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_13기동 타격대의 선배들(2)
21세기는 과학의 시대로 불렸다. 과학이 어마무시하게 발전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지금 22세기는 어떤 시대인가? 바로 능력의 시대이다.
웬만한 것들은 능력으로 대체가 됐다.
그래서일까? 과학의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미 이룩한 과학과 기술이 퇴보하지는 않았다.
단지 21세기와는 다르게 급진적인 성장을 이루지는 못했을 뿐이지, 아주 천천히 발전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는 퇴보했어. 그것도 백 년 전으로!’
어떻게 지금 이 시대에 사무실을 컨테이너 박스로 만들 생각을 했단 말인가?
그나마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했지만, 13기동 타격대의 사무실(?)인 컨테이너 박스는 너무나 낡고 오래되었다.
“이렇게 보여도 있을 건 다 있어.”
강문 선배의 말에 컨테이너 사무실을 둘러봤다.
문 앞에는 다 낡아 빠져서 가죽이 벗겨진 긴 소파가 놓여 있었다.
소파를 지나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면 열 개의 책상이 양쪽 벽면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책상 앞에는 책상과 쌍을 이룬 열 개의 딱딱하고 엉덩이가 배기는 나무 의자가 놓여 있었고, 텅 빈 중앙에는 전시품으로 쓰기 좋은 나이테가 그대로 살아 있는 긴 회의 테이블이 있었다.
왜 나는 아까 도망갈까? 라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걸 후회하고 있을 때, 아침에 가족들에게 호언장담했던 게 생각났다.
‘엄마 나 기동대 먹었어!’
내가 후회 가득한 생각을 품으며 사무실을 구경하는 동안 강문은 가죽이 다 벗겨진 소파에 누웠다.
“사무실이 좀 낡지?”
“네. 아·· 아닙니다.”
긴장해야겠다. 속마음이 너무 쉽게 입 밖으로 나왔다.
“아니긴. 조금만 참아.”
역시 여기는 임시로 사용하는 곳인가 보다.
한국 지부의 기동타격대인데 계속 컨테이너 박스에 있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보통 한두 달이면 적응하더라고.”
“네?”
“참고로 난 일주일 만에 적응했다.”
“아·· 하하핫 그···그렇군요.”
“저기 테이블 위에 풀때기 보이지?”
강문 선배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테이블 위에 구색을 맞추기 위해 가져다 놓은 세 개의 난이 보였다.
“자 첫 번째 임무다.”
“네.”
“저 풀때기들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면 돼.”
“네?”
겨우 이게 임무라고? 나는 최대한 입가에 미소를 짓기 위해 노력했다.
“저 난이 제 임무요?”
“그래. 임무. 그냥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간단하게 물 주고, 깨끗한 무명천으로 닦아주고, 가끔 햇볕도 쬐어주면 돼.”
“선배님 말은 제가 난을 잘 키우면 된다는 거죠?”
“잘 이해했네. 그게 네 첫 번째 임무야. 아 맞다. 저 풀때기들이 죽으며 너도 죽어.”
“네에엑?”
“대장이 정말 힘들게 구한 풀때기들이거든. 우리 대장이 화 안 내시는데, 알지? 화 안 내는 사람이 화나면 얼마나 무서운지.”
강문 선배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몸을 부르르 떨며 양손으로 자신의 팔뚝을 거칠게 비볐다.
“이게 무슨 난인데 그렇게 애지중지하시는 건데요?”
“정령초야.”
“정령초요? 그게 뭔데요?”
내 질문에 강문 선배는 들릴 듯 말 듯 작게 혼잣말로 속삭였다.
“아카데미에서는 아직 그것까지는 안 가르쳐주나 보네.”
“네?”
“됐고! 정말 죽고 싶지 않으면 잘 돌봐.”
“네···넵!”
조금 특이하게 생긴 난이었다.
‘정령초라니 금시초문인데… 아니면 이 난 이름이 정령초인가?’
정령초를 보다보니 아직 한 번도 본 적 없는 우리 대장님도 참 특이하신 것 같다.
***
첫 출근과 함께 시간은 흐르고 흘러 한 달이라는 시간은 매섭게 지나갔다.
출근 후 내 일과는 난 닦기, 점심 식사, 난 햇볕 쬐어주기 그리고 남은 시간에는 사무실에 들어와 멍 때리기의 반복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낡은 소파에 누워 TV를 보며 시시덕거리는 강문 선배 외에는 다른 팀원은 보지도 못했다.
“선배님 질문 있습니다.”
“그래 질문을 한다는 것은 좋은 자세야. 그래. 뭐냐?”
“대체 다른 팀원들은 언제 오나요?”
내 질문에 강문 선배는 엉덩이를 긁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언젠가는?”
“네? 그·· 그러면 저희 임무는 언제 맡는 건가요?”
“그것도 언젠가는?”
“훈련은요?”
“쉴 수 있을 때 쉬자.”
저 무사태평한 선배를 보시라 국가의 녹을 먹고 있으면서, 훈련할 생각도 열정적으로 임무를 맡을 생각도 없어 보였다.
“그러면 저희 13기동 타격대의 주 임무는 뭔가요?”
내 말이 신호탄이 되었는지 계속 누워만 있던 아니 소파와 혼연일체였던 강문 선배가 드디어 몸을 일으키고선 나를 마주 바라봤다.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는 느낌이라서 나는 강문 선배를 똑바로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너 심심하지?”
“네? 아니 그게 아니라 제가 있는 13기동 타격대가 무슨 일을 하는지 그리고 제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요.”
“좋아. 그러면 유신이 네가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 알려줄게.”
‘드디어 임무다운 임무를 맡는 건가? 아니면 혹독한 훈련이 나를 기다리는 건가? 어떤 것이든 좋다. 이제 드디어 난 키우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을 때.
강문 선배가 자리에서 일어나 진중한 표정으로 회의 테이블을 쾅 쳤다.
그러자, 오랫동안 쌓여 있던 먼지들이 일어나며 시야를 뿌옇게 만들었다.
“보이지?”
“네?”
“이 먼지들! 너무 더럽다. 이렇게 게을러서야.”
“에에?”
“하유신 대원의 두 번째 임무는 사무실 청소야. 난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그 안에 다 끝내 놔.”
내게 시답지 않은 두 번째 임무를 준 강문 선배는 조용히 컨테이너 박스를 나갔다.
‘나는 생각했다. 고로 도망갈까?’
***
아카데미를 수료한 후, 오랜만에 동기들과 만나게 되었다.
모두가 원하는 곳으로 취업을 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취준생으로서의 긴장감도 풀고, 서로 자신의 직장에 대해 한탄 섞인 자랑을 하는 자리.
동문회!
동문회란, 남자의 언어로 허세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그 자리가 지금 이 자리이다.
“현장에서 더 배운다는 말이 사실이더라.”
“뭐 사냥은 나가봤냐?”
“너는 뭐 나가봤어? 난 일주일 뒤에 사냥 나가!”
“야 이 형님은 3일 전에 놀 사냥 갔어.”
“오~ 진짜! 아카데미에서는 찌질했는데, 놀 사냥 가서 울지나 않았냐?”
“너만 하겠냐.”
서로가 화기애애하게 말하고, 주먹다짐이라는 우정까지 나누는 이곳은 수컷 본능을 자극하는 곳이다.
‘자식들 거기서는 주먹보다는 발을 써야지.’
유신은 느긋하게 술잔을 기울이며 녀석들이 다지는 우애를 감상했다.
“맞다. 유신이 너 기동대 들어갔다며?”
내가 느긋하게 싸움 구경하고 있을 때, 이번에 무슨 길드에 들어갔다는 신평이 술잔을 들고 내 옆으로 다가왔다.
“으·· 응”
“이야~ 그러면 훈련 빡세겠다.”
“응?”
훈련? 그저 사무실에 앉아 있는 훈련이라면 난 분명 일등일 것이다.
“너라면 훈련 기동대 빨리 벗어날 거야.”
“그·· 그렇지.”
“그러니까 노력하는 [노오력가] 유신인데.”
평아~ 제발! 그만해라. 난 훈련 기동대인 10, 9, 8기동대를 보지도 못했다.
“사실은··· 나 훈련 안 해.”
“응? 훈련을 안 한다고?”
“아 그게 바로 배치받았어.”
신평의 작은 눈이 찢어질 듯 크게 떠졌다.
“진짜? 바로 배치받았다고? 아니 어떻게.”
나는 분명 작게 속삭였는데, 신평의 외침에 클라이맥스로 치솟던 우정 다짐까지 멈추고 모두 우리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뭐 바로 배치라고?”
“누가 누가?”
“야 하유신이 훈련 없이 바로 기동대 배치받았데.”
“아니 어떻게?”
우와. 진짜 당황스럽다. 그래. 더 커지기 전에 사실대로 말하자.
“그래·· 사실은···”
“야 뻥 치지 마. 아카데미에서 다들 졸았냐? 기동대는 10기동대에서 1년, 9기동대에서 1년을 수료해야 8기동대에 배치받는데 무슨 그런 뻥을.”
나도 어쩔 수 없는 수컷인가 보다.
그냥 넘어갈 수 있는데, 뻥이라는 말이 너무나 불쾌했다.
“사실 내가 면접을 보러 가다가 빌런을 한 명 잡았거든. 근데 그 빌런이 B급 현상금 수배범이라서 특채로 바로 들어갔어.”
그래. 빌런 잡은 것도 사실이고, 특채로 들어간 것도 사실이다.
단지 일반 기동대가 아니라 13기동 타격대라는 나도 처음 들어보는 부서라는 게 다를 뿐이지.
“빌런? 뻥치고 있네. 누군데? 누군데?”
“핑거·· 그러니까···”
사무실에서 가만히 있다 보니 내 뇌까지 굳었나 보다.
내가 잡은 빌런의 이름을 떠올리려고 노력하고 있을 때 아까부터 시비조였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동기가 비아냥거렸다.
“핑거 뭐? 손가락이라는 빌런도 있냐? 이 새끼 뻥이라니까.”
뻥? 뻥이라고 하니까 드디어 기억이 났다.
“핑거붐이라고 했어.”
내 말에 왁자지껄 떠들던 동기들이 조용해지며 몸이 굳었다.
왜들 그러지?
나만 분위기 파악 못 하고 있을 때 신평이 내 어깨를 치며 미소를 짓는다.
“야 장난도 적당히 쳐.”
“장난 아니야. 내가 그놈 때문에 기동대 면접도 못 보고 떨어졌었는데. 그러다가 그놈이 복수한다고 우리 집 근처로 찾아와서 겨우 잡았거든. 와… 죽는 줄 알았어.”
모두 믿지 못하고 있을 때 한 동기가 휴대폰을 바라보며 비명을 질렀다.
“진짜였어.”
“그게 무슨 소리야? 아무 능력도 없는 유신이 어떻게 B급 빌런을 잡아?”
주위 동기들의 부정에 그 동기는 조용히 자신의 휴대폰 화면을 우리에게 보여줬다.
동기가 보여준 휴대폰 화면에는 내가 검으로 핑거붐을 겨누고 있었다.
“우와 하유신 짱이다.”
“너라면 해낼 줄 알았어.”
몇몇 동기들이 나에게 다가와 자신들의 일인 것처럼 기뻐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시기와 질투의 눈빛을 보내는 녀석들도 있었다.
솔직히, 핑거붐을 내가 잡은 건 아니지만, 일단 오늘 난 이 구역의 허세왕이 되었다.
“너 그럼 몇 기동대로 발령됐어? 빌런 잡는 3기동대? 아니지? 초엘리트라는 1기동대?”
“하하 그게···”
분명 13기동 타격대라고 하면 녀석들은 안 믿을 거다. 그래 이 상황을 타파하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에잇! 기분이다. 오늘은 내가 쏜다!”
“와와와와! 하유신! 하유신!”
동기들의 외침에 내 가슴이 벅찼다.
이 맛에 동문회를 나오고, 이 기분을 느끼기 위해 허세를 부리는구나.
허세에 취하게 되면 알콜보다 더 매력적인 것 같다.
단지, 다음 날 아침 비어 있는 통장을 보고 허세가 나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지만 말이다.
***
오늘도 여느 때처럼 출근해서 청소하고, 정령초를 들고 답답한 컨테이너 박스에서 나와 햇볕을 쬐게 했다.
이렇게 오전 일과가 끝날 때쯤 소파와 하나 된 강문 선배가 소파와 분리가 된다.
“유신아~ 밥 먹자.”
점심시간이 됐기 때문이다.
강문 선배와 한 달 내내 같이 점심식사를 하다 보니 조금 이상한 것을 느끼게 되었다.
구내식당에서의 점심 식사는 그럭저럭 좋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맛있다.
웬만한 밥집보다 맛있다. 하지만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계속 먹다 보면 질리기 마련인데, 강문 선배는 언제나 행복한 표정으로 음식을 대했다.
‘솔직히, 저 정도로 행복한 표정을 지을 정도는 아닌데… 뭐 선배가 좋다고 하니.’
식사가 끝나면 한동안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예전에는 멍 때리기만 했는데, 이제는 이 자유시간에 컨테이너 박스 옆에서 검을 휘둘렀다.
아카데미에 있을 때와 같이 찌르기, 가로 베기, 세로 베기 각각 천 번씩 하다 보면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정령초들을 컨테이너 박스에 다시 넣고, 종일 햇빛과 먼지를 뒤집어쓴 정령초들을 깨끗한 무명천으로 닦아내면 퇴근 시간이 된다.
그렇게 오후 일과를 끝내는 동안 강문 선배는 소파에서 계속 잠만 잔다.
지금처럼.
“선배님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답변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웬일로 강문 선배가 기지개를 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몇 시지?”
“4시 조금 넘었습니다.”
“그래? 올 때가 됐는데. 아 오는구나.”
“네?”
“저 소리 안 들려?”
나는 조용히 귀를 기울이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대체 무슨 소리가 들린다는 거지?’
“아직 멀었네. 문 열어봐.”
뭐가 멀었다는 거지? 나는 말 잘 듣는 후배이기에 선배의 말대로 컨테이너 박스의 유일한 출입문을 열었다.
두두두두두두두
헬리콥터 소음이 내 고막을 자극하고, 우리 사무실(?) 안으로 엄청난 바람이 휘몰아쳤다.
나는 열었던 문을 다시 닫았다.
“……”
문을 열었다.
두두두두두두두
다시 닫았다.
아무런 소음이 들리지 않는다.
‘뭐지? 우리 사무실(?)이 이렇게 방음이 잘 된다고?’
“뭐 하냐? 대장 오셨다.”
“네?!”
강문 선배는 컨테이너 박스를 거칠게 열었다.
역시 공격적인 소음과 휘몰아치는 바람이 우리를 맞이했고, 헬기에서 다섯 명의 인원이 내렸다.
사람들을 내려 준 헬기가 떠나고, 다섯 명의 인원은 석양을 배경으로 전대물처럼 삼각형 대형으로 내게 다가왔다.
‘병X 같지만 멋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