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294화 (294/300)

EP.294 숲속 친구들의 평화로운 일상(2) : 전쟁(?)의 서막.

“누, 눈이다! 수하! 눈이 내리고 있느니라!”

밖에는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어쩐지 날이 어둡다 했더니, 눈이 내리려고 그랬던 모양이었다.

아기곰 형제들에게는 이번이 현세에서 맞는 첫 번째 겨울이었다. 그리고 지금 밖에 내리고 있는 것은, 그 첫 겨울의 첫 번째 눈이었다.

함께 맞는 첫 번째 겨울의 첫눈이 내리는 날.

수하는 아기곰 형제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오직 눈이 올 때만 할 수 있는 재미있는 놀이들이, 세상에는 많았으니까.

물론, 눈싸움은 제외할 생각이었다.

이 슈퍼 아기곰들과 눈싸움을 했다가는 정말로 며칠은 앓아누워야 할지도 모르니까.

차라리 S급 던전을 도는 편이 더 안전하다는 게 수하의 판단이었다.

“고미, 그럼 오늘은 친구들이랑 다 같이 놀까?”

수하의 질문에 고미의 초롱초롱한 두 눈이 반짝, 하고 빛을 발했다.

“좋다! 벌써 열흘도 넘게 친구들을 보지 못했느니라! 다들 뭘 하느라 그리 바쁜 것인지, 이 몸이 직접 확인을 해야겠구나!”

가장 최근에 숲속 친구들이 모였던 건 3주 전쯤,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고 집들이를 했던 날이었다.

보통 사람들에게 3주는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3주는커녕 몇 달에 한 번을 보는 것도 예삿일이니까.

그러나 하루라도 더 친구들과 놀고 싶은 열혈 아기곰에게 그 3주가 3년처럼 길었다.

“아, 아웅!”

밖으로 나가자는 말에, 아웅이 역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꼬리를 흔들어 댔다.

겨울하면 눈, 눈하면 북극곰 아닌가.

이것은 자연의 섭리와도 같은 공식이었다.

“엄마, 아웅이랑 다웅이도 데리고 가도 되지?”

수하의 질문에 엄마와 아빠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같이 잘 놀다 와. 애기들 감기 안 걸리게 조심하고, 장갑이랑 목도리랑 모자랑 잘 챙기고.”

말을 마친 고옥분 여사는 옷방으로 들어가 목도리를 비롯한 방한 도구를 잔뜩 싸 들고 돌아왔다.

“자, 고미는 고미가 제일 좋아하는 꿀색.”

“우, 우웃! 이, 이럴 수가! 이 멋진 것들은 무엇이냐!?”

귀마개가 달린 꿀색 털모자를 발견하는 순간, 초콜릿색 솜뭉치의 커다란 눈동자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커졌다.

“괴, 굉장하구나! 웅혼한 기상이 느껴진다!”

이어서 어머니는 고미의 손에 직접 커다란 벙어리장갑을 씌워주었다.

한편, 그 장면을 바라보던 수하는 무언가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모자와 목도리야 그렇다 치고, 고미의 솜방망이에 맞는 장갑을 대체 어디서 구했단 말인가?

“엄마, 그거 어디서 났어?”

“엄마가 우리 애기들 해주려고 시간 날 때마다 직접 만들었지.”

고미에게 장갑을 끼워주는 것이 못내 즐거웠는지, 어머니는 어느새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수하의 부모님은 자식들의 성화에 못 이겨 10년 이상 지켜온 영업방침을 바꾸었다.

연중무휴 대신 주 6일.

수익 대신 워라밸.

쉬는 날에는 아기곰들과 소풍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고.

고미네 횟집의 새로운 영업방침이었다.

영업 방침을 바꾼 후, 어머니는 쉬는 날마다 티비를 보며 직접 뜨개질을 해서 아기곰들의 사이즈에 딱 맞는 방한 도구를 만들었다.

늘그막에 가슴으로 낳은 네 명의 자식들을 위한 애정이 듬뿍 담긴 선물이었다.

“우웃! 괴, 굉장하구나! 엄마는 이런 멋진 것도 만들 수 있단 말이냐!?”

군밤 장수 모자같은 꿀색 털모자는 물론이고 목도리에 벙어리 장갑까지 착용한 꿀색 마니아 아기곰은 온몸의 솜털을 곤두세운 채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역시, 엄마는 자신조차 모르는 신비한 이능을 가진 게 분명했다.

뛰어난 아이템 제작자로 이름 높은 드워프족의 이름난 장인(匠人)이라도, 이렇게 멋진 털장갑을 만들지는 못할 것 같았으니까.

“오오······. 참으로 따뜻하구나!”

사실 수많은 싸움 속에서 단련된 고미의 몸은 이미 오래 전부터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엄마가 만들어준 장갑을 끼는 순간, 신기하게도 온몸이 따뜻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자, 그럼 동생들도 얼른 이리 와요.”

“아웅!”

“다웅!”

“우웃!”

고미 다음으로는 아웅이, 다웅이, 달곰이에게도 공포의 군주가 직접 제작한 마법의 방한 도구 세트가 주어졌다.

아웅이는 콜라병의 그것과 꼭 닮은 빨간색.

다웅이는 매일매일 한알 한알 까먹는 포도를 닮은 보라색.

그리고 달곰이의 것은 가슴에 새겨진 반달 모양과 똑같은 흰색.

이제는 반달곰이 된 아기 흑곰은, 자신의 반달 무늬와 같은 흰색을 가장 좋아했다.

달곰이에게 있어 그 무늬는 자신에게도 친구와 가족이 생겼다는 증표와도 같은 것이었으니까.

그렇게 각자 좋아하는 색깔의 아이템(?)을 착용한 아기곰들은 입을 헤 벌린 채 수하와 봉식이를 재촉했다.

이것들만 있으면, 그 어떤 곳에 가도 추위를 느끼지 못할 것 같았다.

“아, 아웅!”

“다웅!”

“어서 가자, 수하, 봉식이! 눈이, 친구들이, 이 몸을 기다리고 있다!”

“어서 가자!”

“알았어, 기다려.”

이에 봉식이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잽싸게 친구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꿈틀거리는 쩍쩍 갈라진 전완근의 모습에, 수하는 저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야, 너 헬스 그만해야 하지 않겠냐?”

싸움이 끝난 후, 봉식이의 몸은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우람하게 변해 있었다.

여가를 보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리고 봉식이의 취미는 ‘헬스’였다.

몸에 붙는 옷을 입은 게 아닌데도 근육질의 체형이 고스란히 드러날 정도로 터질 것 같은 근육.

이제는 짐승 ‘같은’ 녀석이 아니라, 그냥 짐승이 되어 버렸다.

심지어 가족인데도 눈을 마주치기가 부담스러웠다.

지금의 너를 만나면 S급 몬스터도 오줌을 지릴 것 같다는 말을, 수하는 마음속으로만 삼켰다.

“왜? 근육은 많을수록 좋다는 말도 모르냐?”

하지만 봉식이는 아직도 멀었다는 듯 자신의 이두박근을 꿈틀거리며 의지로 눈을 불태웠다.

이에 수하는 설득(?)을 포기하고 한숨을 내쉬며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아, 박 실장님. 부탁 드릴게 있어서요······.”

그렇게 공포의 군주가 하사한 방어구를 착용한 후, 수하와 봉식이, 아기곰 사형제는 나란히 문을 나섰다.

* * *

가게 뒷마당에 설치한 토끼 굴을 지나 저스티스 빌딩으로 가는 내내, 함박눈이 끝도 없이 쏟아졌다.

“오오! 오오오!”

눈의 양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원조 아기곰은 점점 더 커다란 괴성을 내질렀다.

“아, 아우우웅!”

평소에는 아기곰 사형제 중 가장 차분한 아웅이도 오늘만큼은 고미 못지 않은 텐션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눈발을 뚫고 걸음을 옮기던 어느 순간, 봉식이가 피식 웃으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야, 김수하, 저거 봐라”

“오, 오옷!”

“아, 아웅!?”

“다웅!?”

“우우우웃!”

봉식이의 손가락이 향한 곳을 본 아기곰 사형제는 약속이나 한 듯 수하를 돌아봤다.

‘우, 우리도! 우리도 저것을 태워다오!’라고 말하는 듯한 몸짓.

이에 수하는 잠시 고민하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음······. 잠깐만 기다려 봐.”

말을 마친 수하는 곧장 허곰답보를 펼쳐 하늘 위로 날아오른 뒤 주위를 살폈다.

‘분명히 이 근처에 있었던 것 같은데······.’

평소라면 분명히 보였을 텐데, 눈발이 날리는 탓에 시야가 좋지 않았다.

이에 수하는 곧바로 해피곰 포인트를 사용했다.

< 해피곰 포인트를 사용합니다. 잔여 포인트 : 5082 >

< ‘개보다 낫다’의 등급이 일시적으로 상승합니다. B -> SS >

스킬 등급이 상승하자, 휘날리는 새하얀 눈발 사이로 ‘그것’을 파는 가게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찾았다.’

원하던 것을 찾은 수하는 봉식이와 아기곰 사형제에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한 뒤 번개처럼 가게로 날아갔다.

앞으로 해피곰 포인트를 쓸 일은 점점 줄어들 테고, 쓴다고 해도 싸움을 위해서는 아닐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감회가 새로웠다.

* * *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수하가 돌아왔다.

손에는 아기곰 사형제가 들어가기 딱 좋은 크기의 고무 대야가 들려있었다.

“우, 우웃! 수하! 괴, 굉장하구나!”

갈색과 빨간색의 중간쯤 되는 특유의 빛깔.

아기곰 사형제가 들어가 앉으면 딱 얼굴만 나올 정도의 적당한 깊이감.

수하가 사온 것은 통칭 ‘다라이’라고도 부르는, 갈색 고무 대야였다.

하지만 지금 아기곰 사형제의 눈에는 그 평범한 고무 대야가 수억 원대의 고오급 스포츠카보다도 더 멋져 보였다.

“어, 어서 태워다오!”

“자, 자. 손님들, 어서 타세요.”

“아우웅!”

“다우우웅!”

“우우웃!”

잔뜩 흥분한 아기곰 사형제를 하나하나 고무 대야에 태운 수하는 곧바로 참숯 1호를 꺼내 들었다.

“우웅? 수하, 무기는 왜 꺼내는 것이냐?”

“잠깐만 기다려.”

그리고는 고무 대야 끝부분에 작은 구멍을 뚫고, 방금 전 사온 노끈을 그곳에 집어 넣었다.

“우, 우웃!? 설마!?”

순식간에 고무 대야를 끌어줄 밧줄을 만들어내는 수하의 모습에, 네 마리의 아기곰은 마술이라도 본 것처럼 입을 헤 벌린 채 솜방망이를 두드렸다.

“자, 그럼 출발합니다!”

“가, 가자! 수하, 달리는 것이다!”

봉식이와 수하는 각각 둘씩 나누어 아기곰 형제를 태운 썰매를 타고 눈길을 내달렸다.

“우하하하! 굉장하구나! 이런 재미난 것이 있었다니!”

“아우우웅!”

“다우웅!”

* * *

그렇게 몇 분이나 달렸을까?

네 사람은 마침내 저스티스 빌딩 앞의 광장에 도착했다.

광장 위에는 다른 곳보다 더 많은 눈이 쌓여 있었다.

아무도 제설 작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실장님, 광장 앞에 눈 치우지 말아주세요. 제가 고미랑 놀고 나서 깔끔하게 다 녹여놓을게요. 」

출발 전, 수하는 박 실장에게 전화를 해 제설 작업을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덕분에 광장 앞에는 벌써 발목까지 닿을 정도로 눈이 쌓여 있었다.

어차피 녹이는 거야 불도장 한 번이면 금방이니까, 실컷 놀고 나서 뒷정리를 하면 그만이었다.

물론 바닥이 타지 않도록 화력 조절은 좀 해야겠지만.

“자, 도착했습니다!”

곰돌이 열차의 차장이 되었던 수하가 웃으며 발걸음을 멈추자, 네 마리의 아기곰은 신나게 꼬리를 흔들며 고무 대야를 벗어났다.

“오, 수다르! 삼룡 어멈! 참으로 오랜만이구나!”

“고미니이임!”

아기곰 사형제를 발견한 한유진은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듯 얼른 달려와 고미를 와락 끌어안았다.

“후후, 이 몸이 보고 싶었던 것이냐!?”

“그럼요!”

가장 먼저 광장에 도착해 있던 것은 삼룡이 패밀리와 화원 식구들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어디선가 본듯한 새하얀 봉투가 들려있었다.

“수다르님, 설마 그거······.”

“허허, 토생원과 유찬님과 함께 만들어 봤습니다. 역시 겨울하면 붕어빵 아니겠습니까?”

말을 마친 수다르는 곧장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끈한 붕어빵을 내밀었다.

붕어빵 틀은 토생원이 만들고, 구운 것은 흑룡 셰프였다.

왜 굳이 만들었냐고 묻는다면, 딱히 이유는 없었다.

그냥 심심하니까.

수하의 무기는 썰매를 만드는 데 쓰이고, 토생원의 연금술과 드래곤의 마법은 붕어빵을 만드는 데 사용되고 있었다.

바야흐로, 평화의 시대에 걸맞은 모습이었다.

“오, 오오! 어, 어째서 물고기 모양의 빵에 이리도 달콤한 것이 들어있단 말이냐!?”

처음 먹어본 붕어빵의 맛에 반한 아기곰은 벌써 한 마리를 먹어치우고 두 번째 붕어빵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붕어빵을 나눠먹으며 인사를 주고 받고 있을 때······.

“곰 선생님!”

저 멀리서 이강혁이 달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흑암과 노인국도 광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허허, 다 같이 눈싸움이라도 하자고 부른 겐가?”

가장 마지막에 합류한 노인국의 한마디에, 수하와 봉식이, 이강혁 세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물었다.

지금 세 사람의 머릿속에는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은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다.

- 퍼억!

「 우하하하! 수하! 보았느냐! 」

눈덩이를 던져서 B급 이상의 몬스터를 한방에 기절시켜버리던 슈퍼 아기곰의 모습이.

그것은 눈이 아니라, 탄환이었다.

눈 안에 돌을 넣어 던져도, 그렇게는 안 될 터였다.

때문에 수하의 ‘추억 만들기’ 계획에도, 당연히 눈싸움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아기곰 사형제가 참여하는 순간, 그건 이미 놀이가 아니게 될 테니까.

“아, 아뇨. 눈 싸움은 좀 그렇고. 그냥 같이 눈 사람도 좀 만들고······.”

- 퍼억!

하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언가 불길한 소리가 수하의 말을 끊어버렸다.

“하하하! 고미님! 역시 눈이 내리는 날에는 눈 싸움 아니겠습니까!”

이어서 더욱 불길한 목소리가 비수처럼 날카롭게 수하의 귀를 파고들었다.

“호오······. 검은콩, 지금 위대한 이 몸에게 또다시 도전장을 내미는 것이냐?”

뒤통수에 눈덩이를 얻어맞은 초콜릿색 솜뭉치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섬뜩한 웃음을 지었다.

‘저, 저, 눈치없는 드래곤 새끼가!’

그러나 수하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 눈덩이 하나가 만들어 낸 파장이,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거대하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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