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_졸업시험(1)
고블린은 최약체 몬스터로 분류된다.
얼마나 약하면 아카데미에서 학생이 고블린과 1:1 전투하는 훈련이 있었다.
이 훈련에서 학생이 고블린에게 지거나, 이기더라도 심각한 중상을 입게 되면, 그 자리에서 퇴학당한다.
이렇게 약한 몬스터인 고블린을 잡는 게 졸업시험이라고 하면 정말 쉬워 보일 것이지만, 고블린의 2가지 특이사항 때문에 졸업시험으로 손색이 없다.
첫 번째 특이사항은 고블린들은 자신들이 약한 걸 알고 있어서 무리를 짓는 습성이 있다.
그리고 고블린들이 무리를 짓게 되면 최대 C급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아카데미에서는 꾸준히 고블린 개체 수를 조절했다.
두 번째 특이사항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F등급인 고블린이 E등급인 주술사, 전사로 진화를 하기도 하고, 간혹, D등급인 홉고블린으로 진화한다.
지금까지 아카데미에서는 단 한 마리의 고블린 전사가 시험에 나온 적이 있었지만, 수험생들에게 몰매를 맞아 죽게 되었다.
그리고 이 특이사항 외에도 이 넓은 숲속에서 해가 지기 전까지 고블린을 만나는 것은 운 또는 실력이 있어야 했다.
이 모든 상황이 고려되어 고블린 퇴치 졸업시험은 5인 1조로 움직여서 위험 상황을 최대한 억제했다.
거기다가 우리 머리 위에 있는 드론이 시험 감독을 하면서, 위험 상황 시 구조 신호를 보내기도 한다.
우리는 혹시나 숨어 있을 고블린이 놀라서 도망갈까 봐 혹은 고블린의 흔적을 놓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천천히 숲속을 헤치며 나아갔다.
선두에는 내가 서고, 그 뒤로 신평이 따라붙었으며, 다른 친구들이 신평을 중심으로 날개와 꼬리를 만들어서 화살촉 모양의 형태로 전진했다.
모두 실전을 많이 해보진 않았기에 약간은 긴장된 상태로 걸었다.
나는 코를 킁킁거리며 조용히 걸음을 멈추고선 왼주먹을 들어 조원들을 정지시켰다.
“뭔가 이상해.”
“뭐가?”
신평이 내 옆으로 오며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냄새가 달라.”
내 말에 신평은 과장되게 코를 킁킁거린다.
“무슨 냄새?”
“고블린은 영역표시를 변으로 하거든. 변 냄새는 시큼한 향이 잔잔하게 나고.”
“시큼하지만, 잔잔하게? 그건 또 뭐냐?”
나는 신평의 물음을 무시하고, 주변 나무와 풀숲에 코를 박고는 킁킁거리며 냄새를 다시 확인했다.
“암모니아 향이 강해.”
“고블린들이 똥 싸면서 오줌도 싸겠지.”
신평이 웃으며 말하자 주위 다른 조원들도 낄낄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유신아 그래서 고블린이 근처에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톡.톡.톡
나는 조원들의 반응을 무시하고선 말없이 검병을 두드렸다.
내 진지한 모습에 조원들의 웃음소리가 잦아들고, 나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필시 일반 고블린이 아니야.’
생각을 정리한 나는 이 무지한 녀석들을 위해 부가 설명을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고블린이 이 숲에 없거나··· 상위 개체로 진화했다는 거야.”
“진화? 야 하유신 나도 공부했어. 고블린이 진화할 확률은 1%도 안 돼.”
“그렇지?”
신평의 확신에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확률이다.
순간 긴장했던 조원들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조금은 아쉬웠다.
홉고블린이 나타나서 우리가 처치한다면, 추천장은 따놓은 당상이기 때문이다.
그때 갑자기 드론에서 경고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비상상황 발생! 비상상황 발생! 생도 여러분은 신속히 아카데미로 복귀하시기 바랍니다.]
“무슨 일이지?”
“갑자기 이게 무슨 상황이야?”
“지금까지 한 번도 사고가 없었다고 하는데.”
드론의 경고음에 우리가 당황하고 있을 때였다.
친절하게도 드론이 부연 설명을 시작했다.
[3조 인원이 홉고블린에게 공격받았습니다. 지금 즉시 아카데미로 복귀하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고블린이 진화했다고?”
“우리 괜찮은 거야?”
[시험은 종료되었습니다. 신속히 아카데미로 복귀하십시오!]
순간 갈등됐다.
3조가 있는 곳으로 향할까? 아니면 복귀할까?
신평과 조원들을 둘러보니 눈에 겁을 잔뜩 먹고 있었다.
이 상태로 3조를 구출하기 위해 출발한다?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았다.
나는 조원들을 다독이기 위해서 검을 뽑았다.
“우리도 위험하겠어. 빨리 복귀하자. 내가 앞장설 테니까 잘 따라와. 드론 길 안내해줘.”
그렇게 엉성하지만, 화살촉 대형을 유지한 채 각자 무기를 뽑아 들고 달리기 시작했다.
“3조는 괜찮겠지?”
달리는 와중 누군가가 3조를 걱정하는 소리를 내뱉었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묵묵히 달리는 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현재 김학도 선생님이 홉고블린을 처치. 3조와 함께 복귀 중입니다.]
갑작스러운 드론의 상황 종료에 우리는 발걸음을 멈췄다.
“시험은? 그럼 졸업시험은 어떻게 되는 거지?”
[아카데미로 복귀··]
펑
드론은 말을 다 내뱉지도 못하고 폭발했다.
우리는 각자 무기를 들고 뭉친 상태에서 사주 경계를 실시했다.
“키키킥”
풀숲이 흔들리며 고블린 전사가 나타났고, 그 뒤로 고블린 주술사와 홉고블린이 등장했다.
우리를 발견한 고블린 주술사는 지체없이 지팡이를 겨누고선 주문을 외웠다.
위험을 감지한 난 검을 더욱 꽉 쥐며 뒤에 있는 조원들에게 외쳤다.
“내가 미끼가 될 테니까 빨리 도망가.”
“뭔 소리야!?”
“다 같이 덤벼도 홉고블린 한 마리 상대할까 말까야. 그런데 고블린 주술사랑 전사까지 있어.”
“한 번 비벼 볼 수 있지 않을까?”
신평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게 무슨 비빔밥이냐?”
“이 상황에서 그런 농담이 나오냐?”
“다리 풀리지 말고, 긴장 풀라고.”
“너라고 뭐 다르냐?”
“내가 괜히 몬스터학 만점 받은 게 아니야. 나 혼자서는 어떻게 도망칠 수 있어. 그러니까 빨리 도망쳐. 여력이 되면 지원도 요청해주고 알았지?”
내가 신평과 조원들에게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찡긋했다.
그게 신호가 되었을까?
고블린 주술사의 주문이 끝나고 지팡이 앞으로 불꽃이 피어올랐다.
불꽃이 완연한 모습을 갖추자 고블린 주술사는 지팡이를 휘둘렀다.
내게 일직선으로 뻗어오는 불꽃을 보자, 검을 더욱 꽉 쥐고는 불꽃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고블린 주술사의 주문이 실패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지금까지 연습한 기본기가 빛을 발했는지 불꽃이 갈라진 후 사라졌다.
‘어떻게 해서든 주술사 먼저 해치워야 해.’
생각과 동시에 몸이 움직였다.
앞을 막아선 고블린 전사의 몽둥이를 뛰어서 피했다.
홉고블린의 손톱을 옆으로 회피하고는 고블린 주술사에게 검을 휘둘렀다.
챙
고블린 주술사의 방어주문에 내 검이 부딪혔다.
나는 재차 검을 휘두르지 못하고 순간 멈칫했다.
그렇게 고블린 주술사를 해치울 수 있는 천금 같은 기회는 놓쳤고, 고블린 전사의 몽둥이가 내게 향했다.
나는 고블린 전사의 몽둥이를 피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시간이 지나도 아픔은 오지 않고 그저 뜨거운 액체가 내 얼굴을 적셨다.
슬쩍 눈을 뜨자, 한 자루의 창이 고블린 전사의 심장을 꿰뚫었다.
“도망가라니까.”
“너만 추천장이 필요한 게 아니야. 우리 모두 필요해.”
“이런 낙제생들.”
얼굴에 묻은 고블린 전사의 피를 닦아내고, 주위를 둘러봤다.
검을 든 조원들이 아카데미에서 배운 대로 삼면에서, 홉고블린을 압박하고 있었다.
신평은 급하게 자신의 창을 고블린 전사의 가슴에서 빼내고는 고블린 주술사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무리한 공격은 하지 않고, 짧게 창을 찔러넣어서 고블린 주술사가 더는 주문을 외우지 못하게 했다.
방금 죽을 고비를 넘긴 나는 흥분된 가슴을 진정시킨 후, 고블린 주술사를 바라봤다.
‘일단 신평부터 돕자.’
고블린 주술사가 눈치채지 못하게 도망가는 것처럼 재빠르게 옆으로 돌며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신평은 내가 어떻게 할지 눈치챘는지, 고블린 주술사를 내가 숨어 있는 나무 쪽으로 몰아붙였다.
고블린 주술사는 원거리에서는 무섭지만, 확실히 근접전은 약했다.
그래도, 그 사이에 주문을 다 외우고는 지팡이를 땅에 내려찍었다.
쿵
발밑에 넝쿨이 자라나, 신평을 속박했다.
자신의 주술이 먹혔다고 생각한 고블린 주술사가 새로운 주문을 외웠다.
‘지금!’
기회가 보이자마자 고블린 주술사의 목을 향해 찌르기를 선사했다.
콰득
고블린 주술사는 신평을 신경 쓰느라 별 저항 없이 자신의 목을 내게 내주었다.
내 검이 고블린 주술사의 목에 박혀 있는 상태에서 검을 오른쪽으로 휘둘렀다.
그렇게, 확인 사살까지 끝내자, 극도의 긴장을 해서인지 거친 숨을 내뱉고는 신평에게 눈짓을 보냈다.
“나도 힘들어.”
이제 막 속박에서 풀려난 신평의 엄살에 나는 홉고블린을 막고 있는 조원들을 살펴봤다.
조원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써가며 아슬아슬하게 막고 있지만, 점점 버거워했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신 후에 힘을 내며, 홉고블린에게 달려들었다.
“야 하유신 같이 가.”
코 옆에 점이 있던 조원의 눈을 홉고블린의 손톱이 꿰뚫으려고 할 때, 나는 가까스로 홉고블린의 손톱을 쳐냈다.
“고·· 고마워.”
“우리 조금만 힘내자.”
조원들이 모두 지쳤다. 그래도 내가 합류함으로써 홉고블린과 다시 한번 막상막하가 되었다.
싸우면서 느끼는 거지만, 이 홉고블린은 우리와의 전투를 통해서 조금씩 전투에 익숙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이제 막 홉고블린이 된 느낌?’
전투에 집중을 못 해서 그럴까? 홉고블린의 손톱이 아귀처럼 내게 다가왔다.
이건 막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뒤늦게 합류한 신평의 창대가 홉고블린의 몸을 가격했다.
“하유신 정신 차려!”
신평이 외침에 정신을 차렸다.
오늘 벌써 두 번이나 목숨이 위험했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싶지만, 아직 우리 앞에는 홉고블린이 멀쩡하게 살아있었다.
그래도 신평의 합류를 기점으로 홉고블린과의 전투에서 승기가 생겨났다.
그러다가 조원 중 한 명의 검이 홉고블린의 허벅지에 검을 박아 넣게 되었다.
콰직
조원은 검을 회수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지만, 허벅지에 검이 박힌 홉고블린은 자신의 장기인 민첩함을 잃었다.
민첩함을 잃은 홉고블린은 허벅지를 시작으로 몸에 총 3개의 검과 1개의 창이 박혔다.
홉고블린은 그 상태에서도 버둥거렸고, 나는 마지막으로 홉고블린의 목에 검을 찔러넣었다.
“크르륵···”
가래 끓는 소리를 내다가 홉고블린이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전투가 끝나자 극도의 긴장감이 풀렸는지, 다리에 힘이 풀리며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끝났다···”
내 읊조림에 다른 조원들도 이제야 우리가 홉고블린을 물리친 걸 느끼며 무기를 회수할 생각도 하지 않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방금까지 목숨을 위협받던 전투가 끝나서 안도감이 들어야하는 게 정상이었다.
그런데, 불안감이 내 몸을 휘감았다.
내가 알고 있는 고블린 상위 개체들은 이렇게 약하지 않았다.
아니 아카데미에서 실험용으로 사용하는 디버프한 고블린 상위 개체도 이 녀석들보다 강했던 걸로 기억한다.
‘정확히는··· 그래. 어설프지 않았어.’
고블린 전사는 조금 더 단단했었고, 고블린 주술사의 주술도 이렇게 약하지 않았다.
홉고블린은 더욱 민첩했었고, 영악했었다.
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을 때 신평이 내 어깨를 툭 쳤다.
“뭔 생각을 그렇게 하냐?”
“응? 아무것도 아냐.”
나는 애써 고개를 저으며 의심을 날려버렸다.
호흡이 조금 진정되자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아직 우리는 누구 하나 무기를 회수할 생각도 하지 않고 그대로 주저앉은 채 거친 숨을 들이마셨다.
“우리가 해냈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 목소리를 기점으로 우리가 정말 말도 안 되는 기적을 일으켰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야 내 얼굴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이거 우리 무조건 합격 아니야?”
“합격이 문제냐? 추천장도 따논 당상이지.”
“그러니까 학생들인 우리가 고블린 상위 개체를 잡았으니.”
“근데 드론이 저렇게 망가졌는데, 괜찮을까?”
신평의 말에 우리는 망가진 드론을 바라봤다.
녹화기능이 사라진 고철 덩어리가 우리의 활약을 보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졸업시험은 드론에게만 맡겨지는 건 아니었다.
“걱정하지 마! 우리 전투복에도 카메라가 달려 있으니까?”
“아 그렇지 카메라.”
일비일희하는 조원들의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가 처치한 홉고블린에게서 검을 회수하려고 하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쉿!”
“유신아 왜?”
“조용해 봐.”
나는 귀를 기울이며, 전신의 감각을 귀로 집중했다.
‘챙’
분명 무기 부딪치는 소리다.
“빨리 무기 챙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