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_졸업시험(2)
“야 하유신 불안하게 왜 그래?”
나는 신평의 말을 무시하곤 귀를 기울이며 생각했다.
분명 검이 부딪히는 소리다. 주위 어딘가에서 전투가 진행되고 있다는 거다.
또 홉고블린인가? 아니면 그냥 일반 고블린?
‘챙’
북쪽? 아님 서쪽? 병장기 소리가 어느 방향에서 나는지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였다.
신평이 내 모습을 보고는 심각성을 느꼈는지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창을 챙겼다.
우리들의 모습에 다른 조원들도 흙 묻은 엉덩이를 털지도 못하고 재빨리 일어났다.
“정말 무슨 일인데?”
나는 말없이 방금의 전투로 인하여 지친 신평과 조원들을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아.”
“전투? 어디서?”
신평의 질문이 끝나자마자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나는 굉음이 들리는 북서쪽 방향을 바라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저기.”
“무슨 전투일까?”
“이 정도 규모의 파괴력이면 최소한 홉고블린일 것 같아.”
내 말에 모두 전투가 이루어지고 있는 북서쪽을 바라보며 표정을 굳혔다.
나는 그런 조원들을 보며 조용히 손가락 두 개를 폈다.
“우리 선택지는 두 개야.”
“두 개?”
“응 먼저 우리의 안전이 최우선이니까 이대로 아카데미로 돌아가는 거.”
“두 번째는?”
“혹시 모르는 상황에서 구출하러 가는 거.”
말이 끝나자 잠시간 적막이 흘렀다.
홉고블린의 허벅지에 처음으로 검을 찔러넣었던 조원이 답답한 적막을 깼다.
“유신이 네 생각은 어때?”
전투 능력도 있는 이 녀석들이 내게 어떤 기대를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내 생각에는 아카데미 시험에서 한 번도 아니고 벌써 두 번이나 변수가 발생했어. 보통 이런 경우 누군가 시험에 변수가 발생하도록 일을 저지른 거지.”
“변수? 누가?”
“그건 나도 모르지. 단지 우리 중 누군가 다치거나, 죽기를 바라는 사람 같아.”
조원들에게 내 생각을 말하다 보니 갑자기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지미 브레이커.”
“뭐?”
“지미 아버지가 헌터 협회 간부라고 했잖아.”
“캔 브레이커라고 삼천의 영웅 중 한 분이시잖아.”
지미 브레이커가 목표라는 게 확실하다고 느껴지자. 내 선택은 확고해졌다.
나는 조원들을 둘러본 후, 각오를 다지는 조원들에게 내 의견을 전했다.
“복귀하자.”
내 말에 조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도와주러 가는 게 아니고?”
“방금 우리가 홉고블린을 잡을 수 있었던 건 정말 운이 좋았어. 아카데미에서 제공한 메뉴얼로 한다면 첫 번째 특이사항이 생겼을 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복귀해야 했어. 지금도 늦었어. 빨리 출발하자.”
내가 등을 돌리고 출발 준비를 하자. 신평이 내 어깨를 잡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지미야. 혼자서 검기까지 쓸 수 있는데, 설마 아무리 상위개체라고 하지만, 홉고블린에게 당할까?”
신평은 내 말에도 어깨를 놓지 않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유신이 너 답지 않아.”
“나다운 게 뭔데? 그리고 난 지금 메뉴얼에 맞게 움직이려는 거야.”
“지미라서 그런 거야?”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평소에 널 괴롭힌 지미라서 그런 거잖아.”
“다들 정신 차려! 이건 목숨이 달린 일이야!”
내 외침에 조원들은 고개를 숙였다.
‘그래 복귀가 맞는 거야. 모두가 복귀를 생각하고 있을 거야. 제길!! 이건 내가 꿈꿔왔고 바라던 영웅상이 아니야.’
“세계정부 제 3원칙, 몬스터와의 싸움은···”
“인류의 의무이다. 그래 가자 가. 아무리 지미가 미워도 아니 저기 지금 싸우고 있는 사람이 지미이길 바라자. 그래야 우리가 갈 때까지 버티지.”
내 외침에 이제야 조원들의 표정이 펴지며, 바보처럼 웃기 시작했다.
“죽으러 갈 수도 있는데, 웃기는··”
“남자로 태어나서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우리는 그렇게 승리의 여운을 다 느끼지도 못하고 미지의 적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
지미는 후회하고 또,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더 돋보이기 위해, 아카데미에서 가장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최약체들만 데리고 조를 편성했었다.
조원들과 함께 고블린 무리와 조우했을 때는 하늘이 준 기회라고까지 생각했다.
고블린 전사 2마리와 고블린 주술사 1마리. 아카데미에서 준비한 아성체 고블린 3마리가 아니라 고블린 상위 개체였다.
분명 저 무리를 혼자 잡으면 아카데미에서 명성을 떨칠 수 있고, 누구보다 멋진 졸업식을 진행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도움도 되지 않는 동료들을 놔두고, 처음부터 단전에 있던 모든 힘을 끌어 써서 고블린 상위 개체를 죽였다.
몸은 지치고, 내공은 비어갔지만, 이 정도 성과면 아버지의 체면도 충분히 세워줄 수 있기에 만족했었다.
그렇게 만족하고 복귀하면 됐지만, 그때 드론에서 비상 상황이 울려 퍼졌다.
홉고블린이 등장했다고 한다.
“다들 돌아가.”
지미 브레이커는 불안에 떠는 겁쟁이들을 드론과 함께 복귀시키고선 혼자 여기까지 왔다.
꽤 깊숙이 들어왔고 그렇게 느낄 때쯤 한 마리의 홉고블린을 발견했다.
괄약근의 힘까지 쥐어짠 검기로 겨우 홉고블린을 물리쳤다.
아무도 보지 않기에 어깨춤을 추려고 했지만, 그 뒤로 두 마리의 홉고블린이 더 나타났다.
검기를 쓰고 싶었지만, 홉고블린들은 잠깐 힘을 모을 시간도 주지 않았다.
“제길!”
치밀어 오르는 욕설도 제대로 뱉어내지 못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홉고블린들에게 밀리면서 육신은 지쳐갔다.
거기다가 전투복은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해서 넝마가 됐다.
다행히 육체 강화 덕분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지미는 하위 몬스터들에게 당하고 있다는 게 너무나 화가 났다.
홉고블린에게 한 대 맞아줄 각오로 크게 대검을 휘둘러서 거리를 벌렸다.
“난 3천 명의 영웅 중 한 명인 강철의 기사 ‘캔 브레이커’의 아들, ‘지미 브레이커’다 너희 고블린 따위는 내 몸에 생채기도 내지 못한다.”
상위 개체라서 그런가 홉고블린 녀석들이 외침에 잠시 멈칫하고선 자기들끼리 끼릭끼릭 소리를 내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한 지미는 대검에 잔뜩 힘을 주며, 검기를 일으키려고 하는데, 단전에서 아릿한 고통이 일어났다.
고통 때문에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한 마리의 홉고블린이 손톱을 세우며 지미에게 달려들었다.
“흡!!”
지미는 육체 강화를 믿고, 기합과 함께 녀석의 손톱을 몸으로 받아냈다.
공격을 허용하는 대신에 녀석의 머리를 대검으로 쪼개려고 했는데, 손톱을 받아냈던 옆구리가 시큰거리며, 붉은 피가 튀었다.
“크··· 나 지미 브레이커가 피를 보다니···”
지금까지 지미를 지켜주었던 육체 강화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고작 홉고블린 따위에게 말이다.
피가 흐르는 옆구리를 왼손으로 급하게 지혈하지만, 고통만 배가 될 뿐이다.
홉고블린들은 뭐가 좋은지 다시 자기들끼리 끼릭끼릭 울어댔다.
지미는 갑자기 드는 탈력감에 순간 휘청하며 생각했다.
‘내가 죽을 수도 있구나.’
***
역시 지미다.
학생 중에서 홉고블린과 2:1로 싸우면서 버틸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홉고블린들과 지미의 전투 장소 근처에는 정확히 세로로 나뉜 홉고블린 한 마리도 죽어있다.
그렇다고 지미가 멀쩡한 것은 아니다.
벌써 지쳤는지 홉고블린의 손톱에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고 있다.
‘내가 그렇게 몇 번의 검을 휘둘렀을 때도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던 몸인데… 역시 몰매에는 장사가 없네.’
홉고블린의 손톱에는 마비성 독성이 있을 텐데도, 아직까지 질긴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방금 휘청이는 것을 보니,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저렇게 상처를 누르면 지혈이 아니라 상처를 더 악화시킬 텐데·· 아직 준비가 안 됐나?’
“휘이익~”
신호는 분명 휘파람으로 정했는데,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무슨 문제일까? 이제 준비가 끝났다는 신호인데.
‘그럼 이제 어디 한 번 지미를 살려볼까?’
“끼릭끼릭”
‘그래·· 그렇게 웃어라. 지금이다.’
내가 홉고블린들의 뒤에서 나타나자 지미가 그 큰 눈을 뜨며 놀란다.
홉고블린 중 한 마리가 기회라고 느꼈는지 놀란 지미에게 달려들 때, 나는 가만히 있는 홉고블린에게 달려들어 검을 찔러넣었다.
내 검이 성공하기를 기원했다.
하지만, 홉고블린은 이미 내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인지 아니면, 늦게라도 파악한 것인지, 몸을 굴려서 검을 피했다.
아쉽지만, 땅을 뒹굴고 있는 홉고블린을 무시하고, 지미를 공격하는 홉고블린에게 달려들며 재차 검을 휘둘렀다.
그 녀석도 내가 신경 쓰였는지 지미에게 달려들다가 급하게 몸을 돌려 나에게 달려들었다.
챙
홉고블린의 손톱과 내 검이 부딪혔다.
우리 조가 상대했던 홉고블린들과는 달랐다.
녀석들의 반응속도는 몬스터학에서 영상으로 본 홉고블린들의 반응속도 그대로였다.
이 녀석들은 정말 제대로 된 상위 개체였다.
나는 앞에 달려드는 홉고블린의 손톱을 피해서 몸을 크게 날리며 땅에 낙법을 했다.
쿵!
예상보다 소리도 크고, 동작도 컸다.
슬쩍 고개를 돌리니 뒤에 남겨둔 홉고블린이 내게 달려들고 있었다.
저 공격은 어쩔 수 없이 나도 손해를 봐야 한다고 느낄 때 지미의 대검이 내게 달려들던 홉고블린을 물러서게 만들었다.
“나는 지미 브레이커다. 도움 따위는 필요 없다.”
“그래. 나는 하유신이야.”
지미가 중2병스러운 대사를 날릴 때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한마디 보태주었는데, 표정을 찡그렸다.
애써 지미를 무시하며 우리가 정한 작전을 알려줬다.
“지금부터 작전 설명할 테니까. 잘 들어. 지미.”
“난 지미 브레이커다.”
“이제 며칠 뒤면 성인인데, 그런 말투 쪽팔리지 않냐?”
“······”
나는 부끄러운지 아니면 상처를 통해 들어간 마비독 때문에 대답 없는 지미에게 마저 설명했다.
“우리 작전은 손자병법에도 나온 삼십육계 줄행랑. 다른 말로는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좀 있어 보이게 말하면 작전상 후퇴라고도 하지.”
작전을 설명하며 흘끔 쳐다본 지미의 표정을 보니 역시 나를 신뢰하지 않는 것 같았다.
“작전명은 전진이야.”
“전진? 그런 말도 안 되는 농담이 이 상황에서 나와?”
나는 다가오려는 홉고블린들에게 짧게 검을 휘둘렀다.
홉고블린들은 영악한 건지 조심성이 많은 건지 내 검을 보며 경계심을 피웠다.
“우리 조원들이 너 구하려고 벌써 약속 지점에서 함정 파놨어. 그러니까 제발 내 말 좀 들어.”
“······어디로 가면 되지?”
그래도 다행히 뒤늦게나마 지미가 내 말을 믿어줬다.
이건 무슨 유비가 제갈량을 초빙하기 위해 삼고초려하는 것도 아니고, 정말 자존심 하나에 사는 놈이었다.
“어떻게 뚫을 거·· 크··”
지미의 입술이 파랗게 변해있다.
고블린들의 독 때문인지 출혈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것은 확실했다.
“내가 신호하면 뛰어.”
“내가 널 뭘 믿고?”
“드럽게 말 많네. 그럼 죽던가.”
내 비아냥에 지미가 황당하다는 듯이 큰 눈을 부릅떴다.
“닥치고, 신호하면 앞으로 뛰어 알았어?”
제발 지미가 반골 기질을 벗어 던지고 내 말을 듣고 움직이기를 바라며 조심스럽게 검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기회는 한 번뿐이다.
아랫배에 힘을 준 후 몸을 홉고블린들에게 튕기듯이 달려들며 힘차게 검을 휘둘렀다.
내 예상대로 홉고블린들은 나와 검을 맞대기보다는 양옆으로 몸을 회피했다.
“지금!!”
나는 살짝 앞으로 달리다가 홉고블린을 견제하기 위해서 뒤로 돌았다.
방금까지 다 죽어가던 지미가 어디서 그런 힘이 난 건지 나를 스치듯 지나갔다.
홉고블린들은 나와 지미가 도망가자 급하게 달려들었다.
챙
나는 횡으로 검을 휘둘러 홉고블린들의 날카로운 손톱을 쳐냈다.
힘들게 홉고블린들의 어그로는 끌었지만, 몇 합을 주고받으니 충분히 알 것 같았다.
홉고블린들은 나를 연약한 사냥감으로 생각하고 농락하고 있었다.
퍼억
녀석들의 손톱에만 집중하다가 왼쪽에 있는 홉고블린의 발차기에 균형을 잃고는 땅바닥에 굴렀다.
땅에 쓰러진 나는 홉고블린 몰래 흙을 항 움큼 집어서 달려드는 홉고블린의 눈에 뿌렸다.
“끼에에엑!”
눈에 모래가 들어간 홉고블린이 괴로워하자 나는 다른 홉고블린에게 어설프게나마 검으로 위협했다.
아주 잠시 틈이 생기고 나 또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지미가 도망간 곳으로 무작정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