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295화 (295/300)

EP.295 숲속 친구들의 평화로운 일상(3) : 참극 혹은 낭만.

- 쐐애애액!

백색의 탄환이 허공을 가르는 섬뜩한 소리에, 수하는 갑자기 온몸에 한기가 도는 것을 느꼈다.

- 퍽!

그러나 결과는 예상과 달랐으니······.

“후훗, 고미님 저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반인반룡의 형상으로 변한 흑룡은 비늘이 돋아난 손으로 슈퍼 아기곰이 날린 눈뭉치를 가볍게 막아냈다.

그의 입가에는 자신감이 가득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이봐요, 이유찬 씨······.’

하지만 수하가 보기에, 흑룡의 허세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었다.

고작 눈덩이다.

그걸 막으려고 반인반룡으로 변했으면서, 저 자신감 넘치는 태도는 대체 뭐란 말인가.

“호오······. 검은콩, 너도 제법 강해졌구나.”

반면 원조 아기곰은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상대가 자신의 눈덩이를 막아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

“후후,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예전의 제가 아닙니다.”

간만에 재회한 곰 앤 더머 콤비의 눈에서는 발목까지 쌓인 눈마저 녹여버릴 듯한 뜨거운 열정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위대한 곰에게 반기를 들어도 되겠느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

반인반룡의 블랙 드래곤을 바라보는 초콜릿색 솜뭉치의 눈이 형형한 빛을 발했다.

‘대체 이 둘은 왜 이렇게 쓸데없는 대목에서 진지한 걸까.’

수하는 참을 수 없는 의문을 느꼈다.

바로 그때,

-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 차가운 것이 수하의 옆얼굴에 적중했다.

“히히!”

고개를 돌려보자, 커다란 패딩 모자를 뒤집어쓴 갈색 머리의 여자가 해맑게 웃음을 짓고 있는 것이 보였다.

- 퍼억!

뒤이어 더욱 강렬한 무언가가 수하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굳이 고개를 돌려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번에 눈을 던진 사람이 봉식이라는 사실을.

“오냐, 해보자는 거지?”

일단 옆통수와 뒤통수에 선빵을 맞고 나니, 눈싸움만은 피해야겠다는 계획은 어느새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 쉭!

이에 수하는 민첩한 몸놀림으로 날아오는 눈덩이를 피한 뒤 주먹만한 눈덩이 하나를 봉식이를 향해 내던졌다.

- 퍽!

“간지럽고만.”

봉식이의 몸에서는 어느새 은은한 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야, 이 미친! 여기서 능력을 쓰는 게 말이 되냐?”

“안 될 건 뭔데? 그런 것 치고는 너도 너무 빠르게 움직이지 않았냐? 허곰답보 쓴 거 아니야?”

“그냥 피한거거든. 근육 돼지인 너랑은 다르게 난 날렵하거든?”

말을 하는 와중에도 두 사람 사이에서는 이미 십여 개의 탄환이 오간 상태였다.

던지고, 피하고, 뭉치고, 던지고, 막아내고······.

그 모든 동작이 흐르는 물처럼 막힘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눈싸움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민첩하고 화려한 몸놀림.

그야말로 가슴이 웅장해지는 역동적인 한판이었다.

“민봉식, 그 근육을 눈싸움하는 데 써먹는 건 좀 아깝지 않냐?”

“너도 능력치가 세 자리 수인데, 근육 타령하는 건 좀 아니지 않냐?”

그렇게 두 사람의 몸과 입이 슬슬 달아오르고 있을 때,

“우, 우웃! 토, 토생원! 괜찮느냐!”

예상 밖의 장소에서 첫 번째 사상자(?)가 나오고 말았다.

‘서, 설마······.’

수하와 봉식이는 약속이나 한 듯 손을 멈추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의 시선이 향한 곳에서는 눈동자가 뒤집힌 새하얀 토끼가 게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었다.

뒤쪽에서 곰 앤 더머 콤비의 싸움을 지켜보던 토생원이 유탄을 맞고 떡실신을 하고 만 것이다.

검은콩의 날렵함과 슈퍼 아기곰의 괴력이 만들어 낸 합작품이었다.

“으, 으아아! 토생원! 정신 차리거라!”

뜻밖의 대형사고(?)를 치고 만 아기곰은 황급히 달려가 토생원을 끌어안았다.

그 사이, 새로운 희생자가 속출했다.

일단 눈싸움이 시작되자, 잔뜩 흥분한 아웅이와 다웅이, 달곰이도 신이 나서 눈덩이를 던져댔다.

덕분에 문어 할아범은 물론이고, 흑암까지 순식간에 빈사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고미의 그것만큼은 아니었지만, 아기곰 형제들의 괴력으로 던지는 눈덩이는 이미 눈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으, 으으! 사, 살려주게!”

“으윽! 인국, 스켈레톤을 소환해라!”

피만 흐르지 않았을 뿐이지, 그곳은 이미 전장이나 다름이 없었다.

“헉, 헉······. 흑암 님, 노인국 씨, 어서 제 뒤로!”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검성, 이강혁이 두 사람을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반격 따위는 꿈조차 꾸지 못했다.

그저 쉴 새 없이 검을 휘둘러 친구들을 지키는 게 고작이었다.

“이강혁, 나는 괜찮다! 도망가!”

“그럴 수는 없습니다!”

흑암은 자신을 버리라고 몇 번이나 외쳤지만, 한때 적이었던 회귀자는 끝까지 물러나지 않았다.

지금 그의 손에는 우주의 운명을 건 싸움에서 수많은 적을 베어 넘겼던 천마신검이 들려 있었다.

그 필사적인 움직임과 절박함이 묻어나는 표정은, 그야말로 생사의 기로에 선 무사의 그것이었다.

‘이, 이, 드래곤 새끼가!’

눈치없는 흑염룡 한 마리가 만들어낸 참극(?)에 수하는 온몸을 바르르 떨며 분노했다.

이래서 눈싸움은 안 된다고 했건만······.

한편, 뒤늦게 자신의 행동이 화약고에 불씨를 던진 것임을 깨달은 블랙 드래곤은 입을 쩍 벌린 채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려대고 있었다.

“아웅이! 어, 어서! 토생원을 치료해 다오!”

“아, 아웅!”

그나마 다행인 건, 토생원의 희생(?)으로 아기곰 사형제가 잠시 공격을 멈추었다는 사실이었다.

“으, 으으······.”

아웅이의 손바닥에서 흰빛이 뿜어져 나오자, 정신을 잃고 있던 토생원이 두 귀를 쫑긋거리며 눈을 천천히 눈을 떴다.

“미, 미안하다. 토생원! 이, 이제 눈싸움은 그만하자꾸나.”

고미가 더듬거리며 사과를 하자, 나머지 세 아기곰은 아쉬운 듯 눈을 지그시 아래로 내리깔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친구가 다쳤으니, 차마 눈싸움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을 하지는 못했다.

그때, 쓰러져 있던 토생원이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고미님······. 그래도 겨울인데, 눈 싸움 정도는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흐, 흑! 토, 토생원!”

결연한 각오가 묻어나는 그 한마디에, 원조 아기곰의 눈에는 그만 눈물이 핑 돌았다.

‘뭐, 뭐하냐······. 뭐하냐고 지금.’

뒤에서 이 모습을 바라보던 수하는 반쯤 혼이 나가고 말았다.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야 수하도 마찬가지지만, 그걸 꼭 이렇게 목숨을 걸고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 하지만······.”

그때, 고미의 품속에 안겨 있던 토생원이 녀석의 솜방망이에 작은 아이템 큐브 하나를 쥐여주었다.

“이, 이것이 있다면······. 안전하게 눈싸움을 즐기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말을 마친 토생원이 큐브에 마력을 불어넣자,

“우, 우우웃!”

“아웅!?”

“다웅!?”

“오, 오오!”

잠시 풀이 죽어있던 아기곰 사형제의 귀와 꼬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 바짝 곤두섰다.

아기곰 사형제 뿐만이 아니었다.

봉식이와 수하를 비롯한 숲속 친구들도 모두 호기심 어린 얼굴로 토생원이 꺼낸 일련의 물건들을 바라보았다.

“이것은 눈싸움에 쓸 눈덩이를 만드는 데 쓰는 집게입니다.”

토생원이 X자로 교차된 양끝을 잡고 집게를 오므리자, 반대쪽 끝에 달려있던 틀이 하나로 합쳐쳤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집게를 벌리면······.”

그리고 틀이 다시 두 개로 분리되는 순간, 새하얀 눈으로 만들어진 아기곰의 머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 오오!”

심지어 고미는 물론이고 봉식이와 수하, 이강혁도 어린아이처럼 눈을 빛냈다.

자리에 있는 인간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노인국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반응이었다.

본래 남자라는 건 나이가 들어도 이런 쓸데없는 장난감에 환장을 하는 법이니까.

“이건 좀 굉장한데······.”

“그러게.”

봉식이와 수하는 모두 진심으로 감탄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이 스노우 건. 이것만 있다면······. 얼마든지 안전하게 눈 싸움을 즐길 수 있지요.”

말을 마친 토생원은 자부심이 가득 묻어나는 표정으로 자신의 작품(?)을 꺼내들었다.

“스승님과 함께 만들어 본 마도공학 스노우 건입니다.”

은은한 광택이 묻어나는 총신의 위에는 총 다섯 개의 탄환을 장전할 수 있는 구멍이 들어있었다.

곰돌이 사형제와는 달리 손재주가 뛰어난 수다르와 토생원이 귤을 까먹으며 함께 만든 겨울용 놀이용품이었다.

“우, 우웃! 이, 이것은······. 차, 참으로 멋지구나!”

고미에 이어, 숲속 친구들 모두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눈덩이를 넣고 쏠 수 있는 총이라니, 실로 가슴이 웅장해지는 장난감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훌륭한 점은, 누가 쏘든 똑같은 위력으로 발사된다는 점이지요. 이걸 사용한다면 다 같이 즐겁게 눈 싸움을 할 수 있습니다.”

이윽고 토생원은 숲속 친구들에게 하나하나 자신이 직접 제작한 마도공학 스노우 건을 넘겨주었다.

가장 큰 총은 커다란 다섯 개의 눈뭉치를 장전할 수 있었고, 조금 더 작은 탄환 여섯 발을 연사할 수 있는 권총도 있었다.

“오, 오오오오!”

큰 것을 좋아하는 원조 아기곰의 선택은, 당연히 가장 큰 눈뭉치 다섯 개를 장착할 수 있는 바주카 형태의 스노우 건이었다.

아웅이는 중간 크기.

달곰이는 고미와 같은 것을 선택했다.

마지막으로 다웅이는 비장한 표정으로 작은 탄환을 발사할 수 있는 권총 두 개를 집어들었다.

“그럼 팀을 나눠볼까요?”

이후 숲속 친구들은 팀을 나누고 일사천리로 눈싸움의 룰을 정했다.

마법과 스킬은 사용하지 않기, 서로의 진영에 세워놓은 10개의 눈사람을 모두 파괴하는 쪽이 승리.

지는 쪽이 밥 사기.

간단하지만, 첫눈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룰이었다.

“자, 시작!”

싸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떨어지자, 바주카를 든 고미가 열심히 가장 먼저 방아쇠를 당겼다.

“이야아압!”

고미의 뒤쪽에서는 수다르가 빠르게 집게를 이용해 탄환을 만들고 있었다.

“고미님! 받으십시오!”

“우웃, 수다르! 너의 마음, 잘 받았다!”

“쏴! 쏴!”

“쏴라!”

시끄러운 함성소리가 울리고, 새하얀 눈덩이들을 허공을 가르고 날아갔다.

- 퍽!

“어푸!”

얼굴에 정통으로 눈덩이를 얻어맞은 한유진은 정신없이 눈을 털어내며 허우적거렸고,

“유진, 물러나지 마! 눈 떠! 눈 뜨라고!”

언제나 냉정하던 제르보나도 오늘만큼은 열정적으로 놀이에 임했다.

“인국! 수다르를 노려라! 더 이상 총알을 만들지 못하게 해!”

“아웅이! 수다르를 지켜라!”

- 퍽!

“아, 아우웅!”

전장(?)의 한쪽에서는 아웅이가 몸을 날려 수다르님 대신 눈덩이를 맞으며 적들과 맞섰고,

“다웅!”

다웅이는 손가락만한 대나무 조각을 입에 문 채 적진을 휘저으며 쌍권총을 난사했다.

“민봉식! 몸으로 막아! 근육은 뒀다 어디다 쓰려고!”

“막아! 막아!”

그렇게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헉, 헉······.”

“이, 이겼다!”

“이겼다!”

“이, 이럴 수는 없느니라! 위, 위대한 이 몸이······.”

마침내 싸움의 승자가 정해졌다.

아기곰 사형제는 이날 처음으로 ‘패배’라는 단어를 배우게 되었다.

패인은 간단했다.

개개인의 능력은 뛰어났으나, 눈 사람을 지키는 것보다 적을 공격하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투자했다.

그 외에도 이렇다할 전략도 없이 마구잡이로 탄환을 낭비했다는 것 역시 중대한 패인이었다.

“허허, 그럼 오늘 점심은 제가 사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으아, 재밌게 놀았다!”

“흐, 흑! 어, 어떻게 이럴 수가! 위대한 곰이 넷이나 있는데도 패배하다니!”

“곰 선생님, 너무 개의치 마십시오. 그래봐야 놀이가 아닙니까.”

* * *

그리고 이날, 웅왕 연맹의 광장에는 눈으로 만든 거대한 조형물이 세워졌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여름이 지나도 녹지 않는, 거대한 설웅(雪熊)이.

숲속 친구들이 오늘처럼 오래 오래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조각상이었다.

“아웅!”

누군가가 만든 것과는 달리, 누가 봐도 곰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제법 훌륭한 조형물이었다.

“어, 어째서······. 어째서! 아웅이! 언제부터 이렇게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냐!”

그리고 고미는 이날, 또 한 번 패배를 맛봤다.

아, 여담이지만······.

그 거대한 설웅은 후일 정식으로 웅왕 연맹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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