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85 고미, 사라지다.
“우, 우웃······!?”
웅비어천가를 발동한 순간, 보송보송 황금 솜뭉치로 변한 고미의 털이 바짝 곤두섰다.
“이, 이럴 수가······. 히, 힘이······.”
- 콰르릉······.
이어서 천둥과도 같은 굉음이 울려퍼지며 녀석의 몸에서 꽃잎처럼 붉은색의 불씨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화, 황금 불곰!?’
그렇다, 지금 고미는 문자 그대로 ‘불곰’이 되어있었다.
그것도 온몸에서 금빛을 뿜어내며 타오르는 황금 불곰.
“친구들의 마음이······. 모두의 힘이, 투지가······. 이 몸에게 흘러든다!”
불타는 아기곰의 꼬리에 바짝 힘이 들어가고, 둥그런 귀가 쫑긋 일어섰다.
“누구도 이 몸의 친구들을 해칠 수 없다!”
우렁찬 웅자후가 울려 퍼지자, 해일과도 파문이 허공을 가로지르며 드라고니아의 대지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뒤흔들렸다.
“하압!”
이어지는 솜방망이질에, 용궁의 상공에서 소나기처럼 쏟아지던 검은 화살들이 모조리 불타 사라졌다.
- 쉭!
다음 순간, 눈부신 빛을 내뿜던 황금 불곰이 순간이동을 하듯 시야에서 사라졌다가 아웅이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는 의식을 잃은 채 바닥에 쓰러져있는 아웅이의 등에 손을 얹었다.
“아, 아웅······.”
고미의 기가 흘러들자, 기절해 있던 아웅이가 반짝 눈을 뜨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정신을 차린 아웅이는 곧장 새하얀 빛을 뿜어내며 우선 자신의 상처를 치료했다.
힐러가 다친 상태로는 아무도 구할 수 없으니, 친구들을 도와주려면 자기 몸부터 살펴야지.
“아웅이, 이것으로 친구들을 구해주거라.”
진정한 슈퍼 아기곰으로 거듭난 고미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동생에게 황금색 불꽃에 휩싸인 청심환 하나를 넘겨주었고,
“아, 아웅!”
아웅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앙증맞은 입을 벌려 그것을 덥석 집어삼켰다.
- 우웅······.
그러자, 눈처럼 새하얀 아웅이의 솜털들이 빳빳하게 곤두서며 녀석의 몸에서 냉기와 함께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지금 아웅이의 가슴팍에는 새하얀 눈송이 모양의 젤리 원자로가 생겨 있었다.
‘괴, 굉장해. 아웅이의 젤리 원자로는 특별 커스텀이 들어가 있구나.’
그렇게 맞춤 원자로의 위용(?)에 감탄하고 있을 때,
“아우웅!”
청심환을 먹고 파워업한 순둥이 백곰이 빠르게 손을 휘둘러 새하얀 얼음 보드를 만들어냈다.
“수하! 저 녀석은 내가 맡겠다! 너와 친구들은 용궁으로 돌아가서 다른 비실이들을 지켜주거라!”
고미의 커다란 눈은 투지로 별처럼 빛났고, 어깨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 어떤 악당이 와도 물리치겠다는 결의와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득한 그 모습에서는, 늘 녀석이 입에 달고 살던 진정한 영웅(英熊)의 기백이 느껴졌다.
“아웅!”
고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웅이가 자신의 곁에 기절해 있던 다웅이를 번쩍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우리를 향해 어서 따라오라는 듯 손짓을 하며 얼음 보드를 타고 미끄러지듯 용궁 근처로 날아갔다.
“저희도 가죠.”
나는 넋을 잃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친구들과 함께 전송진 근처로 이동했다.
마음 같아서는 고미와 함께 저 악당과 맞서고 싶지만······. 악몽을 상대로 우리는 짐덩어리에 불과하니까.
“고미, 무슨 수를 쓴 것이냐?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강해질 수 있지?”
그 순간, 검은 보름달 같은 구체에서 의혹이 가득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너는 나를 막을 수 없다.”
뒤이어 구체가 가볍게 떨리며 사방으로 검은 안개를 뿜어냈다.
“이 못된 놈! 감히 이 몸의 친구들을 다치게 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 화륵!
하지만 황금 불곰이 힘차게 발을 구르자, 금빛으로 타오르는 화염 장벽이 솟아나 용궁 쪽으로 확산되던 안개를 모조리 막아냈다.
“아, 아웅!” (혀, 형아! 멋있어! )
“다우웅!” (역시, 형은 진정한 곰이었어!)
아웅이와 치료를 받고 깨어난 다웅이가 솜방망이를 휘두르며 자신을 응원해주자, 원조 아기곰의 짤막한 꼬리가 달랑달랑 흔들렸다.
“우, 우웃······. 저, 저것이 진정한 곰이구나······!”
그 사이, 파워업한 아웅이의 치료 스킬로 정신을 차린 까망이 역시 고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온몸을 흥분으로 바르르 떨었다.
자신이 꿈꾸던 진정한 곰의 모습에 너무나도 감동을 받은 탓일까?
줄곧 우리의 눈치를 살피던 녀석이 어느새 우리가 주위에 있다는 것마저 잊고 홀린 듯 황금 불곰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 우웃······!”
잠시 후, 정신을 차린 까망이는 아웅이의 가슴에 솟아난 눈송이 원자로를 보고는 부럽다는 듯 반짝반짝 눈을 빛냈다.
심지어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더니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자신의 가슴팍에도 저런 멋진 것이 새겨지기를 바라는 듯한 모습.
- 쾅!
그때, 저 멀리서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폭음이 울려 퍼졌다.
이에 나의 시선은 자연스레 반달곰으로 변한 까망이에서 원조 아기곰으로 옮겨갔다.
“진, 대력 곰강장!”
고미가 도톰한 젤리를 앞으로 내지르자, 허공에 거대한 황금색의 젤리가 솟아나 악몽의 본체를 공격했다.
“탄지곰!”
온몸에서 금색 화염을 뿜어내는 황금불곰은 노도처럼 공격을 이어나갔지만,
“진, 불도장!”
- 콰릉!
검은색 안개는 때로는 검으로, 때로는 창이나 가시, 때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로 변해 계속해서 고미의 공격을 막아냈다.
“말도 안돼······.”
“어떻게 저런 괴물이 존재할 수 있지?”
“고, 고미님이 정말 이길 수 있을까?”
상상을 초월하는 두 먼치킨의 대결에, 자리에 있던 헌터들의 얼굴에는 다시금 불안한 기색이 떠올랐다.
심지어 고미의 힘을 가장 잘 알고, 또 신뢰하고 있는 숲속 친구들마저 초조한 듯 잘근잘근 입술을 씹어댔다.
- 쿠릉, 쿠르릉!
둘의 싸움은 그야말로 천재지변을 방불케 했다.
공격을 주고 받을 때마다 대지에는 커다란 구덩이가 생겨나고, 집채만한 바위가 부서져 가루가 되었다.
멀찍이 보이던 산과 언덕은 평지에서 분지가 되었다가, 그대로 갈라져 깊은 낭떠러지로 변했다.
‘애초에 우리가 끼어들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어······.’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아무리 강해져도, 악몽에게 직접 맞서려면 천 년은 이르다는 것을.
관리자 역시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나에게 다른 초월자들에게 맞설 수 있는 스킬들을 주고, 악몽은 고미에게 맡겼을 것이다.
“까망아, 혹시 악몽의 약점 같은 건 없어?”
그렇다고 가만히 구경만할 마음은 없었다.
나는 나대로, 어떻게든 고미를 도와줄 방법을 찾아야 하니까.
“우, 우웅······. 없느니라. 설마 저 상태가 된 악몽에게 맞설 수 있는 존재가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나의 질문에 까망이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저게 대체 뭔데?”
“악몽은 나에게 자신이 악당들과 맞서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다고 말했다. 육체도, 생명도, 영혼도······. 그리고 그 대가로 궁극의 형태로 변할 것이라고 말했느니라······.”
“궁극의 형태?”
“본래 악몽은 영혼 수확자를 통해 타인의 능력이나 힘을 흡수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죽인 상대의 힘을 일부나마 자신의 것으로 삼는 것도 가능하지.”
까망이의 설명을 듣는 순간, 나는 어떻게 악몽이 일곱 수호자 중 나머지 여섯을 홀로 죽일 수 있었는지 깨달았다.
동시에 지금 저 녀석은 여섯 수호자의 힘은 물론이고, 수천, 어쩌면 수만 년에 걸쳐 셀 수 없이 많은 존재의 힘을 흡수해온 존재라는 것도.
그 사이 네 번이나 고미와 싸워 힘을 잃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가 되고도 남았을 것 같았다.
“그리고 저 형태에 이르면······. 굳이 죽이지 않더라도 자신의 안개에 닿은 모든 존재의 힘을 흡수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악몽은 육체를 잃고, 천천히 영혼이 파괴되어 결국 영원히 소멸하고 말지.”
설마······. 아까 가시에 맞자마자 힘이 빠진다고 느꼈던 건 그런 이유였나?
“잠깐, 그럼 고미도 힘을 흡수당하고 있는 거 아니야?”
그때, 까망이의 설명을 듣고 있던 봉식이가 불안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아니, 고미의 힘만 흡수할 수 없는 걸 거야.”
“그렇다······.”
나의 대답을 들은 까망이는 애써 괜찮은 척 담담한 말투를 유지했지만, 녀석의 꼬리는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상처 받을까 봐, 그것 때문에 까망이를 만들었다는 말은 일부러 하지 않았는데······.
- 콰릉!
까망이와 내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하늘에서는 끊임없이 금빛 화염과 검은 안개로 이루어진 폭풍이 몰아쳤다.
“설마 나쁜 짓을 하기 위해 자신의 영혼까지 대가로 바칠 줄은 몰랐다. 곰은 아니라도 진정한 영웅이라고 믿었건만······.”
악몽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인 아기 흑곰이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검은 회오리가 몰아치는 하늘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이 몸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고미를 돕고 싶지만······. 이렇게 약해진 몸으로는 악몽의 먹이가 될 뿐이다.”
그렇게 까망이가 슬픔에 잠겨있을 때,
“걱정하지 마십시오. 고미님은 반드시 승리하실 것입니다.”
부상자들의 치료를 마친 수다르 님이 다가와 울먹이고 있던 아기 흑곰을 위로해 주었다.
전송진 주위에는 어느새 정적만이 가득했다.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이후 우리는 동이님의 마지막 마력을 쥐어짜 만든 결계와 고미가 펼친 결계 속에서 말없이 최후의 일전을 지켜보았다.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누구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외롭게 최후의 적을 상대하는 고미를 도와질 수는 없을지언정, 목숨이 아까워서 먼저 달아나지는 않겠다는 결의가 느껴졌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였다.
그저 고미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며, 자리를 지킬 뿐.
“이야아압!”
고미가 기합을 내지를 때마다, 어두운 밤하늘이 금빛으로 물들었다.
대낮처럼 환히 밝아진 하늘에서 검은 구체는 더욱더 선명한 검은색을 띠었다.
그리고 새카만 밤하늘이 보랏빛으로 변할 무렵······.
무언가 이상한 것이 나의 시야에 들어왔다.
‘땅이······. 이상해.’
드라고니아의 대지는 어느새 옅은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보다 정확히는, 악몽을 중심으로 용궁에 이르는 범위 안에 있는 지면의 색이 변해 있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건가?’
단순히 눈의 착각일지도 몰랐다.
밤새 불을 뿜고 산을 부수고 대지를 갚아 엎으며 싸워댔으니, 땅이 그을린 것에 불과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의 직감은 이것이 한없이 불길한 ‘무언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 고미, 땅이 뭔가 이상해! ]
- 우웅······.
고미에게 신호를 보내는 순간, 대지 전체가 먹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시커멓게 물들었다.
“우, 우웃! 서, 설마!”
동시에 까망이가 주먹을 바르쥐며 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모리배! 아니, 수하! 큰일이다! 지금 당장 달아나야 한다!”
[ 수하! 친구들을 데리고 달아나라! ]
까망이에 이어, 원조 아기곰 역시 무언가를 눈치챈 듯 공격을 멈추고 우리에게 날아왔다.
“늦었다, 고미.”
- 콰르릉······.
“말하지 않았느냐, 이걸로 마지막이라고.”
그 순간, 대지를 물들인 검은 기운이 하늘로 솟구치며 커다란 벽을 만들어 냈다.
“다웅!”
“김수하!”
“가자!”
“부숴!”
숲속 친구들은 곧바로 자신들이 가진 최강의 공격을 쏟아냈다.
그러나 검은 벽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괴물처럼 그 공격들을 흡수하며 점점 더 빠르게 자라날 뿐이었다.
그렇게 우리가 막 검은 벽 안에 갇히려는 찰나,
“으아아아! 진, 웅조수!”
황금빛의 발톱이 벽을 갈랐다.
“고미······. 걸렸구나.”
“우, 우웃!?”
하지만 고미가 등을 보이는 찰나, 검은색의 구체가 돌연 활짝 펼쳐지며 녀석을 집어삼켰다.
[ 수하! 가족들을, 친구들을 부탁한다! ]
그것이······. 고미의 마지막 말이었다.
고미를 집어삼킨 악몽은 그대로 줄어들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졌고, 녀석이 있었던 곳에는 가느다란 균열만이 남아 있었다.
* * *
그렇게 한 달이 흘렀지만, 여전히 고미는 돌아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