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286화 (286/300)

EP.286 영웅(英熊)의 귀환.

- 쿠릉, 쿠르릉······.

고미가 검은 균열로 사라진지 정확히 33일째 되는 날.

여전히 균열 안에서는 낮은 뇌성과 폭음이 울리고 있었다.

다만 처음 그 둘이 균열로 들어갔을 때보다는 그 소리의 크기도, 소리가 들려오는 빈도도, 확실히 줄어들어 있었다.

대체 저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아직 싸움이 이어지고 있으며, 고미가 죽지 않았다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

“김수하, 나 왔다.”

봉식이가 도시락 하나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먹고 해라.”

지난 한 달간, 봉식이를 비롯한 사람들은 정기적으로 용귀를 타고 외부로 나갔다.

그 중 일부는 가족들 –이곳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가족들을 포함해서- 에게 안부를 전하거나 먹을 것과 텐트를 비롯해 필요한 것을 조달해 왔다.

한 달은 제법 긴 기간이니, 먹지도 자지도 않고 지낼 수는 없었으니까.

또 일부는 포션이나 단약의 재료 등을 가지고 돌아오기도 했다.

그간 나는 한 번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나는 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했다.

고미가 돌아오든, 그렇지 못하든, 나만이 할 수 있는, 또 내가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으니까.

“아직도 방법이 없는 거냐?”

도시락 뚜껑을 여는 봉식이의 시선은 검은 균열로 있었다.

“응.”

저 균열이 대체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차원 간 이동이 가능하다는 용궁의 마력을 풀로 발휘해도 저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고미가 승리하기만을 빌며 이 앞을 지키는 것 뿐이었다.

“야! 빨리 빨리 날라!”

전송진 근처에서는 문경준과 이강혁 씨가 패왕, 저스티스의 헌터들과 함께 짐을 나르고 있었다.

목숨을 건 전투를 치른 후이기 때문에 생긴 전우애 때문일까?

아니면 고미의 압도적인 무력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확실히 기어야겠다고 느꼈기 때문일까?

저스티스와 패왕의 관계는 눈에 띄게 개선되어 있었다.

“아우웅······.”

“다우웅······.”

“우우웅······.”

한편, 균열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는 백곰과 흑곰, 그 둘을 섞어 놓은 것 같은 아기 판다, 이렇게 세 아기곰이 모여 기웅제(?)를 지내고 있었다.

아웅이는 콜라를, 다웅이는 과일을, 그리고 까망이는 초코바를.

그렇게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과 고미가 좋아하는 음식을 놓고 원조 아기곰의 무사 귀환을 비는 것이 그들의 일과였다.

“후······. 답답하다. 대체 어떻게 되고 있는 거야?”

봉식이가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모르지.”

하지만 나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만에 하나 고미가 패배한다면, 저 안에서 튀어나올 악몽과 죽을 때까지 싸울 준비를 하는 것 외에, 딱히 할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일단 밥이나 먹어라. 너 요새 하루에 한끼는 먹냐? 그러다 고미 나오기도 전에 네가 먼저 죽는다.”

“하루 안 먹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매일 같이 이어지는 봉식이의 똑같은 잔소리에 억지로 숟가락을 들려는 찰나······.

꿀태창에서 낯익은 금빛이 번쩍였다.

“왜 그래?”

숟가락을 내려놓자, 봉식이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바라봤다.

“잠깐만, 기다려.”

<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

< 메인 퀘스트 : 진정한 영웅(英熊)이 되어보자! (완) >

< 달성 조건 >

1. 가짜 고미를 물리칠 것. (완)

2. 만수왕을 물리칠 것. (완)

3. 드래곤 로드를 물리칠 것. (완)

4. 악당들의 우두머리인 ???를 물리칠 것. (완)

“이, 이겼어······.”

홀린듯 중얼거린 말에, 봉식이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정말?”

“응, 빨리 사람들 불러 모아.”

“어, 어, 기다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2미터에 가까운 거구가 사람들에게 달려가며 큰소리로 외쳤다.

“이겼어요! 이겼어! 고미가 이겼다고!”

“정말요?”

“삐이이!”

“아웅!”

“다우우웅!”

“우웃, 정말이냐? 정말이더냐!?”

승전보가 전해지자, 각자의 방식으로 고미가 무사하기만을 기원하며 자리를 지키던 사람들이 하나둘 달려왔다.

그 숫자는 대략 천 명 이상, 실상 드라고니아로 진격한 사람들 중 거의 전부가 남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용궁 식구들까지 합치면 그 수는 족히 이천에 달했다.

“고미님!”

“얼른 나오셔야 할 텐데.”

“의료팀 불러! 단약이랑 포션 준비하고! 초코바는 넉넉하겠지?”

“미리 사놓은 석청이랑 천연 벌꿀도 가져와!”

고미의 귀환만을 목놓아 기다리던 사람들이 한마디씩 떠들어대니, 용궁 주위의 분위기는 가히 설이나 추석 연휴전 시장통을 방불케 했다.

교대로 현세에 다녀온 사람들이 고미를 위해 사 온 선물들만 쌓아 놓아도 족히 작은 언덕 하나는 만들 수 있었다.

크고 작은 그 선물들은 모두 고미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이자, 동시에 녀석이 무사하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소망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고미는 돌아오지 않았다.

‘역시, 이렇게 되는 건가······.’

이에 나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내가 생각한 가장 좋은 결말과 가장 나쁜 결말, 그 둘 중 어느 것도 아닌······.

세 번째 상황.

“전부 진형 갖춰요. 세 번째 상황입니다.”

“세 번째다!”

“플랜 C!”

“플랜 C!”

“드래곤들은 하늘을, 헌터들은 지상을 막아라!”

“결계 쳐!”

“대열 유지해!”

“대열 유지!”

포위망이 완성된 것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퀘스트의 첫 번째 보상을 사용했다.

< ??? 소환권을 사용합니다. >

- 우웅······.

소환권을 사용하자, 낯익은 인영 하나가 흐릿하게 나타나 실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다들 결계 쳐요!”

< 흑곰덫(S)를 사용합니다. >

한 달간 밤낮없이 연구한 결과 흑곰덫의 등급은 어느새 B급에서 S급이 되어 있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 대처하려면, 흑곰덫만한 스킬이 없으니까.

뒤이어 용궁에서 물결 같은 파문이 퍼져 나와 또 한 겹의 결계를 형성했다.

마지막으로는 드라고니아의 결계까지 동원해 우리가 원하는 걸 들어주지 않는 이상, 절대로 나갈 수 없는 포위망을 형성했다.

그렇게 물샐 틈 없는 포위망이 완성되자, 타이밍 좋게 흰색 셔츠에 슬릭스를 입은 너드 같은 사내 하나가 나타났다.

“응? 사람이 많네요? 이렇게까지 환영해 주실건 없는데······.”

자신을 둘러싼 드래곤과 용궁 식구들, 헌터들을 발견한 관리자는 난감하다는 듯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러나 이어지는 그의 말에, 자리에 있던 모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훨씬 더 일 처리를 잘해주셨네요. 덕분에 제 계획이 완성됐습니다. 이제 성가신 적들은 모두 처리됐으니······. 제가 원하는 우주를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잠깐, 지금 뭐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한 상황에, 자리에 있던 모두는 잠시 넋이 나가버렸다.

그리고는······.

- 챙!

누군가가 검을 뽑는 소리가 나의 정신을 돌아오게 만들었다.

“이 새끼가!”

하지만 내가 참숯 1호를 뽑아들자, 관리자는 갑자기 두손을 들어올리며 항복을 하는 듯한 제스쳐를 취했다.

“어, 어, 이, 이게 아닌데······.”

그리고는 눈에 띄게 당황한 표정으로 어쩔 줄을 몰라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죄, 죄송해요. 농담인데, 재미없었나요?”

······.

이 미친놈이 진짜······.

“이상하다, 지구에서 유행하는 소설이나 웹툰이라는 것에서 저 같은 사람의 역할이 보통 이런 거라고 들었거든요. 그게 클리셰라고. 그래서 농담 한 번 해본 건데······.”

죽여버리고 싶다.

진심으로, 죽이고 싶다.

이렇게 사람을 열받게 만드는 건 황금의 군주 이후 처음이야.

아니, 단순히 분노를 자극한다는 면에서는 이 자식이 한 수 위일지도······.

“너, 진짜 뒤지고 싶냐?”

“사숙조, 제가 저놈의 사지를 찢어놓겠습니다.”

“다웅!!!”

“수하 씨, 이거 죽여도 됩니까?”

“알틴, 저거 지져버려!”

“삐이!”

맥락도 센스도 없는 어처구니 없는 개그에 분노한 숲속 친구들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관리자는 황급히 우리가 원하던 답을 내놓았다.

“어, 어어! 이러지 마세요! 고, 고미 구해야죠, 고미!”

“하아······. 다들 멈춰 봐.”

고미를 돌려주겠다는 말에, 나는 친구들에게 이 하나부터 열까지 사람을 끓어오르게 만드는 너드 놈의 목숨을 잠시 연장시켜 주자는 신호를 보냈다.

“진짜로 죽기 싫으면 쓸데없는 농담 같은 거 하지 말고 빨리 고미를 데려올 방법이나 말해.”

“아, 그게······. 저 균열에는 악몽이 만든 결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고미급의 존재가 아니면 애초에 저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죠.”

그 순간, 나의 머릿속에 자연스레 Gomi급 스킬 획득권이 어디에 쓰여야 하는지 떠올랐다.

“내가 들어가야 하는 거네.”

“네.”

고미는 폐쇄형 던전이나 그 어떤 결계라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드라고니아에 쳐들어올 때 그 스킬을 사용하지 못했던 건, 홀로 적진에 뛰쳐 들어왔다가 가짜 고미를 마주치면 모든 게 끝이었기 때문이고.

< Gomi급 스킬 획득권을 사용합니다. >

< 새로운 스킬을 획득합니다 : 엉곰엉곰 (Gomi) >

“그나저나, 정말 고민 한 번 안 하시고 별로 쓸모도 없는 스킬을 익히시네요. 웅신입기혈 같은 걸 선택하면 악몽과 고미가 없는 지금 우주 최강의 존재가 될 수 있을 텐데.”

“이렇게 될 거 알고 준거잖아.”

“선택은 수하 씨가 한 거죠.”

“시끄러워, 넌 여기서 고미 데리고 올 때까지 대기하고 있어. 고미한테 무슨 일 생겼으면, 나와서 죽여버릴 거니까.”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어딜 도망가겠어요. 도망가고 싶어도 못 가겠고만.”

여전히 주먹을 부르는 발언의 연속이었지만, 관리자의 입가에는 아주 흡족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여태까지 보여왔던 어색하고 억지스러운 것과는 다른, 아주 자연스러운 미소가.

짧은 대화를 마친 후, 나는 얄미운 관리자와 고미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뒤로 한 채 검은 균열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 * *

검은 균열을 지나 도착한 곳은, 부서진 바위와 모래, 알 수 없는 무언가의 파편으로 가득 찬 광활한 공간이었다.

동이님의 이공간과 마찬가지로, 바닥도 천장도 없는.

나는 참숯 1호의 불꽃과 감각 강화 스킬에 의지해 사방으로 고미를 찾아다녔다.

“고미, 고미!”

하지만 아무리 목이 터지게 불러보아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에 나는 자꾸만 흐려지는 눈을 몇 번이나 닦아가며 몇 시간이고 고미를 찾아 헤맸다.

그렇게 눈과, 귀와, 코까지 모두 동원해서 우리의 작은 영웅을 찾기를 수 시간······.

“고미!”

나의 시야에 부서진 파편 사이를 시체처럼 떠다니고 있는 초콜릿색 솜뭉치의 모습이 들어왔다.

악몽을 물리친 위대한 영웅은 죽은 것처럼 미동도 없이 잠들어 있었다.

* * *

“아, 아우웅!”

“다웅!”

“고, 고미! 이, 이게 어찌된 것이냐! 너처럼 위대한 곰이 어, 어째서!”

고미를 안은 채 균열 밖으로 나가자, 까맣고 하얗고 얼룩덜룩한 아기곰 셋이 번개처럼 나에게 달려왔다.

“야, 김수하!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곰 선생님!”

“고미님!”

“삐, 삐잇!?”

“고, 고미님! 이,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이어서 고미의 상태를 확인한 친구들이 새파랗게 질려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야!”

나는 대답 대신 관리자에게 달려가 녀석의멱살을 움켜쥐었다.

“이게 뭐야!”

균열 안에서 죽은 것처럼 꼼짝도 않는 고미를 발견한 순간, 나는 곧바로 웅기조식과 힐을 사용했다.

하지만 고미는 여전히 죽은 것처럼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힐은 A급이라 그렇다 쳐도, 지금 내 기공술은 명실상부한 초월자급이다.

그런 내 웅기조식이 먹히지 않는다는 건, 고미의 상태가 단순한 치료 스킬이나 기공술로 되돌릴 수 없는 상태라는 의미였다.

“켁! 김수하 씨, 지, 진정해요!”

멱살은 잡힌 관리자는 연신 콜록거리며 간신히 손을 들어 까망이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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