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98 숲속 친구들의 평화로운 일상(6) : 행복의 비결.
누군가가 그랬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꿈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고.
그리고 오늘······. 고미도 조금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으, 으음······.”
미묘한 표정으로 녹근을 오물거리던 아기곰은 이내 자신이 좋아하는 계란말이를 만드는데 쓰는 계란과 비슷한 알 하나를 집어 들었다.
계란보다는 작고 메추리 알보다는 큰 알.
불도장의 재료 중 하나인 비둘기의 알이었다.
“음······.”
통통하게 부풀어 오른 볼이 움직일 때마다, 빳빳하게 곤두서있던 털들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이어서 송이버섯, 은행, 죽순, 말린 전복과 가리비, 해삼, 부레 등이 차례로 아기곰의 입안으로 들어갔다.
송이버섯이 들어갔을 때는 귀가 누웠고, 은행, 죽순을 맛보았을 때는 두 눈이 쳐졌다.
그리고 전복과 가리비의 맛을 확인하는 순간, 꼬리가 힘없이 늘어졌다.
마지막으로 해삼과 생선 부레가 뱃속으로 들어가자, 초콜릿색 솜뭉치의 초롱초롱한 두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아, 아, 안돼.’
고미의 입속으로 새로운 재료들이 투하될 때마다, 수하는 자신의 심장이 점점 더 느려지다 마침내 완전히 멎어버리는 것만 같은 착각을 느꼈다.
“우, 우웅······.”
그렇게 불도장에 들어간 재료를 하나하나 맛본 아기곰은 말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고미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십니까?”
이 불안하기 짝이 없는 반응에, 메뉴를 선정한 수다르가 초조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아니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기곰은 말없이 눈물을 떨구며 고개를 저었다.
수하가 보기에, 감동을 해서 우는 건 아니었다. 반대로 맛이 없었다면 솔직하게 말했을 것이다.
순진무구한 먹보 아기곰의 캐릭터상, 정말 맛이 없다면 이렇게 자연스레 거짓말을 하지는 못할 터.
최소한 동공에 지진이 일어나거나 말을 더듬었을 것이다.
‘대체 뭐지?’
그렇다면 대체 이 반응을 뭐라고 해석해야 한단 말인가?
우주 최고의 아기곰 학자를 자처하는 수하마저 해석할 수 없는, 실로 해괴한 반응이었다.
“고미, 왜 그래?”
그 반응이 무슨 의미일지 고민하던 수하가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감정이 북받친 아기곰은 더욱 서럽게 코를 훌쩍이며 외쳤다.
“이, 이 몸이 기대하던 것은 이런 것이 아니니라! 트, 틀림없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들을 가득 모아 만든 음식이라 하였는데! 어째서, 어째서 단맛이 나지 않는단 말이냐!”
단맛 중독자, 원조 아기곰이 그토록 서럽게 울었던 이유는 이랬다.
음식이 맛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세상에서 가장 귀한 재료들을 모아 만든 음식’이라는 표현이 기대를 너무 크게 부풀려 놨던 것이 문제였다.
물론 그것은 불도장에 대한 상투적인 수식어구에 불과했지만, 그 말을 들은 아기곰은 수백 년 간 홀로 그 엄청난 요리의 맛을 상상했다.
「 불도장 ! 」
웅혼한 기상을 담은 외침.
불+도장이라는 기술의 정체성을 담은 이름이자, 언젠가는 꼭 그 최고의 요리를 맛보고 말겠다는 다짐이 담겨 있는 외침이었다.
‘후훗, 이렇게 해두면 절대 그 요리의 이름을 잊지 않을 것이다! 이 얼마나 현명한 결정인고! 역시 이 몸은 대단하구나!’’
그렇게 고미는 절대 꿈의 요리를 잊지 않기 위해 위대한 곰의 권능 위에 그 이름을 아로새겼다.
덤으로 그런 방법을 생각해낸 자신의 똑똑함에 스스로 박수를 보냈다.
심지어 위대한 곰의 권능이 가진 특징까지 완벽하게 반영한 이름이었다.
위대한 곰은 어찌나 똑똑한지!
그리고 고미의 상상 속 불도장은 세상의 모든 단맛을 담은 단맛의 결정체였다.
자신이 우주 제일의 아기곰이라면, 불도장은 우주 제일의 음식이었다.
이렇게 어린아이의 무한한 상상력으로 잔뜩 덧칠된 맛을, 세상 그 어떤 요리사가 구현해 낼 수 있겠는가?
정말로 우주 최고의 요리사가 온다고 해도 그 상상 속 맛을 따라잡을 수는 없을 터였다.
“이, 이 몸은, 이, 이 몸은 받아들일 수 없다! 이 몸은 불도장이 꿀로 만든 국물에 설탕을 넣고, 그 안에 초코바와 사탕과 젤리가 들어있는 것보다 더 달콤한 음식일 거라 상상했단 말이다! 딸기 케이크와 초코 케이크, 한과의 맛도 나는 요리일 거라고 생각했단 말이다!”
고미가 상상한 불도장은 자신이 좋아하는 달콤한 음식을 모두 합쳐놓은, 여러 가지 의미로 엄청난 요리였다.
물론 진짜로 그런 음식이 있다면 고미 외에는 그 누구도 입에 대려 하지 않을 맛이 나겠지만······.
아기곰의 충격적인 상상력에, 자리에 있던 숲속 친구들은 잠시 말문이 막혀 버렸다.
“웅 노사, 대체 누구에게 불도장에 대해 들은 것입니까?”
천마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던지자, 원조 아기곰은 벌컥 성을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네 녀석의 사부인 살쾡이가 그랬느니라!”
고미의 답변에 숲속 친구들은 더욱 당혹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초대 천마가 어떻게 초콜릿과 젤리가 들어간 탕 이야기를 하겠는가.
애초에 그 시대에는 초콜릿과 젤리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터인데.
당연한 얘기지만, 진실은 상당히 달랐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초대 천마와 웅 노사가 처음 만났던 날.
그러니까, 고미가 처음으로 꿀맛을 본 날이자, 천마신공이 탄생한 날이었다.
「괴, 굉장하구나!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존재하다니!」
「허허, 웅 노사. 바깥 세상에는 더욱 맛있는 음식이 많습니다.」
「우, 우웅······. 참으로 아쉽구나. 이 몸은 곧 이곳을 떠나야 하니, 모두 맛보기는 어렵겠지?」
초대 천마는 고미에게 더 맛있는 것을 대접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조용한 곳에 몸을 숨긴 채 수련을 이어나가던 그의 수중에 무슨 맛있는 음식이 있겠는가.
꿀도 마침 근처에 벌집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마저도 대접하지 못했을 터였다.
이에 그는 나중에 세상에 나오면 반드시 먹어보라며 몇 가지 음식을 추천해 주었고, 그 중 하나가 바로 불도장이었다.
「허허, 기회가 되신다면 불도장이라는 음식은 꼭 드셔 보시지요. 천하에서 가장 귀한 재료를 모아 만든 탕이니, 필히 만족하실 것입니다.」
초대 천마가 한 말은,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딱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는 두 가지 실수를 했다.
첫째, 원조 아기곰이 심각한 단맛 중독자라는 사실을 간과했다는 점.
둘째, 그 애매한 설명이 아직 인생 경험이 부족하고 꿈과 희망만이 가슴에 가득한 순진무구한 영혼에게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들었다는 점.
이 두 가지가 결합된 결과가 바로 오늘 날의 이 참극이었다.
하지만 천마가 아니라 누군들 예측할 수 있었겠는가.
그 상투적인 표현이 꿈과 희망으로 가득한 순진무구한 아기 먹보의 머릿속에서 우주 최고의 달콤한 요리로 변해 버릴 줄.
“흐흑······. 이, 이럴 리가 없다. 이럴 리가······.”
고작 먹을 것 하나에 서럽게 울어대는 아기곰의 모습에 자리에 있던 몇몇은 저도 모르게 픽 웃음을 흘렸고, 또 몇몇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사실 고미의 평가와는 별개로 불도장은 퍽 먹을만한 음식이었다.
특히 수하나 이강혁처럼 맵고 짜고 단,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퍽 입에 맞는 음식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송이버섯의 향기나 탱글탱글한 식감도 제법 괜찮았고, 해삼의 꼬들꼬들한 식감도, 죽순 특유의 결이 있는 듯한 씹는 맛도 훌륭했다.
게다가 국물 자체가 그리 자극적이지 않다 보니 그 안에 든 재료의 식감과 맛을 더욱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야말로 ‘식감’이라는 오늘의 주제를 한 요리 내에서 다양하게 맛볼 수 있는, 절묘한 메뉴 선정이었다.
단, 어디까지나 ‘불도장’이 고미의 꿈이 담긴 요리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전제하에서 그렇다는 의미였다.
[ 수, 수다르 님······. 다음 요리는 뭐죠? ]
계속해서 훌쩍이는 고미를 바라보던 수하는 어떻게든 절망에 빠진 아기곰을 구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 안되면 달달한 맛이 나는 단품이라도 하나 추가해야지.’
그것이 수하의 계획이었다.
[ 허허, 수하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
그러나 오늘의 강사가 누군가.
사회생활 만렙의 1타 미식 강사, 수다르가 아니던가.
그런 수다르가 아기곰 사형제와 함께 하는 회식 자리에 그들의 입맛을 고려하지 않은 음식만을 집어넣을 리가 없었다.
진정한 사회생활의 끝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면서도 타인을 만족시키는 타협점을 찾아내는 것.
수다르가 그 점을 간과할 리가 없었다.
그의 진가는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선택하면서도 결코 고미를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아우웅?”
“다웅?”
“으, 으음······.”
이는 고미를 제외한 세 아기곰이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이며 불도장의 재료들을 천천히 음미해보고 있다는 점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단맛은 안 나지만 충분히 맛이 괜찮고, 여태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신기한 재료와 식감을 즐길 수 있으니,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고미도 재미있다며 박수를 쳤을 것이다.
물론······. 불도장 사태는 그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 허허, 마침 그 요리가 나오는군요. 고미님이 틀림없이 좋아하실 것입니다. ]
잠시 흔들렸던 수다르의 눈빛은 이내 안정을 되찾았다.
그만큼 다음 메뉴에 나름대로 자신이 있다는 의미.
이에 거칠게 요동치던 수하의 마음 역시 빠르게 진정되었다.
그때······.
“아, 아웅!?”
“다웅?!”
“우, 우웃!”
고미를 제외한 세 아기곰의 입에서 기대에 찬 탄성이 흘러나왔다.
“삐, 삐잇!?”
이어서 곰은 아니지만 마찬가지로 쪼꼬미 계열인 알틴도 흥미롭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 넷의 반응에 솜방망이로 눈물을 훔치고 있던 원조 아기곰도 코를 훌쩍이며 테이블 위에 올라온 새로운 메뉴로 시선을 옮겼다.
“우, 우웅!?”
고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뚜껑(?)으로 덮인 그릇 여섯 개가 올라와 있었다.
‘과자?’
빵 같기도 하고, 과자 같기도 한 무언가가 돔처럼 그 아래에 있는 무언가를 뒤덮은 모양새에, 수하 역시 적잖이 흥미가 동했다.
게다가 그 안에서는 상큼하면서도 달콤한 냄새가 은은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 오오······.”
아니나 다를까, 단맛 중독자 아기곰은 어느새 눈물을 멈추고 홀린 듯 그 요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릇의 옆에는 자그마한 망치 하나가 놓여 있었다.
“고미님, 저 안에 들어있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이에 수다르는 자그마한 손으로 살짝 망치를 들어올리며 싱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우, 우웃! 구, 궁금하다!”
사실 고미의 후각이라면 그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 정도는 진즉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뻔한 퀴즈라도 정답을 확인하는 건 즐거운 법이 아니던가.
게다가 저 안에서는 불도장과는 달리 달콤한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금 당장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처음에 나온 수프도, 불도장도, 단맛이 너무나 부족했으니까.
“그럼 이 망치로 손수 저 과자를 부숴 보시지요.”
수다르의 한마디에, 원조 아기곰을 비롯한 아기곰 사형제와 알틴은 각자 하나씩 손에 망치를 집어 들었다.
마치 선물 상자를 뜯어보는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는 그 모습에, 수하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불도장이 자신이 상상했던 맛이 아니라며 눈물을 흘려대더니, 금세 기운을 차린 걸 보면 역시 애는 애다.
- 파삭!
조그마한 망치로 과자(?)를 부수자, 그 아래에 숨어있던 요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 오오오!”
이어서 상큼하고도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과자 아래에 깔려있던 것은 바로 ‘탕수육’이었다.
“이것이 이 식당이 시그니처 요리 중 하나인 망치 탕수육입니다.”
“우, 우웃!”
몇 번인가 먹어본 적이 있는 메뉴지만 조금은 새로운 그 냄새와 비주얼에, 먹보 아기곰의 가슴에 가득 끼어있던 먹구름이 시원하게 걷혔다.
“어, 어서 맛을 보자꾸나!”
단맛에 굶주려 있던 단맛 중독자 아기곰은 이내 젓가락을 움직였다.
탕수육을 입에 넣자, 소스에 절여져 부드러워진 튀김 옷과 방금 부서진 과자 같은 뚜껑의 바삭한 감촉이 어우러져, 바삭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우, 우웃! 역시, 역시! 이 맛이다! 이 달콤함!”
특히 탕수육의 튀김은 찹쌀로 만들어져 한층 더 부드러웠고, 그 부드러움이 다시 과자의 바삭함을 더욱 부각시켜 주었다.
“오, 오오오!”
“아, 아우웅!”
“다웅?!”
“우, 우웃!”
“삐, 삐잇!”
그렇게 쪼꼬미 친구들의 감탄사와 함께, 회식은 평화롭게 끝이 났다.
* * *
그날, 고미는 조금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진리를 깨달았다.
막연한 상상과 꿈은 때로는 현실과 다를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때로는 기대하지 못한 곳에서 생각보다 큰 기쁨을 얻을 수도 있다는 것.
‘후훗, 그렇다면 내일은 또 어떤 녀석이 이 몸을 즐겁게 해줄꼬?’
자신은 아직 모르는 게 많다.
즉,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자신을 즐겁게 해줄 무언가가 잔뜩잔뜩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
내일은 무슨 음식이 자신을 기다릴까.
또, 어떤 재미난 놀이가 자신을 즐겁게 해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깨달은 행복의 비결에, 아기곰의 가슴에는 오늘도 솜사탕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