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빼고 먼치킨-12화 (12/300)

12화_13기동 타격대의 선배들(3)

헬기에서 내린 선배들은 헬기의 바람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쿨해 보였다.

당연히 맨 앞 센터에서 오는 사람이 대장일 것이다.

평범하게 생겼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약 30대 중반? 정도의 나이로 보였다.

“대장 왔어요?”

“이 친구가 하유신인가? 반갑군. 난 13기동 타격대 대장 김무혁이다.”

김무혁 대장은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어 내게 악수를 권했다.

“하유신이라고 합니다.”

“그냥 편하게 대장으로 부르도록.”

“네 알겠습니다. 대장님.”

군기 바짝 든 내 목소리에 대장은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헤이 브로~ 내 이름은 다리우스야.”

대장과 악수를 끝내자 큰 키에 할렘가의 갱단처럼 생긴 흑인이 내게 주먹을 내뻗었다.

나는 조심히 왼손으로 오른손을 받치고선 두 손으로 주먹 인사를 했다.

“하·· 한국말 잘하시네요. 하유신입니다.”

“대장이 한국 사람이니까. 근데 보통은 초면에 그런 말 안 하지 않아?”

“네?”

자유로워 보여서 자유롭게 대답했다가 예의를 따지는 다리우스 선배에게 한 방 먹은 나는 조심히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

“죄·· 죄송합니다.”

“괜찮아. 브로~”

다리우스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병 주고, 약주고 할 때 자신의 몸만 한 카이드 실드를 등 뒤에 착용한 선배가 내게 악수를 권했다.

“처음 들어온 후배니 잘 챙겨줘야지. 난 박철호다.”

악수하면서 철호 선배를 차근차근 뜯어보니 몸이 장난 아니다.

세상 살면서 이렇게 어깨가 넓은 사람은 처음 본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키가 작아서 판타지 세계에 나오는 이계종 드워프가 떠올랐다.

“하유신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내 인사말에 철호 선배는 윙크한 후, 악수한 손을 풀기 전, 잠깐 힘을 주는데, 악력이 장난 아니었다.

“내 이름은 신무다.”

신무 선배는 등에 십팔반(열여덟 가지 병장기) 병기를 메고선 내뱉듯 조용히 자신을 소개했다.

내가 신무 선배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려고 할 때, 한 선배가 내 손을 헤어진 연인처럼 꼬옥 잡았다.

“너도 검을 쓰는구나.”

“네·· 그렇습니다.”

“혹시 그 검 내가 한 번만 만져봐도···”

순간 내 주위로 온도가 3도 정도 낮아진 것처럼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아·· 아니야. 난 이유호라고 해.”

“반갑습니다. 선배님들.”

내가 90도 폴더인사를 선배들에게 할 때 강문 선배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장 막내도 들어왔는데, 오늘 회식이죠?”

회식이라는 소리에 김무혁 대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집으로 예약했지?”

“오늘 오신다고 해서 통째로 빌려놨습니다.”

“음식은?”

“풀코스입니다.”

***

한국 사회에서 회식이란 무엇일까?

우애를 다지는 곳? 단합하는 곳? 업무의 연장선상? 어떤 미사여구가 들어가더라도 회식은 식사와 알콜을 동시에 섭취할 수 있는 장소를 택하곤 한다.

그러면 장소는 보통 어떤 곳이 있을까?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는 고깃집,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치킨집, 싱싱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횟집, 불맛을 제대로 느끼는 중국집도 좋은 회식 장소이다. 하지만 꼭 그런 곳만이 회식 장소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뷔페도 괜찮고, 배가 부른 상태라면 고급 와인을 판매하는 와인바도 회식 장소로 좋다.

오늘 내가 13기동 타격대 대원으로서 처음으로 간 회식 장소는 위에 언급한 집들과는 달랐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보던 상견례를 하거나, 정치와 비리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은 고급 한정식집에서 나의 첫 회식을 맞이하게 됐다.

처음 보는 에피타이저 음식과 타락죽을 시작으로 메인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갈색빛의 윤기가 도는 소갈비찜은 입에 넣자마자 녹아내렸고, 주위에 놓여 있는 간단한 나물들은 적절한 간을 유지하면서 재료 본연의 식감을 잘 살리고 있었다.

오동통한 속살과 함께 담백한 맛을 자랑하는 생선구이는 먹기 편하게 뼈가 발라져 있었다.

거기다가 맛은 내가 지금까지 먹었던 생선구이를 부정하게 만드는 맛이었다.

그 외에도 깔끔하게 나온 회와 산낙지가 테이블마다 올라왔다.

사람은 일곱인데, 테이블도 일곱 개다.

일인당 한상차림을 먹는 거였고, 선배들은 각기 개성 넘치는 모습으로 음식과 접신하고 있었다.

“오우~ 아이 러브 김치~ 네가 너무나 그리웠어.”

다리우스 선배는 무늬만 흑인이고 속은 분명 토종 한국인일 것이다.

벌써 저 김치만 세 번 리필했고, 그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배추 한 포기가 잘리지도 않은 채 그대로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이 큰 식탁 위에 많은 음식이 있지만, 계속 저 김치와 밥만 먹고 있었다.

외국인이 맞는지 밥도 밥솥을 옆에 두고 말이다.

그래도 다리우스 선배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철호 선배는 어디서 구했는지 양푼에 각종 음식을 넣고 고추장에 비벼서 게걸스럽게 먹고 있었다.

고급 한정식집인데··· 저렇게 섞을 거면 그냥 비빔밥집에서 먹는 게 더 저렴할 텐데 말이다.

“왜? 좀··· 줄까?”

내 시선을 느낀 철호 선배는 양푼을 감싸 안으며 말했다.

분명 저 말은 예의상 하는 거다.

“아·· 아닙니다.”

내 대답을 들은 철호 선배는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는지 잠깐 미소 짓고는 크게 한 숟가락 떠서 입안에 욱여넣었다.

역시 거절하기를 잘한 것 같았다.

“이번엔 뭘 먹을까?”

“지이이잉”

“으응. 알았어.”

방금 유호 선배 옆에 놓여 있는 검이 운 게 맞지 않나? 아니야. 아니야. 분명 휴대폰 진동 소리일 거야.

“지이이잉”

“알았어. 그렇게 먹을게”

검이 진동했다.

분명 검이 진동한 게 맞다.

유호 선배는 검과 대화하며···아니 검이 먹으라는 것만 먹고 있었다.

‘저 검 뭐지? 아니면, 내가 이상한 건가?’

달달달달달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식당이 진동했다.

지진을 일으키는 곳으로 눈을 돌리니 대장 옆 테이블에 앉아 있는 신무 선배가 계속 주위 눈치를 보며 온몸을 떨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아직 한 숟가락도 뜨지 않았다.

메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신무 선배가 대장을 흘끔 쳐다보고는 조심히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탁!

대장이 거칠게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신무 선배를 매섭게 쳐다봤다.

“안 돼.”

“저기 그러지 말고 대장···”

“이것도 수련이야.”

“그·· 그건 아는데 조금만 아주 조금만 그러니까 딱 5cm만···”

“불가.”

신무 선배는 대장 뒤에 놓여 있는 자신의 십팔반(열여덟 가지 병장기) 병기를 보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때 신무 선배의 맞은편 테이블에 앉아 있던 강문 선배가 한숨을 쉬고선 자신의 코트 안주머니에서 잭나이프를 꺼내 던져 줬다.

“고·· 고마워.”

신무 선배는 잭나이프를 받더니 누가 뺏을세라 주머니에 넣고선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그 잠깐 사이 불안에 떨던 신무 선배는 조금 전의 냉정한 모습으로 돌아갔고, 이제야 젓가락을 들고는 천천히 식사를 시작했다.

대장은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신무 선배와 강문 선배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인상을 찡그렸다.

“대장 아시잖아요. 신무는 무기 없으면 잠도 못 자는 거.”

“저 불안 증세는 정신병이야.”

“천천히요. 한 번에 바꾸는 것보다 조금씩요.”

“넌 너무 물러터졌어.”

대장은 강문 선배에게 툭 한마디 내뱉고는 다시 젓가락 들어 식사를 시작했다.

가장 늦게 식사를 시작한 신무 선배가 젓가락을 내려놓을 때가 장장 3시간이나 지났을 때다.

우리는 3시간 동안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각자의 방식으로 음식과 싸웠다.

다리우스 선배는 밥과 김치를 끝장내고, 다른 음식들은 더도 말고 적도 말고 딱 한 젓가락씩만 더 먹었다.

철호 선배는 고추장 비빔밥을 세 양푼 끝내고, 간장 비빔밥으로 바꾼 후 두 양푼을 더 먹고 식사를 마쳤다.

“지이이잉”

유호 선배가 가장 먼저 식사를 마쳤었고, 지금은 자신의 검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강문 선배와 대장은 아직도 젓가락을 놀렸다.

사람이 어떻게 쉬지 않고 3시간을 먹을 수 있지?

더 대단한 것은 새로운 음식이 들어오는 것보다 접시에 놓여 있는 음식이 줄어드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간중간 음식을 다시 준비하는 시간 때문에 식사를 시작하고, 끝내고, 다시 시작하기가 몇 번인지 셀 수도 없었다.

대체 그 많은 양의 음식은 다 어디로 들어가는 걸까?

“아~ 잘 먹었다~”

드디어 강문 선배가 자신의 부른 배를 두드리며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왜 저 모습이 가장 인간답지? 정말 아이러니하다.

나는 잡생각을 버리고 화장실을 가기 위해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대장이 식사를 멈췄고, 모든 선배가 나를 바라봤다.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내 말에 선배들은 다시 각자의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라도 정말 그만둘까?’

시원하게 볼일을 보고 화장실을 나오니 한식당 입구가 시장통처럼 시끄러웠다.

무시하고 자리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가 들렸다.

“저렇게 자리가 많이 비었는데, 왜 안된다는 거야?”

“저희 가게는 예약을 통해 정해진 식재료만 들여놓고 있습니다. 오늘 분의 식재료가 다 떨어져서 더는 손님을 받을 수 없습니다.”

“식재료야 구해오면 되잖아. 자꾸 이렇게 할 거야? 당신 내가 누군지 알아?”

“저희 가게 단골이신 지미 브레이커님이시죠.”

“날 알면서 계속 그딴 말 할 거야? 내가 오늘 얼마나 중요한 손님을 모시고 왔는지 알아?”

“정말 죄송합니다.”

종업원은 갑자기 들이닥친 지미 때문에 숙일 필요도 없는 고개를 숙였다.

지미는 저자세로 나오는 종업원을 잡아먹을 듯이 바라봤다.

내가 아는 지미는 절대 이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좋게 말할 때 들여보내 주지?”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나는 내키지 않지만 지미의 만행을 계속 두고 볼 수 없어서 식당 입구로 향했다.

“좋게 말할 때 적당히 하지?”

나는 지미의 말투를 흉내 내며 말했고, 그 소리를 들은 지미는 순간 흠칫 놀랬다.

지미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안 그래도 못생긴 얼굴을 더욱 구겼다.

“뭐야 무능력자 네가 여긴 웬일이야.”

“왜긴? 너와 달리 예약해서 여기서 식사 중이지.”

“네가? 여기서?”

“그럼, 여기서 하지 어디서 하냐?”

“능력도 없는 놈이 한 상에 백만 원이 넘는 고급식당에서 밥을 먹는다고?”

‘백만 원이라고? 여기가 그렇게 비싼 곳이었나? 그래서 음식이 그렇게 맛있··· 아니 잠깐만 무슨 생각으로 우리 팀은 여기를 빌린 거지?’

내가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지미는 내게 다가와 주먹으로 어깨를 툭 쳤다.

“뒈지기 싫으면 적당히 까불고 꺼져.”

아카데미 시절이 생각났다.

그래. 이 녀석은 원래 이런 놈이었다.

“생명의 은인한테 너무 막말하는 거 아니야?”

“누가 생명의 은인이야.”

내게 찔리는 게 있는 지미가 멱살을 붙잡았다.

나도 지기 싫어서 멱살을 잡고 싶었지만, 왜인지 그러면 나 또한 지미 같은 사람이 될 것 같아서, 그냥 지미를 쏘아봤다.

“지미 무슨 일이지?”

정장을 입은 두 명의 사람이 다가오자, 지미는 멱살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풀고선 내 옷매무새를 다듬어줬다.

“이사님 별거 아닙니다. 그저 버릇없던 아카데미 동기를 만나서 훈육 중이었습니다.”

“적당히 어루만지도록 해. 아무리 우리가 세계 10대 길드라고는 하지만, 한국에 진출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평판에 신경 써야 하니.”

“각별히 신경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레전드의 가족이 사고 친다고 하면 한국 기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 거니까. 그러니까 뒤처리까지 완벽하게 알았지?”

“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알아서 잘 타이르도록 하겠습니다.”

폭력을 당연시하는 지미도 문제였지만, 폭력을 부추기는 저 사람들을 보니 화가 치미얼 올랐다.

그래서, 지미의 손길을 쳐내며 예의 없는 그들에게 한마디 해줄 수밖에 없었다.

“타이르기는 뭘 타일러 내가 애야? 어이 그리고 아저씨 세계 10대 길드면 다야? 어?!”

“어린놈이 버릇이 없군.”

“버릇은 당신이 없고.”

“이사님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지미. 넌 조용히 해라.”

“당신이나 조용해.”

“하룻강아지가 자꾸 입을 함부로 놀리는데, 입을 함부로 놀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지.”

“퍽이나!”

이사라는 사람에게 주먹 감자를 먹이고 손을 내리자, 내 얼굴 바로 앞에 이글거리는 불꽃 손바닥이 다가왔다.

‘진짜다! 이건 못 피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