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71 각자의 역할
< 세 개의 연계 퀘스트가 모두 완료되었습니다. >
<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
< 추가 보상으로 스킬 강화권 5개와 능력치 포인트 10개를 지급합니다. >
처음으로 주어진 연계 퀘스트답게, 보상이 넉넉하다.
하지만 진짜로 중요한 보상은 그 다음에 있었다.
< 추가 보상으로 새로운 전용 스킬이 추가됩니다. >
< 전용 스킬 : 웅비어천가 (熊飛御天歌) (Gomi) >
- 외로운 곰은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자신의 위대함을 알아주기를 바라왔습니다. 사람들의 응원과 함성, 애정은 위대한 곰에게 더욱 강력한 힘을 선사해줄 것입니다.
- 사람들의 칭찬과 응원, 함께 싸우는 동료들의 투지가 모여 고미의 힘으로 전환됩니다.
‘더욱 강력한 힘’이라는 짤막한 문구에, 온몸이 바르르 떨리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여기서 더 강해진다고?’
이 슈퍼아기곰이 더 강해지면, 대체 뭐가 되는 걸까?
「 우오오오, 위대한 이 몸은 더욱 강력한 힘을 손에 넣었다! 덤벼라 악당들아! 」
순간 머릿속에 산처럼 거대하게 변한 초콜릿색 아기곰이 솜방망이를 휘둘러 대지를 가르고 해일을 일으키는 광경이 떠올랐다.
불도장 한 번으로 행성을 불태우고, 곰기를 발산해 지구를 반으로 가른다던가, 발구름 한 번으로 지진을 발생시킨다던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군.’
이어서 ‘웅비어천가’ 스킬의 옆쪽을 보니, 게임의 체력 바 같은 기다란 막대기 하나가 생겨나 있는 것이 보였다.
‘이 게이지가 모두 채워지면 파워 업이 가능한 건가?’
게이지는 대략 20퍼센트 정도가 차 있었다.
아마 지금까지 사람들이 고미를 예뻐해 주고 칭찬해준 일들이 적금처럼 차곡차곡 쌓인 모양이었다.
“고미, 이것 좀 봐.”
꿀태창을 가시모드로 전환해 보여주자, 초콜릿색 솜뭉치의 솜털이 흥분과 기대감으로 빳빳하게 곤두섰다.
“우, 우웅!?”
“네 전용 버프 스킬인 것 같아.”
“흐으음······.”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우주 최강을 자처하는 아기곰은 조금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살짝 입술을 내밀었다.
“정말로 이런 것이 이 몸을 더 강하게 만들 수 있겠느냐?”
이 녀석은 나와 달리 상태창이니 뭐니 하는 것의 도움없이 스스로 강해져 왔다.
그러니 상태창에 떠오른 스킬 하나가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 줄 거라는 사실을 조금 믿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래도 한번 믿어보자. 나는 여태 시스템 창의 도움을 받아서 강해졌잖아. 물론 제일 중요한 건 네 가르침이었지만 말이야.”
자신의 공로를 인정해주는 듯한 나의 말에, 칭찬을 좋아하는 아기곰은 또다시 거만한 표정으로 턱을 치켜들었다.
“후훗, 좋다. 물론 네가 강해진 건 이 몸의 공로가 대부분이지만, 그 녀석도 약간의 도움은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칭찬을 듣는 순간, 아주 미약하지만 ‘웅비어천가’의 게이지가 상승했다.
‘으음······. 칭찬으로 파워업을 하는 아기 먼치킨이라니.’
설정 자체도 어이가 없지만, 진짜 이런 걸로 게이지가 찬다는 게 더 황당하다.
이어서 나는 지금껏 쓰지 않고 모아둔 능력치와 스킬 포인트를 확인해 보았다.
현재 가지고 있는 능력치 포인트는 총 39개, 스킬 강화권은 14개.
지금 가지고 있는 것 중 완료되지 않은 유일한 퀘스트인 ‘꿀벌처럼 일해라’ 완료시 능력치 포인트 49개와 스킬 강화권 17개, 무기 강화권 1개가 남는다.
‘음, 이게 통장 잔고가 넉넉한 사람의 마음인가.’
착실히 저금을 한 사람이 몫돈을 보고 마음이 풍요로워지듯, 시스템 창에 새겨진 포인트를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좋아, 우선은 아껴두자.’
능력치는 ‘분곰쇄신’으로 한계까지 끌어올린 후 찍는다.
스킬 역시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 등급이 상승할 수 있으니, 최대한 미뤄뒀다가 찍는 편이 낫겠지.
생각을 마친 나는 곧바로 용궁으로 통하는 게이트를 열었다.
“가자, 모두에게 할 이야기가 있어.”
이제 마지막 준비다.
* * *
용궁에 들어서기 무섭게 다웅이의 솜털이 바짝 곤두서며 녀석의 몸집이 두 배 가까이 불어난 것 같은 착각이 느껴졌다.
“다, 다웅?!”
광장의 바닥에 깔린 형형색색의 마정석과 눈앞에 보이는 화려한 영덕전의 모습에, 다웅이는 어디를 봐야할지 모르겠다는 듯 계속해서 좌우로 고개를 돌려댔다.
“다, 다웅! 다웅!”
심지어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봉식이의 품에서 뛰어내려 폴짝폴짝 뛰어다니기까지 하고 있다.
“어이구, 난리가 났네, 난리가 났어. 확실히 이런 거 보면 아웅이랑 다웅이랑 고미랑 형제는 형제인가 보다.”
게으름뱅이 판다의 정체성마저 잊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기 판다의 모습에, 실상 다웅이의 보모 역할을 맡고 있는 봉식이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아웅이도 처음 용궁에 왔을 때는 평소의 점잖은 모습은 어딜 가고 신이 나서 어쩔 줄을 몰라했지.
“다웅아, 얼른 가자. 오늘은 숲속 친구들이 모두 모여야 해. 다음에 아웅이랑, 고미랑, 엄마 아빠랑 다 같이 또 오면 되니까, 그때 용궁 다 구경 시켜줄게.”
다음 번에 용궁 전체를 보여주겠다는 말에 다웅이는 다소 실망한 듯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얌전히 걸어와 다시 봉식이의 품에 안겼다.
‘그러고 보니 제 발로 걸어다니는 건 아웅이 하나 뿐이네.’
나는 속으로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고미를 어깨에 올린 채 영덕전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수하님, 고미님. 이런, 오늘은 다웅님이 함께 오셨군요.”
어좌에 앉아 화면을 조작하고 있던 동이님은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곧바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동이님. 제가 할 말이 있어서 그런데 지금 여기 있는 멤버들을 전부 불러주실 수 있을까요?”
“알겠습니다. 무언가 하실 말씀이 있는 표정이군요.”
나의 부탁에 동이님은 흔쾌히 자신의 앞에 있는 화면을 슥슥 넘기더니 그곳에 대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수하 님과 고미 님이 오셨습니다. 무언가 하실 말씀이 있는 것 같으니 모두 영덕전으로 모여 주십시오.”
“우, 우웅!?”
“다웅!?”
장내에 울려퍼지는 동이님의 목소리에, 아기곰 형제의 두 귀가 쫑긋하고 일어섰다.
‘뭐야 이거······. 방송 기능도 있었냐.’
그래, 모양이야 어찌됐든 이거 전함이었지.
전함이니까 방송 기능이 있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다.
그게 아니라면 일일이 발로 뛰어다니면서 정보를 전달해야 할 테니까.
“위, 위대한 이 몸이 왔다! 고북! 수다르! 토생원! 흑암! 모두 영덕전으로 모이거라!”
바로 그때, 용궁 전체에 고미의 목소리가 용궁 전체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다, 다웅!” (다, 다웅이도 왔다!)
고개를 돌려보자, 차원 전함의 방송 기능에 호기심을 느낀 아기곰 형제가 어좌에 뛰쳐 올라가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
역시, 행동력 하나는 끝내주는구나.
“오, 오오! 수하! 이것 보거라! 웅자후를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이 녀석이 우리의 목소리를 전해주고 있다!”
“다, 다웅! 다웅!”
다시 한번 용궁 전체에 울려 퍼지는 아기같은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입가에서 웃음이 피어올랐다.
‘하여간, 이 녀석과 함께 있으면 걱정을 할 틈이 없단 말이지.’
심지어 전쟁을 앞둔 와중에도 말이다.
“허허, 고미님이 아주 즐거워 하시는군요.”
아기곰 형제의 기내 안내 방송(?)이 나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영덕전의 물방울을 통해 숲속 친구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허허, 고미님.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고미의 충신 1호, 수다르님과 그 제자인 토생원이었다.
두 사람의 뒤에는 용궁의 주인, 고북 대왕이 서 있었다.
“고미님! 저희도 왔어요!”
“삐이이이!”
이어서 한유진 씨와 알틴, 이유찬 씨와 제르보나 씨가 영덕전의 광장을 가로질러 우리에게 다가왔다.
“흥, 어린아이처럼 굴지 말아라. 용궁 전체에 네 목소리가 울려퍼져 시끄럽지 않느냐.”
“허허, 고미 선생, 기분 나빠하지 말게. 말은 이렇게 해도 자네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아주 반가워 했으니까.”
마지막으로 나타난 것은 한때는 적이었으나, 이제는 든든한 아군이 된 New인국 씨와 츤데레 두더지, 흑암이었다.
‘이제는 노인국 씨 어깨에 올라타 있는게 아주 자연스럽구만.’
서로 괴롭히고 원수처럼 굴 때는 언제고, 이제는 아주 한 몸처럼 붙어 다니고 있다.
뭐, 그런 모습이 더 보기 좋은 것도 사실이지만.
“빨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에게 드릴 말씀이 있어서 모이라고 했어요.”
나의 말에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 숲속 친구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대전 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선 이걸 봐주세요.”
나는 쓸데없는 말로 시간을 끌지 않고, 곧장 시스템 창을 열어 붉은색 디데이 카운트를 보여주었다.
남은 날짜는 98일.
석 달이 조금 넘는 시간이지만, 최소한 한 달 정도는 일찍 쳐들어갈 생각이니, 실제로 남은 시간은 두 달 언저리라고 보는 편이 좋았다.
“이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군요.”
98이라는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린 수다르님의 얼굴이 어둡게 내려앉았다.
“드라고니아에 있는 제 권속의 보고와도 일치하는군요. 대략 서너 달 내로 출정이 이루어질 것이라 했습니다.”
동이님이 디데이 카운트의 의미를 더욱 명확히 해주자, 순간 장내의 공기가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저희도 준비를 서둘러야 할 것 같아요. 용궁 수리는 언제쯤 끝날까요?”
나의 질문에 용궁 수리를 총괄하고 있는 동이님은 기다렸다는 듯 답을 내놓았다.
“길어야 한 달입니다. 다만 재료가 부족하니, 수하님께서 조금 서둘러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일주일 내로 재료는 모두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봉식아.”
신호를 보내자, 봉식이는 곧바로 오늘 모아온 A급 마정석 40여 개와 S급 마정석 하나를 고북 대왕에게 건네주었다.
“용궁의 전사들은 이미 오랜 세월 이 전쟁을 준비해 왔습니다. 저희는 당장 내일이라도 출정할 수 있습니다.”
마정석을 받은 고북 대왕이 결연한 눈빛으로 말했다.
“저희 쪽도 한 달이면 충분해요. 수다르님과 토생원의 제자들이 계속 포션을 만들고 있고, 길드원들은 이미 저스티스 사람들이랑 짝을 지어서 재료를 모으고 있어요. 겸사겸사 훈련도 하고 있고요. 의료팀도 대충 꾸려졌어요. 아직 실전에 투입하려면 조금 훈련이 필요하겠지만요.”
뒤이어 한유진 씨 역시 용왕 쪽이 맡은 보급 임무와 의무팀 편성 및 전투 준비가 착실히 진행되고 있음을 밝혔고,
“저스티스는 오래 전부터 전쟁을 준비해 왔습니다. 남은 건 블랙메이지나 용왕과 손발을 맞추는 것 뿐입니다.”
인간들 중 가장 오랜 시간 이 전쟁에 대비해온 회귀자, 이강혁 씨 역시 굳은 표정으로 상황을 보고했다.
“우리 쪽도 필요한 것들은 모두 갖춰가고 있다. 내가 직접 길드원들을 지도하며 실력도 빠르게 올라가고 있고, 너희들이 싫어하지 않을만한 방식으로 총력을 다해 소환수들을 제작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흑암이 보고를 마쳤다.
‘진짜 새사람 됐네.’
그때, 한유진 씨가 싸늘하게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수하씨······. 드라고니아로 가기 전에 한가지 확실히 해야 할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요.”
“그래, 설마 후방에 적을 남겨두고 전쟁을 치를 생각은 아니겠지? 내부의 적 하나가 외부의 적 열보다 무서운 법이다.”
그러자, 흑암 역시 기다렸다는 듯 한유진 씨의 의견에 동의를 표했다.
“그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이미 문경준과 그 수하들은 사숙조의 수족이 되었습니다.”
오늘 막 처리하고 돌아온 문제가 첫 번째 안건으로 오르자, 천마가 곧장 답을 내놓았다.
“정말이에요?”
“정말이냐?”
천마의 답을 들은 두 사람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치켜뜨며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네. 그렇게 됐어요. 가능한 차별하지 말고 대해주세요. 저스티스만으로는 병력이 부족할 테니까, 인원이 부족한 곳을 패왕분들로 채우는 걸로 하죠.”
순식간에 진행 상황을 확인한 후, 나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사실 오늘 이 자리에 모두를 모여달라고 한 건······. 이 전쟁을 지휘할 사람을 정하기 위해서예요.”
이어지는 나의 말에, 숲속 친구들은 왜 그런 것을 정해야 하냐는 듯 나와 고미의 얼굴을 바라봤고, 숲속 친구들의 대장님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마치 처음부터 정해진 일이라는 것 같은 반응.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이 전쟁을 이끌 사람은, 나도, 고미도 아니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