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293화 (293/300)

EP.293 숲속 친구들의 평화로운 일상(1) : 슈퍼 아기곰의 놀이방법.

- 쿵, 쿵, 쿵······.

거대한 그림자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대지가 진동하고, 포성처럼 묵직하고 낮은 굉음이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고오오오옴!”

초코바와 똑 닮은 색의 커다란 솜방망이가 둔중한 소리와 함께 허공을 가르자, 고개를 뒤로 젖혀야 간신히 그 꼭대기가 보일 것 같은 빌딩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결코 무너지지 않을 문명의 상징과도 같은 마천루는 그렇게 어린아이가 쌓아올린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잔해로 변했다.

“우하하하! 느껴지느냐! 이 몸의 위대함이!”

100층에 달하는 거대한 빌딩을 순식간에 박살낸 거대한 아기곰은 허리를 뒤로 젖힌 채 천진난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빌딩 숲 사이로는 동글동글한 초거대 아기곰의 머리가 비추고 있었다.

“우하하하! 이제부터 매일 매일 이 몸에게 꿀과 초코바를 바치거라! 그렇지 않은 녀석들은 모두 혼쭐을 내줄 것이다!”

* * *

“헉, 헉······!”

가위에 눌린듯 발작하며 잠에서 깬 수하의 잠옷은 욕조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쫄딱 젖어있었다.

“무, 무슨 꿈이 이래······.”

얼마 전 우주의 평화를 위협하던 악마를 물리친 위대한 영웅(英熊)이 악당이 되어 도심을 파괴하는 꿈이라니······.

그것도 초코바와 꿀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면서.

“우하하하! 슝이니라!”

“아, 아웅?”

“다, 다웅!?”

“오오!”

눈을 떠보니, 초코곰, 북극곰, 판다곰, 반달곰이 옹기종기 모여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는 것이 수하의 시야에 들어왔다.

꿈속에 나왔던 거대 괴물 곰의 원형, 오리지널 초코 곰돌이는 누군가가 선물해준 장난감 비행기를 손에 든 채 파일럿 놀이에 폭 빠져 있었다.

그런데······. 왜 놀이방을 놔두고 굳이 자신의 방에 들어와 뛰어다니고 있는 걸까.

수하의 머릿속에 저도 모르게 그런 의문이 피어올랐다.

곰돌이 사형제가 방안에 들어와서 놀고 있다고 기분이 나쁘다거나, 성가신 것은 아니었다.

그저 순수하게 궁금했다.

‘왜 2층에 있는 놀이방을 놔두고 굳이 1층까지 와서 이러는 거냐······.’

고개를 돌려보자, 아직 창밖에는 옅은 어둠이 깔려있었다.

겨울이라 해가 늦게 뜬다고는 해도 여덟 시면 밖이 훤해지니, 지금 시간은 여덟 시 전인 것 같았다.

대체 왜, 이 시간부터······.

그것도 굳이 1층까지 장난감을 가지고 와서 놀고 있는 걸까.

심히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고미, 이 시간부터 뭐하는 거야?”

“오오, 수하! 일어났느냐!?”

자신이 잠이 없는 편이라고는 해도, 이런 건 확실히 안된다고 말을 해두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수하는 생각했다.

“엄마가 아침밥을 먹으라고 했느니라! 그런데 네가 너무 곤히 자는 것 같아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지! 벌써 여덟 시가 넘었느니라! 오늘은 너답지 않게 늦잠을 자는구나!”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이건 안 된다고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시계를 보니, 정말로 8시가 넘어있었다.

날이 흐려서 아직 해가 뜨지 않았다고 착각한 모양이었다.

조용히······ 는 아닌 것 같지만, 에너지가 너무 넘쳐 문제인 아기곰 사형제에게 이 정도면 나름대로 얌전히 놀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고.

이어서 수하의 머릿속에, 며칠 전 보았던 충격적인 광경이 재생되었다.

“우하하하! 빔이니라!”

- 번쩍!

“아웅!” (으아악!)

“다웅!” (으아악!)

손에서 푸른 빛을 번쩍거리던 초코 곰과, 정말로 빔에 맞은 것처럼 나뒹굴던 백곰과 판다.

그리고······

“오, 오오! 이 몸도 빔을 쏠 수 있게 된 것 같구나!”

뒤에서 그 장면을 구경하던 달곰이까지.

이날부터 달곰이는 웅왕빔을 쏠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가슴의 반달곰 무늬에서 빔을 쏘는 것도 가능했다.

어째서 그런 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되는 걸 어쩌란 말인가.

「우, 우우웃!? 」

그 모습을 본 고미는 두 눈의 휘둥그레져 자신도 가슴에서 빔을 쏘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곰돌이 사형제의 놀이방식은 언제나 수하의 상상을 초월했다.

며칠 전에는 비행기 놀이를 한답시고 웅왕 연맹의 헌터들에게 선물 받은 비행기를 줄줄이 세워놓은 뒤 이기어곰으로 편대를 만들어 날리는 것도 본 적이 있다.

2층 창문에서 튀어나와 하늘을 날아다니던 수십 대의 장난감 비행기를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게다가 그 비행기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것처럼 실감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실제 비행기로도 저런 게 가능할지 궁금한 곡예비행까지 해냈다.

이 아기곰 사형제에게는 굳이 드론이나 모터 헬리콥터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런 게 아니라도 기곰술로 얼마든지 진짜 비행기처럼 하늘을 날게 할 수 있으니까.

‘스타워즈 같은 건 절대 보여주지 말아야지.’

그랬다가는 아기곰 네 마리가 각자 진짜 빔샤벨을 만들어 칼 싸움을 하는 걸 보게 될지도 모른다.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는군.’

원래 어린애라는 게 잠깐만 눈을 돌리면 사고를 치는 법이라지만, 이 아기곰 사형제의 ‘사고’는 차원이 달랐다.

덕분에 수하는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심장이 덜컥덜컥 내려앉았다.

오죽하면 오늘 같은 꿈을 꾸겠나.

‘이거 노이로제 증상 아니야?’

수하는 잠시 자신의 정신건강이 위협을 받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했다.

설마하니 악당들을 모두 물리치고 나서 더 불안에 떨게 될 줄은 몰랐다.

‘삼일 전에는 고미와 달곰이가 군고구마를 만들겠다며 앞마당에서 고구마 한 상자를 통째로 숯덩이로 만들었지.’

어디서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꿀색이 도는 음식이니 당연히 꿀처럼 맛있을 거라고 생각했단다.

굽기만 하면 된다길래, 몰래 구워서 가족들에게 선물하려고 했다고.

마음은 너무 예뻤지만······. 불장난은 역시 그냥 넘어가기에는 너무 위험했다.

아웅이가 빠르게 화재진압에 나선 게 천만다행이었다.

「 고미! 이게 무슨 위험한 짓이에요! 」

그리고 그날, 고미의 엉덩이는 문자 그대로 불이 났다.

아침에 마당을 쓸던 공포의 군주가 정원 한구석에 자리한 거뭇한 흔적을 발견하고 만 것이다.

수하 역시 치운다고 치워봤지만, 너무 까맣게 타서 도저히 수습이 불가능했다.

「 우, 우웃! 어, 엄마! 사, 살려다오! 」

전 우주를 위협하던 악몽의 지배자를 처리한 슈퍼 아기곰은, 공포의 군주에게 애원해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다.

「 흐, 흑! 미, 미안하다! 고미 형!」

한편, 큰형이 장렬하게 희생(?)을 한 덕에 달곰이는 무사히 달아나는데 성공했다.

「 달곰이······. 잘 달아났다······. 너라도 무사해서 다행이니라······. 」

「미, 미안하다, 미안하다! 하지만 너무 무서웠다! 」

「흑, 알고 있다! 이 몸이라도 달아났을 것이다! 울지 말거라!」

그렇게 사건은 고미의 단독범행(?)으로 결론이 나나 싶었지만······.

「달곰아, 우리 달곰이가 왜 오늘따라 불을 볼 때마다 움찔거릴까?」

「 우, 우웃! 아, 아니다! 이, 이 몸이 부, 불 따위를 두려워할 리가······!」

결국 아침 식사를 준비하던 어머니에게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 2차 처형(?)이 진행되고 말았다.

그날을 회상하니, 웃음과 동시에 한숨이 새어 나왔다.

설마하니 아기곰 사형제와 놀아주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물론 대체로 즐거운 시간이지만, 군고구마 사건같은 일을 벌일 때면 저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들, 아침 먹자.”

그렇게 아직 결혼은커녕 연애도 휴업 중인 20대 후반의 청년이 육아의 고단함(?)을 실감하고 있을 때, 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자, 고미, 이제 동생들이랑 장난감 갖다 놓고 와요. 정리는 깔끔하게, 알고 있죠?”

엄마의 한마디에 비행기 놀이에 푹 빠져 있던 아기곰 사형제는 약속이나 한 듯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자, 가자! 대열을 유지하거라! 번호! 고미!”

“아웅!”

“다웅!”

“달곰!”

그리고는 초콜릿색 아기곰을 선두로 새하얀 아기곰, 얼룩덜룩한 아기곰, 가슴에 반달 무늬가 새겨진 검은 아기곰, 이렇게 넷이 줄을 맞춰 척척 걸음을 옮겼다.

‘대체 저런 건 어디서 배운 거야······.’

요즘 고미는 급속도로 신문물(?)을 익혀나가고 있었다.

최후의 싸움이 끝났으니, 영웅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때였다.

악당의 우두머리격 되는 존재들은 모두 제거됐고, 던전과 게이트의 숫자도 눈에 띄게 줄었다.

「아쉽게도 던전과 게이트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네요. 」

고미가 돌아온 날, 관리자는 그렇게 말했다.

사실 악몽을 물리치면 모든 던전과 게이트가 대균열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악몽은 최후의 순간 자폭을 선택했고, 그 여파로 대균열의 일부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고.

「마지막 순간에 고미를 대균열 근처로 끌어들여 싸움을 벌일 줄이야.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영악하더군요. 덕분에 당분간은 대균열도 지켜주시고, 현세도 지켜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

그렇게 말하는 관리자의 입가에는 묘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그럼 고미를 잘 돌봐주세요. 전력도 충분하니 양쪽 다 잘 지키실 수 있죠?」

말을 마친 관리자는 허리를 부여잡고 터덜터덜 사라졌다.

악몽과의 싸움 이후, 수하와 봉식이는 사실상 초월자와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 전투력을 갖게 되었다.

허수아비도 SS급, 삼룡 어멈도 SS급, 거기에 흑암과 무신이라는 강력한 초월자가 한편이 되었고, 드라고니아에서 전후 처리를 하고 있느라 바쁜 동이 역시 언제고 현세로 넘어와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상황이 이러니, 고미가 직접 나서서 손을 쓸 일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남는 시간 중 대부분을, 고미는 문자 그대로 탱자탱자 놀면서 보냈다.

수하야 길드 일을 처리하느라 나름대로 바빴지만, 고미는 그런 것은 알지도 못했고, 할 수도 없었으니까.

즉, 어지간한 긴급 상황이 아니면 고미가 직접 전선에 설 일은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한 번도 그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고.

“자, 왼발이니라! 왼발!”

“아웅!”

“다웅!”

“달곰!”

그 결과가······. 바로 이 모습이었다.

아기곰 사형제는 발까지 맞춰가며 놀이방과 자신들의 방이 있는 2층으로 이동했다.

2층은 네 개의 작은 방과 중앙의 놀이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중앙의 놀이방에는 악몽의 지배자를 쓰러뜨린 뒤 고미의 무사 기원을 빌며 사람들이 가져다 놓은 장난감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자, 격납고로 이동하거라!”

이제는 격납고라는 제법 어려운 말도 배운 원조 아기곰이었다.

비행기는 비행기끼리, 자동차는 자동차끼리, 로봇은 로봇끼리.

공포의 군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뭔지는 몰라도, 아기곰 사형제는 상당히 정리정돈을 잘하는 편이었다.

“자, 이제 손을 씻고 밥을 먹으러 가는 것이다!”

그렇게 순서대로 손을 씻은 아기곰은 잽싸게 식탁으로 달려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람 넷에 아기곰 넷이 앉아도 충분한, 커다란 식탁이었다.

심지어 회식용으로 구비해 둔 테이블을 붙이면 숲속 친구들이 모여 식사를 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자, 오늘 아침은 떡갈비입니다! 얼른 오세요!”

고옥분 여사의 한마디에, 아기곰 사형제의 자그마한 입안에는 곧바로 군침이 솟아났다.

생활이 안정을 되찾으며 식사 메뉴는 더욱 다양하고 맛있어졌고, 덕분에 요즘은 매일 매일이 진수성찬이었다.

“자, 달곰이! 어서 먹거라! 이런 것은 막내가 먼저 맛을 보는 것이니라! 자, 이렇게, 이렇게!”

고미는 요즘 아직 세상이 낯선 달곰이에게 이것저것 많은 것을 가르치고 있었다.

수하에게 하나하나 배워나가던 게 어제일 같은데, 이제는 동생에게 젓가락질을 가르칠 정도로 의젓한 아기곰이 된 것이다.

사실 출생 순서(?)로 보자면, 달곰이가 둘째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미의 제안(?)에 따라 달곰이의 서열은 막내가 되었다.

「달곰이, 너는 막내이니라. 이제 막 가족이 되었으니, 막내 시기를 거쳐야 한다. 」

「우, 우웅! 알겠다!」

「서운해 하지 말거라, 사실 막내는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위치이니라. 실은 이 몸은 아직도 막내가 되고 싶을 정도지.」

「오, 오오! 그, 그런 것이냐?」

라는, 다소 황당하지만 따뜻한 배려가 담긴 이유였다.

‘성장했군.’

오랜 시간 외로웠을 달곰이를 위해 기꺼이 막내의 비밀(?)을 알려주고 그 자리를 물려주는 고미의 모습에, 수하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뿌듯해졌다.

괜스레 기분이 흐뭇해진 수하가 통통한 볼을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식사를 하고 있는 아기곰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우, 우웅!?”

“아, 아웅!”

“다웅!”

“우, 우웃!”

아기곰 사형제가 약속이나 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창밖을 가리켰다.

수하는 그제야 아침 여덟 시가 넘도록 하늘이 어두웠던 이유를 깨달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