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_졸업시험(3)
오늘 정말 힘들다.
예상치도 못한 고블린 상위 개체 세 마리를 물리치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지미에게 달려왔다.
홉고블린 두 마리를 견제하고, 다시 도망가다 보니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솔직히 더는 달릴 힘도 없었다.
그렇다고 멈추면 뒤에서 쫓아오는 홉고블린들에게 난자당할 게 뻔했다.
이런저런 불평을 속으로 내뱉었지만, 죽는 걸 싫기에 다리는 계속 움직였다.
“크아아악~”
나는 목이 찢어져라, 악을 질렀다.
몬스터가 있는 숲에서 금기 시 되는 일이지만,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내 스스로가 모든 걸 포기할 것만 같다.
한차례 울분을 토하고 나무 사이를 막 지나칠 때였다.
쿠다탕
지근거리까지 쫓아왔던 홉고블린들이 줄에 걸려 넘어졌다.
드디어 도착했다.이제 반격의 시작이다.
홉고블린들이 넘어지자 나무 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신평과 조원 중 한 명이 뛰어내리며 능력을 사용했다.
신평의 능력은 관통.
팡!
신평의 창에서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고, 넘어진 홉고블린 중 한 마리의 배에 창 구멍을 내고선 땅까지 박아 버렸다.
창과 하나가 된 홉고블린은 바로 목숨을 잃지 않고 버둥거렸다.
그런 홉고블린을 놓치지 않기 위해 신평은 자신의 창에 더욱 힘을 줬다.
다른 조원의 능력은 이중 베기. 한 번 공격하면 두 번 공격 당한 것처럼 피해는 받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이중 베기가 얇았다.
핏
다른 홉고블린은 팔뚝에 희미한 두 줄의 생채기만을 입고선 신평에게 달려들었다.
밧줄을 들고 있던 두 명의 조원들이 급하게 나오며 신평을 감싸고선 홉고블린을 견제했다.
다행히 타이밍이 맞았다.
홉고블린은 두 개의 검을 보며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고 그저 손톱만을 세웠다.
그때 공격에 실패했던 조원이 다시 한번 능력을 사용해 홉고블린을 공격했다.
촤악~
최소 치명상은 입길 바랐지만, 바램은 바람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래도 그 한 방으로 홉고블린이 다시 넘어지게 됐다.
견제하고 있던 두 명의 조원이 그 짧은 틈에 홉고블린의 몸에 조금씩 상처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모든 힘이 빠져 정말 한 걸음도 걷기 힘든 상태가 됐다.
그래도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나는 검을 지팡이처럼 짚으며, 압박당하고 있는 홉고블린에게 다가갔다.
그때 지미가 나를 지나치며 홉고블린에게 달려들었다.
푹~
지미의 대검은 홉고블린을 꼬치 꿰듯 꿰어 버렸다.
홉고블린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대검에 꿰였지만, 마지막 발악을 하듯 손톱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푹푹푹
그때 세 명의 조원들이 홉고블린의 목, 어깨, 심장에 자신들의 검을 박아 넣었다.
홉고블린은 그 상태에서도 몇 번 더 손을 흔들다가 팔이 축 처졌다.
모두 전투가 끝났다고 생각할 때 신평이 신음을 하듯 외쳤다.
“끝났으면 나 좀 도와줘!”
홉고블린은 배에 구멍이 뚫렸으면서도 생생하게 발악했다.
신평은 그런 홉고블린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자신의 창을 꽉 쥐고 있었다.
나는 정말 마지막 힘까지 짜내서 온 힘을 다해 홉고블린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서걱~!
내 검은 홉고블린의 목을 땅에 구르게 하고, 반토막이 나서 부서졌다.
찰나의 시간이 지난 후, 잘린 목 부위에서 홉고블린의 피가 쏟아졌고, 나는 뒤로 벌렁 쓰러졌다.
“야 하유신 방금 무슨 스킬이야?”
“스킬? ···하아 하악 이건 그냥 내려찍기인데?”
“내려찍기? 그거 말고 어떻게 한 방에 홉고블린의 목을···”
“하악~ 지금 이런 사담을 나눌 때가 아니야·· 빨리…복귀해야 해···”
‘왜 이렇게 어지럽지? 저기 뒤에 뭐가?’
“도.. 도..”
“스킬이 도 뭐라고? 좀 크게 말해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으로 ‘네 뒤에 홉고블린 무리가 나타났어!’라고 눈짓으로 눈치를 줬지만, 신평은 전혀 알아먹지 못했다.
‘제길··· 홉고블린을 유인할 때 악을 지르는 게 아니었는데···’
“케륵케륵”
계속 눈짓을 해도 못 알아먹던 신평과 다른 조원들이 홉고블린의 쇠를 긁는 듯한 대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지금까지 우리가 상대한 소수의 홉고블린들이 아니라 열 마리가 넘는 홉고블린 무리가 자기들끼리 웃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이게 뭐야··”
“이제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모두가 좌절하고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우리 앞으로 밝은 빛이 일어났다.
그 빛에 홉고블린들이 혼란스러운지 괴성을 지르며 발을 굴렀다.
밝은 빛이 사라지기도 전에 맨 앞에 있던 홉고블린 세 마리의 목이 하늘 위로 둥실 떠 올랐다.
아카데미에서 유니크 등급인 순간이동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김학도 선생님…”
우리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겨우겨우 잡았던 홉고블린을 김학도 선생은 순식간에 몰살시켜 버렸다.
역시 상위 헌터에게 홉고블린은 잡몹이구나.
이제야 정말 살았다.
***
“하유신 환자 정신이 드세요?”
눈 부신 빛과 함께 하얀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눈을 가리기 위해서 손을 들려고 하는데, 온몸이 욱신거리면서 저절로 신음이 내뱉어졌다.
“으윽·· 여긴 어딘가요?”
“병원입니다.”
“병원이요? 제가 왜 병원에? 아흑··”
“우선 진정하시고 조금 쉬세요.”
홉고블린과의 사투 그리고··· 구출된 거구나.
눈을 감기 전에는 숲이고, 눈을 뜨니 병원이구나.
그런데 왜 이렇게 졸리지? 눈꺼풀이 감긴다.
그래 하유신 고생 많았어. 의사 말대로 조금만 더 쉬자.
대체 얼마나 잠을 자고 있었을까? 온몸이 따뜻하다. 말 그대로 회복되는 느낌이다. 힐러들의 치유를 받으면 이런 느낌일까?
“끝났습니다.”
“수고했네.”
끝나? 뭘 수고해?
천근만근인 눈꺼풀을 들자 아까와는 다르게 병실이 어두웠다.
팔을 움직여보는데, 아까와는 다르게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이제야 깨어났군.”
무거운 저음에 어눌한 한국어가 들렸다.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큰바위를 본 것처럼 어마어마한 덩치를 자랑하는 근육질의 외국인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레이트 힐에 회복 포션까지 사용했는데, 이제야 정신을 차리다니 역시 무능력자여서 그런가?”
그레이트 힐? 회복 포션? 그게 다 무슨 소리야?
생각해보니까 이 거대한 외국인 아저씨는 날 보자마자 시비부터 거네?
외국인치고는 한국말을 잘해서 내가 참는다.
“누구신가요?”
“내 이름은 캔 브레이커다.”
캔 브레이커? 어디서 들어봤는데?
머리까지 근육으로만 가득 찬 지미 브레이커와 이름이 같네?
아니 지미는 외국인이니까 브레이커가 성이니까 성이 같네. 잠깐 혹시?
“강철의 전사 캔 브레이커요?”
“그런 이명으로 불리기는 하지.”
캔 브레이커. 세계의 영웅이자 삼천의 결사대 중 한 명으로 현재 한국 지부에 있고, 근육 멍청이 지미의 아버지!
나는 갑자기 무슨 힘이 났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캔 브레이커를 쳐다보며 병실이 떠나갈 듯 외쳤다.
“팬입니다. 사인해 주세요!”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펜과 종이를 찾지만, 병실에는 그 흔한 필기도구가 없다는 사실만 확인할 뿐이었다.
“네가 내 아들 지미를 구해줬다는 게 사실이냐?”
“네 사실입니다. 제가 미끼가 돼서 지미를 구해줬습니다.”
한 치의 생각도 없이 바로 대답하는 내 모습에 강철의 기사는 헛웃음을 지었다.
“제가 지미를 어떻게 구했냐면요···”
“아니 너는 지미를 구하지 않았다.”
“네?”
이 아저씨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너희들은 홉고블린 무리에게서 도망치다가 지쳤다. 그리고 지미가 그런 지친 너희들을 위해 몸을 던졌고, 홉고블린 무리를 처치하고, 심한 부상을 입은 거다.”
“지미가 그렇게 말하던가요?”
“이 캔 브레이커의 아들 지미 브레이커라면 최소 그 정도는 해야 한다.”
“당신의 의견이군요.”
“무능력자지만, 눈치는 빠르군.”
속에서 열불이 났다.
아무리 영웅이라고 하지만 이런 식으로 우리들의 전과를 가져가다니.
“다른 애들은 어떻게 됐나요?”
“누구? 아~ 너와 함께 조를 짰던 지미의 친구들 말하는 거구나.”
“친구요?”
“그래 내 아들의 친구들은 내가 직접 세계헌터협회 추천장과 한국 지부 10대 길드 추천서를 써주기로 했다.”
“그러면 이제 저만 매수하면 되는 건가요?”
“매수라··· 표현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구나. 다른 애들에게 듣기로는 네가 지미와 가장 친하다고 하는데, 원하는 게 무엇이냐?”
빌어먹을··· 내가 언제 지미와 가장 친했어? 삼천의 영웅이면 이 정도 조작은 간단하다는 건가?
“그냥 사인이나 한 장 주고 가세요.”
“···사인? 아이야. 잘 들어라. 너는 홉고블린과의 싸움에서 심하게 다쳐 병원에 이송되었지만, 치료 시기를 놓쳐서 죽을 수도 있다.”
“네?”
“마지막 기회다. 정말로 네가 원하는 게 무엇이냐? 내가 너의 소원을 들어주겠다.”
캔 브레이커가 정색하며 나를 바라보자 그의 뒤에서 풀 플레이트 갑옷을 입은 기사의 아우라가 보였다.
기사 모양의 아우라와 눈이 마주치자 숨이 턱하니 막혔다.
괜히 삼천의 영웅이 아니었다.
나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눈을 내리깔고선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조·· 좋습니다. 저도 추천서를 써주···세요.”
내 말에 캔 브레이커의 뒤에 있던 기사 모양의 아우라가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젠장·· 캔 브레이커의 뒤에 있던 강철의 기사는 뭐지? 그리고 어른이 돼서 아니 영웅이 돼서 너무 치사하다.
“그래 어떤 추천서를 원하냐? 세계헌터협회? 아님 한국 지부 10대 길드?”
“제가 원하는 것은 기동대 추천서입니다.”
내 말에 캔 브레이커는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의 턱수염을 쓰다듬는다.
“기동대? 한국 지부 기동대?”
나는 캔브레이커의 질문에 고개를 끄떡였다.
“전세계 헌터인들이 들어가고 싶어 하는 세계헌터협회가 아니라 고작 한국 지부의 기동대 추천서를 원한다고?”
“전세계에서 저만 유일하게 세계헌터협회를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전 한국 지부 기동대가 목표입니다.”
“고작 그런 쓸 때··· 그렇군. 무능력자인 너에게는 가장 잘 어울릴 수도 있는 곳이야.”
역시 지미의 아버지다.
지미가 사람을 면전에 두고 왜 그렇게 막말하냐 했더니만, 다 자기 아버지에게서 배운 거였어.
“좋다. 조치 취해 놓을 테니, 퇴원 후 기동대로 출근하면 될 거다.”
나는 캔 브레이커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제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닙니다.”
“무슨 소리지?”
“말 그대로 그냥 추천서면 충분합니다. 한국 지부 기동대 시험 자격이 아카데미 또는 그에 준하는 유명 인사의 추천서가 기본이거든요. 기동대 시험은 당연히 제 능력으로 봐야죠. 낙하산은 좋은 게 아닙니다.”
“기분이 나쁘군.”
좀 깨우치라고 하는 말인데, 기분이 나쁘다고 말하다니. 역시 쓸데없이 자존감이 높아. 누구처럼···
“그리고, 하나 더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소원은 하나뿐이다.”
“네 제가 원하는 소원이 이겁니다.”
“추천서는 필요 없다는 말로 들리는구나.”
이 아저씨가 날로 먹으려고 하네?
“추천서는 제가 받아야 하는 당연한 겁니다. 원래 일반 고블린 세 무리 이상 또는 상위 개체를 잡게 되면 아카데미에서 추천서가 나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너는 고블린을 잡은 적이 없다.”
“알고 있습니다. 제가 원하는 건 제 절친인 지미의 아버지가 손쉽게 들어줄 수 있는 부탁입니다.”
내 말에 캔 브레이커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말해 봐라.”
“전투 슈트와 검이 필요합니다.”
캔 브레이커는 한동안 말없이 나를 노려보다가 갑자기 크게 웃었다.
“크하하하! 아주 재미있어. 영웅으로 불린 이후에 나한테 이렇게 많은 걸 요구한 사람은 자네가 처음이군.”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원하는 추천서와 괜찮은 전투 슈트와 검을 보내도록 하겠다.”
“감사합니다.”
“더 만날 일이 없으면 좋겠군.”
그렇게 자신의 말을 끝낸 캔 브레이커는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을 나섰다.
그리고, 정확히 10초 후 내 이마에서 한 방울의 땀방울이 떨어졌다.
몸에 힘이 빠지고 탈력감이 들어서 나는 그대로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아니 저 아저씨는 대화 중에 기분 나쁘다고 이상한 기사를 불러내고 사람을 이렇게 진 빠지게 만드는 거야?’
나는 소년 만화의 주인공처럼 침대에 누운 채 한 손을 천장으로 들고선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제 정말로 내 목표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왔다.
“하아암~”
나는 크게 하품을 하고선 이불 속으로 몸을 파고들었다.
회복되지 않는 몸으로 협상까지 하니 너무 지친다.
조금만 더 자고 일어나야겠다.
***
유신은 호화로운 1인실을 둘러보지도 못하고, 달빛에 취해 잠이 들었다.
그때 살짝 열린 병실 창문을 통해 커튼이 심하게 나풀거렸다.
바람이 그치고 커튼이 다시 자신의 자리를 찾자, 검정 롱코트를 걸친 꽁지머리의 사내가 서 있었다.
꽁지머리의 사내는 품에서 능력 측정기를 꺼내 유신의 손에 올려놓는다.
능력 측정기는 밝은 빛을 뿜어내면서 굵은 문자를 만들어냈다.
[노오력가]
노오력가 능력이 희미하게 사라질 때쯤 희미하게 새로운 능력이 떠올랐다.
[포스]
하얀 빛가루를 날리며 새로운 능력의 글씨가 사라질 때쯤 꽁지머리 사내의 중저음이 조용한 병실 안에 울렸다.
“드디어,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