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283화 (283/300)

EP.283 최후의 싸움(11) : 피는 못 속인다.

- 쾅, 콰광!

“아, 아아아아악!”

계속되는 폭발에, 오만하기 짝이 없던 드래곤 로드는 제대로 된 말 한마디도 뱉지 못하고 꽥꽥 비명만 질러댔다.

내가 놈에게 준 ‘선물’은 바로 가짜 고미와의 싸움에서 부서진 삼색 영지버섯이었다.

고미가 준 선물을 날려버린 건 아쉽지만······. 이건 세계의 운명을 건 싸움이니까.

그리고 지금까지의 도발은 모두 이 한방을 위한 포석이었다.

도발의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는 정보를 캐내는 것, 이건 실패.

‘하지만 대안이 있으니까······. 이건 괜찮아.’

둘째는 동이님을 위해 시간을 버는 것.

마지막,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버섯과 함께 집어넣은 ‘그것’의 존재를 녀석이 눈치채지 못하게 최대한 성질을 건드리는 것이었다.

“이, 이 버러지 같은 놈이! 이따위 번개와 불꽃으로 나를 죽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느냐!”

반응을 보아하니, 이것도 성공이겠군.

지금 발언으로 보면, 놈은 내가 자신의 몸속에 번개와 불꽃을 뿜으며 폭발하는 방패만을 집어넣었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아니, 넌 번개도 뿜고 불도 뿜는데, 그걸로 죽겠어?”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피식 웃음을 지어주자, 황금의 얼굴이 또다시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사실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지만, 녀석의 말에 굳이 대꾸해준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아직인가?’

사이즈가 워낙 크니 그게 전신으로 퍼지는데 좀 더 시간이 필요한 건가······.

“그래도 꽤 아프긴 한가 본데? 그 잘난 드래곤 로드도 몸 안에서 그런 게 터지면 비명을 지르게 되나 봐?”

나는 조금 더 시간을 끌고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또다시 녀석을 조롱했다.

저 녀석도 뭔가 조치를 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테니, 알면서도 내 수작에 넘어오겠지.

어쩌면 회복 스킬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고.

그때, 동이님이 웅톡방을 통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 수하님, 드래곤 로드는 회복 마법을 사용할 줄 압니다. 시간을 주는 건······. ]

역시, 가지고 있네.

“큭큭, 어리석은 인간 놈. 나에게 상처를 입힌 것에 우쭐해져서 회복할 시간을 준 게 실수다, 이 정도 부상은······.”

내가 자신 같은 나르시시스트라고 생각한 모양인지, 황금의 입가에는 또다시 오만한 미소가 번졌다.

“억······. 어억!”

하지만 그것도 잠깐, 녀석은 돌연 가슴을 부여잡으며 고통스러운 듯 신음을 흘렸다.

“이제야 약이 듣나 보네.”

그 순간, 나는 승리를 확신했다.

“대, 대체 뭘 넣은 거냐······. 드, 드래곤 로드에게 통하는 독 따위가 있을 리가······.”

표정으로 보아 꽤 등급 높은 해독 스킬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인데, 그딴 게 먹힐 리가 없지.

“독 아니야, 보약이지. 근데 그게 체질이 안 맞으면 독약이 된다고 하더라고.”

이어지는 나의 말에, 동이님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두 눈을 치켜떴다.

“서, 설마······.”

내가 황금의 군주에 집어넣은 것은, 수갈량의 특제 버섯구이였다.

그리고 특급 비전(祕傳) 레시피의 핵심은 바로······. 남아있던 보존용 웅왕 청심환과 내 기를 응집해 만든 유사 청심환 소스였다.

환곰탈태 이후 만들 수 있게 된 기환이 청심환과 비슷한 맛을 낼 것 같아서, 대충 넣어봤다.

‘선물은 정성이니까. 많아서 나쁠 건 없지.’

거기에 체내 가장 깊숙한 곳까지 슈퍼 아기곰의 기운을 쏙쏙 배어들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영지버섯을 집어넣고 폭발시켰다.

끝으로 그 기운이 몸에 스며드는 걸 눈치챌까 싶어 불꽃과 번개 양념을 듬뿍 얹어줬지.

몸 안에서 쇳조각이 터지고 불꽃과 번개가 치솟는데, 그게 눈속임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 아니, 드래곤이 어디 있겠나.

“어, 어으으윽······.”

몸 안에 본격적으로 청심환의 기운이 돌기 시작하자, 거대한 드래곤의 팔이 갑자기 꺾여서는 안 될 방향으로 뒤틀리기 시작했다.

“으······.”

이어서 온몸의 혈관이 불뚝불뚝 솟아오르고, 눈동자의 실핏줄이 터지며 눈동자 전체가 피로 물든 듯 붉게 변했다.

나는 그제야 고미가 왜 친구들이 자신의 기운을 흡수했다고 할 때마다 새파랗게 질려 호들갑, 아니, 웅들갑을 떨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수다르님과 토생원이 있는데도 그렇게 기겁을 한다는 건, 그 둘도 손을 쓸 수 없기 때문이겠지.’

내가 드래곤 로드에게 줄 선물로 청심환을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고미의 기는 ‘나눠먹기’가 없으면 회복 스킬, 해독 스킬, 드래곤 스케일, 모든 것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극약이니까.

‘역시 의약품을 복용할 때는 반드시 약사와 상의해야 하는 거구나.’

그렇게 오늘 얻은 중요한 교훈을 되새기고 있는 사이, 고통을 이기지 못한 드래곤 로드가 공포 영화에 나오는 괴물처럼 괴기스럽게 온몸을 뒤틀어댔다.

그 흉측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동이님······. 마무리를 해주시죠.”

벌은 이만하면 됐다.

아무리 적이라도, 저런 끔찍한 모습을 감상하는 악취미는 없으니까.

물론, 살려둘 마음은 없다.

아동 학대범에, 사기꾼에, 같은 편도 가차 없이 죽여가며 전 우주를 지배하려는 미치광이 악당을 살려둘 정도로 사람이 좋지는 못하거든.

- 콰직!

마력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앞발이 드래곤 로드의 목을 부러뜨리자, 거대한 몸뚱이가 힘없이 지상으로 추락했다.

- 쿵!

산만한 드래곤이 지면에 떨어지는 순간, 묵직한 소리와 함께 모래 폭풍이라도 부는 것처럼 부연 먼지가 사방을 휩쓸었다.

“동이님, 혹시 모르니까 확실히 태워주세요.”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동이님에게 시체를 없애달라고 부탁했다.

저 커다란 놈이 만수왕처럼 부활하면, 상상만 해도 골치가 아프니까.

그렇다고 내 불꽃으로 태우자니, 화장하는 데만 하루는 걸릴 것 같고.

“알겠습니다.”

잠시 후, 동이님은 회한에 잠긴 표정으로 브레스를 뿜어 이제는 전대(前代)가 되어버린 황금의 군주의 시신을 불태웠다.

“······, ······!”

그리고는 또다시 나는 알아듣지 못하는 드래곤의 언어로 무언가 긴 연설을 하셨고,

“드래곤 로드는 교체되었으며, 전대 드래곤 로드의 편에 섰던 병사들은 모두 투항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드라고니아에 들어온 인간들을 지키고, 그들을 치료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말을 마친 후에는 친절하게도 무슨 말을 했는지 번역까지 해주셨다.

“후우······.”

이후 나는 천천히 호흡을 고르며 지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동이님이 미안해하실까 봐 내색은 안 했지만, 몸을 움직일 때마다 오른쪽 어깨와 팔꿈치에서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전해진다.

‘부러진 건 아닌 것 같은데······. 금이라도 간 건가.’

그만한 사이즈의 꼬리에 얻어맞고도 뼈가 가루가 되지 않다니, 이제 평생 골다공증 같은 걸로 걱정할 일은 없을 것 같다.

문제는 이 상태로는 전투에 참여할 수가 없다는 점.

그나마 다행인 건······.

‘대충 아래쪽도 정리가 된 모양이네.’

이미 지상 쪽의 적들도 거의 다 처리된 상태라는 사실이었다.

되살아난 만수왕은 아기곰 삼형제가 처치했고, 숲속 친구들의 활약으로 그림자에 잡아먹힌 S급 몬스터들도 모두 제압되었다.

일단 눈으로 보기에는 우리 쪽의 승리가 거의 확실해진 상황.

‘혹시 모르니 확인 좀 해볼까?’

< 달성 조건 >

1. 가짜 고미를 물리칠 것. (완)

2. 만수왕을 물리칠 것. (완)

3. 드래곤 로드를 물리칠 것. (완)

4. 악당들의 우두머리인 ???를 물리칠 것.

시스템 창을 확인해보자, 역시나 마지막 하나를 빼고는 모두 완료된 상태였다.

‘이상해······.’

하지만 악몽의 지배자는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차라리 마지막에 드래곤 로드를 제물 삼아 나를 죽이려 들었다면 안심이 됐을 텐데······.

‘어째서 아직도 숨어있는 거지?’

번외로 내가 동이님을 도와 황금의 군주를 쓰러뜨렸는데, 고미가 아무런 리액션이 없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

‘대체 뭐지?’

이에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을 안고 끊임없이 주위를 훑어보았다.

지상에서는 가짜 고미와 아기곰 삼형제가 멀찍이 거리를 둔 채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색함을 한 컷으로 표현하자면 이런 모습일까 싶을 정도로 미묘한 분위기.

‘저것 때문이었나.’

어째 평소처럼 ‘오오!’라던가 ‘우웃!’하는 반응이 없길래 뭔가 이상하다 했더니,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고 계셨나 보다.

이런 분위기가 연출된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고미 성격에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를 죽이려 했던 녀석을 용서할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렇다고 적에게 속았다가 마지막에 정의의 편으로 돌아온 녀석을 책망하자니 그것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테고.

[ 우, 우웅······. 수, 수하. ]

아니나 다를까, 지상으로 내려온 나를 발견한 아기곰은 난처하다는 듯 쉴 새 없이 귀를 쫑긋거리며 나와 가짜 고미를 번갈아 바라봤다.

‘음······. 특급 화해 요원이 나설 타이밍이군.’

일단 악몽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니, 가짜 고미에게 뭐라도 정보를 캐내야겠다.

“고미, 아니, 뭐라고 불러야 하지? 일단 널 우리 편이라고 생각해도 될까?”

나의 질문에, 불쌍한 흑곰은 처량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며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 내 이름은 고미······. 아니······.”

나쁜 놈들, 설마 이름도 안 지어준 거냐.

철저하게 자기를 진짜 고미라고 믿게 만드려고?

“휴······. 그럼 일단 까만 고미라고 부를게.”

표정만 봐도 마음이 아프다.

악몽을 잡고 나면, 정식으로 이름을 지어줘야겠다.

동명이웅도 있을 수 있는 거지만, 자기가 고미의 분신이라는 걸 깨닫고 상처받은 녀석을 계속 고미라고 부를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맛있는 것도 챙겨 먹이고, 친구들도 만들어주고······.’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까만 고미······. 미안한데, 혹시 악몽의 지배자가 왜 나타나지 않는지 알고 있어?”

내가 드래곤 로드에게 악몽에 대한 정보를 캐내지 못했음에도 실망하지 않은 것은, 이 녀석이 있기 때문이었다.

잠시 손을 잡은 것뿐인 드래곤 로드와 달리, 이 녀석은 악몽과 꽤 오랜 시간을 함께 했을 테니까.

당연히 알고 있는 것도 더 많겠지.

“······.”

하지만 녀석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고미를 닮은 커다랗고 맑은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혀 있었다.

숲속 친구들 역시 이 녀석이 안쓰럽다고 느끼는지,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묵묵히 까만 아기곰을 바라볼 뿐이었다.

우리를 바라보는 녀석의 시선에서 슬픔과 부러움이 동시에 묻어났다.

모두에게 이용만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시점에, 이렇게 똘똘 뭉쳐 적들에게 맞서는 숲속 친구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슬픔과 외로움이 더욱 커지는 모양이었다.

“아, 아웅······.”

그때, 마음씨 착한 백곰이 나의 눈치를 살피며 녀석에게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아마도 이 녀석을 치료해주고 싶은 것 같았다.

나에게 당해서 힘을 잃은 상태로 S급 이상의 몬스터들을 상대하느라, 가짜 고미의 몸 곳곳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가득했다.

“괜찮아, 치료해줘.”

“우, 우웃! 어, 어째서!”

아웅이가 자신을 치료해주려 하자,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가짜 고미는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도저히 우리의 호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몸짓.

학대받은 아이들은 쓰다듬어 주려고 손을 내밀어도 때리는 줄 알고 놀란다던데, 왜 그 이야기가 떠오르는 걸까.

“이, 이 몸은, 너, 너희를!”

“속아서 그런 거잖아.”

“하, 하지만······.”

짤막한 한마디에, 이름조차 가지지 못한 가엾은 아기곰의 꼬리가 힘없이 아래로 늘어졌다.

미안한 것도 알고, 잘못한 것도 알고.

역시 고미의 분신답게, 근본은 착한 녀석이 확실해 보인다.

“우, 우웅······. 가, 우, 우웅······.”

그때, 원조 아기곰이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가짜’라는 말이 상대에게 상처가 된다는 걸 알고 있는지, 부족한 말주변으로나마 애써 말을 골라가면서.

“거, 걱정하지 말거라! 위대한 이 몸과 친구들은 이미 너의 진심을 알고 있느니라! 너, 너도 위대한 곰이라면 우리를 도와다오. 악몽을 없애지 못하면······.”

원조 아기곰의 설득이 통한 걸까?

가짜 고미는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조심스레 입술을 달싹였다.

“우, 우웃!”

하지만 녀석은 대답 대신 갑자기 나를 향해 화살처럼 몸을 날렸다.

- 퍽!

잠시 시간이 멈추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눈앞이 아찔해지며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았다.

“우, 우웃! 까, 깜둥이!”

“아, 아웅!”

“다우우우웅!”

지금 나의 발 앞에는······. 나 대신 검은 화살을 맞은 작은 아기곰이 쓰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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