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284화 (284/300)

EP.284 최후의 싸움(12) : 울려라, 웅비어천가!

“까, 까망아!”

- 쉭!

가짜 고미가 쓰러지기 무섭게, 또다시 수십 발의 검은 화살이 날아왔다.

이번에 그 화살이 노리는 것은 내가 아니라 까망이였다.

“수하! 깜둥이를 지켜라!”

이에 원조 아기곰은 번개처럼 몸을 날려 곧장 날아드는 화살들을 막아냈고,

“아웅아!”

나 역시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오른팔 대신 왼팔로 검을 휘두르며 그 화살들을 쳐냈다.

“아웅!”

이어서 아웅이가 달려와 잽싸게 손에서 새하얀 빛을 뿜어냈다.

“아, 아웅!”

“까망아! 괜찮아!?”

“우, 우우······.”

까망이는 화살에 꿰뚫린 상태로도 나를 밀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손에는 이미 이전과 같은 힘은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도, 도망 가거라······. 이, 이 몸이······. 저, 저 녀석을 막아보겠다······. 모두 도망가라······.”

- 쿠릉, 쿠릉······.

바로 그때, 옅은 뇌성과 함께 하늘 위에 새카만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마치 맑은 물에 먹을 떨어뜨린 것처럼, 텅 빈 허공을 타고 시커먼 ‘무언가’가 서서히 번져나갔다.

그것은 구름이나 안개라기에는 너무나 끈적하고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액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가볍고 밀도가 낮아 보였다.

잠시 후······. 그 기체도, 액체도 아닌 시커먼 무언가가 응집되어 보름달처럼 둥그런 구체로 변했다.

‘저건······. 대체 뭐지?’

감각 강화 스킬이 있었지만, 그 안을 꿰뚫어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왠지 알 수 있었다.

저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저 검은 구체 내부는 그저 텅 비어있을 뿐이다.

“고미 설마 저게······.”

“그래, 저것이 악몽이다. 또다시 형태가 변했구나.”

고미의 표정은 전에 없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전에 녀석이 했던 말에 따르면, 악몽은 자신과의 싸움이 끝난 뒤 다시 만났을 때는 언제나 모습이 변해 있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안개 속에 인간의 형상을 한 무언가가 들어있었지만, 그 다음 두 번은 무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로 탈바꿈했다고.

그리고 이번에는 아예 저 액체인지 기체인지 모를 보름달 같은 구체로 변해버린 것 같았다.

‘아까 전에는 분명히 눈을 만들어 냈었는데······. 그 사이에 또 형태가 변한 건가?’

가능성은 두 가지였다.

아까 전 허공에 나타났던 눈이 속임수였든지, 아니면 드래곤 로드가 죽고 나서 저런 형태로 변한 것이든지.

하지만 이렇게 직접 모습을 드러낼 거라면 굳이 눈 모양을 만들어 낼 이유가 없었을 거다.

즉, 지금 저 모습이 악몽이 최종적으로 변하려던 모습일 가능성이 높았다.

‘설마, 저 모습이 되려고 드래곤 로드가 죽게 놔둔 건가?’

드래곤 로드와 협공하는 것보다 저 형태가 되는 것이 더 강하다.

그러니까 황금의 군주가 죽도록 내버려 뒀다.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역시, 내 실패를 인정해야겠구나.”

그때, 구체에서 인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렇게까지 고미와 똑같은 녀석이 나올 줄 알았더라면 다른 방법을 썼을 것을······. 미안하다, 괜한 고통을 주었구나.”

고미의 숙적이자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인 악당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나의 예상을 완벽히 벗어난 것이었다.

“네 이놈! 거짓말하지 말거라! 너 같은 악당이 정말로 깜둥이를 불쌍히 여길 리가 없지 않느냐!”

분노한 아기곰이 버럭 호통을 쳤으나, 악몽은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이제와서 거짓말을 할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이 싸움이 끝나면, 승패와 무관하게 나는 사라질 터인데. 심연, 너라면 느낄 수 있겠지.”

평소라면 표정을 보고 저 말의 진위를 가려냈을 테지만, 표정은커녕 얼굴조차 없는 녀석으로는 저 말이 진심인지를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그때, 검은 구체 위에 피로 그린 것 같은 암적색의 마법진이 떠올랐다.

그것을 본 동이님의 눈동자는 경악으로 물들었다.

“설마······.”

“그래, 이 저주는 나라고 해도 풀 수 없지. 이것은 서약에 의해서만 발동하는 저주니까 말이야.”

분위기로 보아, 그 저주라는 게 전대 드래곤 로드가 악몽과 손을 잡을 수 있었던 이유인 것 같았다.

[ 동이님, 저게 대체 뭐죠? ]

[ 드래곤 로드들에게만 비밀리에 전해 내려오는 금술 중 하나입니다. 서약을 어기는 자는 결코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하지요······. 게다가 이미 저주가 발동한 상태입니다. ]

드래곤 로드와 악몽이 무슨 서약을 했는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드래곤 로드를 도와 우리를 죽이거나, 혹은 드래곤 로드에게 위해를 끼치지 않는다거나, 뭐 그런 종류의 것이겠지.

‘이게 원수끼리 손을 잡을 수 있었던 이유였나?’

물론 가장 큰 이유는 고미의 존재였을 거다.

그러나 단순히 그 이유만으로 손을 잡기에는 너무 신뢰가 없는 관계.

자칫하면 전쟁 도중에 뒤통수를 때릴지도 모르는 상대와 손을 잡는 건 쉽지 않았겠지.

하지만 황금의 군주도 악몽이 애초에 서약을 어긴 뒤 죽을 각오로 저 저주를 받아들인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아니, 누구라도 그런 방법은 상상하지 못 했겠지.

“대체 그렇게 해서까지 대균열을 파괴하려는 이유가 뭐지?”

“글쎄······. 그것이 옳기 때문이라고 해두지.”

악몽의 말투는 황금처럼 오만하지도 않았으며, 만수왕처럼 거칠고 난폭하지도 않았다.

그저 한없이 덤덤하고, 또 공허했다.

“흥! 웃기지 말거라! 모든 차원을 뒤섞어 혼란스럽게 만든다면 약한 녀석들은 모두 그 악랄한 노란 도마뱀과 애꾸눈 괭이 같은 놈들의 먹이가 될 것이다! 그것의 어디가 옳다는 것이냐?”

“고미, 너는 만날 때마다 같은 소리를 하는구나. 강하다고 해서 약자를 괴롭힐 권리가 없듯이, 강하다고 해서 반드시 약자를 지켜줘야 할 의무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관리자는 대균열의 수호자라는 말도 안되는 자리를 만들어 나의 아버지 같은 희생양을 만들고 있지.”

악몽의 말에, 왠지 모르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녀석은 자신의 아버지라고 말했지만, 그 자리에 고미를 넣어도 똑같은 이야기니까.

실제로 나를 비롯한 숲속 친구들이 관리자에게 분노를 느꼈던 것도, 거의 비슷한 이유였고.

“그리고 이번에도, 너는 지치지도 않고 또다시 내 앞을 막고 있구나.”

“흥!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막아주마! 위대한 이 몸이 있는 한 너는 절대로 뜻을 이룰 수 없느니라!”

고미가 솜방망이를 바르쥐며 목소리를 높이자, 악몽은 옅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이번으로 끝이다. 대균열은 파괴될 것이다. 그리고 이 무의미한 대화도, 너와의 인연도, 이걸로 끝이다.”

그 순간, 돌연 안개로 이루어진 검은 구체에서 작은 돌기 같은 것이 돋아났고,

“피, 피해라!”

초콜릿색 솜뭉치의 털이 또다시 눈부신 금빛으로 물들었다.

- 쉭!

이윽고 구체 표면의 돌기가 수만 개의 화살로 변해 용궁의 머리 위를 가득 채웠다.

‘아, 안돼!’

한 방에 가짜 고미의 몸을 꿰뚫을 정도의 위력을 가진 화살이다.

저 정도 숫자가 떨어지면······.

[ 수다르님! 단약은, 포션은 남아있나요? 사람들은······. ]

- 쏴아아······.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검은 빗줄기가 전송진 근처를 뒤덮었다.

“으아아아악!”

“아아악!”

“크어억!”

수만의 몬스터 대군과 수백의 드래곤, 만수왕과 드래곤 로드를 상대로도 죽지 않았던 동료들의 입에서, 순식간에 처참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몬스터 대군과 드래곤들을 시작으로 만수왕과 S급 몬스터들, 그 뒤를 이어 드래곤 로드의 친위대와 황금의 군주까지······.

이미 지칠대로 지친 웅왕의 헌터들에게 저런 공격을 막아낼 힘이 남아 있을 리 없었다.

“악몽! 네 이놈!”

분노한 아기곰은 곧바로 흑곰덫을 사용해 억수같이 쏟아지는 화살비를 막아냈다.

“고미님!”

“고, 고미님!”

“다, 다들 포션을 마셔라! 회복해!”

“고미님이 시간을 벌어줄 동안 마력을 회복해라!”

“결계를 쳐!”

“어서 회복해서 고미님과 길드장님을 도와라!”

[ 수다르! 친구들은, 친구들은 무사한 것이냐! ]

[ 지금 최선을 다해서 치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약도, 포션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대로라면······. ]

수다르님의 목소리에도, 고미의 목소리에도, 조급함이 가득 묻어났다.

[ 동이님, 용궁으로 돌아가서 결계를 펼쳐주세요! ]

[ 알겠습니다! ]

말을 마친 내가 용귀로 가는 토끼굴을 열자, 인간 형태로 변한 동이님이 빠르게 그 안으로 사라졌다.

[ 신 팀장님! 한유진 씨! 텔레포트로 베이스 캠프 바깥에 있는 헌터들을 전부 전송진 근처로 피신시켜요! ]

이어서 신 팀장님과 마법사 조가 빠른 속도로 흑곰덫 바깥에 있는 헌터들을 퇴각시키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돼.’

악몽이 고미가 아니라 전송진 근처의 헌터들을 먼저 공격한 것은, 그 의도가 아주 명확했다.

‘고미의 힘을 빼려는 거야.’

고미는 친구들의 목숨을 자기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긴다.

지금까지 몇이나 되는 사람들이 죽었을지 모르겠지만, 아마 그 죽음 하나하나를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이고 있겠지.

이런 상황에서 친구들을 먼저 노린다면, 실상 A급 상위 이상의 헌터들을 제외한다면 모두 악몽의 인질이나 다름이 없었다.

고미의 성격상 그 사람들을 죽게 내버려 둘 수 있을 리도 없고.

‘설마 목숨을 버릴 각오로 친구들부터 노릴 줄이야.’

너무나 상상 밖의 전략에, 잠시 사고가 정지했다.

- 콰직, 콰지직······.

설상가상으로, 억수같이 쏟아지는 화살비에 고미의 흑곰덫에 작은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제야 연이은 싸움으로 고미 역시 상당히 지쳐있는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 명이라도 많은 친구들을 살리느라 평소보다 배는 열심히 뛰어다녔으니, 체력 소모도 그만큼 컸겠지.

‘안돼, 정신 차려라, 김수하. 우리가 도와야 해.’

애써 마음을 가다듬은 나는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회복 수단도 거의 다 떨어지고, 체력도, 마력도 바닥.

영지버섯은 깨졌고, 청심환도 없다.

‘이제 남은 무기는······. 그것 밖에 없어.’

초월자급에게 죽지 않고 맞설 수 있는 멤버는 아웅이, 다웅이, 나, 고미, 이강혁 씨와 봉식이, 백천 정도.

‘이 정도로 충분할까?’

나는 곧장 꿀태창의 게이지로 시선은ㄹ 돌렸다.

충전량은 70퍼센트 정도.

흑암과 노인국 씨는 이미 마력이 바닥이다.

차라리 용궁으로 돌려보내는 게······.

[ 흑암, 노인국 씨! 전송진으로 돌아가요! ]

[ 큭······. 미안하다, 김수하! 어서 마력을 회복해서 돌아오마! 고미! 절대로 죽지 말아라! ]

[ 고미 선생! 조금만 기다려 주게! ]

나의 명령에 흑암과 노인국 씨는 분한 듯 이를 악물고 토끼굴로 들어갔다.

그때, 아웅이가 다웅이를 바라보며 무언가 신호를 보냈다.

“아웅!”

“다웅!”

그리고는 말리기도 전에 다웅이가 먼저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 순간, 짤막한 한마디와 함께 텅 빈 허공에서 검은 칼날이 뻗어 나왔다.

“다웅!”

이에 다웅이는 용맹하게 죽창을 휘둘러 그 칼날들을 쳐냈다.

“아웅!”

뒤이어 다웅이의 엄호를 받은 아웅이가 얼음 폭풍을 소환해 검은 구체를 감쌌고,

- 탓!

나 역시 왼손에 검을 쥔 채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아, 안된다! 아웅이! 다웅이!”

고미의 다급한 외침이 울려퍼지는 것과 동시에, 나의 시야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들어왔다.

“아, 아웅!?”

악몽을 감싼 아웅이의 얼음 폭풍이······. 검게 물들고 있었다.

- 쾅!

요란한 굉음이 울리고, 검게 물든 얼음 폭풍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새카만 파편을 흩뿌렸다.

동시에 사방에서 검은 가시들이 뻗어 나와 되돌아온 얼음 파편을 막아내고 있던 다웅이를 공격했다.

“다, 다웅······!”

결국 가시에 찔린 다웅이는 힘없이 아래로 추락했고,

“아, 아웅······.”

아웅이 역시 가시에 찔려 의식을 잃은 채 지상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아, 안돼. 이렇게 강할 줄이야.’

이 멤버라면 게이지가 찰 때까지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네 이노오오옴!”

형제들이 쓰러지는 순간, 검은 구체 위로 금빛 화염이 내리쳤다.

“고미······. 나에게 그런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악몽은 불도장을 막을 생각도 없는 듯 또다시 검은 칼날과 가시를 소환해 숲속 친구들을 하나하나 공격했다.

금빛 화염에 불탄 구체는 끊임없이 줄어들고 있었지만, 이미 생명을 버리기로 각오한 녀석에게 그런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였다.

“아, 안된다! 안돼! 이놈! 어째서 내가 아니라 친구들을!”

고미의 목소리에는 어느새 울음기가 가득했다.

“이 개새끼가!”

봉식이가 날린 권풍도,

“웅혼참!”

이강혁 씨의 검기도,

“하아압!”

심지어 천마의 절초조차, 검은 구체에 닿기도 전에 재가 되어 사라졌다.

“고, 고미님을 도와라!”

“길드장님!”

“무신님을 도와라!”

“돌격! 돌격해라!”

그렇게 친구들이 하나하나 쓰러져 나가자, 분노한 웅왕의 헌터들이 다시 무기를 집어 들고 달려 나왔다.

동시에 70퍼센트를 약간 넘었던 게이지가 엄청난 기세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아, 안된다! 안돼! 악몽! 이, 이게 무슨 비겁한 짓이냐!”

사람들의 비명과 아기곰의 절규가 귓가에 울려 퍼지고 있는 사이······.

- 푹!

친구들을 따라 악몽을 향해 몸을 날린 나의 옆구리에도 검은 가시가 박혔다.

‘조금만 더······.’

웅비어천가의 게이지는 칭찬과 응원, 그리고 투지로 채울 수 있다고 했지.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투지를 보여주는 것 뿐이다.

“수하!”

“우, 우욱······.”

검은 가시가 박히는 것과 동시에, 온몸에서 힘이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말도 안돼, 어떻게 이런 괴물이······.’

고미의 라이벌이라기에 대충 예상은 했지만······. 이건 격차가 너무 크잖아.

‘아직이야, 조금만 더······.’

숲속 친구들이 모두 쓰러지고, 옆구리에 검은 가시가 박히는 와중에도, 나의 시선은 오로지 한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 푹!

‘조금만 더, 한 번만 더······.’

- 푹!

그리고 마지막 가시가 나의 오른쪽 어깨를 꿰뚫는 순간······.

마침내 웅비어천가의 게이지가 가득 찼다.

‘고미, 미안해······. 이제부터는 너한테 맡길게.’

< 웅비어천가(Gomi)를 사용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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