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274화 (274/300)

EP.274 최후의 싸움(2) : 전투의 서막

- 쾅!

“우하하하하! 도마뱀 놈들! 고작 이런 종잇장 같은 결계로 위대한 이 몸과 친구들을 막을 수 있을 줄 알았더냐!”

결계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 것을 확인한 아기곰은 고개를 치켜든 채 오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리 봐도 종잇장은 아니지만 말이야······.’

아무렴 어떤가.

일단 첫 번째 관문을 돌파 했다는게 중요하지.

“고미, 다웅아. 얼른 용궁으로 돌아가.”

첫 번째 임무를 마친 나는 곧바로 아기곰 형제에게 용궁으로 귀환하라고 말했다.

이제부터는 언제 가짜 고미가 나타날지 모르니까. 녀석에게 힘을 흡수당할지도 모르는 아기곰 형제는 본진에서 때가 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우, 우웅······. 알겠느니라.”

“다, 다웅······.”

초콜릿색 솜뭉치와 아기 판다는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거대한 거북이를 향해 날아갔다.

바로 그때······.

- 그오오오!

- 키에에에!

- 키이이이!

낮고 묵직한 소리, 높고 날카로운 소리, 철판을 긁는 듯한 소리가 한데 뒤섞여 울려 퍼졌다.

‘벌써 시작이군.’

고개를 돌려보니, 똬리를 튼 거대한 용 모양의 대지에서 형형색색의 드래곤들이 날아오르고 있었다.

[ 수하,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

- 쿠웅······.

고미의 전음이 귓가에 울렸다.

동시에 보이지 않는 기운이 잿빛 하늘을 휩쓸고 지나갔다.

고미가 웅기충천으로 잠시나마 드래곤들의 기를 꺾어준 것이었다.

드래곤들이 주춤한 사이, 결계를 펼친 모함이 공간을 건너뛰어 지면 가까이 날아왔다. 과연 용족 최강의 전함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속도였다.

드라고니아의 대지는, 멀리서 보면 꼭 기름을 뒤집어쓴 것처럼 새카맸다.

조금 더 내려가 보면 그것은 꼭 거대한 검은 파도처럼 보였다.

더 가까이서 보면, 그것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몬스터로 만들어진 물결임을 알 수 있었다.

“사숙조, 그럼 착륙 지점을 만들어 보지요.”

천마가 몬스터 떼로 새까맣게 물든 대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의 두 번째 임무는 착륙 지점 확보였다.

아무리 용귀라도 대뜸 바닥에 착륙해서 지상의 몬스터와 공중의 드래곤들에게 포위당한 채 계속 공격을 당하게 둘 수는 없으니까.

‘환장하겠군.’

숫자를 세 볼 엄두도 안 난다.

이만한 숫자가 현세로 넘어왔다면, 전쟁에서 이겨도 아무 의미가 없었겠지.

‘여기서 다 없애버려야 해.’

[ 동이님! 지원 부탁드립니다! ]

[ 드라고니아가······. ]

자신의 고향이 몬스터 떼로 뒤덮인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한 동이님의 목소리는 분노로 가늘게 떨렸다.

- 그오오오!

곧이어 용귀가 시뻘건 불꽃을 토해 몬스터들을 불태웠다.

하지만 이내 또 다른 놈들이 달려와 빈자리를 메꿨다.

- 키에에에!

웅기충천으로 인해 잠시 주춤했던 드래곤들도 하나둘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

드래곤들이 다시 날아오르자, 용귀의 불꽃은 지상이 아닌 하늘을 향했다.

‘빨리 착륙 지점을 확보해야 해.’

아직은 괜찮지만, 이대로 두면 용궁은 공중에서 격추 당할지도 몰랐다.

그 순간, 낯익은 물체 몇 개가 번개같은 속도로 용귀의 입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왔다.

- 삐이이이이!

[ 한유진 씨, 부탁 드릴게요. ]

[ 네, 맡겨주세요! ]

동시에 하늘 위에 시커먼 뇌운이 드리웠고,

- 콰릉, 콰르르릉!

수십, 아니 수백에 달하는 번개 줄기가 하늘과 대지를 이었다.

여의주를 얻은 한유진 씨와 알틴이 뿜은 번개였다.

거대한 검은 천처럼 지면을 뒤덮고 있던 몬스터 떼에는 군데군데 구멍이 생겨났다.

“좋아, 가자, 백천!”

빈틈을 발견한 나는 곧바로 몬스터의 바다로 몸을 던졌다.

“하하하! 한낱 미물들이 본좌를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더냐?”

천마가 광소를 터뜨리며 손을 휘두르자, 거대한 검영들이 몬스터의 바다를 갈랐다.

나 역시 참숯 1호의 불꽃으로 불도장을 떨어뜨려 구멍을 넓혔다.

그러나 용귀가 착륙할만한 지점은 여전히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다.

‘개미굴도 아니고······. 끝도 없이 나오네.’

상륙지점을 만들려면, 방파제가 되어줄 병력이 필요했다.

< 챔피언의 증표를 사용합니다. >

< 검투사의 망령이 소환됩니다. >

그래, 이런 병력 말이다.

“이 지점을 지켜!”

소환된 망령들은 곧장 명령에 따라 진형을 갖추었다.

< 해피곰 포인트를 사용합니다. 잔여 포인트 : 7311 >

< 노화의 손길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B -> S. >

< 노화의 손길(S)를 사용합니다. >

저주를 사용해 망령들을 지원한 후, 나는 천마와 함께 지상으로 내려가 사방에서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베어 나갔다.

[ 한유진 씨! ]

[ 갑니다! ]

그때, 망령들이 만든 작은 방진 위로 거대한 두 마리의 드래곤이 스쳐 지나며 무언가를 떨어뜨렸다.

“백천! 부탁할게!”

< 이기어곰(C)을 활성화합니다. >

천마가 몬스터들을 막는 사이 그것을 낚아채 바닥에 내리꽂은 뒤 마력을 주입하자,

- 우우웅······.

은색의 마력 파장과 함께 전송진 하나가 솟아났다.

- 쉬익!

전송진을 통해 나타난 첫 번째 인영은 아무런 말도 없이 대뜸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시커먼 파도 위에 새로이 새하얀 길 하나가 생겨났다.

“수하 씨, 고생하셨습니다.”

“으아아, 갓-베어 크래쉬!”

- 콰앙!

이어서 짐승들 사이로 괴수 하나가 뛰어들며 전장은 더욱 난장판이 되었다.

“사숙조, 그럼 저는 한 노사를 도우러 가겠습니다.”

숲속 친구들이 합류한 것을 확인한 천마는 훌쩍 공중으로 몸을 날렸다.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냐······.’

전투광 손주분의 입가에는 전에 없이 밝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 쿠르릉, 쿠릉!

천마가 가세하자, 삼룡이 패밀리와 용귀를 공격하던 드래곤 떼의 시선도 적잖이 분산됐다.

쉴 새 없이 결계 위를 때리던 마법과 브레스도 적잖이 줄어들었다.

숲속 친구들 중 공중전이 가능한 것은 용왕의 마법 계열 헌터 몇몇과 백천, 삼룡이 패밀리 정도 뿐이다.

용귀가 공중에서 격추되지 않으려면 그 소수의 인원이 드래곤들의 시선을 분선시켜야 했다.

“크하하하! 좋구나! 좋아!”

무섭다······. 쟤는 진짜 제정신이 아니야.

어떻게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지?

[ 민봉식! 너무 멀리 가지마! 고립된다! ]

[ 걱정하지 마라! ]

하늘에는 천마, 지상에는 살육전차.

끔찍한 조합이군.

[ 그럼 저도 가보겠습니다······. ]

봉식이와 이강혁 씨에 이어 잔뜩 풀이 죽은 문경준이 전장에 합류했다.

덩치 콤비와 나, 이강혁 씨는 끊임없이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죽여나가며 ‘다음’을 기다렸다.

고작 몇 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소환된 검투사의 망령은 이미 절반 이상 사라진 상태였다.

몰려드는 몬스터의 등급은 C급부터 A급 정도.

맹수를 닮은 생김새로 보아 만수왕의 수하들인 것 같았다.

등급은 대단치 않았지만, 쪽수 앞에 장사 있겠나.

[ 이제 슬슬 위험해요. 이쯤에서 합류해 주세요. ]

웅톡방을 통해 신호를 보내자,

“밑준비는 충분한 것 같군.”

새하얀 전송진에서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아저씨와 함께 선글라스를 쓴 두더지가 튀어나왔다.

“인국, 시작하지.”

흑암이 선글라스를 밀어 올리자,

- 크, 크르륵, 크륵······.

검투사의 망령과 상륙조가 쓸어버린 몬스터들이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훌륭하군. 저 둘만 제외하면 말이야.”

눈 깜짝할 새에 수백에 달하는 언데드 군단을 만들어 낸 흑암의 손가락이 살육전차와 싸움꾼 손주님을 가리켰다.

손주님은 너무 흥분상태라 몬스터들을 전부 곤죽으로 만들어놨고, 민봉식도 별반 차이는 없었으니까.

이래서야 네크로맨시 스킬을 써도 의미가 없다.

“저 둘이 처리한 건 쓸 게 없군.”

- 쿵!

흑암이 혀를 차며 손을 내미는 순간, 검은 안개가 바닥을 휩쓸고 지나갔다.

[ 김수하, 다음. ]

[ 이주혁 씨, 나오세요. ]

저주에 걸린 몬스터들이 언데드 군단에 가로막혀 허우적대고 있는 사이, 이주혁 씨, 삼돌이와 함께 또 한 무리의 헌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용왕의 마법사와 저스티스, 패왕의 궁수들이었다.

“다, 다들 자리 잡아주세요!”

“컹! 컹컹!”

이주혁 씨는 고작 두 달 사이 몰라볼 정도로 벌크업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 키도 컸다. 한 5센티 정도?

여전히 건장한 체격은 아니지만, 적어도 시위를 당길 때마다 바닥을 나뒹굴지는 않았다.

‘나도 성장기 때 수다르 님을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속으로 아쉬움을 토하는 사이, 이주혁 씨와 함께 나타난 상급 헌터들이 줄줄이 전선에 가담했다.

“앞으로! 진형 유지해!”

“너무 멀리가지 마!”

“막아! 막아!”

선봉에 서서 몬스터를 막는 것은 나, 이강혁 씨, 문경준, 그리고 흑암의 언데드 군단이었다.

나머지 헌터들의 역할은 방진을 짜서 착륙지점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주혁 씨의 임무는 저격 능력을 활용해 공중조를 지원하는 것이었다.

“쏴! 쏴!”

원형의 거점 중심부에서는 이주혁 씨를 비롯한 궁수들과 마법사들이 하늘을 향해 끊임없이 화살과 마법을 쏘아대고 있었다.

“쏴요!”

이주혁 씨가 시위를 당길 때마다 십여 발로 나뉜 화살이 날아가 드래곤의 몸통에 적중했다.

하지만 그 화살을 맞고 곧장 추락하는 드래곤은 없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드래곤은 드래곤이니까.

공격력은 A급이라 한들 산탄으로 쏜 화살 한 방에 쓰러지는 게 이상한 일이지.

[ 수, 수하님! 정말 이걸로 괜찮은 건가요? ]

[ 걱정하지 말고 계속 쏴요. 그냥 맞추기만 하면 됩니다. ]

그래, 그거면 충분하다.

이제 곧 저 녀석들은 하나둘 바닥으로 추락할 테니까.

바로 그때, 웅톡방을 통해 고미의 전음이 전해졌다.

[ 수하! 멀리서 커다란 놈들이 진격하고 있다! 조심해라! ]

고개를 들어보자, 저 멀리서 집채만한 거인족 전사들과 그보다 몇 배는 더 커다란 코끼리형 몬스터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하아······. 첩첩산중이군.’

적의 본진치고는 너무 잔챙이들만 가득하다 했더니, 역시나 저런 게 기다리고 있었군.

이제 슬슬 S급들도 투입하는 건가.

[ 이주혁 씨, 대충 몇 마리쯤 맞췄죠? ]

[ 이, 이삼십 마리쯤······. 더 맞춰 보겠습니다! ]

[ 청심환 드시고, 최대한 많이 맞추세요. ]

[ 버, 벌써요? ]

[ 네, 지금 드셔야 합니다. ]

< 나눠먹기(Gomi)를 활성화합니다. >

< 대상 : 수수깡 >

스킬이 발동하자, 이주혁 씨는 곧장 ‘특제 보존식 청심환’ 한 알을 집어삼켰고,

- 우웅, 우우웅······.

그의 가슴에 젤리 원자로가 생겨나며 화살의 개수가 두 배 이상 늘어났다.

- 크륵, 크르륵!

- 아우우우우!

그 사이에도 지상의 몬스터 무리는 시나브로 앞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 동이님, 시작해도 될까요? ]

[ 그렇게 해주십시오 ]

원래대로라면 조금 더 기다리고 싶었지만······. 이쯤이면 되겠지.

[ 삼돌아! 시작해! ]

[ 컹! 컹컹! ]

< 나눠먹기(Gomi)를 활성화합니다. >

< 대상 : 작은 삼돌이 >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삼돌이의 몸이 돌연 커다랗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아우우우!”

벌크업한 삼돌이가 긴 울음소리를 내뱉자, 녀석의 세 개의 머리 중 하나에서 시커먼 기운이 흩어져 나왔다.

히드라의 독주머니를 달아준, 바로 그 머리였다.

- 키, 키에에에!

그 순간, 이주혁 씨의 화살을 맞은 드래곤들이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몇몇은 곧장 지상으로 추락했고, 또 몇몇은 비틀거리며 더 이상 브레스를 뿜지 못했다.

일부는 조금 더 상태가 나았지만, 브레스의 위력이 확연하게 약해졌다. 덤으로 속도도 떨어졌고.

[ 돼, 됐습니다! 정말 되는군요! ]

비틀거리는 드래곤들의 모습을 본 이주혁 씨의 입에서는 곧장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시간차 독 공격.

그것도 본래 S급인 히드라의 맹독에 흑암과 토생원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특제 독이 묻은 화살이다.

아쉽게도 이주혁 씨에게 새로 생긴 능력 –화살을 통해 마력이나 작은 물질을 전달할 수 있는 능력- 이 있어야만 쓸 수 있는 전술이라, 시간차 공격을 할 수 있는 건 한 명 뿐이지만.

‘일단 걸려들면 아무리 드래곤이라도 멀쩡할 수는 없지.’

처음부터 맹독이 묻은 걸 알았다면 놈들도 주의를 했겠지만, 별것 아닌 화살로 위장해 최대한 많은 수에게 화살을 꽂아놔서 피해가 더욱 클 수 밖에 없었다.

[ 잘하셨어요. ]

- 키에에에에!

- 키이이이!

동족들이 쓰러지자, 분노에 찬 드래곤들의 울음소리가 온 하늘을 가득 메웠다.

동시에 용귀를 향해 공격을 퍼붓던 드래곤 부대 중 일부가 우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 동이님, 지금인 것 같습니다. ]

하지만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비장의 수가 있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