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_면접장 가는 길(2)
나는 이 소동의 주범인 남자의 손끝에서 일렁이는 붉은 불꽃을 보며 침을 삼켰다.
빌런이고, 헌터고 나발이고 모르겠지만 이거 하난 확실하다.
저놈은 5대력을 가지고 있는 능력자다.
불을 만들어내고, 바위를 부수고, 검을 날카롭게 만들며, 엄청난 방어력을 자랑하는 이 초월적인 능력은 기본적으로 원소력, 차크라, 마나, 내공, 포스 등으로 불린다.
대부분의 전투 능력자들은 이 초월적인 에너지를 타고나야 한다.
그리고, 초월적인 에너지를 다루는 능력자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같은 초월적인 에너지를 다루는 능력자여야 한다는 게 상식이다.
대도시 한복판에서 소동을 일으킨 저 빌런의 불꽃을 보니 확실했다.
저놈은 5대력 중 원소력을 다루는 원소술사였다.
원소술사의 검지에 맺혀 있는 불꽃은 지금이라도 나에게 발사될 것만 같았다.
나는 최대한 빨리 기동대가 오길 바라며, 어떻게 해서든 시간을 벌기 위해 대화를 시도했다.
“저는 하유신이라고 합니다. 방금 어깨로 밀친 건 정말로 죄송합니다.”
너무 매섭게 쳐다본다. 방법을 바꿔야겠다.
“다·· 당신은 누구신데? 저 여···”
“김진수”
“진수씨군요. 그러니까 제가 물어보고 싶은 거는···”
“그렇군. 당신 때문이었어.”
“네?”
김진수라고 자신을 밝힌 원소술사는 내 뒤에 기절해 있는 여자를 애처롭게 바라봤다.
불안감을 느낀 나는 이미 뽑은 검을 더욱 꽉 쥐었다.
그러자 진수는 나를 더욱 매섭게 쏘아보며 외쳤다.
“당신이 우리 수애를 꼬신 거였어.”
“그게 무슨..?”
“그래. 그래서 우리 착한 수애가 어쩔 수 없이 헤어지자고 한 거였어.”
“아니 저기 저는 그냥 면접 보러 가다가···”
진수라는 사내는 내 말을 듣지도 않고 아니,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혼자 결론을 지었다.
저 눈빛 그리고 저 분위기 분명 캔 브레이커만큼은 안되지만 내게 위압감을 흘렸다.
“네가 뭔데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 거야!”
진수의 검지에서 약하게 피어오르던 불꽃이 점점 크기를 키웠다.
나는 대치 전까지 진수가 쏟아냈던 불꽃을 짧게나마 복기해 봤다.
불꽃은 건물 하나를 날려버릴 정도의 폭발력을 가지고 있었다.
수애라는 여자에게 발사하려던 불꽃은 직선으로 길게 뻗어 나갔다.
이건 정확하지는 않지만 한 번 불꽃이 발사되면 다음 불꽃까지 약간의 딜레이가 발생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저 검지가 향한 방향은 나였다.
꿀꺽
나는 침을 삼키며 진수의 검지를 바라봤다.
저게 발사되면 내 상체는 흔적도 없이 태워질 것이다.
검지에 모여 있던 불꽃이 순식간에 압축이 된 후에 폭발하듯 뻗어 나왔다.
불꽃을 피하기 위해 나는 왼쪽 대각선으로 몸을 날렸다.
진수는 뿜어나오는 불꽃을 유지한 채, 검지를 나에게 향하게 했다.
급하게 꺾인 불꽃을 보지 않고, 감으로 백덤블링을 해서 피했다.
치지지직
근접 거리에서 불꽃이 등을 스쳐 지나갔다.
뜨겁게 달아오른 전투복 때문에 등이 익어가는 느낌이지만, 내 생각대로 진수의 불꽃은 힘을 다하고 멈췄다.
내가 서커스단처럼 요리조리 움직여서 공격을 피하자 진수는 깜짝 놀라 급하게 검지를 접었다 다시 피려고 했다.
‘새로운 공격을 하기 위해서는 검지를 접었다가 펴야 한다.’
나는 진수가 추가 공격을 하기 전에 가까스로 등의 아릿함을 참아내며, 전력을 다해 진수의 어깨에 검을 찔러넣었다.
진수는 갑작스러운 찌르기에 기겁하며 몸을 뒤로 날려 검을 피하지만 균형을 잃었다.
나는 틈이 생기자 확실하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쉼 없이 검을 휘둘렀다.
내 검을 피하느라 진수는 제대로 된 공격도 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굴렀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원소술사의 최대 약점 중 하나는 근접전이고, 나는 딱 한 번뿐이지만 지미를 이긴 전력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검이 넘어진 진수의 목젖을 겨누는 상황이 됐다.
“이제 그만하시죠.”
진수는 뭐가 그렇게 억울한지 주먹으로 거칠게 땅을 쳤다.
“제길···”
나는 진수의 일거수일투족을 예민하게 바라보며 허튼짓하지 못하게 검을 목에 더욱 가까이 겨눴다.
“뭐 하나만 물어봅시다. 지금 이별 통보받았다고 이 엄청난 사건을 저지른 겁니까?”
분노에 찬 진수가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때 저 멀리 기동대 사이렌 소리가 들려 왔다.
아주 잠깐이지만 그 소리에 나는 긴장감을 풀게 되었고, 진수의 검지가 빠르게 접었다 펴진 것을 보지 못했다.
잠깐의 방심은 콩알만 한 불꽃이 내 복부를 가격하게 했다.
쾅!
정말 작은 불꽃이지만, 그 불꽃 안에 어마어마한 힘이 있었는지 엄청난 소리와 함께 나를 뒤로 날려버렸다.
정신이 아찔해졌고, 충격에 데굴데굴 굴러서 아직 기절해 있는 수애 옆까지 날아갔다.
유신과 수애가 같이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본 진수는 얼굴이 새빨개진 상태로 김을 뿜어냈다.
“죽여 버릴 거야.”
나는 진수의 공격에 정통으로 맞아서 그런지 잠시간 정신을 잃었었다.
진수의 악 박친 목소리에 정신이 돌아왔고,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부여잡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모습을 보고 진수는 공격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기겁했다.
“어···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내가 목숨이 좀 질겨.”
치사하게 진수는 내게 질문을 던지고 재빠르게 검지를 접었다 피며 불꽃을 쏘아 보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재수가 없다고 해야 할까?
피할 힘도 막을 힘도 없던 내게 급하게 발사된 불꽃은 급소를 피해 내 복부를 재차 강타했다.
쾅!
아까보다 더 멀리 데굴데굴 굴렀는데, 다행히 정신을 놓지 않았다.
한참을 구른 후에 넘어진 상태에서 하늘을 보니 하늘이 참 맑았다.
이명이 가라앉지 않고 주위의 모든 소리를 막고 있으니 하늘을 구경하기에 더욱 안성맞춤이었다.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기 위해 고개를 흔들고는 불안감을 느끼며 왼손으로 복부를 만져봤다.
“젠장!!”
비싼 전투 슈트의 상체가 흔적도 보이지 않고 사라졌다는 걸 확인했다.
그래도 전투 슈트가 없어지기 전에 비싼 값을 했다는 것에 눈물을 삼키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수가 이번에는 검지를 수애에게 향하고 수박만 한 불꽃을 생성하고 있었다.
나는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마지막 힘을 짜내 점프를 해서 내 몸으로 수애를 가렸다.
***
꽁지머리를 한 강문이 건물 옥상 위에서 유신과 진수의 싸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은빛 가면에 6개의 줄이 그어진 존재가 나타났다.
“사신을 뵙습니다.”
“그렇게까지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어. 알아보라고 한 건 알아봤어?”
“네. 여기 있습니다.”
서류를 건네받자, 강문은 몇 장 읽더니 그대로 태워버렸다.
“딱 원하는 녀석이야.”
“제가 사신님께 질문을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뭔데?”
“왜 하도 많은 아이 중 하유신이라는 아이입니까? 그는 아무런 능력도 없는 무능력자입니다.”
은빛 가면의 말에 강문이 미소지었다.
“능력이 없기는 왜 없어? [노오력가] 잖아.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노오력가 그리고, 가이아의 관심까지 받았잖아. 사람들은 모르지만, 능력에 장난을 치는 것은 가이아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거야.”
“하지만…”
“하지만 뭐?”
“하유신은 전투 능력이 없습니다. 사신님과 다른 동료분들은 전투 능력에 가이아의 장난이 들어갔지만, 하유신은 노력가입니다.”
“본인이 저렇게 열성적이고, 일단 멍청해 보일 정도로 착하잖아. 저런 애들이 막 굴려도 나중에 아무 말도 안 하거든.”
“네?”
“저기 봐봐.”
사신이 가리킨 곳을 바라보자, 유신이 자신의 몸을 던져 진수에게서 수애를 가렸다.
***
유신의 행동은 쓰러진 민간인을 지키기 위한 무의식적인 행동이었고, 뉴스에 나온다면 훌륭한 시민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단지 그 행동이 앞에 있는 진수에게는 도화선이 될 뿐이었다.
“끝까지 나를 농락해!”
탕!
총소리가 들려왔지만, 유신은 죽음을 직감했다.
그런데, 한참 기다려도 아픔이 오지 않자, 이상함을 느끼고선 조심히 실눈을 떴다.
유신의 눈에 보이는 것은 진수가 저 멀리 도망가고 있다는 거였다.
“사…살았다.”
겨우 목숨을 건졌다고 생각한 유신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때 기동대 인원이 유신을 덮쳐서 넘어뜨렸고, 그대로 유신은 정신을 잃고 말았다.
“용의자 검거 완료하였습니다.”
기동대 인원이 기절한 유신에게 능력 억제 수갑을 채우고, 거칠게 몸을 일으켰다.
그들에게 유신은 용감한 시민이 아니라, 범죄 현장에 있는 용의자일 뿐이었다.
거기다가 기절까지 했으니, 그들 입장에서는 유신을 옮기는 게 짜증이 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차라리 유신에게는 이게 천만다행이었다.
다른 기동대원이 주위에 떨어져 있는 유신의 검을 수거하면 말했다.
“완전히 걸레짝이네. 그 폭발에서 살아남고, 사람들까지 죽이려고 하다니.”
기동대의 말대로 유신의 전투 슈트는 예전에 부서졌다.
복부는 심각한 화상으로 인해 내장까지 익어서 깨어있었다면, 어마어마한 고통이 몰려왔을 것이다.
유신이 전투 중에 아픔을 느끼진 못한 이유는 전투의 흥분이 준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의 분출.
그리고 죽을 수도 있다는 긴장감 때문이었다.
“빨리 이송하도록.”
두 명의 기동대 인원이 유신의 양팔을 잡고 연행하려는 순간.
빌딩 옥상 위에 있던 강문이가 나타나 새빨갛게 익은 유신의 복부에다가 빨간 주사를 놓았다.
너무나 자연스러웠고 이질감이 없어서 주위에 있던 기동대 인원들은 유신에게 주사를 다 놓은 후에야 사태를 파악하게 됐다.
“당신 누구야! 지금 용의자한테 뭘 놓은 거야.”
“멍청한 것들”
진한 욕설을 내뱉은 강문이 코트 안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 모습을 보고 주위에 있던 기동대 인원들이 긴장을 한 채 각자 무기를 뽑았다.
“그래도 완전 바보는 아니네.”
강문은 비아냥을 끝으로 코트 안주머니에 들어가 있는 오른손을 천천히 뺐다.
오른손에는 작은 신분증이 들려있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기동대원이 조심히 남자에게서 신분증을 받은 후 확인하고선 고개를 갸웃거렸다.
“13기동 타격대?”
***
꿈에 그리던 기동대 본부에 들어오게 됐다.
단지 몇 가지가 계획과는 다르게 흘렀지만 말이다.
원래 내 계획은 오늘 오전 11시에 3층의 면접실에서 깔끔한 전투 슈트를 입고 밝은 분위기에서 면접을 보는 것이었다.
현실은 기동대 본부 지하에서 넝마가 된 전투 슈트를 입고 취조당하고 있지만 말이다.
범인에게서 시민을 구한 사람은 난데, 내가 용의자 취급을 받는 게 몹시 불쾌했다.
그렇지만, 불쾌함을 표할 수는 없다.
앞에 앉아 있는 두 명의 기동대원들은 내 선배가 될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수사 및 빌런 체포 등 대인전에 특화된 무시무시한 3기동 대원들이라서 정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사실대로 말해!!”
“사실대로 다 말했는데, 왜 자꾸 그러세요.”
“오늘 기동대 면접 보러오다가 사고에 휘말렸다고?”
“네.”
“그래서 너는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빌런과 목숨을 건 싸움을 했다는 거지?”
“그렇다니까요.”
“넌 정말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아니 말이, 왜 안 돼요?”
내 말에 3기동 대원이 앞에 들고 있던 서류를 책상에 집어 던졌다.
“전투 능력이라고는 1도 없고, 이거 뭐야 능력이·· 노오력? 이딴 능력도 다 있어?”
하~ 눈물이 나려고 한다.
저렇게 강조를 안 해도 되는데, 유독 강조한다.
나는 이 억울함을 풀기 위해 아주아주 조심스럽고 강하게 항변하려는데, 절대 열리지 않을 것 같던 취조실 문이 열리며 밝은 빛이 내 두 눈을 강타했다.
‘아·· 마이 아이즈···’
내가 갑작스러운 빛에 인상을 찡그리며 결박된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을 때, 취조실로 들어온 새로운 예비 선배(진)가 지금까지 나를 겁박했던 기동대원 선배(진)에게 귓속말과 함께 태블릿PC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태블릿PC에서는 내가 걸어가다 폭발에 휘말리는 장면, 시민들을 공격하는 빌런에게 내가 몸을 던져 싸우는 장면이 나왔다.
영상의 절정은 내가 시민을 구하기 위해 몸을 날리는 장면이다.
‘와~ 영상으로 보니까 내 행동이 정말 부끄러운데, 한 편의 영화다 영화야.’
“크흠··”
내가 태블릿PC 속의 내 모습에 빠져 있을 때 3기동대 수사관이 헛기침했다.
수사관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결박을 풀어줬다.
“내가 괜한 사람을 오해할 뻔했네.”
“그러니까 제가 아니라고 했잖아요.”
“이만 가도 좋아.”
“그게 다예요?”
내가 황당하다는 듯이 되묻자 태블릿PC를 건넸던 기동대원이 웃으며 답했다.
“포상이 있을 겁니다.”
포상까지 생각은 못 했는데··· 그래도 뭔가를 준다고 하니 날 오해했던 기분이 아주 조금 정말 아주우~ 조금 풀렸다.
“어떤 포상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