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_노오력가(2)
어두운 밤 가로등 불빛 사이로 오늘치 훈련을 끝낸 유신이 언뜻언뜻 페인트 칠이 벗겨진 아파트에 삼켜졌다.
아파트에 들어간 유신은 땀 범벅인 상태에서도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지 않고, 아파트 계단을 이용해 올라갔다.
유신은 계단을 오르고 올라 7층의 녹슨 문 앞에 멈춘 후, 거칠어진 호흡을 정리한 후에 도어락을 눌렀다.
“삑삑삐비비빅”
유신의 터치에 낡은 도어락이 겨우 소리를 뱉어내며 문이 열렸다.
현관문 센서가 유신이 왔다는 것을 알려줄 때 거실 쪽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못생긴 아들 왔냐?”
“못생긴 아들은 방에서 자고 있을 거고, 멋진 아들 왔습니다.”
아버지 하현도옹께서는 이제 막 집에 들어온 아들을 쳐다도 보지 않고 축 처진 어깨로 TV를 보면서 반겼다.
“오늘은 평소보다 늦었구나.”
“이제 곧 졸업시험이잖아요. 엄마는 주무세요?”
“응 피곤하다고 들어갔다.”
“아빠도 일찍 들어가세요. 저도 씻고 자려고요.”
몸을 돌려 화장실로 들어가려는데, 아버지가 나지막이 불렀다.
“씻고 나서 오랜만에 차나 한잔할까?”
아버지의 말에 잠깐 멈칫했다.
평소의 아버지는 차보다는 인스턴트 커피를 즐겨 마시고 사랑하신다.
그런 하현도옹께서 오늘처럼 차를 마시자고 할 때는 세 가지 중 하나이다.
심각한 이야기를 하던가, 자식들을 교육할 때, 그리고 벌을 주기 전이다.
빠르게 머리를 돌려보지만, 최근에 아버지와 차를 마실 상황을 만든 기억이 없다.
***
나는 헤어드라이기에 젖은 머리를 말리지도 않고, 마른 찻잎을 찻주전자에 넣고는 뜨거운 물을 부었다.
꽤 오랜 시간 차를 끓여보았지만, 아직 차 맛은 모르겠다.
아버지도 같을 것이다.
차의 맛보다는 차를 마시는 과정이 마음의 안정을 깃들게 한다고 믿으시는 분이니 말이다.
솔직히 나는 그냥 카페에서 간단히 시켜서 먹는 게 더 편하고 좋다.
이렇게 하나하나 하는 것은 과정도 많고 너무 답답하다.
“솜씨가 많이 늘었구나.”
“요 몇 년 사이 많이 했으니까요.”
“그래.”
차를 한 모금 마신 아버지는 조심스럽게 다기를 내려놓고선 나를 빤히 바라봤다.
아버지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나는 괜스레 외면하며 차를 홀짝였다.
“졸업시험이 언제라고 했지?”
“3주 정도 후요.”
대답과 동시에 아버지가 깊은 한숨을 쉬셨다.
“꼭 해야 하는 거니? 세상에는 안전하면서 사람들에게 도움 되는 직업도 많아.”
“아빠랑 제가 차를 마시면서 했던 약속이에요.”
“안다. 나도 알아. 그런데 자식 목숨이 달린 일인데 어떻게 쉽게 생각하겠니.”
나는 찻잔을 조심히 내려놓고, 아버지의 부담스러운 눈을 직시하며 대꾸했다.
“그래서 헌터를 포기하고, 기동대 시험으로 바꾸는 거잖아요.”
헌터.
인류가 힘을 합쳐 물리친 마왕과 함께 등장한 몬스터를 사냥하는 사람이다.
목숨을 거는 만큼 몬스터의 부산물과 가끔 아주 가끔 나오는 마정석을 통해서 어마어마한 부를 쌓는 존재.
기동대.
세계정부기관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나라별로 다르게 불리지만, 한국 지부에서는 기동대로 불린다.
기동대의 업무는 경호, 빌런 체포, 몬스터 방어 등을 하는 곳으로 세계정부에서 운영하는 헌터 겸 경찰.
“유신아.”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진중한 어투로 나를 불렀다.
내가 그저 묵묵히 바라만 보자 아버지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선 준비된 이야기를 꺼내셨다.
“가이아가 왜 사람들에게 능력을 주고, 그 능력을 공개하는지 아니?”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고, 각자 능력에 맞는 일을 하라고요.”
“그래 맞다. 그런데 유신이 넌 전투기술 하나도 없는··· 그·· 그러니까 레어한 능력이잖니.”
“「노오력가」죠.”
“그래. 노오력가 그러니까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아버지. 전세계에서 「노력가」도 몇 명 없어요. 그런데 제 능력인 「노오력가」는 저밖에 없는 능력이에요. 그러니까 전 제 능력을 갈고닦고 노오력해서 꼭 성공할 겁니다.”
“기동대에 들어가는 게 성공은 아니잖니. 지금부터라도 공무원에 도전해보는 게 어떠니?”
“아버지. 기동대가 공무원이에요. 그것도 공무원 중에서 최고 연봉을 받는 공무원이요.”
“지금 이 아비가 하는 말은 그게 아니잖니!”
화가 난 아버지가 버럭 소리를 질렀고, 나는 안방을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이러다가 엄마 깨겠어요.”
“더는 말하기 싫다. 이거나 빨리 치워라.”
아버지는 찻잔이 든 쟁반을 툭 치면서 몸을 돌리셨다.
가끔 이렇게 어린아이처럼 구는 게 정말 내 아버지가 맞나 라는 생각이 든다.
「노오력가」 전세계에 나만 있고, 유사 능력으로 「노력가」가 있다.
세계의 학자들은 그런 노력가를 위해서 실험을 했다.
타 능력자와 노력가 능력자가 검술 능력을 얻기 위해 같은 동작을 진행한 적이 있다.
타 능력자는 십만 번 안 되게 훈련하고 검술 능력을 얻었지만, 노력가는 백만 번 해서 겨우 검술 능력을 얻게 됐다.
노력가는 남들보다 몇 배나 더 노력해야 겨우 능력을 얻게 돼서 최악의 능력으로 손꼽히고, 무능력자라고도 불린다.
다도 세트를 조심히 정리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아쉬움이 담긴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다시 한번만 더 생각해 보거라.”
“아버지.”
가족으로서 걱정해주는 건 좋지만, 오늘은 조금 더 강하게 나가야겠다.
“이놈이 갑자기 왜 무게를 잡고 그래.”
“오늘 검술 대련 시간에 전투술 1등인 지미 브레이커를 상대로 이겼습니다.”
아들이 1등을 이겼다는 말에도 아버지는 눈만 끔벅였다.
“이제 3주 후면 졸업시험이고, 졸업시험에 좋은 성적을 받으면, 기동대 추천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믿고 기다려 주세요.”
내 말에 아버지는 답답한지 남은 차를 한 번에 들이켰다.
“휴 알겠다. 넌 언제나 스스로 잘해 왔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누구 아들인데요.”
내 자신만만한 말투에 아버지의 눈빛이 불신으로 찬 게 느껴지지만, 이건 주관적인 생각이니 넘어가야겠다.
“아무리 내 아들이지만 안 부끄럽냐?”
“···”
“자라.”
“네.”
빈다기 세트를 들고 부엌으로 향하려고 하는데, 아버지의 무심하지만 따뜻한 말이 들려왔다.
“뭐 필요한 건 없고?”
나는 아버지의 말에 해맑게 웃으며 몸을 돌렸다.
“검이요.”
***
어두운 숲, 세 마리의 고블린이 아무렇게나 누워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때 나무 밑 그림자가 일렁이며, 그림자 색과 어울리지 않게 하얀 턱시도를 입은 존재가 나타났다.
“겨우겨우 고블린 세 마리인가요? 어쩔 수 없군요.”
말을 마친 수수께끼의 사내는 들고 있던 지팡이를 고블린에게 향한 후 허공에 휘둘렀다.
지팡이에서 나온 은빛 가루가 고블린들에게 쏟아졌다.
잠을 자던 고블린들이 괴로워하더니, 잠시간 후 고블린들의 덩치가 커졌다.
그중 한 마리의 고블린은 붉은 피부를 가진 홉고블린으로 변했다.
잠에서 깨어난 고블린들은 수수께끼의 사내에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런이런 홉 고블린 한 마리에, 고블린 주술사와 전사라·· 아직 좀 부족하군요. 오늘은 발품을 팔아야겠어요.”
구름이 달을 가린 사이에 수수께끼의 사내는 사라지고 고블린 상위 개체 세 마리만이 무릎을 꿇은 채 눈을 빛내고 있었다.
***
아카데미 전투 복장을 한 생도들이 제각각 무기를 들고 펜스로 둘러쳐진 숲을 바라보며 떠들고 있었다.
그때 창을 든 신평이 유신에게 다가와 어깨동무했다.
“뭐하냐?”
하유신은 신평의 어깨동무에 깜짝 놀랐지만, 최대한 아닌 척 노력했다.
그리고는, 오른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고뇌에 잠긴 듯이 말했다.
“이런이런 남자의 고뇌를 괴롭히는 친구가 있다니.“
“넌 진짜 알다가도 모르겠다.”
신평의 눈빛이 나를 외계인 쳐다보듯 경멸이 섞여 있는 것 같지만, 부 to the 랄 친구이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 주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헛기침하며 자연스럽게 아랫배를 내밀었다.
아직은 어색하지만, 내 새 애인이 된 검병을 살짝 두드렸다.
역시나 신평은 내 기대감을 놓치지 않고, 원하는 대사를 쳐줬다.
“뭐야? 검 바꿨어?”
“아 별거 아니야. 그저 저번 검보다 조금 더 튼튼한···”
자랑스럽게 새로운 검에 대해서 조금 아주 조오금 자랑을 하려는 순간 김학도 선생의 외침이 들렸다.
“모두 조용히 하고 모이도록!”
그 한마디의 전파력에 아카데미 생도들이 조용해졌다.
“다들 알다시피 졸업시험은 몬스터 토벌이다. 너희 뒤편에 있는 숲에는 구역별로 일반 고블린 3마리씩이 무리를 짓고 있다.”
김학도 선생이 열정적인 설명을 이어나가고 있을 때 지미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고블린이라니 절 너무 얕잡아보는 거 아닙니까?”
“지미 브레이커”
지미는 선생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웃음만 지었다.
“한 번만 더 내 말을 끊으면, 졸업시험 응시 자격을 거두겠다.”
협박이 먹혔는지, 지미는 조용히 입을 닫고선 이를 바드득 갈았다.
“너희 인원이 총 25명이니, 5개 조로 움직일 거다. 최소한 한 조가 한 구역의 고블린을 사살해야 하고, 세 구역의 고블린을 사살한 조는 추천서가 나올 거다.”
학생들은 그 말에 웅성거렸다.
“조편성은 너희들끼리 자유롭게 짜도록 해라. 조편성이 끝난 생도들은 내게 와서 미니 드론을 받은 후 출발하면 된다. 이상!”
생도들이 어떻게 조를 편성할지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지미가 대검을 바닥에 찍었다.
“내가 제대로 버스 태워 줄 테니 아무나 붙어!”
지미의 말이 효과가 있었는지 과반수가 지미에게 갔다.
솔직히 나도 혹했다.
지미는 많은 학생 중에서 가장 약한 4명을 뽑아서 김학도 선생에게 향했다.
분명 버스를 태워준다는 것은 핑계고 자기 혼자 돋보이기 위해 저럴 것이다.
지미가 떠나고 남은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조를 만들고 있었다.
“유신이 넌 어떻게 할 거야?”
신평이 내 어깨를 치며 묻는다. 오늘따라 이 녀석. 스킨십이 많다. 설마···?
“뭔 생각을 하는 거야?”
“나·· 여자··”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우리 남학이야.”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생각해둔 것을 말했다.
“방패, 창, 검, 총이면 될 것 같아.”
“자꾸 이상한 소리 할래? 난 조 편성 말하는 거야.”
“응 그러니까 전위로 방패, 원거리로 총, 중거리에 창, 혹시 모르는 상황에 근거리 검이면 될 것 같아.”
“야 그게 마음대로 되냐?”
“잠깐만 기다려봐.”
나는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손가락 세 개를 머리 위로 높게 펼치며 외쳤다.
“세 구역! 나랑 같은 조가 될 방패 2명, 총 1명은 세 구역을 소탕할 거야.”
삼삼오오 모여있던 학생들은 내 호기로운 외침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저, 자기들끼리 조를 만들기 바빴다.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이때, 한 발 더 나가야 한다.
“애들아! 내가 우리 학년 전략, 전술 1등이야. 나만 믿으면 돼”
나는 양손을 활짝 펼치고는 동기들이 혹할만한 말을 외쳤다.
“몬스터 토벌 최대 달성을 내가 이루게 해주겠어!”
잠시 후, 지미가 속해 있는 조를 기점으로 한 조씩 출발을 시작했다.
신평은 각기 따로 떨어져 있는 낙오자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너 어디서 전략*전술 만점 받았다고 말하지 마라.”
“아·· 아냐 내가 원하는 구성이야.”
“내 무기가 창이고, 너 포함해서 모두가 검인데?”
오늘 날씨가 조금 더운 것 같다.
식은땀이 자주 나는 걸 보니까 말이다.
나는 화제를 돌릴 겸 각기 떨어져 있던 생도들에게 말했다.
“이제 우리도 출발하자.”
어기적거리며 모인 생도들은 평소 애매한 성적이었다.
거기다가 사회성도 조금 떨어졌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선생님 우리가 꼴찌로 출발하지만, 오늘 최고의 성적을 보실 겁니다.”
내가 김학도 선생에게 호언장담하자. 각기 떨어져 있던 생도들이 출발선으로 모여들었다.
우리는 미니 드론을 챙기고, 두 눈을 반짝이며 숲으로 향했다.
나는 웃으며 사회성이 떨어지는 조원들을 바라본 후,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어봤다.
“근데 너희들 능력이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