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273화 (273/300)

EP.273 최후의 싸움(1) : 돌입

영덕전의 광장 위에는 4대 길드의 상급 헌터들이 구름처럼 모여 있었다.

수리를 마친 용궁에서는 이전과 비할 수 없이 강렬한 마력 파장과 함께 오색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우, 우웃······. 수, 수하! 이, 이 모든 녀석들이 정말로 위대한 이 몸과 함께 악당들을 물리치기 위해 모여든 것이냐?”

광장 위에 떠오른 수십 개의 화면에는 용궁 곳곳에 위치한 전송진이 비추고 있었다.

전송진 앞에는 이름 모를 헌터들이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중 누군가는 침착한 손놀림으로 장비를 손질하고 있었고, 일부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전송진 위에 떠오른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더러는 긴장을 풀기 위해 동료들과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 받거나, 기도를 하듯 눈을 감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사람도 존재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생각과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오직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드라고니아로 향하고 있었다.

“우, 우웃······.”

화면에 떠오른 수많은 동료들의 모습을 본 아기곰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고미님, 한 말씀 하시겠습니까?”

그때, 동이님이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고미는 오랜 세월 동료들이 생기기를 바라왔고, 동이님은 그 마음을 가장 잘 아는 분이니까.

“우, 우웅?!”

하지만 왠일인지 나서기 좋아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녀석이, 당황한 듯 두 귀를 쫑긋거리며 선뜻 답을 내놓지 못했다.

“고미님,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세상을 지키기 위해 모인 것입니다. 그들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주시지요.”

이어서 수다르 님이 온화한 목소리로 고미를 다독여 주었다.

“곰 선생님, 저희 저스티스의 길드원들도 모두 선생님을 아끼고 있습니다.”

이강혁 씨의 말대로, 저스티스의 길드원들은 대부분 고미를 알고, 또 좋아했다.

이 슈퍼 아기곰은 얼마 전 모두가 보는 앞에서 패왕의 후원자인 무신을 격파했으니까.

게다가 저스티스의 헌터들 중 대부분은 사람들을 지키고 세상을 지키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니, 고미와 파장이 가장 잘 맞는다고 할 수 있었다.

“허허, 우리 블랙 메이지의 길드원들도 자네에게 깊이 감사하고 있네.”

이어서 노인국 씨도 블랙 메이지의 길드원들이 자신들을 고통에서 구해준 작은 영웅에게 감사하고 있음을 상기시켜주었다.

이제는 컬러 메이지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 것 같은 밝은 길드가 된 것 역시 모두 고미의 활약 덕분이었으니까.

“치, 우리 길드에만 얼굴을 비추신 적이 없어. 저희 길드원들도 다 고미님 좋아하거든요? 수다르 님 덕분에 다들 고미님을 직접 만나 뵙고 싶어 한다고요.”

유일하게 길드원들에게 고미를 직접 구경시켜 준 적이 없는 길드는, 바로 용왕이었다.

이에 용왕의 수장인 한유진 씨는 살짝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입술을 내밀었다.

“게다가 제가 사도가 된 것도, 유찬이랑 제르보나가 더 강해진 것도, 포션 제작이나 힐러 육성팀이 만들어진 것도 전부 고미님 덕분이잖아요. 저희 길드원들도 다 알고 있어요.”

이강혁 씨와 한유진 씨, 노인국 씨까지 나서서 용기를 북돋아 주자, 초콜릿색 솜뭉치의 짤막한 꼬리에 조금씩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저, 정말이냐? 모, 모두가 위대한 이 몸 때문에 위험한 일에 관여되었다고 이 몸을 원망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

고미의 물음에 자리에 있던 모두는 일순 멍한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설마하니 이 녀석이, 이 문제를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그럴리가요. 제가 몇 번이나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곰 선생님이 없었다면, 저희는 이미 모두 죽고 없을 것입니다.”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게 생각하는 놈이 있으면 제가 통구이를 만들어 드릴게요.”

아, 아니······. 한유진 씨, 그건 문제의 해결책이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럴 리가 없다. 적어도 우리 길드의 길드원들은 모두 너에게 감사하고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고. 네가 한 일에 자부심을 가져라.”

한때 세상을 멸망시키려 했던, 아니, 이전 세상에서는 이미 그랬던 전력이 있던 흑암의 말에, 아기곰의 눈이 다시 평소처럼 반짝하고 빛났다.

“우, 우웃! 알겠다! 그, 그렇다면 위대한 이 몸이 너희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주마!”

말을 마친 아기곰은 긴장을 가라앉히기 위해 몇 번인가 심호흡을 하고는 나의 어깨 위에 올라탄 채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연설을 시작했다.

“이, 이 몸은 초코바와 꿀이 좋다!”

고미······.

시작이 왜 그래······.

첫 무대(?)라 너무 긴장한 거니.

참으로 맥락없는 첫 마디에, 광장에 있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화면으로 영덕전을 지켜보던 수천의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비아니와 갈비도, 엄마가 해주는 김치찌개와 계란말이도, 너무 너무 좋다!”

뜬금없는 식취향 커밍아웃(?)에, 운집한 군중들 중 일부는 제 귀를 의심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더러는 이게 무슨 소리냐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하, 하지만! 역시 가족들과 친구들이 가장 좋다! 너, 너희들에게도 틀림없이 좋아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기곰의 연설이 이어질수록, 장내에는 묘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이 몸은 아주 오랫동안 홀로 괴수와 악당들에게 맞서왔다! 하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알고 있다! 이 몸이 악당들과 맞서는 것은, 가족들과 친구들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나 말투와는 무관하게, 고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이상할 정도로 마음에 와닿았다.

“그, 그러니까! 너희들이 죽는다면 너희들의 가족과 친구들이 슬퍼할 것이다······.”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아기곰은 이 대목에서 커다란 눈을 아래로 떨구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괴, 괴수들이 무섭다면 달아나도 좋다! 당하지 못할 것 같다면 도망가서 이 몸의 친구들에게 지켜달라고 하거라! 수하가 괘씸한 가짜 녀석을 물리치고, 이 몸이 만수왕과 악몽의 지배자를 물리칠 때까지, 어떻게든 살아남아다오!”

전쟁에 나서기 전에 위험하면 도망치라니, 결코 해서는 안되는 발언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더욱 달아나고 싶지 않아졌다.

“한 명이라도 더 살아남아다오! 부탁이다! 이 몸과 수하가, 그리고 친구들이, 반드시 악당들을 물리칠 것이다! 그때까지만 어떻게 해서든 버텨다오!”

고미가 말을 마칠 무렵, 장내에는 묵직한 적막만이 가득했다.

“여기까지 와서 도망치기는 왜 도망쳐요! 열심히 싸워야지!”

그때, 이름 모를 누군가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화려한 옷차림으로 보아, 컬러 메이지의 길드원인 듯 싶었다.

“그러게, 이상한 대장이네. 목숨을 걸고 한 명이라도 더 물리치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이어서 누군가가 농담기 어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 우리 몸 정도는 우리가 챙길 테니까! 우리도 나름대로 산전수전 다 겪은 헌터라고!”

“힐러에 포션에 긴급 탈출 아이템까지 줘놓고 뭘 걱정하는 거야!”

고미의 귀여움 때문일까, 조금 어처구니 없지만 따뜻함이 묻어나는 말 때문일까, 무겁게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적잖이 풀어진 게 느껴졌다.

“이쪽도 초월자가 몇인데, 한 번 해보자고!”

“어차피 헌터 짓은 다 목숨 걸고 하는 거야!”

“우, 우웅!? 이, 이 녀석들! 위대한 이 몸이 너희들을 걱정해 주었건만!”

예상을 벗어난 사람들의 반응에 당황한 아기곰은 주먹을 바르쥐며 분한 듯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러나 녀석의 꼬리는 쉴 새 없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힐끗 시선을 돌려보자 ‘웅비어천가’의 게이지가 어느새 절반 가까이 차올라 있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왁자지껄한 소리가 터져 나오고, 저마다 한마디씩 외치며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아들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즈음······.

“조용! 드라고니아에 도착했다!”

동이님의 목소리가 용궁 전체에 울려 퍼지며 소란이 잦아들었다.

- 우웅······.

하지만 바깥을 비추고 있는 화면으로 시선을 돌려봐도, 한점의 빛조차 없는 시커먼 공간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이지, 최종 보스가 숨어있을 법한 곳이군.’

그제야 나는 적들이 왜 이곳을 자신들의 본거지로 삼았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동이님의 말에 따르면, 드래곤들의 고향에는 총 세 개의 결계가 존재했다.

그리고 세 겹의 결계 중 가장 바깥쪽에 있는 결계의 역할은, 바로 모든 탐지 능력으로부터 드라고니아의 위치를 감춰주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드라고니아는 수천 년 동안 외적의 침략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고.

“정말 여기야?”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

“기다려 봐, 결계가 있다잖아.”

헌터들이 웅성거리는 사이, 다시 한 번 동이님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지금부터 결계 파괴 작업을 진행하겠다! 각자 모든 준비를 마치고 상륙 즉시 투입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춰라!”

그 순간, 나는 웅톡방을 활성화해 숲속 친구들과의 통신이 원활한지를 확인했다.

결계 파괴 임무는, 숲속 친구들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 다들 제 목소리 들리시죠? ]

[ 들립니다. ]

[ 이상 무. ]

[ 잘 들립니다. ]

[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숙조. ]

[ 그럼 결계 파괴조는 먼저 용귀의 입으로 이동해 주십시오. ]

잠시 후, 동이님의 명령에 따라 고미와 나를 비롯한 숲속 친구들 중 몇몇과 각 길드에서 차출한 정예 헌터 부대가 대기 장소로 향했다.

- 우웅, 우우웅······.

그렇게 몇 분 정도가 지났을 때, 기이한 울림과 함께 용궁 전체가 미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우, 우웃! 수하! 드, 드디어 거북빔을 쏘는 것이냐!?”

“다웅!”

그 진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린 고미와 다웅이의 보송보송한 솜털이 가시처럼 곤두섰다.

[ 용귀포, 발사! ]

- 콰아앙!

다음 순간, 우렁찬 포성과 함께 용귀의 입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갔다.

곧이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던 시커먼 공간 위에 물결 같은 파문이 일어났다.

[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결계를 해체 중입니다. ]

우리는 웅톡방을 통해 연결된 동이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출동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드라고니아의 두 번째 결계는 모든 물리력과 마법을 다른 공간으로 날려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즉, 모종의 수단으로 드라고니아의 위치를 찾는데 성공한들, 어떤 공격도 ‘닿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드래곤 로드급의 마력으로만 움직일 수 있는 이 거북이 모양의 전함에는 그 결계를 해체할 수 있는 힘이 잠들어 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 결계를 해체할 수 있는 마법의 파장을 수백 배로 확산시켜주는 거라고 하는데······.

난 문과라 자세한 원리는 모르겠다.

- 쿠릉, 쿠르릉······.

용귀포가 드라고니아의 결계를 집어삼키기 시작하자, 뇌성과도 같은 소리가 사방에 울려퍼졌다.

출동이 임박했다는 신호였다.

[ 결계 파괴조, 출동! ]

명령이 떨어지자, 아기곰 형제가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흔들며 달려가기 시작했다.

“수하, 가자! 드디어 우리의 차례구나!”

“다웅!”

나 역시 아기곰 형제의 뒤를 따라 잽싸게 용귀의 입 밖으로 뛰쳐나갔다.

- 우웅, 우우우웅······.

용궁을 벗어나기 무섭게 기이한 문자로 이루어진 결계가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두 번째 결계가 뚫렸을 때 발동되는 세 번째 결계······.

이것을 부술 수 있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하지만 그 간단한 방법이 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 문제였다.

「 마지막 결계는, 초월자 다섯 이상의 공격을 버틸 수 있는 방어 마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즉, 결계 파괴조는 현재 저희쪽 진영에서 가장 강한 인원이 투입되어야 합니다.」

다만······. 이쪽에는 우주 최강의 아기곰이 있다는 사실.

“간닷! 불도장!”

“다우우우웅!”

거대한 젤리 모양의 불벼락이 떨어지고, 다웅이의 웅혼한 일격이 뒤따라 결계를 강타했다.

- 콰직, 콰지지직!

“웅 노사, 저도 힘을 보태겠습니다!”

뒤이어 우렁찬 외침과 함께 천마의 거대한 검기가 균열이 일어난 결계 위에 내리꽂혔다.

“수하!”

“알았어!”

그리고 결계 파괴조의 마지막 한 명은······.

< 곰기(Ex)가 활성화됩니다. >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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