝달싹도 하지 못했다.
한동안 자신의 몸을 통제하지 못한 유신은 웬만큼 시간이 지난 후에야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이제 막 지미의 치료를 끝낸 레전드 길드가 13기동 타격대에 씩씩거리며 다가왔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자, 뒤에 빠져 있던 철호와 신무도 무장을 한 채 유신 쪽으로 다가왔다.
“아무리 운이라고는 하지만, 지미는 우리 VIP인 캔 브레이커의 아들이야. 그를 저렇게 만들다니, 그냥 넘어갈 수 없겠어.”
조강태는 식당에서 자신이 겁 먹었다는 사실도 잊은 채 13기동 타격대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갑자기 변한 조강태의 모습에 강문이 인상을 쓰며 앞으로 나섰다.
“자신만만해졌네?”
“자신만만? 모로는 소리야. 우리 레전드 길드는 언제나 남들 위에 서 있기에 자신감이 차 있는 거야.”
“소원이나 들어줄 준비해.”
강문의 말이 끝나자 훈련장 문이 열리며, 수많은 사람이 들어왔다.
그들의 왼쪽 어깨에는 레전드 길드를 상징하는 검 문양이 걸려 있었다.
끝없이 들어오는 레전드 길드원들을 둘러보던 강문이 휘파람을 불었다.
조강태는 여유로운 강문의 모습이 거슬리는지 한껏 인상을 구기며 외쳤다.
“네 소원은 빨리 죽여달라는 걸 거다.”
“뭔 소리야?”
“눈치가 없는 건가?”
수적 우세로 의기양양한 조강태에 모습에 강문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크크큭. 그래서 떼거리로 끌고 왔어? 크큭·· 그러면 우리를 이길 수 있을까 봐?”
“사태 파악 못 하는 놈인 줄 알았는데, 미친놈이었군. 아니면 정신이 돌았나?”
“10kg”
“뭐?”
강문과 조강태가 대화를 하는 사이에 레전드 길드원들은 각자의 무기를 빼 들고 13기동 타격대를 둥글게 포위했다.
일촉즉발의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강문이 여유롭게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마정석을 가공한 마정석 가루 10kg 그게 내 소원이야. 원래는 1kg만 받으려고 했는데, 너희가 너무 버릇없어서 안 되겠다.”
호기롭게 말하며 스트레칭을 끝낸 강문이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선 후 신무를 바라봤다.
“잭나이프의 빚”
신무는 평소처럼 무표정한 모습으로 잭나이프를 꺼냈다.
“그럼 이제 이건 내꺼다.”
“안 돼. 드워프제 명품이야.”
“치사하군.”
강문과 신무가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평화롭게 대화를 하는 동안 13기동 타격대에서 유일하게 유신만 한껏 긴장했다.
‘아무리 운이라지만 내가 지미를 이겨서 생긴 일이야. 그래···나만 희생하면 돼.’
각오를 다진 유신이 앞으로 나서려고 하는데, 강문이 유신을 가로막는다.
“뭐하냐?”
“강문 선배. 저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져···”
“말 끊지 말고.”
“하지만···”
“이건 이제 네 일이 아니야. 13기동 타격대의 일이지.”
무미건조하게 툭 뱉은 말이지만, 유신은 그 말에 감격했다.
13기동 타격대에 들어온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다.
다른 선배들을 만난 것도 오늘이 첫날이다.
그런데, 유신을 위해 선배들이 나서겠다는데, 감동이 밀려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감상에 빠지지 말고!”
“네·· 넵 선배님. 어? 신무 선배님 혼자 어디 가세요?”
등에 십팔반 병기를 매고 있는 신무 선배가 오른손에 고작 잭나이프만 들고는 레전드 길드에게 다가갔다.
“유신아 포스의 최대 장점이 뭔지 아니?”
“네?”
“포스말이야. 포스.”
“5대력입니다.”
단순하게 대답한 유신의 답변에 강문은 손뼉을 치려다가 만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
“네?”
“멍청한 반응하지 말고. 괴롭혀 주고 싶으니까. 신무가 하는 전투를 잘 봐.”
유신은 앞으로 나선 신무를 바라봤다.
신무의 잭나이프에서 가느다란 검기가 맺히기 시작하더니 웬만한 장검 크기까지 늘어났다.
“포스는 5대력 중 원탑인 원소력처럼 다채로운 변화를 일으킬 수 있지. 무가 펼치는 것처럼. 무~ 죽이지는 마!”
잭나이프에 맺힌 검기가 채찍 모양으로 바뀌며, 레전드 길드원들의 하반신을 쓸어버렸다.
“포스의 변형이야 어때?”
강문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유신은 포스를 관찰하기 보다는, 신무만을 바라봤다.
신무의 모습은 양떼 사이에 뛰어든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호랑이였다.
“그리고 포스는 다른 그 어떤 에너지와 잘 섞여.”
“네? 섞이다니요?”
“신무는 원래 차크라 능력자야.”
“네에?!”
“신무가 싸우는 모습을 다시 한번 잘 봐.”
신무는 유신이 자신을 바라본다는 것을 느낀 것일까? 아까보다는 확연히 느린 동작으로 레전드 길드원과 전투를 이어나갔다.
포스를 변형시켜 만든 채찍으로 일열을 전투 불능으로 만든 신무가 레전드 길드원들과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이번에는 포스를 창으로 변형시킨 후, 쾌속 찌르기로 레전드 길드원들의 허벅지에 구멍을 숭숭 뚫었다.
순식간에 일열과 이열이 무너지자 레전드 길드원들은 당황했다.
그리고, 언제 도망쳤는지 조강태가 맨 뒤에 서서는 악을 질렀다.
“원거리! 원거리 공격을 퍼부어!!”
조강태의 외침에 당장이라도 훈련장을 잿더미로 만들 화려한 빛의 마법과 원소력들이 13기동 타격대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