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97 숲속 친구들의 평화로운 일상(5) : 아기곰의 위시리스트.
“하하······. 안녕하세요.”
어딘가 어색한 웃음.
지나치게 평범해 되려 위화감을 느끼게 하는 외모.
동이와 무신과 함께 중식당을 찾아온 사람은, 바로 관리자였다.
“우웅, 관리자, 네 녀석이 현세에는 어쩐 일이더냐?”
원조 아기곰이 커다란 두 눈을 깜빡거리며 묻자, 관리자는 특유의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입술을 매만졌다.
“아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관리자의 등장으로 자리에는 잠시 묘한 기류가 흘렀다.
그가 직접 현세에 오는 일은 지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숲속 친구들 입장에서는 그다지 좋은 일로 찾아온 적도 없었고.
“무슨 일이죠? 설마 이제 와서 또 다른 악당이 있다던가, 진짜 흑막은 따로 있다던가, 뭐 그런 얘기를 하시려는 건 아니겠죠?”
간만에 네 배로 불어나 네 배로 귀여워진 아기곰들의 먹방을 감상하며 힐링 중이던 한유진이 날카롭게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삐잇!”
줄곧 한유진의 품에 안겨 있던 알틴 역시 신경질적으로 울어댔다.
“뭐야, 이제 우리를 찾아올 일은 없던 거 아니었어?”
반면 수하는 그다지 날 선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어찌 됐든 고미를 살려준 사람(?)이다.
달곰이를 죽이지 않고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역시 관리자의 도움 덕분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마냥 미워하기에는 고마운 점도 많은 애증의 관계랄까.
게다가 최근 꿀태창은 죽은 듯 잠잠했으니, 무언가 시킬 일이 있어서 온 것도 아니라는 게 수하의 생각이었다.
새로운 적이 나타나거나 중요한 일이 있었다면 진즉에 퀘스트부터 보냈을 테니까.
“하하, 그럴 리가요. 앞으로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만나야 할 텐데요.”
관리자는 그렇게 말하며 특유의 어색한 표정과 동작으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왜? 빨리 말해.”
봉식이가 살짝 인상을 찌푸린 채 관리자를 훑어보며 말했다.
지금 봉식이는 상당히 짜증이 나 있었다.
굶주린 야수에게 있어 식사는 매우 중차대한 문제였으니까.
“으음, 용건만 간단히 하겠습니다. 앞으로 매달 말일마다 현세에서 뵙는 걸로 하죠. 이유는······.”
관리자는 살짝 말꼬리를 흐리며 품 안에서 영롱한 빛을 발하는 골드바 몇 개를 꺼내 들었다.
“오, 오오!”
꿀색 마니아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금을 보는 것은 처음인 아기곰은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였다.
금의 가치를 아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색깔과 빛깔이 마음에 들었을 뿐.
‘저것을 가져다 위대한 이 몸의 방에 장식을 해두면 참으로 보기가 좋겠구나’정도가 골드바에 대한 감상의 전부였다.
사실 같은 크기라면 골드바보다는 고오급 초콜릿이 낫다는 게 단맛 중독자의 가치관이었다.
그 골드바 하나로 초코바 몇 개를 살 수 있는지 안다면 당장에 생각이 바뀔 테지만.
“월급은 드려야죠.”
짤막한 한마디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렇게 변했다.
돈 대신 금을 준다고는 들었지만, 관리자가 직접 찾아와 골드바를 줄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숲속 친구들이 무슨 산적단 이름도 아닌데, 직접 찾아와 금을 나눠주는 걸로 월급을 준단 말인가.
“으음······. 수하 씨는 9일. 근무가 굉장히 많네요. 여전히 워라밸하고는 거리가 머시고······.”
관리자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아홉 개의 골드바를 수하에게 건네주었다.
끝에 덧붙인 말은 굳이 할 필요가 없었건만, 사회성이 떨어지는 캐릭터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는 듯한 쓸데없는 첨언이었다.
“봉식 씨는 3일, 이강혁 씨도 3일······.”
빠르게 ‘숲속 친구단’에게 월급(?)을 나누어준 그는 잠시 눈치를 살피다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도 밥 좀 먹고 가도 될까요?”
관리자는 애써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그 또한 어색했다.
마치 구걸이 처음인 초보 거지나 지을 법한 어설픈 표정에, 또다시 어색한 정적이 맴돌았다.
갑자기 나타나 금을 나눠주고 밥을 얻어먹어도 되겠냐고 묻다니, 많은 사람들에게 신, 혹은 그에 준하는 무언가로 여겨지는 존재치고는 참으로 해괴망측한 행동 방식이 아니라 할 수 없었다.
“그러세요. 근데 코스는 안돼요. 단품으로.”
이에 수하는 살짝 짜증이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끼며 점원에게 메뉴판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도 사람이 찾아왔는데 밥은 먹여서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단, 코스는 안 된다.
감정이 풀렸다고는 해도, 이런 고오급 코스 요리를 대접할 만큼 호감이 된 건 아니니까.
“아닐세, 내가 주방장에게 잘 말해보지. 그래도 먼 곳에서 왔는데 밥 가지고 구박을 해서야 쓰나.”
그때, 노인국이 가볍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오늘 이 중식당을 예약한 것은 수다르가 아니라 노인국이었다.
메뉴를 정한 것은 산신령이지만, 매일 동굴과 화원에만 틀어박혀 있던 수달이 어찌 고급 중식당을 예약할 수 있겠는가.
이에 몇 번인가 이 근처에서 발생한 게이트를 파괴해 준 인연이 있었던 노인국이 식당을 예약해 주었다.
본래 코스 요리 중간에 인원이 추가된다고 요리를 추가할 수는 없는 법이지만, 세 번이나 식당이 파괴되는 것을 막아준 노인국의 부탁이니, 큰 무례는 아니리라.
“흠흠, 그럼 식사를 이어가도 되겠습니까?”
노인국이 돌아오자, 오늘의 미식 강의를 맡은 명품 강사, 수다르가 살짝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식사는 신성한 것.
관리자든 누구든, 감히 이 성결한 의식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오오, 그래! 수다르! 어서 이 요리를 설명해 보거라!”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수다르는 조심스레 탕이 담긴 그릇의 뚜껑을 열었고,
“우, 우웃!”
동시에 원조 아기곰의 눈이 또다시 반짝반짝 빛을 발했다.
“아, 아웅!”
“다웅!”
한편, 아웅이와 다웅이는 이게 무엇인지 안다는 듯 흰색과 검은색 솜방망이를 열심히 휘적거리며 무언가를 설명하려 했다.
아직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그릇 안에는 송이버섯을 비롯해 전복, 해삼, 가리비와 새우 등 해산물이 가득 들어있었다.
횟집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아웅이와 다웅이로서는 당연히 눈에 익은 재료일 수 밖에.
아는 재료가 나왔으니, 나름대로 아는 척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다만 나머지 재료는 무엇인지 알아보지 못한 듯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또 한 명, 이 요리의 재료는 물론이고 요리의 정체까지 한 눈에 알아보는 이가 있었으니······.
“호오······. 불도장이군요. 이런 귀한 것을.”
바로 숲속 친구 중 유일한 외국인, 천마였다.
“이게 불도장이에요?”
수하의 질문에 천마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허허, 역시 무신님께서는 이 요리를 알아보시는군요.”
백천의 입가에 피어오른 옅은 미소를 확인한 수다르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그가 오늘 회식 자리를 중식당으로 정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천마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였다.
문경준과 패왕의 헌터들을 마지막 전쟁에 합류시키고, 수하와 고미를 위해 큰 부상까지 감수하며 전장에서 활약한 이가 아니던가.
별다른 것은 못해 주어도 그가 좋아할만한 요리라도 배불리 대접하는 것, 그게 수다르 나름의 보답이었다.
“허허, 그렇습니다. 불도장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수행 중이던 승려마저 그 냄새를 맡고 담을 넘고 말았다는 고사로, 고급 식재료들을 한데 넣고 푹 고아서 만든 요리답게 그 향기로 이름이 높지요.”
“오, 오오! 이것이 그 불도장이구나!”
바로 그때, 흥분을 참지 못한 고미가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 묘한(?) 반응에 수하를 비롯한 숲속 친구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불도장’은 만천화웅을 비롯해 고미가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기술 중 하나였다.
그런데 정작 본인이 그 음식을 앞에 놓고도 알아보지 못하다니······.
‘설마······.’
그 순간, 수하의 머릿속에 한 가지 그럴싸한 가설이 떠올랐다.
‘자기가 가장 먹고 싶은 요리를 기술명으로 가져다 붙인 건가?’
먹는 것과 노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 아기곰에게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불도장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음식이 있다는 걸 들어만 보았을 뿐, 실물을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은 고급 요리다.
당연히 던전에만 틀어박혀 있던 아기곰 입장에서는 이런 음식을 맛보기는커녕 구경조차 하지 못했을 터.
“우, 우우! 고맙다, 수다르! 이 몸의 꿈이 드디어 이루어졌구나!”
굳이 사실 여부를 확인할 필요조차 없는 발언에, 자리에 있던 모두는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어째 ‘곰’이나 ‘웅’자가 들어가지 않는 거창한 기술이 있길래 이상하다 싶었더니······.
가장 황당함을 느끼고 있는 사람은 바로 수하였다.
그저 불+도장이라고 생각했건만, 그 네이밍이 정말로 음식에서 따왔단 말인가.
그렇다면 자신은 먹어보지도 못한 요리에 대한 아기곰의 식탐이 담긴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수, 수다르! 어서, 어서 먹고 시식평을 해다오! 이, 이 몸은 수백 년 간 이 순간만을 기다려 왔느니라!”
꿈의 음식을 눈앞에 둔 고미는 어서 빨리 시식평을 내놓으라며 수다르를 재촉했다.
“으, 으음······.”
하지만 이미 맛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버린 수다르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장면을 바라보던 수하는 등 뒤에 미미(美味)라는 두 글자가 떠오르면 딱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아······.”
수십 년 만에 맛보는 불도장의 맛에, 수다르의 입에서는 절로 장탄식이 새어 나왔다.
“허허, 죄송합니다. 잠시 이 맛을 즐기느라······.”
순식간에 저 멀리 미식의 별까지 여행을 떠났다가 간신히 현세로 돌아온 수다르는 머쓱한 표정으로 웃음을 지었다.
“불도장에는 다양한 재료가 들어갑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귀한 재료 중 하나는 바로 이것이지요.”
이어서 수다르는 탕 안에 있던 조그마한 막대 같은 재료를 꺼내 다시 한번 맛을 보았다.
“그, 그것이 무엇이냐?”
꿈의 음식을 눈앞에 둔 고미의 꼬리는 거의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녹근이군요.”
잔뜩 흥분한 고미의 질문에, 수다르 대신 천마가 답을 내놓았다.
“녹근이요?”
“사슴의 힘줄입니다.”
천마의 짤막한 답은 숲속 친구들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사슴의 힘줄로 만든 요리라니, 맛은 어떨지 몰라도 신기한 음식이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우, 우웃! 이 몸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수다르의 시식평이 다 끝나기도 전에, 고미의 젓가락이 번개처럼 녹근을 집어 들었다.
식사 중에는 언제나 예의를 지킨다.
수다르와 함께 할 때는 항상 시식평을 듣고 나서 음식을 맛 본다.
여태 어겨본 적이 없던 그 두 가지 원칙이 처음으로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것만 보아도 고미가 얼마나 불도장에 대해 큰 기대를 가지고 있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우, 우웃!”
녹근이 입안에 들어가는 순간, 고미의 두 귀가 흥분으로 쫑긋 일어섰다.
반면 수하의 마음속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대체 무슨 얘기를 듣고 불도장을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비주얼로 보나 냄새로 보나 단맛이 날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부, 불안하다. 불안해.’
이에 수하는 온 신경을 집중해 아기곰의 꼬리와 입, 그리고 귀를 관찰했다.
인생의 목표가 먹는 것인 먹보 아기곰의 위시 리스트에서도 정점에 자리한 요리.
그것을 증명하듯 ‘웅’이나 ‘곰’이 들어가지 않는데도 그 음식의 이름을 자신의 필살기 중 하나의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 요리가 입에 맞지 않는다면, 꿈에서 본 거대 아기곰으로 변해 도심을 파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서, 설마······. 그 꿈이 이것 때문은 아니겠지?’
꿈이 미래를 암시한다는 말 따위는 믿지 않는 수하였지만, 왠지 모르게 자꾸만 목구멍과 입술이 바싹바싹 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