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90 아웅이와 다웅이의 슬기로운 알바생활(2) : 강호의 법칙.
“저, 손님······. 취하신 것 같은데, 진정하시고······.”
아버지가 자신에게 다가오자, 난동을 부리던 헌터는 더욱 눈이 벌개져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무협 영화에서 많이 보던 상황이다.
이제 곧 이 취객은 폭력을 휘두르고, 객잔의 주인은 나가 떨어질 것이다.
그럼 저 남자는 객잔을 실컷 때려 부순 뒤 은자나 금자 몇 개를 던져놓고 휑하니 사라지겠지.
‘다웅!’
다웅이는 직감했다.
이래서 고미 형과 수하 형이 자신을 이곳에 둔 것이라고.
점소이로 위장해 있다가 엄마와 아빠를 지키는 신비의 협객!
그게 바로 자신의 역할이었다.
“다웅!”
생각을 마친 아기 판다는 곧바로 두 팔을 벌린 채 아빠와 취객 사이를 막아섰다.
매일 같이 맛있는 걸 만들어 주고 무협 영화까지 보여주는 아빠에게 은혜를 갚을 시간이 왔다.
진정한 협객은 은원을 분명히 하는 거니까.
“뭐야, 이 곰돌이 새끼는! 엉!?”
부모님을 지키려 하는 아기 판다의 모습에, 술에 취한 악당은 더욱 목소리를 높이며 금방이라도 주먹을 휘두를 듯 위협적인 자세를 취했다.
“다웅아! 안돼!”
“다웅아, 저리 가!”
이에 부모님은 얼른 다웅이를 끌어안아 악당으로부터 보호하려 했지만,
- 부웅!
“으응?”
어느새 나타난 죽봉이 번개처럼 사내의 양쪽 오금을 후려쳤다.
- 퍼벅!
“억!”
가공할 힘을 담은 죽봉에 무릎 뒤를 얻어맞은 사내는 털썩 무릎을 꿇고 말았다.
“다웅!”
해냈다.
엄마 아빠를 해치려는 악당 놈으로부터 객잔을 지켜냈다.
뿌듯한 마음에 저도 모르게 꼬리가 빙글빙글 돌아갔다.
어쩌면 고미 형아가 상으로 초코바를 줄지도 모르겠다.
“이, 뭐야······. 저거, 펫이었어?”
다웅이에게 당해 무릎을 꿇은 취객의 인상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중소 길드에 속한 B급 헌터였다.
능력은 단순한 육체 강화.
등급은 나쁘지 않지만, 잠재력도 대단치 않고 실력도 어중간해 대형길드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그래도 꼴에 B급이라고 자존심은 세서, 헌터들 사이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걸 일반인들에게 갑질하는 것으로 푸는 형편없는 사내였다.
오늘 그가 난동을 부린 이유는 간단했다.
딱히 실력이 뛰어난 것도 아닌데 성격이 난폭해서 매번 사고를 쳤고, 이로 인해 지금 있는 길드에서도 방출당할 위기에 놓인 것이다.
벌써 이런 일만 세 번째, 정말이지 감방에 가지 않은 게 용했다.
하지만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술이 들어가니 또다시 일반인들을 상대로 시비를 걸며 울분을 풀려 했던 것이다.
“아으, 이게 무슨 개망신이야······.”
다웅 대협에게 당해 무릎을 꿇었던 사내의 눈동자가 다웅이와 가게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을 지나, 객주 내외에게 향했다.
상대가 자신보다 강하다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삼류 악당들이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하는 짓은, 대개 거기서 거기였다.
그리고 이미 수많은 무협 영화를 섭렵해 온 아기 판다는 그런 클리셰에 아주 익숙했다.
인질을 잡으려는 게 분명했다.
“에이씨!”
예상대로 사내가 주인 내외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
“다웅!”
무공만 강한 게 아니라 눈치까지 빠른 다웅 대협은 민첩하게 몸을 날려 양팔을 좌우로 교차시켰다.
힘의 흐름을 제어해 상대의 공격을 그대로 돌려주는 신공······
“다웅!” (건곰대나이!)
아빠와 함께 봤던 무협 영화에서 나오는 멋진 무공이었다.
- 콰당!
엄마와 아빠를 인질로 잡으려던 비겁한 악당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균형을 잃고 바닥에 쳐박혔다.
어찌나 세게 넘어졌는지, 낙법조차 취하지 못하고 턱부터 바닥에 내리꽂혀 단박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
“다, 다웅아!”
이긴 건 다웅이지만, 엄마는 얼른 달려와 다웅이를 끌어안았다.
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엄마 눈에는 불면 날아갈까 걱정되는 아기 판다에 불과했다.
하지만 다웅이는 그게 좋았다.
게다가 저 악당이 달려들 때, 엄마도, 아빠도, 그 공격을 피하기는커녕 반사적으로 자신을 감싸려 했다.
역시 엄마 아빠는 최고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 있어도 이렇게 위험한 일 하면 안돼요!”
애정이 가득 묻어나는 엄마의 손길에, 다시 기분이 좋아진 협객은 꼬리를 빙글빙글 돌려댔다.
“다웅!”
한편, 아버지의 눈동자는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다웅아, 방금 그거······.”
“다웅!”
다웅 대협의 절세신공을 알아본 게 분명했다.
역시, 아빠는 눈썰미가 뛰어나다.
다웅이는 자신이 펼친 무공이 무엇인지 자랑하려는 듯 한 번 더 TV에서 보았던 동작을 그대로 따라했다.
“건곤대나이구나!”
“다웅!”
“여보, 우리 애가······.”
“또, 또 쓸데없는 소리! 빨리 경찰이나 불러요! 이 사람 깨어나서 또 난동 부리면 어쩌려고!”
엄마가 인상을 쓰는 순간, 다웅이는 까닭 모를 공포를 느꼈다.
‘다, 다웅······.’
등 뒤에서 저도 모르게 식은땀이 흘렀다.
몇 번인가 본 적이 있는데, 심지어 고미 형도 엄마가 화를 내면 공포에 떨었다.
문득 한줄기 의문이 다웅이의 머리를 스쳤다.
어째서 엄마는 이능도 없는데 그렇게 강한 걸까? 혹시 엄마는 고미 형보다 더 강한 게 아닐까?
무협 영화에서 보면 진정한 고수는 오히려 평범해 보인다고 했었다.
자신의 기억이 맞다면, 그런 걸 ‘반박귀진’이라고 했던 것 같다.
‘다, 다웅······.’
엄청난 비밀을 깨달은 다웅이가 이 사실을 아웅이도 알고 있을까 궁금해하고 있을 때,
“아, 아웅!”
마트에서 돌아온 아웅이가 대협객 다웅이의 활약을 구경하던 군중들을 뚫고 달려왔다.
“아, 아웅!?”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다웅! 다웅, 다웅!” (이 나쁜 놈이, 술에 취해서 엄마 아빠를 공격하려고 했어!)
사정을 들은 아웅이는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실감했다.
자신이 잠깐 심부름을 다녀온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고미 형아와 늘 자신과 다웅이에게 가게를 잘 지키라고 신신당부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게다가 눈앞의 사람은 틀림없이 수하 형아나 봉식이 형아처럼 이능력을 가진 인간이었다.
이능력을 가진 사람이 평범한 사람들을 공격하려고 하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다웅, 다웅!” (형, 이제 뒤처리를 해야 해!)
그때, 다웅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웅?” (뒤처리?)
악당을 물리치면, 그걸로 끝이 아니란 말인가?
순진무구한 아웅이와 달리, 다웅이는 세상을 조금 더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악당들은 보통 뒤끝이 있다.
관원들에게 신고를 해봐야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려날 것이다.
본래 이런 악당들은 관원들에게 뒷돈을 찔러주고 약한 사람들을 핍박하는 법이니까.
이번에는 다웅 대협의 활약으로 엄마 아빠를 구해내기는 했지만, 추후에 어떤 방식으로든 보복을 할 게 분명했다.
“다웅, 다웅!” (틀림없이 복수를 하러 돌아올 거야!)
“아웅······!” (그, 그렇구나!)
그래도 다친 사람이니 치료를 해줘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던 순진무구한 아기 백곰은 그제야 세상의 무서움을 깨달았다.
“사장님, 경찰 왔어요!”
그 순간, 손님들 틈을 가르고 관복을 입은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손님들 중 누군가가 싸움이 벌어진 것을 보고 경찰에 신고를 한 모양이었다.
‘다웅······.’
큰일이다, 이대로 저 녀석을 돌려보낸다면 언젠가 복수를 하러 돌아올 게 분명했다.
“어휴, 이분은 또 왜 이렇게 됐어.”
“이거 누구한테 맞은 것 같은데? 사장님, 사장님이 이러셨어요?”
“저 사람이 헌터인 것 같은데······.”
“그런데 누가 저렇게 만들었는데요?”
“저기 있던 판다가요.”
손님과 경찰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던 다웅이는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을 직감했다.
“다웅!” (형, 큰일이야!)
“아우우웅?” (왜, 저 아저씨가 저 사람을 잡아가는 거 아니야?)
“다웅! 다웅다웅!” (아니야, 틀림없이 관원과 결탁한 거라구!)
“아웅!?” (뭐!? 정말이야?!)
아니나 다를까, 손님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경찰은 난처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사장님, 이 아기곰들은 뭐죠? 펫 허가증 가지고 있으세요?”
심지어 악당을 잡아가는 게 아니라 엄마와 아빠에게 생트집을 잡고 있다.
그 반응을 본 아웅이는 다웅이의 말이 옳았음을 확신했다.
이대로 두면 저 악당은 그대로 풀려나고, 엄마와 아빠를 다치게 할지도 몰랐다.
“아, 아웅······.” (어, 어떻게 하지?)
하지만 경찰을 때려눕힐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아니, 경찰 아저씨. 저 사람이 갑자기 술 취해서 욕하고 시비 걸고 그랬다니까요!”
“맞아요, 맞아요!”
“지금 곰돌이들이 펫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그건 저희가 가서 조사를 할 거고, 일단 이 사장님이 미등록 헌터는 아닌지, 저 펫들이 허가받은 건지 확인을 해야 한다니까요.”
하지만 손님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악당과 결탁한 관원은 엄마 아빠에게 허가증을 요구할 뿐이었다.
‘아, 아웅······.’
그때, 아웅이의 머릿속에 번득 누군가의 얼굴이 스쳤다.
「아버님, 혹시 곤란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아웅님, 다웅님도, 혹시 가게에 무슨 일이 생기면, 저한테 연락을 주십시오.」
고미 형과 수하 형을 늘 따라다니던 검객!
성격도 정의롭고, 실력도 강했다.
가끔 형아들이 없을 때 가게에 와서 밥을 먹고 가기도 하고, 엄마 아빠를 아주 좋아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가끔 티비에 나오기도 하는 게, 아주 유명한 헌터인 것 같았다.
‘아웅······!’
무엇보다 엄마 아빠를 보는 눈이 자신과 다웅이를 닮아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엄마 아빠를 아주 좋아하는 게 틀림없었다.
이에 아웅이는 얼른 엄마에게 달려가 그 인간에게 전화를 하라고 말했다.
“아, 아웅!” (어, 엄마! 이강혁 씨, 이강혁 씨에게 전화해요!)
“다웅!” (그래요!)
아웅이의 지혜에 다웅이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자신은 관원들까지 때려눕히려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렇게 해서는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일이 커져 객잔에 더 큰 위기가 찾아올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강혁이라는 인간이라면, 이 문제를 잘 수습해 줄지도 몰랐다.
그는 큰 문파를 운영하는 강호의 거물이니까!
“으음······. 그래도 괜찮을까?”
“아웅!”
“다웅!”
사실 엄마는 이강혁 씨에게 전화를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헌터 일은 잘 모르고, 펫 허가증이라든지 하는 문제로 아웅이와 다웅이가 경찰서에 끌려가기라도 할까 덜컥 겁이 났다.
이 작은 것들이 경찰들에게 끌려간다고 생각만 해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이에 고옥분 여사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강혁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님, 왠일이십니까?”
“어······. 그게, 정말 죄송한데······.”
어머니가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자,
“지금은 제가 지방에 있어서 바로 가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일단 일을 수습할만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 대협은 곧바로 사람을 보내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허허, 무슨 일인가?”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아저씨 하나가 가게에 나타났다.
“노, 노인국 씨?”
문제를 수습하기 위해 나타난 인물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부패한 관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헌터판은 물론이고 정재계의 거물들과도 끈이 닿아있다는 소문이 파다한 거물.
4대 길드의 길드장 중 하나이자, 대한민국 최고의 흑마법사!
“이강혁 길드장에게 연락받고 왔네.”
노인국은 일부러 이강혁의 이름을 언급했다.
사대 길드장 중 무려 둘이 이 가게와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서였다.
“저 아기곰들은 저스티스와 블랙 메이지에서 보장하는 안전한 친구들이네. 허가증은 조만간 제출하지. 그보다 일반인들한테 폭력을 행사하려던 헌터부터 어떻게 해야 하지 않겠나?”
때마침 정신을 차린 악당은 노인국을 보자마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끼며 사지를 덜덜 떨었다.
최근에는 분위기가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패왕 못지 않게 업계에서 흉흉한 소문이 도는 길드가 바로 블랙메이지였으니까.
이런 조그마한 횟집이 그런 거물과 엮여있을 거라고, 어떻게 상상이나 했겠는가?
“아, 알겠습니다. 그럼 이 사람은 저희가 연행해 가겠습니다.”
결국 부패한 관원들은 물러나고, 횟집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아휴, 죄송해요. 괜히 이런 일로 바쁜 분을 번거롭게 해서······.”
어머니의 말에 고미 형아의 친구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허허, 아닙니다. 마침 오늘 회가 땡겼는데, 온 김에 맛있는 회나 한 접시 먹고 가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좋은걸로 드릴게요.”
엄마 아빠가 요리를 준비하러 간 사이, 고미 형아의 친구가 다웅이와 아웅이에게 슬쩍 말을 걸어왔다.
“엄마 아빠 일도 도와주고, 고미 선생도 그렇지만 아주 착하네 그려. 이 아저씨가 선물을 줘도 될까?”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노협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오늘 어쩌다가 작은 인벤토리를 얻었는데 말이야. 이게 크기가 작아서 장비를 넣기에도 애매하고······. 우리 곰돌이 친구들에게 선물로 주려고 하는데, 받을 텐가?”
부패한 관원들을 내쫓은 협객은 그렇게 말하며 작은 반지 모양의 아이템 두 개를 내밀었다.
“인비저블 인벤토리라고, 눈에 안 보이는 인벤토리인데, 이 안에 간식이라도 넣어 다니게.”
사실 크기가 작다고 해도 인비저블 인벤토리는 수천을 호가하는 물건이었지만, 세상 물정 모르는 아기곰 형제가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아웅!”
이에 아웅이는 배꼽 인사를 하며 그 정체 모를 아이템을 받아들었다.
저 안에 콜라를 넣어 가지고 다닌다면, 늘 초코바를 가지고 다니는 고미 형아처럼 언제 어디서든 맛있는 콜라를 맛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웅!”
반면 다웅이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진정한 협객은, 협행에 대가를 바라지 않는 법이니까.
* * *
그로부터 며칠 후, 웅왕 연맹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이강혁과 노인국, 한유진을 위시한 웅왕 연맹의 구성원들 뒤에 흑막이 존재하며, 그 흑막의 정체가 실은 아기곰이라는, 아주 황당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그 곰돌이 삼형제의 뒤에는, 공포의 군주라는 진정한 강자가 존재하고 있음을.
언제나 진정한 흑막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