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_핑거붐(2)
1964년 뉴욕의 한 공개된 장소에서 29세의 한 여인이 강도에게 무차별 난자로 살해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다.
여성은 약 30분간 폭행당해서 살해당했다.
사건 후 조사를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폭행 장면을 목격하거나 구조 외침을 들은 사람은 38명이나 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고, 그저 방관만 했을 뿐이었다.
“저기 여자 두 명.”
척!
다다다
펑!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진수가 쏜 불꽃은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향했고, 나는 몸을 던져 겨우겨우 막았다.
이미 내 몸은 만신창이가 됐는데도 사람들은 도망가지 않았다.
그저 휴대폰을 꺼내 촬영하고, 구경할 뿐이었다.
“이번엔 저 고등학생들.”
불꽃 공격을 해소하기도 전에 고등학생들 앞으로 달려가서는 온몸으로 불꽃을 막아 냈다.
아픔을 참아내며 진수를 바라보니 비릿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빨리 도망가!”
“이런 재밌는 싸움 구경을 왜 도망가요.”
“아저씨 조금만 더 힘내봐요. 저기 또 날아온다.”
분위기 파악 못 하는 고등학생들의 말에 앞을 바라보니 불꽃이 지척에 도달해 있었다.
이건 어떻게 막을 수도 없다.
붉은 불꽃이 가슴 보호대를 정통으로 때렸다.
“쿨럭~”
왈칵 피를 토해내자 전투 슈트도 한계점이 왔는지, 가슴 보호대가 쩍 하니 갈라졌다.
“우와 이거 진짜 리얼한데?”
“아저씨 괜찮아? 119 불러줄까?”
불꽃의 영향으로 더운 공기와 함께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나는 피 섞인 침을 뱉어내고선 뒤에 서 있는 고등학생들을 바라봤다.
피 때문인지 아니면 내 진심이 통했는지 고등학생들은 흠칫 놀라며, 두세 걸음 물러섰다.
“핑거붐.”
“네?”
이번에는 예상했기에 날아오는 불꽃을 그나마 멀쩡한 팔 보호대로 막아 내며 구경꾼들에게 크게 외쳤다.
“현상수배범 빌런이라고!”
그렇게 크게 외쳤지만, 구경꾼 중에서 단 한 명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핑거붐의 공격을 얼마나 더 막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전신화상을 입었는지 쓰라리고 욱신거렸다.
거기다 이미 한계에 달해서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내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핑거붐도 느끼고 있는지 여유롭게 검지로 나를 겨눴다.
“남의 여친 뺏어서 내 눈에 눈물이 나게 했으니 너도 한 번 피눈물 흘려봐.”
검지에서는 주먹만 한 불꽃이 조금씩 크기를 키워나갔다.
“뭐야 치정 싸움이었어?”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싸우나 봐.”
구경꾼들의 오해에 내 속이 타들어 가고 있을 때 한 여성의 비명이 들렸다.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이 비명을 지른 여성을 쳐다봤다.
여성은 자신의 휴대폰과 진수를 번갈아 쳐다보며 겁에 질려 말을 더듬었다.
“B·· B급 빌런이야!”
여성이 그 말을 내뱉자 주위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그동안 불꽃은 수박만 해졌고, 진수도 그걸 유지하기 힘들었는지 있는 힘껏 내게 던졌다.
사람들은 죽기 직전에 필름처럼 자신의 삶을 파노라마로 본다고 했다.
휘리리릭
구식 영상 필름처럼 내 삶이 지나쳐 갔다.
태어나고, 영웅과 전설을 꿈꾸고, [노오력가] 능력을 부여받고, 고생 끝에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기동대 면접까지 짧은 삶이었다.
그저 이대로 불에 타 죽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들 때였다.
졸업 시험에서 홉고블린의 목을 단숨에 자른 게 기억났다.
그때 신평이 무슨 기술이냐고 계속 닦달했었다.
그 일검의 느낌을 다시 떠올려봤다.
검을 양손으로 꽉 쥐고선 날아오는 불꽃을 향해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촤악
불꽃은 반으로 갈라지며 유신을 스치듯이 지나갔다.
반으로 갈라진 불꽃들은 엄청난 굉음과 함께 대폭발을 일으켰다.
콰쾅!
대폭발의 잔해가 주변을 휩쓸자 지금까지 유신과 진수의 싸움을 구경하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다.
아비규환의 상황에서 진수는 회심의 일격이 실패하자 당황한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서…성공했네?”
어안이 벙벙한 난 희미하게 밝은 빛이 씐 검을 진수에게 겨눴다.
“자. 이제 2차전 시작이다.”
죽을 위기를 겪게 되면 누구나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소설이나 영화에서도 괜히 주인공이 죽기 직전에 깨달음을 얻게 되고, 각성하게 되는지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는 죽을 것같이 아팠지만, 검에 희미하게 덮어진 검기를 바라보니 없던 힘도 생겨났다.
[노오력가]라는 이상한 능력만 있던 내가 새로운 능력을 각성해서 검기를 일으켰다.
진수는 지금까지의 여유로웠던 모습을 집어던지고, 괴성을 지르며 미친 듯이 불꽃을 발사했다.
“크아아악!! 죽어! 죽으란 말이야!!”
주먹 크기로 한 발씩 쏘아지는 불꽃을 가르며 한 발 전진하고, 연속으로 발사되는 작은 불꽃은 회피와 검으로 막아 내며 한 발 전진했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다가가니, 어느 순간 내 검역에 진수가 들어왔다.
진수는 발악하듯 이를 악물며 불꽃을 발사했고, 나는 아카데미에서 매일 연습하던 기본기 중 하나인 찌르기를 시전했다.
퍼엉
찌르기는 불꽃을 물풍선처럼 터트리고, 더 나아가 진수를 위협하며,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마지막에 진수가 몸을 틀지 않았다면, 분명 어깨에 바람구멍이 났을 것이다.
“이제 서로 해볼 만하지?”
말과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진수는 몸을 뒤로 내뺐지만, 육체파가 아니라서 피하는 게 늦어져 가슴에 상처를 입고 말았다.
진수의 피가 바닥에 닿기도 전에 유신은 재차 검을 찔러 넣었다.
막무가내로 검을 휘두르는 것 같지만, 유신의 검은 아카데미에서 배운 검술을 토대로 생명에 지장이 없는 사지를 노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진수의 양팔과 양다리는 피투성이가 되어 갔다.
진수는 피를 얼마나 많이 흘렸는지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손사래를 치며 외쳤다.
“수·· 수애를 찾고 싶지 않아?”
진수의 말에 유신은 휘두르는 검을 멈췄다.
“그게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로야. 수애는 내가 데리고 있어.”
“기동대 병원에 있는 여자를 네가 어떻게 데리고 있다는 거야?”
“그깟 병원에서 사람 한 명 몰래 빼돌리는 게 얼마나 쉬운데? 날 더 공격하면 수애도 영원히 찾지 못해.”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별하지 못하겠다.
내가 생각에 빠진 그 짧은 시간 동안 진수의 검지가 펴지며 불꽃을 쏘아 보냈다.
‘사람이 한 번 당하지 두 번 당하냐!’
진수가 말을 하는 동안에도 계속 진수의 검지만 바라보고 있어서 빠르게 대응해서 불꽃을 막을 수 있었다.
방금 그 공격이 마지막 회심의 수였는지 진수는 더 공격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항복의 의사로 양팔을 늘어뜨렸다.
나는 낮에도 당한 게 있기에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진수의 목에 검을 겨눴다.
“이 분위기에 할 말은 아닌데, 수애라는 여자랑 나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
“거짓말 마!”
“진짜 좀 믿어주라.”
“그러면 왜 목숨 걸고 수애를 지킨 거지?”
“당연한 거 아니야? 사람이 위험하면 구해지. 그게 바로 정의야.”
내 말에 진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검지를 꿈틀거렸다.
“어허~ 손가락 잘못 움직이면 목이 날아갈 수도 있어.”
“어디 한 번 해봐.”
진수가 검에 자신의 목을 갖다 댔다.
피가 검신을 타고 뚝뚝 흘러내리자 나는 놀라며 검을 물렸다.
“너 사람 죽여 본 적 없지?”
진수의 비웃음이 정신을 차리게 했다.
이대로 있으면 다시 놈에게 농락당한다.
나는 검을 살짝 들어서 그대로 내리그어 진수의 왼팔에 깊은 상처를 냈다.
상처에서는 왈칵 피가 쏟아졌고, 그로 인해 내 얼굴에 약간의 피가 튀었다.
“널 죽일 수는 없지만, 못 움직이게는 할 수 있지. 그러니까 기동대가 올 때까지 가만히 있어.”
다시 검을 들어서 진수에게 겨누는데, 갑자기 세상이 뱅글뱅글 돌며 어지러워졌다.
“어지럽지 않아?”
“너·· 너 뭐한 거야?”
“난 아무것도 한 게 없어. 그게 바로 탈력증이라는 거야.”
“탈력증?”
“그러게 검기를 적당히 써야지. 이제 막 각성한 것 같은데, 그렇게 쉼 없이 쓰면 몸에 에너지가 남아나겠어?”
진수는 그 말을 하고선 내 복부를 발로 걷어찼다.
나는 넘어지면서도 진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는데, 진수가 세 명이 되어서 뱅글뱅글 회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 명의 진수가 검지를 들고선 불꽃을 일으켰다.
“잘 가~ 수애도 곧 뒤따라갈 거야.”
마지막 불꽃이 쏘아졌다.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불꽃을 노려보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자신과 불꽃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콰콰쾅!
불꽃은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고, 후폭풍으로 일대를 먼지구름으로 뒤덮었다.
먼지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자, 진수는 갑자기 끼어든 불청객이 있던 방향으로 검지를 들어 올렸다.
탕!
진수의 검지가 사라졌다.
찰나의 시간이 지나고 사라진 검지에서 피가 쏟아졌다.
“크아아악~”
자신의 검지를 부여잡으며, 처절한 비명을 지르던 진수의 귓가로 냉랭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끄러워! 이제 벌 받을 시간이야.”
네 발의 총성이 울리고 진수의 양쪽 대퇴부와 쇄골에 구멍이 뚫렸다.
뚫린 구멍 사이로 왈칵 피가 솟구쳤고, 진수는 실 끊어진 인형처럼 힘없이 주저앉게 됐다.
검은 코트를 입고 있는 사내는 면접 대기실에서 봤던 강문이었다.
그는 진수의 이마에 총을 갖다 대고는 방아쇠에 손을 올렸다.
“나··· 날 죽이면 수애는 영원히 찾을 수 없을 거야.”
“수애?”
“그래 수애. 바로 내 전 여친.”
“아 그 여자.”
탕!
우렁차게 울리는 격발음과 함께 진수의 이마와 뒤통수에 시원하게 공기가 통하는 공간이 생겨났다.
“벌써 구했어. 병원에서 치료 중이야.”
강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수는 모로 쓰러졌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총구로 자신의 뒤통수를 긁은 강문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쏘기 전에 말해줄걸.”
강문은 자신의 총을 휘리릭 돌리다가 총집에 멋있게 집어넣었다.
간단한 그 행동 하나에 사내를 중심으로 파장이 생겨나며 자욱한 모래 먼지를 밀어냈다.
모래 먼지가 사라지자 유신과 진수의 싸움이 얼마나 극렬했는지 주변 풍경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강문이 유신에게 다가가려고 할 때 기동대 사이렌이 울리며 급하게 현장으로 다가왔다.
기동대원들은 재빠르게 차에서 내린 후, 홀로 서 있는 사내에게 무기를 겨눴다.
사내는 양손을 머리 위로 올리며 나지막이 외쳤다.
“13기동 타격대 강문이다.”
“13기동 타격대?”
“그런데도 있나?”
“용의자 같은데 체포해야 하지 않습니까?”
3기동대 조원 두 명이 강문을 체포하기 위해 검으로 경계하며 서서히 다가갔다.
뒤늦게 도착한 3기동대 중대장이 차에서 내리며 그 모습을 보고는 기겁하며 팀원들을 불러 세웠다.
“지금 뭣들 하는 거야!”
중대장은 재빠르게 강문 앞으로 다가와 경례했다.
“단결! 3기동대 5대대장 박호숩니다.”
“날 아나?”
“예전… 그 사건의 마무리를 할 때 막내로 있었습니다.”
“…그렇군.”
“죄송합니다. 제 부하들이 잘 몰라서 그랬습니다.”
호수의 사과에 강문을 체포하기 위해 다가가던 두 명의 기동대원들은 기겁하며 경례했다.
“단결!”
강문은 경례를 받아주지 않고 유신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중간에 호수가 있는 것을 보고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비켜”
“네?”
강문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자 그제야 눈치를 챈 호수는 조심히 몸을 돌려 강문이 지나갈 수 있게 길을 비켜줬다.
강문이 유신 앞에 섰을 때는 3기동 대원들이 지쳐 쓰러진 유신을 강하게 제압해 놓고 있었다.
“적당히 하지?”
강문의 한 마디에 호수는 인상을 찌푸리며 손짓으로 유신을 풀어주게 했다.
유신은 땅바닥에 쓰러진 채 온몸에 화상을 입어 빨갛게 익은 얼굴로 강문을 바라봤다.
강문도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유신을 보며 담담히 입을 열었다.
“13기동 타격대 들어올래?”
강문의 스카웃 제의에 뒤에 서 있던 호수가 작은 두 눈을 크게 뜨며 기겁했다.
“거기도 기동대 소속인가요?”
어처구니없는 질문에 강문은 재밌는지 히죽 웃었다.
“기동대? 기동대라고 하면 기동대일 수도 있지. 뭐 범위가 일반 기동대보다 더욱 크지만.”
“그럼…저도 강해질 수 있을까요?”
“강해진다? 누구처럼?”
“최소한 당신…아니 선배님처럼요.”
유신의 말에 강문이 모호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떡였다.
“네가 얼마나 훈련을 잘 따라오냐에 따라서. 그런데, 나만큼 강해지는 건 쉽지 않을 텐데?”
“헤헤~ 저 정말 훈련은 잘 버팁니다. 앞으로…잘 부탁…드‥립….”
유신은 말도 제대로 끝맺지 못하고 기절해 버렸다.
강문은 그런 유신을 보며, 품에서 붉은 액체를 꺼내 유신의 입에 흘러 넣어줬다.
“스카웃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