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77 최후의 싸움(5) : 폭발! 수하빔!
- 쐐애액!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귀청을 때리고, 거대한 낫처럼 생긴 네 개의 발톱이 나의 시야를 뒤덮었다.
“대웅수동!”
< 초식 발동에 성공했습니다. >
< 근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
- 콰드드득!
참숯 1호와 놈의 발톱이 맞부딪히는 순간, 상상을 초월하는 힘에 의해 전신의 뼈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사숙조!”
그와 동시에 천마의 날카로운 검기가 만수왕의 뭉개진 왼쪽 눈을 찔러 들어갔다.
“건방진 놈!”
- 챙!
놈은 곧바로 발톱을 세워 천마의 검기를 잡아냈다.
- 크릉!
이어서 만수왕의 입에서 낮은 포효가 터져나왔다.
토생원과 흑암이 언급했던 위압 스킬이었다.
하지만 미리 ‘곶감 백신’을 맞고 온 덕인지, 그 포효는 나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 이강혁 씨, 다들 무사하죠? ]
[ 네! 토생원 님과 수다르 님이 만들어주신 약이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
역시, 두 분이 만든 곶감 백신이 효과가 있구나.
예상 밖의 상황에, 세로로 길게 찢어진 은회색 호랑이의 흉포한 눈동자가 섬뜩한 빛을 발했다.
“호오······. 약해 빠진 인간 주제에 감히 백수의 왕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는 것이냐?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쓸데없는 짓을 했구나. 어차피 너희들은 모두 죽을 것이다.”
······.
재수 없다.
첫 대사부터 재수 없다.
고미가 왜 이 녀석을 싫어하는지 알 것 같다.
[ 이이······! 작은 살쾡이, 수하! 당장 저 덩치만 큰 괭이 녀석을 없애버려라! ]
만수왕이 등장하자, 고미의 목소리가 분노로 파르르 떨렸다.
안 봐도 알 것 같다.
아마 분을 참지 못하고 주먹을 바르쥔 채 당장이라도 뛰쳐나오려 하고 있겠지.
[ 고미, 진정해. ]
하지만 지금 이 원조 아기곰이 뛰쳐나오면, 모든 게 허사로 돌아가고 만다.
[ 예상 못한 것도 아니잖아. ]
그래, 이 정도는 충분히 계산하고 이곳에 왔다.
‘생각보다 타이밍이 이르긴 하지만······.’
우리는 원조 아기곰, 저쪽은 가짜 고미가 비장의 카드다.
이놈들도 바보가 아닌데, 당연히 가짜 고미가 쓰러지기 전에 지원을 나오겠지.
하지만 만수왕이 직접, 그것도 이렇게 빨리 뛰쳐나올 줄은 몰랐다.
‘역시, 초반에 몰아붙여 두길 잘했어······.’
그때, 가짜 고미의 날카로운 털들이 더욱 빳빳하게 곤두서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틀림없이 화가 났을 때 보이는 반응이다.
도움을 받았는데, 어째서?
“흥! 건방진 괭이 놈! 네놈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다!”
설마······. 너네 사이 안 좋니?
“나도 너 같은 놈을 돕고 싶지는 않다. 그저 너보다 더 가증스러운 놈을 찢어발기기 위해서 잠시 손을 잡고 있는 것 뿐이다.”
[ 저, 저놈이! 수하! 당장 저 녀석부터 혼쭐을 내주거라! ]
“흥! 비실이 주제에! 결국 네 녀석의 하찮은 발톱과 이빨로는 그 웅졸한 꼬맹이 곰을 상대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냐!”
하아······. 너네 뭐하냐 지금······.
가짜인데도 만수왕하고는 궁합이 안 좋은 거냐?
하지만 한숨이 나오는 대화 내용과는 별개로, 이 둘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더없는 호재였다.
[ 백천, 계획대로 가자. 생각보다 일이 쉽겠어. ]
[ 알겠습니다. 제가 만수왕을 처리할 때까지 버텨 주십시오. ]
말을 마친 손주분께서는 곧바로 만수왕을 도발했다.
“큭큭, 덩치만 큰 괭이 새끼가······. 아직 세상 무서운 줄을 모르는구나. 나머지 한쪽 눈깔도 파내주랴?”
무, 무서워······.
백천, 무슨 도발을 그렇게 살벌하게 하니.
“감히 인간 주제에······.”
“만수왕이라, 이름은 참으로 거창하구나. 웅 노사에게 눈을 잃고 꼬리를 만 개처럼 도망을 간 놈이 그런 이름을 쓰는 걸 보니, 낯짝의 두께와 허풍만큼은 금수 중 제일이라고 인정해주마.”
- 크릉!
계속해서 아픈 곳을 쑤셔대는 백천의 말에, 만수왕의 분노가 폭발했다.
고미의 말대로, 성질머리가 아주 더러운 게 확실해 보였다.
“건방진 인간 놈! 네 놈을 찢어발겨 흔적도 찾을 수 없게 만들어주마!”
은회색의 거대한 범이 앞발을 휘두르자, 천마의 발이 번개처럼 퇴보를 밟았다.
“하하! 그래도 제법 앙칼진 맛이 있는 놈이구나!”
- 부웅!
“하지만 이렇게 느려서야 어디 토끼 한 마리라도 잡을 수 있겠느냐?”
“이놈!”
“쯧쯧, 이러니 웅 노사에게 눈알을 뽑히지! 결국 미물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단순한 움직임이구나!”
······.
백천, 너 정말 성격 나쁘구나.
그래도 고맙다.
기대 이상의 도발이네.
“죽어라!”
“하하하! 그런 공격에 맞고 죽을 놈이 어디 있겠느냐!”
그렇게 천마가 만수왕의 시선을 끄는 사이, 웅황 청심환의 기운이 흩어지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애초에 일시적인 버프이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소모가 빨랐다.
“크크큭! 나와 떼어놓으면 저 애송이가 저 괴물을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이냐?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이미 기운이 떨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천마를 쫓아가는 만수왕의 입에서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눈치채고 있었군.’
어째 너무 쉽게 유인을 당해준다 싶었더니, 저쪽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던 모양이다.
저 녀석이 알고 있으니, 당연히 가짜 고미도 내가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겠지.
[ 아, 아앗! 수하! 가짜 녀석이 다시 커지고 있다! ]
그때, 원조 아기곰이 다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고개를 돌려보자, 참숯 1호에 의해 불타 작아졌던 가짜 고미가 조금 전보다 약간 커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흥! 하찮은 불꽃이구나! 이런 것으로는 위대한 이 몸을 태울 수 없느니라!”
가짜라도 슈퍼 아기곰의 발톱과 이빨로 만들어진 존재답게, 그새 불꽃을 억누르는 법을 익힌 모양이었다.
‘역시, 생각처럼 쉽게는 안 되는군.’
참숯 1호의 화력은 확실히 대단했다.
이 가짜에게도 타격을 입힐만큼.
하지만 역시 망자의 갑옷이 회복되는 걸 막으려면, 파마의 힘이 담긴 ‘수하빔’이 필요했다.
“그래도 회복이 느리네. 불꽃을 억누르는 데 상당히 많은 힘을 쓰고 있는 것 같은데?”
“흐, 흥! 우, 웃기는 소리! 위, 위대한 이 몸에게 이런 불꽃 따위가 먹힐 리가 어, 없지 않느냐!”
확인차 던진 질문에, 상당히 성실한(?) 답변이 돌아왔다.
[ 훗, 수하! 저 녀석은 거짓말을 못하는 구나! 틀림없이 효과가 있는 것이다! ]
음, 그래······. 맞는 말이기는 한데······.
네가 그런 말을 해도 되는 거냐.
왠지 너만은 그런 말을 하면 안될 것 같은데.
가짜 고미의 솔직한(?) 반응을 통해, 나는 저 녀석이 더 이상 커지지는 않을 거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역시 백천과 협공을 통해 미리 여기저기 불을 붙여놓길 잘했다.
지금 녀석의 크기는 처음 나타났을 때의 3분의 2 정도.
즉, 숯불을 억제하는데 3할 정도의 힘을 할애하고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내 약빨(?)이 떨어지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거지.
‘승부다.’
그러니 단숨에 끝장을 봐야 한다.
“비웅번신!”
< 초식 발동에 성공했습니다. >
< 힘과 민첩이 대폭 증가합니다. >
시간이 얼마 없다고 판단한 나는 곧장 내가 가진 가장 빠른 초식을 사용했다.
“흥!”
하지만 가짜 고미는 간단하게 나의 모든 공격을 막아냈다.
심지어 불이 붙는 걸 막기 위해 직접 몸을 쓰지 않고 ‘곰기’를 사용해서.
‘강해.’
게다가 이런 쪽에 한해서만 머리가 잘 돌아가는 것도 고미랑 똑같다.
그러니 같은 공격이 두 번, 세 번 먹히는 일은 없겠지.
“만천화웅!”
“만천화웅!”
화염 폭풍을 일으키자, 칼날 같은 검은 털들이 소용돌이치며 불꽃을 막아냈다.
“불도장!”
“불도장!”
불도장을 사용하면 똑같은 기술로 받아친다.
모든 공격이, 허무하게 막힌다.
“받아랏! 탄지곰!”
- 콰르릉!
그나마 다행인 건 이 녀석의 공격 패턴이 고미와 거의 똑같다는 점.
덕분에 치명상만은 피할 수 있다.
“우하하! 그새 또 기가 줄어들었구나! 이 모리배 녀석!”
하지만 내 기는 계속해서 줄어들었고,
“받아랏!”
- 퍽!
어느새 몸 곳곳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생겨나 있었다.
[ 수, 수하! ]
[ 걱정하지 마, 아직 버틸 수 있어. ]
거짓말이다.
곰강불괴도, 드래곤 스케일도 내 몸을 오나벽히 지켜주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제는 공격 패턴을 알아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청심환의 기를 모두 쏟아부으면 부상은 피할 수 있겠지만······.
‘그건 안돼.’
그렇게 하면 몸은 지킬 수 있을지언정 녀석을 쓰러뜨릴 수 없다.
[ 수하씨, 지금 가겠습니다! ]
[ 김수하! ]
[ 수하씨, 저희가 갈게요! ]
[ 그, 그래! 허수아비, 봉식이, 삼룡 어멈! 어서 도우러 가거라! 저, 저러다 수하가 죽겠느니라! ]
머릿속에는 계속해서 숲속 친구들의 목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 오지 마요. ]
하지만 나는 그들의 도움을 거절했다.
[ 지금 주요 전력이 다 빠지면 전선은 누가 지켜요. ]
[ 하, 하지만······! ]
[ 다, 다웅! ]
[ 아, 아우웅! ]
아기곰 삼형제의 목소리에서 울음기가 느껴진다.
[ 아, 아웅! 아웅아웅! ]
아웅이는 어서 자신에게 배운 치료 스킬을 쓰라며 아우성이었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지금 부상을 치료하면, 기회를 놓칠 거다.
단 한 번 찾아올 천금 같은 기회를.
[ 걱정마, 다 생각이 있으니까, 그리고 고미, 아웅이, 다웅이, 너희는 절대로 나오지 마. ]
이건 정말이다.
진짜 계획이 있다고.
목숨을 걸어야 하기는 하겠지만.
- 쾅!
또 한 번 가짜 고미의 주먹이 방패 위를 두드리는 순간,
- 쩌적!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나의 영지버섯에 커다란 금이 생겨났다.
- 쉬익!
이어서 영지버섯이 눈부신 초콜릿색과 붉은 색으로 물들었다.
‘왔어!’
그 순간, 나는 온 힘을 쥐어짜 가짜 고미를 향해 방패를 집어던졌다.
“우, 우웅!?”
- 콰앙!
요란한 굉음이 울리며, 방패 안에 담겨있던 숯불과 가짜 고미의 주먹에 담긴 힘이 단숨에 폭발했다.
“우, 우웃!”
이게 마지막이자, 유일한 기회다.
다음은 없다.
< 해피곰 포인트를 사용합니다. 잔여포인트 : 6511 >
< 힐의 등급이 임시로 상승합니다. A -> SSS >
기회를 잡은 나는 곧바로 힐을 사용해 부상을 회복시켰다.
이걸 미리 썼다면, 저 녀석을 방심시킬 수 없었겠지.
오직 이 한순간을 위해 치료 스킬을 쓰지 않고 버텨왔다.
단숨에 부상을 회복한 나는 몸으로 공격을 받아내며 모아두었던 청심환의 기운을 단숨에 폭발시켰다.
“우, 우웅!? 이, 이 녀석, 아직도 힘이 남아있던 것이냐?!”
갑작스레 치솟은 기운에, 가짜 고미의 눈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지금 녀석의 주위에는 영지버섯이 폭발하며 일어난 불꽃과 폭풍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다.
준비는 끝났다.
“영웅무쌍!”
< 초식 발동에 성공했습니다. >
< 모든 능력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
“우, 우웃!”
영웅검법의 마지막 초식을 발동하는 순간, 참숯 1호가 블랙홀처럼 주위의 모든 기운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고미가 만들어준 검법의 마지막 초식.
주위의 모든 기운과 상대의 기를 빨아들여 되돌려주는 혼신의 일검이었다.
즉, 주고 받은 공격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 콰르르르릉!
참숯 1호가 허공을 가르는 순간, 거대한 화염과 기의 소용돌이가 붉게 물든 칼날 위에 깃들었다.
지금껏 자신이 날린 공격과 참숯 1호의 불꽃, 청심환에 담긴 기운이 일시에 폭발하자, 가짜 고미는 처음으로 거대한 두 팔을 들어 방어 자세를 취했다.
- 콰아앙!
“우우욱!”
거대한 몸집은 눈 깜짝할 새에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고, 비틀거리며 잠시 균형을 잡지 못했다.
하지만 모든 힘을 쏟아부은 그 일격으로도, 녀석을 쓰러뜨리지는 못 했다.
[ 이, 이럴 수가! 수, 수하 !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이 몸이 직접 가겠다! 허수아비, 봉식이! 수하를 지켜라! 이대로 두면 수하가 죽는단 말이다!]
다급해진 아기곰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웅웅거리며 울려 퍼지는 순간······.
< 해피곰 포인트를 사용합니다. 잔여 포인트 : 6011 >
< 허곰답보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S-> SSS >
“우, 우웃! 이, 이놈!”
마침내 가짜 고미의 몸통에, 나의 손이 닿았다.
“이거나 먹어라!”
< 해피곰 포인트를 사용합니다. 잔여 포인트 : 511 >
< 웅왕빔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S -> Gomi >
- 콰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