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89 아웅이와 다웅이의 슬기로운 알바생활(1) : 다웅이의 꿈.
최근 이상한 횟집 하나가 문을 열었다.
<< 고미네 횟집 >>
다소 정체성을 알기 어려운 이름과 초콜릿색 아기곰이 그려진 간판.
왜 횟집인데 아기곰이 그려져 있을까?
이름만 들은 사람들은 생각했다.
곰은 연어를 좋아하니, 연어회 마니아들을 공략하기 위한 연어 무한 리필집인가?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간판과 이름만이 아니었다.
가게 앞에는 기괴한 조각상 하나가 설치되어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삼삼오오 모여 그것의 정체가 무엇일지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누구도 조각상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기묘한 생김새 이상으로 기이한 일이 있었으니······.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감상이 늘 한결같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왜 저걸 보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지지?”
“이거 뭐 그런 거 아니야? 현대미술.”
“그런가? 이거 보고 있으니까 엄마 생각난다.”
“진짜? 너도? 나도 그래.”
예술은 가장 확장된 의사소통 방식이라고 했던가?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지도 못하면서 약속이라도 한 듯 가족들을 떠올렸다.
모르기는 몰라도, 이 작품은 자기들은 모르는 유명한 미술가가 만든 작품일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느낌을 받을 수는 없을 테니까.
최근에는 이 조각을 보고 싶어 가게 앞을 찾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니, 가게 앞은 영업 시간이 아니어도 붐빌 때가 많았다.
하여간, 여러모로 희한한 가게였다.
그리고 영업시간이 되면,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왜 가게의 이름이 ‘고미네’ 인지를.
“다우웅!”
이 조금 묘한 가게에는 아기곰이 두 마리나 살고 있었다.
물론 간판에 그려진 곰과는 생김새가 조금 다르지만, 어쨌든 곰을 키우는 횟집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야, 말이 되냐? 횟집에 왜 곰이······. 진짜 있네?”
“거봐, 여기 진짜 판다랑 북극곰이 있다니까? 그래서 고미네인가 봐.”
“이래도 되는 거야?”
“이거 워싱턴 협약 위반 아니야?”
“그건 또 뭐야.”
“멸종위기 동물 보호를 위한 협약, 모르냐? 지구 온난화로 북극곰들이 갈 곳을 잃고 있는 이 시기에, 관심 좀 가져라.”
“그걸 알고 있는 게 이상한 거 아니야?”
그때, 호기심 어린 눈으로 가게 주위를 기웃거리는 인파를 뚫고, 새하얀 곰돌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방금 내린 눈처럼 새하얀 털, 조금 큰 머리에 짤막한 팔다리, 3등신에서 3.5등신 정도되어 보이는 비율과 통통한 솜방망이, 살짝 튀어나온 배까지.
인형처럼, 아니 인형보다도 더 귀여운 생김새를 가진 아기 백곰이었다.
“아웅!”
가게 문에 걸려있던 Close는 정갈한 흰 털을 가진 아기곰의 손에 의해 Open으로 바뀌었다.
“우와, 북극곰이 가게를 여네? 여기 진짜 신기하다!”
“실화냐······.”
신기하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향해, 북극의 신사, 아기 백곰 선생께서는 정중하게 예를 갖추어 배꼽 인사를 했다.
“아웅!”
손님에게는 예의 바르게.
서비스의 기본이다.
평소에도 점잖고 예의 바른 아웅이에게, 서비스직은 천직일지도 몰랐다.
“어떻게 해, 너무 예쁘다!”
“인사도 할 줄 알고, 우는 것도 이상하고······. 저거 진짜 곰이 아니라 펫인가 본데?”
“펫이면 어떻고 곰이면 어때, 귀여우면 됐지.”
인사를 했을 뿐인데 쏟아지는 관심과 애정 어린 시선.
아웅이는 역시 가게 일을 돕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나이에 비해 점잖고 어른스럽지만, 아웅이 역시 아직 사랑이 필요한 아기곰이니까.
“아웅!” (그럼 오늘도 힘내야지!)
오후 4시, 엄마 아빠가 준비를 마치면, 팻말을 Open으로 바꾸어 가게 문을 여는 것으로 아웅이의 일과가 시작된다.
“다우웅······.”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열심히 음료수와 술병을 닦아 냉장고 안에 넣고 있는 아기 판다가 보였다.
아웅이에 비하면 더없이 느리고 게을러보이는 동작.
하지만 다웅이는 싫은 소리 한 번 없이, 묵묵히, 아주 성실하게 제 할 일을 해내고 있었다.
“오구오구, 우리 다웅이는 오늘도 열심히 일하네에? 어쩌면 이렇게 이쁠까아?”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엄마의 손길, 그리고 상으로 주어지는 달콤한 포도알 하나.
가만히 누워 있는 게 가장 좋은 다웅이를 움직이게 하는 원천이었다.
“다웅!” (맛있어요!)
“아이고, 맛있어요?”
게다가 엄마는 신기하게도 다웅, 다웅하고만 말하는데도 매번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아들었다.
아빠는 가끔 다웅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헷갈려 하지만, 엄마는 틀리는 법이 없다.
“더 줄까?”
“다웅!”
“알았어어, 그럼 이따가 또 줄게요오.”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지만, 아웅이, 다웅이와 말할 때면 늘 엄마는 노래하듯 고저를 넣어 말했다.
그리고 언제나 말꼬리를 늘인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웅이도, 아웅이도, 그게 좋았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여기 광어 회요.”
“사장님 매운 탕 추가요!”
“크, 처음에는 곰돌이 때문에 신기해서 왔는데, 여기 소주 맛이 아주 각별하다니까?”
“왜 소주를 꺼내놔도 미지근해 지지가 않지?”
“아예 냉장고에 넣어놓고 먹는 기분이래도. 내가 이것 때문에 여기를 못 끊는 다니까.”
가게 문을 연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열 개에 가까운 테이블은 만석.
오늘도 장사가 잘 된다.
아기 백곰의 마법으로 최적의 온도를 유지하는 맥주와 소주 때문에, 조금 이른 시간임에도 반주를 하는 손님들이 많았다.
“아웅, 아웅!” (다웅아, 손님들 대기표!)
슬슬 손님들이 몰리기 시작하자, 아웅이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대기 순번이 적힌 작은 카드와 화이트 보드를 꺼냈다.
“다웅.”
다웅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뒤 아빠가 사준 자신의 전용 의자를 가지고 문 앞으로 나섰다.
아빠는 앉아 있는 걸 좋아하는 다웅이를 위해 멋진 의자를 사줬다.
등받이에는 푹신한 쿠션이 달려 있고, 바닥에는 엄마 아빠가 직접 골라준 방석이 붙어 있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의자였다.
다웅이는 이 의자에 앉아 있을 때가 가장 좋았다. 폭신하고 부드러운 게, 꼭 엄마에게 안겨있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진짜 엄마가 안아주는 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지만.
“다, 웅!”
다웅이는 가게 앞에 늘어선 손님들 앞에 의자를 턱하니 내려놓고는 곧장 화이트 보드를 끌어안았다.
<< 지금은 손님이 많습니다. 대기표를 받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
<< 포장도 가능합니다. 포장을 원하시는 손님은 다웅이에게 말씀해 주세요. >>
“꺄아, 너무 귀여워!”
“쟤 이름이 다웅이래, 너무 귀엽지 않아?”
“사진 찍자, 사진, 사진!”
한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면, 손님들이 돌아가질 않는다.
다웅이는 늘 그것이 의문이었다.
어째서 우리 가게 손님들은 돌아가지 않을까?
일단 다웅이가 안내판을 들고 밖으로 나서면, 사람들의 숫자는 줄기는커녕 점점 더 늘어났다.
다웅이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심지어 엄마 아빠가 만든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는 손님들도 한참이나 가게 앞을 서성이다 가곤 했다.
“꺄아! 나 다웅이랑 악수했어!”
“어때, 어때? 진짜 부드럽지?”
“젤리 엄청 말랑말랑해! 털도 진짜 부드럽고!”
오늘은 제법 나이가 어려 보이는 여자들이 앞번호다.
이런 날이면 다웅이는 약간의 피곤함과 즐거움을 동시에 느꼈다.
위대한 곰을 알아보는 듯 존경심이 가득 담긴 눈길을 받는 것은 좋았지만, 본디 열혈팬이란 스타를 조금 피곤하게 만드는 법이니까.
‘다웅······.’ (고미 형아는 맨날 이런 일에 시달리는 걸까?)
매일 바깥을 돌아다니는 아기곰 삼형제의 맏이는, 늘 열혈팬들에게 둘러싸여 있을까?
기분은 좋겠지만, 역시 꽤 성가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웅!”
테이블에 앉아 있던 일행 하나가 계산을 마치고 가게 밖으로 나가자, 다웅이는 맨 앞에 선 사람에게 솜방망이를 내밀었다.
그리고는 카드를 넘겨받아 그 위에 새겨진 1이라는 글자를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이며 솜방망이로 대문을 가리켰다.
‘들어가도 좋다’는 신호였다.
“꺄아! 너무 귀여워, 들어가도 된대!”
가벼운 손짓 한 번에 자지러지는 사람들의 반응에, 다웅이는 약간의 피로감을 느꼈다.
역시, 스타의 삶은 피곤한 법이다.
“저기, 우리는 포장인데······.”
포장이라는 말에 아기 판다는 곧장 솜방망이를 들어 은색의 종을 울렸다.
- 딸랑, 딸랑!
그러자 이내 엄마가 나와 주문을 받았다.
“잘했어요 다웅이, 조금만 더 고생해요. 좀이따가 저녁 먹자.”
어머니는 머리를 쓰다듬어준 뒤 또 포도 한알을 다웅이의 입에 넣어주고 가게로 총총 살졌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기다리고 기다리던 저녁 시간이 돌아왔다.
“자, 오늘은 우리 아웅이랑 다웅이 좋아하는 연어 덮밥이에요!”
가게에서 팔지는 않는 메뉴지만, 아빠는 종종 연어 덮밥을 만들어 주곤 했다.
그리고 저녁 시간이면, 언제나 또다른 즐거움이 다웅이와 아웅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형!”
“사매!”
“다, 다웅?!”
연어 덮밥을 먹던 다웅이는 장삼을 입은 두 남녀가 재회하는 장면에서 홀린 듯 숟가락을 멈추었다.
무협 영화! 이렇게 멋진 게 있는 줄 몰랐다.
다웅이는 요즘 무협 영화에 푹 빠져있었다.
식사 시간이면 아빠는 무협 영화나 드라마를 틀어준다.
가끔은 아웅이를 위해 마법사들이 나오는 판타지 영화를 틀어주기도 하지만, 무협 영화를 틀어줄 때가 더 많았다.
다웅이는 그것을 볼 때마다 자신의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다웅, 다웅!”
“오구, 우리 다웅이도 저렇게 멋있는 사람이 돼서 사람들을 도와줄 거예요? 그럼 밥 잘 먹고 더 튼튼해져야겠네?”
자신의 꿈을 응원해주는 엄마의 한마디에, 다웅이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연어 덮밥을 한 입 떠넣었다.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멋진 협객이 되려면 밥을 잘 먹어야 한다니! 좋은 걸 배웠다.
그런 건 영화에 나오지 않았는데, 역시 엄마는 뭐든지 다 알고 있는 게 틀림없다!
“다웅!”
식사를 마친 다웅이는 잠시 휴식을 취하다 얼른 일어나 상을 치우기 시작했다.
얼마 전 영화에서 점소이로 위장한 채 음식을 나르며 수련을 하는 것을 봤다.
‘다우웅······.’
생각해보니 물잔이나 접시를 치울 때 팔을 안으로 접으며 원을 그리는 동작이 적의 공격을 흘리는 동작과 비슷했다.
게다가 다웅이는 최근 한가지 엄청난 것을, 무려 ‘스스로’ 깨달았다!
쟁반을 반대쪽에 놓으면, 당기는 동작이 아니라 미는 동작까지 연습할 수 있었다!
‘다웅!’ (역시, 난 위대한 아기곰이었어!)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아마 이건 고미형도 모를 거다.
언젠가 이 수련으로 엄청나게 강해지면, 고미 형에게도 살짝 귀띔을 해주리라.
그것이 야심 찬 아기 판다의 계획이었다.
‘다웅, 다웅♪’
기분이 좋아진 다웅이의 꼬리가 빙글빙글 돌아갔다.
무협 영화에 나오는 협객들처럼 현란하고 멋진 동작으로 악당들을 무찌르는 아기 판다.
평상시에는 조용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초절정의 무공으로 적들을 제압한다!
‘다웅!’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뛰는지, 아기 판다의 솜털이 빳빳하게 곤두섰다.
그렇게 다웅이가 협객이 된 자신의 멋진 모습을 상상하고 있을 때,
“어머, 큰일났네. 아웅아, 잠깐 마트에 좀 다녀올래?”
엄마가 아웅이 형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아웅이 형은 종종 마트에 다녀온다.
야채는 토생원의 화원에서 공수할 수 있지만, 그 외에 잡다한 것은 마트라는 곳에서 사와야 한다.
그리고 장사 도중에 그런 것들이 떨어지면 종종 아웅이 형이 마트로 심부름을 간다.
그 사이, 가게를 지키는 것은 다웅이의 몫이었다.
“아웅, 아웅!” (다웅아, 가게 잘 지키고 있어야 해! 알지? )
“다웅!” (걱정하지 마!)
협객, 다웅이는 곧장 고개여 걱정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고미 형도 없고, 아웅이 형도 없다.
이럴 때는 오직 자신만이 이 가게와 엄마 아빠를 지킬 수 있었다.
- 와장창!
“아이, x팔!”
그리고 사건은, 생각보다 빨리 일어났다.
아웅이가 나간지 3분도 채 지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다웅?’ (이능력자인가?)
가게에서 술을 마시던 이능력자 중 하나가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인간들의 기준으로 따지면, 제법 등급이 높은 사람인 것 같았다.
“놔, 안놔? 이 x팔, 진짜 내가 x 같아서!”
객잔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말리던 주인장과 점소이가 그것을 말리다 다친다.
무협 영화에서 많이 보던 장면이었다.
하지만 이곳을 지키는 점소이는······. 평범한 아기곰으로 위장한 대협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