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빼고 먼치킨-8화 (8/300)

8화_핑거붐(1)

“우선 오늘 면접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면접 완전 늦었는데···”

이미 늦어버린 면접 때문에 나는 울상이 됐다.

그러자, 앞에 앉아 있는 수사관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하유신씨 같이 훌륭하신 분은 당연히 합격을 드려야죠.”

“합격이요?”

나는 깜짝 놀라 눈이 동그래졌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형평성에 심하게 어긋나기 때문에, 약간의 가산점을 주기로 결정 났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합격이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가산점만 해도 어디인가?

방금까지 김진수라는 빌런이 내 인생을 망가뜨린 최악의 인물이었는데, 약간이지만, 지금은 고마웠다.

“그리고···”

3기동대 수사관이 말끝을 흘리자, 내 궁금증은 증폭됐다.

“그리고요?”

“오늘 하유신씨와 싸웠던 빌런이 현상수배범이라서 약간의 포상금도 나올 겁니다.”

“현상수배범이요?”

“네 핑거붐이라는 B급 현상수배범입니다.”

“B급이라고요?”

B급이라니 내가 그런 무시무시한 존재에게 개겼다는 말인가?

“핑거붐은 잡혔죠?”

내 물음에 수사관과 기동대원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그래··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 놓친 거구나. 설마 복수한다고 찾아오지는 않겠지?’

“그거 때문에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수사관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CCTV를 보시면 핑거붐과 싸우기 전에 대화를 나눴던데 어떤 대화인지 알 수 있을까요?”

“기동대가 올 때까지 시간을 끌려고 이것저것 아무 말이나 한 건데요.”

“핑거붐을 잡기 위해서는 사소한 거라도 좋습니다. 무슨 말이 오갔나요?”

나는 수사관의 말에 대화를 떠올리기 위해 기억을 더듬었다.

“김진수··· 그래. 이름이 김진수라고 했습니다.”

“누구 말인가요?”

“수사관님이 말씀하신 핑거붐이요.”

내 말이 도움 됐는지 수사관은 한동안 태블릿PC를 조작했다.

“어떻게 이름을 알게 되셨나요?”

“제 소개하고 물어봤는데요?”

내 답변에 수사관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하유신씨의 본명을 밝히니 이름을 밝히던가요?”

“네.”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세요.”

“네? 왜요?”

“보복이 따라올 수도 있습니다.”

수사관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나는 담담할 수 없다.

내 표정이 굳어가자, 수사관은 나를 힐끔 쳐다보며 위로라고 한마디 던졌다.

“그래도 핑거붐을 잡는 데 도움이 되는 말이었습니다. 최대한 빨리 잡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에 더욱 불안감이 가중됐다.

나는 최대한 핑거붐이 빨리 잡혀야 한다는 생각에 핑거붐과의 대화를 머릿속에서 떠올렸다.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생각났다.

“제가 지킨 여성분은 괜찮나요?”

“그 여성분은 현재 기동대 관할 병원에서 치료 중입니다.”

“그 여성분 남친이 아니 전남친이 핑거붐입니다.”

“네?!”

“그 여성분이 헤어지자고 해서 남자가 여자 죽이려고 했어요.”

수사관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 후로도 몇 가지 질문이 오갔지만, 더 이상의 소득은 없었다.

나는 취조가 끝나자 입맛이 썼다.

그래도 계속 여기에 있을 수 없기에 조용히 취조실을 나가려고 하는데, 그제야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됐다.

완전 엉망이 된 전투 슈트와 복부 쪽은 그냥 뻥 뚫려 있는 상의··· 그런데 분명 빌런에게 당했던 상처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화상을 입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제 상처를 다 치료해주셨네요?”

“네? 상처요?”

“감사합니다.”

역시 기동대다.

이렇게 완벽한 치료를 하다니.

최상급 포션이나, 그레이트 힐이 내 몸을 치료한 게 분명할 거다.

상처까지 치료해줬지만, 한 가지 부탁을 더 해야겠다.

나는 멋쩍게 머리를 긁으며 운을 띄웠다.

“저기 죄송한데··· 옷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알다시피 면접을 봐야 해서···”

내 말에 수사관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 요청을 들어주었고, 나는 기동대가 훈련할 때 입는 전투 슈트로 갈아입을 수 있었다.

아직 기동대가 되지도 않았고, 면접 전이다.

하지만, 슈트를 입으니 벌써 기동대가 된 것 같았다.

방방 뛰며 기뻐하고 싶었지만, 일단은 면접이 먼저이기에 날아갈 듯한 발걸음으로 3층 면접장으로 뛰어갔다.

“휴~ 도착했다.”

면접장이 위치한 3층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고 도착했다.

주위를 둘러본 후 서둘러 접수처로 다가갔다.

“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아. 저 오늘 면접 보러 왔습니다.”

내 말에 접수처의 안내원이 당황스럽다는 듯이 말을 내뱉었다.

“네? 면접이요? 기동대 아니세요?”

지금 누가 날 본다면 기동대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무리 훈련용이라고 하지만, 전투 슈트를 입었고, 검까지 착용하고 있었다.

“그러니까…저는 오늘 11시에 면접 보기로 한 하유신이라고 합니다. 이 옷은 면접 보러 오다가 사건이 생겨서 원래 입던 옷이 넝마가 됐거든요. 그래서 여기서 빌렸습니다.”

“아 하유신씨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현재 마지막 순서가 면접 중이어서 끝나면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안내원은 미리 언질을 들었는지 친절하게 대해줬다.

“네. 감사합니다.”

나는 해맑게 웃으며 면접생을 위해 비치된 의자에 앉아서 기다렸다.

수사관의 말대로라면 날 위한 추가 면접을 진행하고, 가산점까지 부여해준다고 했다.

그래서 더욱 면접을 제대로 볼 생각에 마음을 다잡고 있을 때였다.

기동대와 어울리지 않는 꽁지머리를 한 사내가 내게 다가왔다.

“하유신?”

“네? 제가 하유신인데요?”

“이번에 기동대 면접 본다고?”

“아…네.”

내 대답에 상대가 미소를 지었고, 가지런한 치아가 보였다.

그 모습이 참 멋지다고 생각할 때였다.

“우리 부대 들어올래?”

“네?”

“뭐 정식 대원은 아니고 일단 인턴부터 시작하자 어때?”

갑작스러운 스카우트 제의였다.

“저기 죄송한데, 어디 소속이세요?”

“나? 13기동 타격대.”

“네?”

기동대는 1기동대부터 7기동대까지 있다.

8~10기동대도 있지만, 그들은 훈련 기동대로 훈련병들이 기거하는 곳이었다.

즉, 내가 아는 기동대는 13이라는 숫자도 없고, 타격대라는 명칭도 붙지 않는 곳이었다.

“어떻게 우리 13기동 타격대에 들어올래?”

어떻게 하면 상대가 기분이 나빠하지 않고 잘 거절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타이밍 좋게 안내원이 날 불렀다.

“하유신씨 면접 들어가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안내원의 말에 유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사내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제가 지금 면접을 보러 가야 해서요. 죄송하지만, 명함을 주시면 따로 연락드려도 될까요?”“완곡한 거절이네?”

“하하하…”

어색한 웃음을 흘리고 있을 때 상대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명함은 따로 없고, 나중에 다시 만날 것 같네. 대신에 내 이름을 알려줄게. 강문. 이게 내 이름이야.”

“알겠습니다. 강문씨 스카우트 제의는 정말 감사합니다.”

내가 허리 숙여 인사한 후 고개를 들었을 때, 강문은 허깨비마냥 보이지 않았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는 동안 안내원이 재촉하는 소리가 들렸다.

일단은 면접이 먼저였다.

“하유신 들어갑니다.”

***

“세상에는 두 종류의 여자가 있어.”

병원에 있어야 할 수애가 병원복을 입은 상태로 온몸이 꽁꽁 묶여 바닥에 누워있다.

“첫 번째는 내가 사랑하는 여자 수애.”

테이프로 입이 막혀 있는 수애는 겁에 질린 얼굴로 진수를 바라봤다.

“두 번째는 내가 사랑했던 여자 수애.”

말은 끝낸 진수는 몸을 낮춰, 수애의 헝클어진 머릿결을 손가락으로 정돈했다.

“수애야. 내가 사랑했던 수애야. 왜 너는 나를 떠나려고 하니!”

조곤조곤 말하던 진수는 자신의 분을 이기지 못하고 수애의 머리를 거칠게 부여잡고는 일으켜 세웠다.

“널 계속 보고 있으면 내가 미련이 남아서 아플 것 같아. 그래서 말인데··· 영원히 지워줄게.”

“읍읍읍”

수애는 진수의 말에 두 눈을 부릅뜨며 고개를 저었다.

진수는 그런 수애가 다치지 않도록 다시 조심히 바닥에 눕혀놓았다.

“그렇게 겁먹지 마. 그래도 마지막으로 내가 선물 하나 줄게.”

진수는 수애의 귓가로 자신의 입을 가져다 대며 속삭였다.

“저승길 외롭지 않게 길동무를 말이야. 네년이 보는 앞에서 그놈을 활활 태워 줄게.”

공포에 젖어 눈물을 흘리던 수애는 진수의 말에 기절하고 만다.

진수는 그런 수애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눈물을 닦아주고선 방을 나섰다.

“널 제외하면 내겐 모두가 움직이는 장작일 뿐이야.”

***

완벽한 면접이었다.

면접관들이 3기동대의 수사관에게 어떤 소리를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화기애애하게 면접이 진행되었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어떻게 핑거붐과 싸우게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면접을 끝내고 나갈 때에는 면접관이 ‘다시 보자.’는 말까지 했으니, 이건 빼도박도 못하고 합격이었다.

‘하~ 집에 가서 뭐라고 말하지? 아직 결과 나오려면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벌써 합격이라고 말하면 믿지 않을 것 같네. 아냐. 하유신 설레발치지 말자. 그래도 기분은 좋네.’

시작은 좋지 못했지만,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가고 있을 때였다.

‘어? 후두엽을 스치고 지나기는 이 불길하면서 따뜻한 느낌을 겪어본 것 같았는데?’

유신은 불길한 기운을 감지하고 몸을 살짝 틀었다.

몸을 살짝 튼 그 작은 행동 덕분에 치명상을 피해, 왼쪽 어깨에 불덩어리를 얻어맞고 한동안 뒤로 데굴데굴 굴렀다.

몇 바퀴를 돌던 유신은 구르던 반동을 이용해 자리에서 일어나며 검을 뽑아 들었다.

“누구냐?”

솔직히 누구인지 물어볼 필요도 없다.

이런 불덩어리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람에게 날리는 놈은 핑거붐이다.

불꽃이 날아온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어두운 거리가 보였다.

누가 있는지 인기척을 느껴보려고 하지만 어떠한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오른쪽에서 뜨거움이 감지됐다.

고개를 돌리며 늦을 것 같아 다짜고짜 오른쪽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내 판단은 맞았지만, 불덩어리는 반으로 갈라져도 그대로 날아와 나를 덮쳤다.

콰쾅!

온몸으로 불꽃을 받아낸 유신은 바닥에 대자로 뻗었다.

유신은 양어깨 견갑을 중심으로 몸 곳곳에서 김이 피어올랐고, 진수가 어두운 거리에서 조심히 걸어 나왔다.

진수는 묵묵히 다가와 조심스럽게 검지를 펴서 유신을 가리켰다.

“이제 죽을 시간이다!”

검지에서 불꽃이 커지고 압축되기를 반복하고 있을 때, 유신이 허리 반동으로 스프링처럼 일어나 진수에게 검을 휘둘렀다.

유신이 쓰러졌다고 방심했던 진수는 갑작스러운 유신의 검에 불꽃을 포기했다.

그리고, 철판교 수법으로 검을 피하고선 상체를 일으키며 급하게 검지를 다시 펴고는 콩알만 한 불꽃을 발사했다.

콰콰콰콰콰쾅

유신은 진수의 달라진 공격 패턴에 순간 당황하며 불꽃 공격을 온몸으로 당하게 되었다.

작은 불꽃들이 유신의 온몸을 유린하지만, 유신은 쓰러지지 않고 버텼다.

진수는 곱게 핀 손가락에 쥐가 날 정도로 유신을 공격하였고, 유신의 전투 슈트는 부서지지는 않았지만, 붉게 달아올랐다.

“쉽게 죽이지 않을 거야.”

진수는 광기 어린 말을 내뱉으며 다시 유신을 공격하려고 했다.

유신은 진수가 말을 하는 동안 잠깐의 틈이 생겨서, 진수의 어깨에 찌르기를 날렸다.

진수는 유신의 공격에 그대로 당해, 어깨가 꿰뚫리고 말았다.

어깨를 부여잡으며 진수가 뒤로 물러났다.

공격을 당해 본 게 처음인 진수가 유신을 두려운 듯 바라봤다.

“너··· 넌 뭐야?”

“기···”

유신의 작은 목소리에 진수는 어깨의 아픔도 잊고 귀를 기울였다.

“기 뭐?”

“기동대 전투복 끝내준다. 조금 따끔하고 말잖아.”

솔직히 쓰라리고 아팠다.

하지만, 아픈 티를 내면 진수는 기고만장해질 것이다.

격장지계로 진수가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할 때, 다시 검을 휘둘렀다.

낮에 싸웠을 때보다 진수의 몸놀림이 좋아졌지만, 역시나 원소술사는 근접전에 약했다.

그렇게 몰아붙이고 있는데, 사람들이 모여들며, 휴대폰을 꺼내 들고선 우리를 찍었다.

“뭐지? 영화 촬영인가?”

“아니 싸움 난 것 같은데?”

“누가 신고해야 하는 거 아냐?”

무슨 변수가 발생할지 몰라 조마조마하며 진수를 압박해 나갔다.

그러다가 진수가 발사한 불꽃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하게 됐다.

사람들은 갑자기 자신에게 불꽃이 날아오자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확실히 진수를 제압할 기회였다.

예비 기동대라는 사명감이 발동한 걸까? 아니면 성격 때문일까?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몸으로 불꽃을 막았다.

쾅!

‘하루에 두 번이나 같은 사람과 생사투를 할 줄이야.’

아픔을 참고 진수를 바라봤다.

진수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불꽃을 맞은 나를 바라보며 기분 나쁘게 씨익 웃었다.

불김함이 느껴지자,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외쳤다..

“빨리 도망가세요. 빌런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되려 아까 도망친 사람들까지 돌아와, 휴대폰으로 우리를 찍는 데 여념이 없었다.

사람들이 다치지 않게 하려면 최대한 빨리 진수를 제압해야 했다.

그런데, 진수의 검지가 구경하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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