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82 최후의 싸움(10) : 모리배의 특급 선물
- 파직, 파지직······.
‘이게 뭐야.’
지금 내 온몸에서는 푸른색의 전광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고미가 천마와의 일전에서 보여줬던 그것과 꼭 닮은······.
‘왜 갑자기 번개를 쓸 수 있게 된 거지?’
실로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변화였지만, 꿀태창에는 아무런 스킬도 추가되지 않은 상태.
‘환곰탈태의 부가 효과인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답은 그것 뿐이었다.
- 콰릉!
그때, 날카로운 번개가 나의 몸을 관통했다.
‘짜릿함’의 정도로 보아, 황금의 군주의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드래곤 로드의 번개는 이것보다 훨씬 더 짜릿하니까.
아니나 다를까, 번개가 날아온 방향에서 커다란 골드 드래곤 하나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허곰답보(S)를 활성화합니다. >
허공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자, 눈 깜짝할 새에 골드 드래곤의 가슴팍이 간격 안으로 들어왔다.
- 쉬익!
가볍게 휘두른 일검에 녀석의 입에서는 곧장 비명이 터져 나왔다.
‘확실히 강해졌어.’
스킬 등급은 올라가지 않았지만, 속도도, 힘도, 곰기의 강도도, 이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준.
[ 사숙조, 환골탈태라도 하신 모양이군요. 기질이 웅 노사와 더욱 비슷해지셨습니다.]
너무나 간단히 드래곤을 베어버리는 내 모습에, 천마마저 조금 놀란 듯한 반응을 보였다.
- 크르릉!
한편, 저 먼 상공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의 두 드래곤이 서로를 할퀴고, 물어뜯고, 마법을 쏘아대며 혈전을 벌이고 있었다.
동이님은 비쩍 말라붙은 팔 대신 마력으로 만든 팔을 사용해 황금의 군주에게 대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어느새 몰려든 드래곤 로드의 친위대들이 사방에서 동이님을 공격하고 있었다.
‘안 되겠어, 위험해.’
수다르님의 특제 단약을 먹었다고는 하나, 고미를 구하려고 금술에 몸을 들이밀어 꽤 심한 부상을 입은 상태.
그런 몸으로 드래곤 로드와 그 친위대에게 협공을 당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고미의 가장 오래된 친구가 목숨을 잃을지도 몰랐다.
[ 수하님! 여기는 저희가 맡겠습니다! 주군을 도와주십시오! ]
그때, 이유찬 씨의 급박한 목소리가 웅톡방에 울려 퍼졌다.
삼룡이 패밀리 역시 드래곤 로드의 친위대에게 둘러싸여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었다.
[ 부탁드리겠습니다, 수하님! ]
늘 냉정하던 제르보나 씨의 목소리에서도 조급함이 느껴졌다.
[ 백천! 난 동이님을 도우러 갈게! 넌 한유진 씨 일행을 도와줘! ]
말을 마친 나는 더욱 속도를 높여 위쪽으로 몸을 날렸다.
[ 알겠습니다, 사숙조. ]
그리고는 독을 뿜어대는 녹색 드래곤 하나를 골라 신기술을 시험해 보았다.
‘자, 간다! 백만 볼트!’
- 파지지직!
“크르륵!”
등 뒤에 내리꽂히는 전격에 그린 드래곤은 온몸을 바르르 떨며 잠시 균형을 잃었고,
- 퍽!
나는 참숯 1호로 녀석의 머리를 때려 마무리를 지은 뒤 허공을 밟고 올라가며 내가 가진 무기와 새로 얻은 기술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해 보았다.
‘역시 한 방에 끝내기는 어렵겠지.’
환곰탈태로 인해 체질이 바뀐 탓일까, 저 번쩍거리며 요란한 빛을 뿜어대는 왕도마뱀이 대충 어느 정도 힘을 가지고 있는지 알 것 같다.
저놈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한 방을 선사할 방법도.
- 우웅······.
시험삼아 기를 모아보자, 손바닥 위에 주먹만한 푸른 빛이 응집되었다.
‘좋아, 이거라면······.’
- 키에에에!
그때, 또 한 마리의 드래곤이 나에게 다가와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밀었다.
- 쉭!
가볍게 검을 휘두르자, 날개가 불타 없어지며 놈이 균형을 잃고 지상으로 추락했다.
시간은 어느덧 밤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연달아 내리치는 번개와 드래곤들이 뿜어내는 불꽃으로 하늘은 대낮처럼 밝았다.
잠시나마 그 불꽃과 번개가 잦아드는 순간에만 지금이 밤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마리의 드래곤을 베고, 수십 번의 번개를 맞고, 그것과 비슷한 숫자의 불꽃을 뒤집어 썼을 무렵······.
마침내 황금의 군주가 있는 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야, 노란 도마뱀!”
짤막한 한마디에, 화염이 넘실거리는 황금색의 눈동자가 나의 얼굴 위에 멈춰섰다.
내가 올라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한 반응.
놈의 맞은 편에는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이형의 거룡이 힘겹게 날개를 퍼덕이고 있었다.
“수, 수하님!”
놀라움과 불안이 묻어나는 목소리.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내가 자신을 돕기 위해 날아오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도우러 왔습니다.”
“푸하하하하!”
그 순간, 황금의 입에서 조롱 섞인 웃음이 터져 나왔다.
“참으로 역겹구나. 드래곤 로드가 되겠다는 놈이, 한낱 인간 따위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냐?”
“함정을 파서 부상을 입힌 것만으로는 모자라서 부하들까지 동원한 분이 하실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설마 용족은 모두 하나라 1인분으로 취급하는 건 아닐 테고.”
이어지는 나의 말에 황금의 군주의 눈에 섬뜩한 살기가 뻗치기 시작했다.
“버러지 같은 놈이······.”
“버러지를 상대로 고생이 많으십니다. 함정도 파고 친위대도 동원하고, 하찮은 호랑이한테 도움까지 받았는데 아직도 저희가 살아있네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그렇게 답하자, 황금은 대답 대신 나에게 번개를 내리쳤다.
- 콰릉!
“앗, 뜨거! 인간들은 할 말이 없으면 주먹이 나가는데, 드래곤도 별반 차이가 없나 봐요?”
역시 드래곤 로드의 번개라 그런지 상당히 아프다.
하지만 한 방에 죽을 정도는 아니다.
‘좋아, 체크 완료.’
“수, 수하님······.”
평소답지 않은 내 언행에, 동이님은 조금 놀란 듯 두 눈을 치켜떴다.
“빨리 처리하고 내려가죠. 아무리 봐도 이놈은 악몽의 부하 같은데. 대충 처리하고 최종 보스를 끌어내야죠.”
“이 버러지가······.”
‘부하’라는 단어에 자극을 받았는지, 황금의 군주의 눈빛에서는 숨길 수 없는 분노가 베어 나왔다.
‘역시, 걸려들었어.’
드래곤이 우주 최고의 종족이며, 그 정점에 선 자신은 전 우주를 지배할 자격이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 정신병자가 이 말에 열 받지 않을 리가 없지.
“그게 아니라면 어째서 너는 이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악몽은 저렇게 부하들만 내보내고 있지? 아무리 봐도 뭔가가 이상하잖아.”
내가 이런 말을 늘어놓는 건, 괜한 시비를 걸거나 말장난이나 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뭐, 불쌍한 아기곰을 속이고도 태연자약하게 질서니 뭐니 떠들어대는 사기꾼에게 역겨움을 느끼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게 다는 아니라는 거지.
황금의 군주는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잘났고, 그러니 당연히 남을 이용해도 된다고 믿는다.
누구도 이루지 못한 엄청난 업적을 이루거나 높은 지위를 손에 넣어 자신의 ‘잘남’을 증명하려 애쓴다.
전 차원을 지배하고자 하는 황당한 발상도 그런 성격 구조에서 비롯된 것일 테고.
‘그러니까 무시를 당하거나 모욕을 당하면 절대로 참지 못하지.’
드래곤에게도 심리학이 통용되는 줄은 몰랐지만, 이게 또 되네.
“뚫린 입이라고 잘도 지껄이는구나. 악몽이 자리에 나타나지 않는 것은······.”
그때, 내 말에 반박하려던 황금의 얼굴이 돌연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이놈······. 같잖은 말장난으로 내게서 정보를 얻어내려 해?”
어, 음······.
세상만사가 언제나 뜻처럼 흘러가는 건 아니구나.
역시 드래곤 로드, 바보는 아닌 모양이다.
“죽어라!”
잠시나마 내 수작에 넘어온 사실이 수치스러웠던 걸까?
분노한 드래곤 로드는 거대한 아가리를 쩍 벌려 나에게 브레스를 내뿜었다.
- 쉭!
이에 나는 빠르게 몸을 움직여 녀석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뜨거운 화염을 피해냈다.
[ 동이님, 어서 친위대를 정리해 주세요. ]
그래도 두 번째 목적은 달성했네.
이제 살아남기만 하면 된다.
- 화륵!
상상을 초월하는 열기.
아무리 환곰탈태를 했다고는 해도, 직격으로 맞으면 무사하기는 어렵겠지.
실험 삼아 맞아보기에는······. 좀 무섭다.
금이 간 영지버섯을 사용해서 막는 건 너무 위험하고.
게다가 그건 따로 중요하게 쓸 곳이 있으니까.
“뭐야, 불을 뿜는 건 드래곤의 상징 같은 거 아니었어? 고미 것만 못하네. 애초에 고미를 이길 자신이 없어서 함정을 판 거지?”
“이놈!”
- 부우웅!
다음 순간, 단두대처럼 서슬 퍼런 발톱이 허공을 찢어발기며 날아들었다.
- 콰릉!
동시에 머리 위에서 거대한 번개가 떨어지고, 사방에서 칼날 같은 바람이 몰아쳤다.
만수왕 못지않은 육체에, 초월자급 마법까지.
과연 드래곤 로드라는 지위에 어울리는 실력이었다.
“영웅란로!”
이에 나는 빠르게 퇴보를 밟으며 영웅검법을 사용해 바람으로 만들어진 칼날들을 쳐냈다.
‘발톱이 제일 위험해.’
바람은 참숯 1호로 막는다.
잡히면 단순한 힘 대결로 갈 테니, 발톱은 피한다.
번개는······.
“으윽!”
별 수 있나, 맞아야지.
- 파지직!
바람과 손톱은 피하면서도 번개는 그대로 맞는 나의 모습에, 드래곤 로드의 눈이 가느다랗게 변했다.
‘의심 많은 자식.’
열 받은 와중에도 공격은 정교하고, 생각은 신중하다.
단언컨대, 이 녀석은 여태 만난 놈 중 최악, 최강의 적이었다.
애초에 나로 타겟을 바꾼 것도 단순히 도발에 넘어와서는 아닐 거다.
내가 동이님을 돕기 위해 무언가 수작을 부리기 전에 죽이려는 거겠지. 그럴 자신도 있고.
물론 나도 버틸 자신이 있으니까 어그로를 끈 거다.
- 콰릉!
번개가 내리칠 때마다, 짜릿한 느낌과 함께 온몸이 바르르 떨렸다.
말은 짜릿하다고 하지만, 역시 직격으로 여러 번 맞기에는 부담스러운 공격.
< 힐(A)를 사용합니다. >
< 체력이 회복됩니다. >
그래도 즉사만 아니면 괜찮지.
곰돌이 삼형제가 나를 지켜주고 있다고.
이 싸움 끝나면 아웅이에게 치콜이라도 쏴야겠네.
“버러지 같은 게······. 생각보다 오래 버티는구나.”
싸움이 길어지자, 황금의 목소리에도 초조함이 묻어났다.
“너, 동이님보다 약하지?”
도발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애초에 친위대까지 불러 협공을 하는데도 동이님은 제법 오랜 시간을 버텼으니까.
이 녀석도 그걸 알고 있으니 상황이 만들어지고 나서야 나섰겠지.
“이 주제도 모르는 놈이!”
격분한 드래곤 로드는 거대한 꼬리를 휘둘러 나를 공격했지만,
- 쾅!
녀석의 꼬리는 나에게 닿지 못했다.
황금으로 만든 거인의 채찍 같은 그것은, 반투명한 팔에 의해 단단히 붙잡혀 있었다.
“이제 너와 나의 지긋지긋한 악연을 끝낼 때가 됐구나.”
신비한 빛을 뿜어내는 마력으로 만든 팔의 주인은······. 바로 동이님이었다.
“이, 이······. 벌써?”
동이님의 뒤에는 여전히 몇 마리의 드래곤이 남아있었지만, 이미 전의를 상실한 듯 더 이상 우리에게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글쎄, 잘나신 드래곤 로드께서 나같은 인간을 상대로 질질 시간을 끌고 있으니 네 부하들도 정나미가 떨어진 거 아닐까? 대장이 그것 밖에 안 되는데, 부하들이 뭘 믿고 따르겠어.”
계속되는 비아냥에, 흠결 하나 없던 드래곤 로드의 얼굴이 점점 더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물론 저 친위대가 동이님의 실력에 겁을 먹어서 달려들지 못하는 건지, 드래곤 로드에 대한 충성심이 부족한지 따위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지금은 그냥 이놈의 신경을 박박 긁어놓을 수만 있다면 무슨 말이든 다 뱉고 보아야 한다.
그래야 수갈량의 특급 선물을 먹여줄 수 있을 테니까.
“그럼 가볼까요?”
“좋습니다.”
- 크릉!
이후의 싸움은 그야말로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산처럼 거대한 드래곤 두 마리가 서로 뒤엉킬 때마다 부서진 비늘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뜨거운 화염이 드러난 살점을 불태우며 매캐한 냄새가 코를 마비시켰다.
- 쾅!
서로의 마법이 어지럽게 교차하고, 요란한 폭음이 허공을 뒤흔든다.
나는 거대한 두 드래곤 사이를 어지럽게 오가며 빈틈을 노려 황금의 군주의 몸 곳곳에 착실하게 불을 붙여주었다.
하지만 참숯 1호의 불꽃으로 태우기에는, 드래곤 로드의 크기는 너무나도 거대했다.
이 무지막지한 크기의 도마뱀을 통구이로 만들려면 내 모든 기를 쏟아부어도 모자랄 것 같았다.
‘아니, 애초에 그럴 마음도 없지만.’
그래, 내 기는 다른 곳에 써야 하거든.
- 크르릉!
- 크릉!
바로 그때, 두 드래곤의 이빨이 서로의 어깨를 물어뜯으며 고통에 찬 포효가 터져 나왔다.
‘지금이야!’
기회가 왔음을 직감한 나는 전력으로 날아가 녀석의 상처에 참숯 1호를 꽂아 넣었다.
그리고는 있는 힘껏 상처를 벌려준 뒤, 내가 준비한 '선물'을 그 깊숙한 곳에 쑤셔박았다.
“크아아악! 이 버러지 같은 놈이!”
- 퍽!
“큭!”
드래곤 로드의 거대한 손에 얻어맞은 순간, 전신의 뼈가 비명을 지르고, 내장이 뒤틀리는 것 같은 통증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 힐(A)를 사용합니다. >
< 체력이 회복됩니다. >
심지어 A급의 힐을 사용했는데도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어디 부러진 거 아니야?’
하지만 드래곤 로드에게 근사한 한방을 선물한 대가치고는······. 싸게 먹혔다.
- 쾅!
그때, 산만한 골드 드래곤의 상처에서 요란한 폭음이 울리며 번개와 불꽃이 치솟았다.
“으아아악! 이, 이, 빌어먹을! 대체 무슨 짓을······!”
“뜨겁지? 껍질이 단단한 것 같아서. 안에다 선물을 하나 남겨놨거든.”
나는 그렇게 말하며 일부러 녀석을 향해 왼손을 흔들어 보였다.
진짜로 뜨거운 한방을 위한, 마지막 도발이었다.
“이, 이놈이! 내, 내 몸에 무엇을 집어넣은 것이냐!”
“선물. 어린애를 등쳐먹었으면, 죗값을 치러야지. 이 사기꾼 도마뱀아.”
특급 선물의 배송을 마친 나는 녀석을 향해 세 번째 손가락을 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