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빼고 먼치킨-13화 (13/300)

13화_13기동 타격대의 선배들(4)

레전드 길드의 젊은 이사 조강태는 오늘만큼 당황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그는 귀족 코스를 밟아 왔던 사람으로 언제나 귀족다운 삶을 살았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신에게 이런 모욕적인 욕을 했던 사람은 없었다.

당연히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 평생 낙인으로 남을만한 상처를 안겨주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의 불꽃 손은 유신의 얼굴 바로 앞에서 멈추게 됐다.

조강태는 자신의 타오르는 손을 맨손으로 붙잡고 있는 신무 때문에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익!!”

붙잡힌 것에 놀라 급하게 손을 회수하려고 했지만,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힘을 써도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 박자 늦게 놀란 유신이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강문이 유신의 등을 손으로 받치며 물러나지 못하도록 했다.

“우리 무가 막아서 다행이지. 애들 싸움에 어른이 끼면 쓰나.”

“누군지는 몰라도 한 수가 있었군.”

“뭔 소리야? 설마 이딴 것도 공격이라고 한 거야? 무야 뭐가 제대로 된 공격인지 알려줘.”

강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신무는 잭나이프를 꺼내 조강태가 반응하기 전에 목을 향해 찔러 넣었다.

조강태는 겁에 질려 눈을 질끈 감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느낌도, 아픔도 없자 실눈을 떠서 상황을 살펴봤다.

날카롭게 벼려진 잭나이프가 조강태의 목젖을 겨냥하고선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공격은 이런 거야.”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사람이 번다고, 공격은 신무가 했지만, 생색은 강문이 냈다.

“다·· 당신들 누구야?”

“그럼 넌 누군데?”

“나·· 난 레전드 길드 한국 지부 이사 조강태다.”

조강태의 간단한 자기소개가 끝나자 신무가 손을 풀어줬다.

조강태는 신무와 강문이 레전드 길드라는 말에 겁을 먹은 줄 알고 최대한 당당히 어깨를 펴고는 기세등등하게 호통쳤다.

“당신들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그럼 무사하지. 안 무사할 이유가 뭐야?”

조강태는 상대가 자신이 원하던 반응이 아니라 인상을 구겼다.

강문은 다채로운 표정을 구사하는 조강태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웃어? 감히 세계 10대 길드인 레전드 길드의 한국 지부장인 나 조강태 앞에서 웃어?!”

강문의 미소를 보고,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낀 조강태는 살기를 내뿜었다.

주위에 있던 유신과 지미는 조강태의 살기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고 있을 때, 강문이 조강태에게 조용히 다가갔다.

강문이 조강태에게 다가갈수록 조강태의 살기가 흩어지기 시작했다.

단 한 걸음을 사이에 두고 조강태와 강문이 서로 마주 보게 되자, 방금까지 공간을 장악했던 살기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살기가 사라지자 정작 당황한 것은 조강태였고, 그 사이 강문이 손을 뻗어 조강태의 구겨진 옷을 펴줬다.

“난 당신이 레전드 길드든 변전드 길드든 관심 없어. 단지 우리 막내와 저기 덩치만 큰 무식한 놈이랑 시비가 붙었는데, 네가 중간에 낀 게 싫을 뿐이야.”

“뭐·· 뭐?”

강문은 아직 상황 파악을 못한 조강태의 옷을 다 펴주고는 친한 척 어깨동무했다.

“네가 생각하기에는 우리 막내랑 저놈이랑 붙으면 누가 이길 것 같아?”

“···당연히 지미가 이기지.”

“그래? 그럼 내기할까? 난 우리 막내한테 걸게. 이긴 사람 소원 들어주기 어때?”

조강태는 이 상황도 내기도 모두 거부하고 싶었다.

하지만, 거부하는 순간 자신의 몸이 찢겨나갈 거라는 불안감이 감돌았다.

“······좋다.”

“오케이 성립”

강문이 핑거스냅을 하며 좋아할 때, 자신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내기를 건 강문에게 유신이 빽! 소리를 질렀다.

“선배!”

“괜찮아 맘 편히 해. 지면 네가 오늘 회식비 쏘면 돼.”

“네?”

“괜찮죠. 대장?”

유신이 뒤를 돌아보자 언제 다가왔는지 13기동 타격대 대원들이 가만히 서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실력을 볼 수 있어서 좋겠는데.”

대장의 말에 유신이 황당한 표정을 지을 때 지미는 울그락불그락한 표정으로 유신을 쏘아봤다.

***

늦은 밤 꺼져있어야 할 기동대 훈련장이 환한 불빛을 뿜어냈다.

식당에서 시작한 사소한 다툼은 레전드 길드와 13기동 타격대의 자존심(?) 대결이 되었고, 지미와 나는 무장한 채로 대련장 중앙에 서게 되었다.

“자 규칙은 간단해. 한 명이 죽거나 항복하면 끝나는 거야.”

“잠깐만요! 뭔가 잘못 말한 것 같은데요?”

“뭐가?”

“보통은 항복하거나 전투 불능이라고 하지 않나요?”

“응. 그러니까 죽거나 항복이야.”

“마음에 드네요.”

나는 어이없어 죽겠는데, 저 뇌까지 근육으로 가득 찬 지미는 고개를 끄떡이며 만족해 하고 있었다.

“지미 너도 나처럼 반박해야지 마음에 들면 어떻게 해!!”

“내가 이길 건데 질 생각을 왜 하지? 아 맞다. 넌 아카데미에서 언제나 지기만 했지.”

오랜만에 듣는 지미의 비아냥은 역시나 적응되지 않고, 눈이 돌아버릴 정도로 짜증이 솟구쳤다.

“마지막 대결에서 네가 나한테 진 거 기억 안 나?”

“김학도 아니었으면 넌 나한테 죽었어.”

“선생님이라고 이 장유유서도 없는 놈아! 그리고 김학도 선생님 아니었으면 우리 모두 죽었어.”

우리는 서로 매섭게 노려보며 계속 말싸움을 이어나갔다.

짝!!

강문 선배가 박수를 치자, 방금까지 서로 헐뜯고 있던 지미와 나는 말을 멈추고는 집중했다.

“자 이제 입 터는 것은 그만하고, 제대로 해볼까? 그럼 준비들 하시고.”

준비라는 말에 지미와 나는 검을 뽑아 들었다.

“시작!!”

아카데미 때와는 다르다.

우리는 서로 공격하지 않고 탐색을 시작했다.

나는 오른쪽으로 천천히 돌며 지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고, 지미는 대검을 비스듬하게 들며 나를 노려봤다.

몇 달 전 아카데미에서 보던 성급한 지미가 아니었다.

이제야 인내를 배운 것 같았다.

‘제길! 변하려면 나중에 변하지. 왜 지금 변해가지고.’

자존심 강하고 성질 급한 놈이 왜 저렇게 변했는지 궁금했지만, 지금은 대결 중이다.

우선 지미의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스텝을 천천히 밟다가 앞으로 달려 나가며, 어깨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평소 지미는 내 검을 자신의 능력인 육체 강화로 때우거나 검으로 막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지미는 분명 성장을 했을 테고, 다른 방법을 사용할 것이다.

‘자 지미 어떻게 변했는지 한번 보자.’

착각이었다.

전투 스타일이 변했을 거라는 내 생각은 산산이 무너졌다.

지미는 내가 휘두른 검을 자신의 팔뚝으로 막아가며, 내게 검을 휘둘렀다.

다행히 변초였기에 검을 쉽게 회수하고선 자세를 낮춰 지미의 대검을 손쉽게 피했다.

머리카락을 훑으며 지나가는 대검이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었지만, 나는 홉고블린들과의 전투와 핑거붐과의 싸움으로 많이 성장했다.

자신의 능력만 믿고, 변하지 않는 자는 도태되기 마련이다.

캉!

스치듯 지나가며 지미의 옆구리에 일검을 먹였지만, 역시 저 육체 강화는 사기급이다.

지미는 내게 공격을 당한 게 분한지 이를 악물며, 공격을 시도했다.

남들이 보면 청승맞을지 모르지만,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계속 지미의 옆구리를 공격했다.

캉! 캉! 캉!

홉고블린과의 전투에서 육체 강화의 약점은 이미 파악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열 한 번, 열두 번 찍으면 된다.

“크아아악!”

드디어 지미가 이성을 잃기 시작했다.

검술의 형태를 유지하던 지미의 검이 이제는 마구잡이로 휘둘러졌다.

방금까지는 그래도 피하는 게 어렵지 않았는데, 지미의 타고난 근력과 대검의 파괴력 때문에 훈련장의 단단한 바닥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발 디딜 곳이 점점 울퉁불퉁해지면서 내 스텝은 꼬여갔고, 지미의 검은 조금씩 날카로워졌다.

초반 전투와는 다르게 지미의 옆구리에 검을 먹이는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효과는 있었다.

지미의 옆구리 전투복은 이미 만신창이가 됐고, 언뜻 보이는 옆구리가 점점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

“하암~”

유신과 지미가 목숨 걸고 싸우고 있을 때, 다리우스가 길게 하품을 했다.

“강문! 우리 막내 왜 이렇게 약해?”

“어쩔 수 없어. 이제 막 아카데미 졸업한 애야.”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이제 막 스무 살 됐다는 거야.”

“그래도 그렇지. 나는 저 나이 때 맨손으로 트롤도 찢어 버렸는데.”

대결을 같이 지켜보던 조강태와 레전드 길드원들은 다리우스의 허풍에 인상을 구길 뿐이었다.

“능력 때문에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어.”

“능력? 우리 막내 능력이 뭔데?”

“[노오력가]”

무심하게 내뱉은 강문의 말에 13기동 타격대원들보다 조강태와 레전드 길드원들이 더 놀랐다.

“[노오력가]는 이야~ 우리 막내 브로 가이아한테 관심 받네. 근데 저기서 공격보다는 한 걸음 물러는 게 더 좋았을 텐데.”

“경험 미숙이지 뭐.”

“그렇지! 몇 번만 더 공격하면 벨 수 있겠는데. 안 그래 무야?”

“날 그렇게 부르지 마라.”

“알았어. 알았어. 미스터 신. 너라면 어때?”

“나라면 일검에 두 조각을 냈을 거다.”

다리우스는 신무의 말을 유야무야 넘기며 강문에게 질문했다.

“그런가? 설마 막내 브로~ 능력이 그게 다는 아니지?”

“음···그건 한 번 봐봐.”

“뭐야 비밀인 거야? 벌써 우리 빼고 비밀 만든 거야?”

“비밀이라기보다는 본인이 새로 얻은 능력 활용 방법을 몰라.”

다리우스가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다.

***

한 번씩 아슬아슬하기는 했지만, 순조롭게 지미에게 데미지를 입힐 수 있었다.

그렇게 차근차근 회피와 공격을 이어나가는데, 회피를 위해 발을 디딘 곳에 부서진 돌멩이가 있었고, 순간 균형을 잃었다.

지미는 생각하고 공격한 건지. 아니면, 본능에 맡겨 공격한 건지. 타이밍 맞게 내게 검을 휘둘렀다.

회피하기에는 늦었단 판단에 대련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지미의 검과 내 검이 부딪혔다.

콰앙

균형 감각을 잃은 상태에서 검이 부딪혔고, 손해를 본 나는 몸이 뒤로 붕 떠서 날아갔다.

예전에는 이대로 땅바닥을 데굴데굴 굴러겠지만, 핑거붐과의 싸움을 통해 나는 확실히 발전했다.

공중에서 몸을 회전해 충격을 흘리고는 안전하게 착지했다.

“죽어!”

아무리 안전하게 착지를 했어도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지미는 그 빈틈이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기합과 함께 검을 휘둘렀다.

‘백프로’

내 몸은 익숙한 듯 철판교 수법으로 지미의 검을 피하고선 또다시 지미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드디어, 내 검이 약간이기는 하지만, 지미의 옆구리에 붉은 피를 흘리게 했다.

“내 검에 상처 하나 입지 않는다더니 허세였어?”

지미는 자신의 옆구리에서 흐르는 피를 손으로 만져 보고는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핫”

귀청이 떨어지게 웃던 지미가 거짓말처럼 웃음을 뚝 멈추고는 충혈된 눈으로 나를 매섭게 쏘아봤다.

“쉽게 죽을 생각하지 마라.”

지미의 대검에서 푸른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아카데미를 다닐 땐 검기를 일으키기 위해서 꽤 오랫동안 힘을 모았으면서, 이제는 손쉽게 검기를 형성했다.

검기가 모양을 갖추자, 지미는 점프하며 일도양단의 기세로 내게 대검을 내리찍었다.

정말 다행인 것은 지미의 공격 동작이 컸고, 나는 오른쪽으로 몸을 날려 지미의 검을 피해냈다.

콰콰쾅!

검기는 훈련장 바닥을 무참히 박살 냈다.

내가 피하지 않았다면, 박살이 난 것은 바닥이 아니라 나였을 것이다.

단 한 방에 승기는 내게서 지미에게 돌아갔다.

지미는 쉼 없이 내게 검을 휘둘렀고, 나는 하염없이 밀리기 시작했다.

바닥에 파인 구멍과 돌조각들이 내 스텝을 방해해서 이제는 회피보다는 방어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

쾅 쾅 쾅

지미의 검이 대검이라서 안 그래도 검과 검이 부딪히는 걸 꺼리고 있었는데, 이제는 검기까지 피워대니 몇 번 검으로 막다 보면 예전처럼 내 검이 부러질 것 같았다.

하지만, 피하는 데도 한계가 있고, 나는 점점 코너로 몰리게 됐다.

어마어마한 회식비가 부담됐지만, 내 목숨보다는 소중하기에 항복을 외치려고 하는데, 저 멀리서 강문 선배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려왔다.

“유신야~ 오늘 회식비 삼천 이백만 원 나왔어~!”

나는 찰나의 시간을 사용하여 계산하기 시작했다.

‘지금 쥐고 있는 검이 7백만 원 짜리 검이고, 오늘 회식비는 3천 2백만 원이다. 검을 버려서라도 지미에게 이긴다면 2천 5백만 원의 빚이 덜 생긴다. 그래 남자가 쪽팔리게 지면 안 되지. 어디 한 번 폼나게 이겨보자.’

나는 원치 않는 내기로 인한 울분과 이기든 지든 금전적인 손해를 보게 된다는 서러움을 담아,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검을 휘두르자, 아카데미 졸업식 시험에서 홉고블린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했을 때의 감각이 온몸을 헤집어 놓았다.

‘그래··· 이 느낌은 핑거붐과 싸울 때 검기를 일으켰던 그 감각이다.’

핑거붐과 싸울 때는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었지만, 다시 사용하려고 했을 때는 절대 움직여 주지 않던 그 에너지.

약간의 간지러움을 동반한 기운은 내 손을 타고 검에 맺히기 시작했다.

‘지미! 검기는 너만의 전유물이 아니야!’

쾅!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