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68 향긋함이 폭발한다.
- 치익······.
나는 곧장 참숯 1호를 들어 영지버섯에 슬며시 가져다 댔다.
‘자, 가보자. 참숯 버섯구이다.’
구이는 불 조절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요리다.
그리고 지금의 나라면 흑룡 셰프 못지 않은 완벽한 불 조절이 가능하지.
향긋한 참숯의 향기와 절묘한 불 조절로 완성되는 환상의 불맛.
이게 바로 적들을 요리할 김수하표 특급 레시피의 핵심이다.
눈앞에 또다시 네 마리의 검투사가 나타나자, 이번에는 이강혁 씨가 앞으로 나섰다.
“이번에는 제가 좀 나서보겠습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연습할 기회조차 없을 것 같아서 말이죠.”
이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뒤 이강혁 씨가 몬스터들을 처리하도록 두었다.
지금은 약한 불로 버섯이 속부터 익기를 기다려야 할 때니까.
아직 이 특제 버섯의 익는 시간을 정확히 알지 못하니, 천천히, 느긋하게 식재료의 특징을 파악해야지.
“조, 조정위원님, 엄청 강해지셨네요.”
이강혁 씨와 교대한 내가 친구들 곁으로 돌아가자, 이주혁 씨가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음, 어째 나를 보는 눈도 봉식이를 볼 때랑 비슷해졌네.’
역시 이분은 강한 걸 동경하나 보다.
“사숙조, 처음 쓰는 데도 초식의 운용이 아주 훌륭하시군요. 다른 초식도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어서 무서운 손주분도 눈을 번득이며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너, 넌 그렇게 보지 마.’
네가 나한테 관심을 보이면 무섭다고.
그러지 말라고.
바로 그때,
- 콰르르르!
바위 더미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나의 귀를 잡아끌었다.
고개를 돌려보자, 네 마리의 몬스터는 이미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어 있었다.
문제는······. 그 뒷면의 벽면과 기둥까지 덩달아 잘려있다는 점이었다.
아마 그 소리는 벽과 기둥이 무너지는 소리였던 모양이다.
‘으, 으아아······. 이게 뭐냐.’
이런 건 만화에서 가능한 거 아니었냐고요!
“오오, 허수아비! 제법 쓸만한 검격을 날릴 수 있게 되었구나!”
“다웅!” (괴, 굉장해!)
상상을 초월하는 일검의 위력에, 고미와 다웅이마저 솜방망이를 두드리며 허수아비를 칭찬했다.
“확실히 검령을 다루는 게 쉽지가 않군요. 너무 난폭해서 조절이 안됩니다.”
하지만 정작 이강혁 씨 본인은 자신이 의도한 결과가 아니라는 듯 난감한 기색을 내비쳤다.
“허허, 그래도 힘을 빌려주는 걸 보니 그 녀석도 이 노사가 마음에 든 모양이군요.”
손주님, 대체 저 사람 손에 뭘 들려준 거예요······.
‘이강혁 씨랑 대련할 때는 절대 진검으로 하면 안 되겠네.’
천마도 그렇고 천마신검도 그렇고, 너무 마이웨이를 걷는 캐릭터라, 수 틀리면 그대로 골로가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하아······.”
하지만 뭔가가 이상했다.
고작 한 번 검을 휘둘렀을 뿐인데, 이강혁 씨는 이상할 정도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검령을 완전히 굴복시키지 못하면, 신검을 휘두를 때마다 엄청난 진기를 소모하게 됩니다. 해서 저렇게 호흡이 흐트러진 것이지요.”
그 모습을 본 천마는 가볍게 웃으며 이강혁 씨가 왜 저렇게 지친 것인지를 설명해 주었다.
“대신 검령을 굴복시키는데 성공하면 신검이 스스로 힘을 빌려주니, 가벼운 일격으로도 평소의 배에 달하는 힘을 낼 수 있습니다.”
그렇군.
사람 가려가며 천하제일의 명검과 마검을 오간다는 건가.
성격으로 보나, 위력으로 보나, 과연 천마신교의 보물이라고 할만한 물건이다.
“그나저나, 역시 이 노사는 훌륭하군요. 검에 정신을 잡아먹히지 않고 이렇게 단시간내에 검의 힘을 끌어낼 수 있다니.”
······.
뭐라고?
지금 그 소리, 대체 무슨 의미야?
저 검이 강제로 정신을 지배한다는 소리?
그럼 그냥 마검이잖아!
“배, 백천. 그런 위험한 물건을 이강혁 씨 손에 쥐여준 거야?”
“이 노사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 드린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 검은 무공 수위 뿐 아니라 자신을 손에 쥔 자의 정신력까지 시험하니 말입니다. 뭐, 검에 정신을 사로잡힌다 해도 저와 웅 노사가 있으니 죽을 때까지 진기를 빨아 먹힌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이강혁 씨가 검령에 정신을 지배당하면 두들겨 패서 다시 검을 뺏을 생각이었다는 소리냐?
‘아아, 머리 아파······.’
이분이랑 오래 다니면 스트레스성 질환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제명에 못살 것 같다.
“무, 무신님······. 설마 저 검이······. 어, 어째서…….”
그때, 뒤쪽에서 줄곧 우리의 눈치를 살피고 있던 문경준이 쭈뼛거리며 입을 열었다.
무신이 자신의 적대세력인 저스티스의 길드장에게 저런 엄청난 아이템을 줬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문경준, 언제부터 내 결정에 대해 이유를 물을 수 있게 됐지?”
그러나 천마의 한마디에 늘 난폭하기 짝이 없던 문경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파르르 떨며 시선을 떨구었다.
‘부, 불쌍하다······.’
내가 저 사람을 딱하다고 느끼게 될 줄은 몰랐네.
아저씨, 어쩌다가 이렇게 쭈구리가 되버렸어요······.
- 으, 으어어어!
- 으우우!
바로 그때, 이강혁 씨에 의해 무너졌던 벽 뒷면에서 한 무리의 몬스터가 나타났다.
검격이 벽면을 무너뜨리기는 했지만, 그 뒤에 있는 몬스터까지 벨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정상적으로 통로를 따라갔다면 이렇게 많은 수를 한 번에 마주칠 리는 없을 것 같은데······.’
몬스터의 숫자는 대략 스물 이상.
정상적인 파티였다면 의도치 않은 트롤(?)이 되었겠지만, 지금 나에게는 딱 좋은 숫자다.
- 우웅, 우우웅!
마침 참숯 버섯구이도 완성됐고.
자, 그럼 한 번 가볼까?
“우웅!?”
아무런 충격을 받지 않았음에도 붉게 빛나는 삼색 영지버섯의 모습에, 아기곰의 보송보송한 꼬리가 빳빳하게 일어났다.
“다웅!?”
심지어 다웅이마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잘 익은 영지버섯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수, 수하, 설마······.”
내가 참숯과 영지버섯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눈치챈 아기곰이 더듬더듬 입을 여는 찰나,
- 쉬이이이익!
벌겋게 달아오른 영지버섯이 바람을 가르며 몬스터들을 향해 날아갔다.
- 쾅!
이어서 금빛이 뒤섞인 흑염이 굉음과 함께 폭발을 일으켰다.
“우, 우웃! 수, 수하!!!”
훗, 녀석, 놀라긴.
이게 바로 김수하의 신기술, 참숯 버섯구이 폭탄이다.
< 허곰섭물(C)를 활성화합니다 >
참숯 버섯구이가 화끈한 불맛을 낼 수 있음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허곰섭물로 방패를 회수했고,
“다, 다웅!?”
“오오, 오오오! 수하! 슈, 슈퍼 솔져, 슈퍼 솔져가 눈앞에 있는 것 같구나!”
그 모습을 본 고미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으, 으음······. 그렇네, 방패로 공격하는 게 슈퍼 솔져랑 똑같구나.’
그래서 저렇게 감동을 받은 건가.
내가 리벤져스 같아서?
거기까지 생각하고 한 행동은 아니었는데 말이지.
어쨌든 이 녀석이 즐거워하면 됐지.
하지만 고미를 감동시킬 나의 신기술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 만천화웅(SS)을 활성화합니다. >
‘역시, 되는군.’
참숯 버섯구이의 대폭발로 인해 생겨난 화염이 나의 손짓을 따라 회오리치며 한곳으로 응집되기 시작하자,
“서, 설마, 수, 수하!”
아기곰은 금방이라도 뒤로 넘어갈 것처럼 감격에 찬 표정으로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너무 좋아하는군. 좋아, 특별 서비스다.
굳이 소리를 칠 필요는 없지만······.
“고미류 기공술, 불도장!”
위대한 곰의 스킬명을 외치며 손을 휘두르는 순간, 허공으로 치솟은 화염이 한순간에 폭포처럼 쏟아지며 범위 안에 들어온 모든 것을 불살라 버렸다.
‘내 생각대로야.’
고미는 자신의 기로 불을 만들어 불도장을 사용한다.
이건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만천화웅으로 내 전용 아이템이 만들어낸 흑염룡의 불꽃을 조종하면 대충 비슷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결과는······. 보다시피 대성공.
이걸로 만천화웅이냐, 불도장이냐 하는 양자택일을 뚫고 두 가지 스킬을 모두 익혀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야, 근데 저렇게 다 태우면 마정석도 없어지지 않냐?”
“억!”
봉식이의 지적에 순간 마음이 흔들렸고, 눈 깜짝할 새에 불가마의 열기가 혈관을 타고 퍼져나갔다.
‘아, 안돼!’
당황한 나는 어떻게든 마음을 추스르며 몸 곳곳으로 진기를 흘려보냈다.
“다행이네, A급 마정석이라 다 타지는 않았다. 거의 다 멀쩡해.”
그 사이 마정석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봉식이가 피식 웃으며 잿더미 속에서 검은 보석 같은 물체 몇 개를 챙겨 나에게 돌아왔다.
“이, 이강혁 씨. 보스룸까지 얼마나 남았죠?”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나의 모습에, 이강혁 씨는 조금 당황한 듯 턱을 매만지며 답했다.
“아직 조금 더 가야 합니다. 쉬었다 가시겠습니까?”
“아니에요. 계속 가죠. 저는 가면서 열 좀 식힐게요.”
나의 대답을 들은 이강혁 씨는 곧장 다시 검을 빼들며 봉식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럼 보스룸까지 쉬십시오. 저와 봉식이가 길을 뚫겠습니다.”
그러나 이강혁 씨가 검을 뽑기도 전에 고미가 손을 들어 그를 멈춰세웠다.
“아니다, 허수아비. 여기는 봉식이에게 맡기거라. 저 녀석에게도 가르침을 주어야 하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봉식이한테도 가르침을 준다고 했지.
‘그럼 느긋하게 민봉식 구경이나 하면서 열을 좀 식혀볼까?’
문경준을 정면에서 때려눕힐 수 있게 된 저 무식쟁이가 이런 곳에서 다칠 리는 없으니까.
“자, 가랏! 봉식이!”
말을 마친 고미는 곧바로 봉식이의 어깨에 풀쩍 올라탔다.
‘음, 왠지 서운한데.’
늘 내 어깨에만 있다가 봉식이의 어깨 위에 올라탄 녀석을 보고 있자니 왠지 기분이 묘하군.
“자, 거기서는 이렇게!”
- 붕!
“아니다, 주먹을 그렇게 휘둘러서는 안 된단 말이다!”
이 그림 뭐냐······. 포x몬?
“그렇지! 그것이다!”
대체 뭐냐고······. 전차처럼 전진하는 2미터의 거인에 올라타서 명령을 내리는 아기곰이라니.
‘그나저나, 민봉식이 진짜 크긴 크네.’
지금 고미는 봉식이의 왼쪽 어깨에 올라탄 채 거대 로봇을 조종하는 파일럿처럼 열심히 솜방망이를 휘두르며 가르침(?)을 내리고 있었다.
고미가 아무리 쪼꼬미 사이즈라도 그렇지, 한쪽 어깨에 올려놓은 채 싸움을 할 수 있다니, 저 자식의 덩치는 정말이지 인간이 아니군.
‘그런데, 정말 무공을 가르쳐 주고 있는 거 맞아?’
아무리 봐도 단순히 거대 로봇에 탄 기분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데.
“오오! 봉식이, 네 녀석의 어깨 위는 정말로 편안하구나! 게다가 왠지 이 몸의 덩치도 함께 커진 느낌이다!”
맞네, 맞아.
로봇 놀이를 즐기고 있는 거야.
그렇게 정말 제대로 봉식이를 가르치고 있는 게 맞는지 의문을 느끼고 있을 때,
< 축하합니다.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
< 메인 퀘스트 : 불러봐요, 웅비어천가 (1/3) (완) >
시스템 창이 지금 저게 제대로 된 수련이라는 것을 인증해 주었다.
‘어이가 없군.’
저렇게 대충 가르쳐도 일을 한 걸로 쳐주는구나.
심지어 지금 고미의 가르침은 ‘이렇게’ 와 ‘저렇게’, ‘그것이 아니다!’ 정도로 아주 간단한 말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나한테는 시연까지 해가면서 가르쳐 줘놓고, 봉식이한테는 저렇게 대충이라니······. 이걸 기뻐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 콰드드득!
더 황당한 건, 고작 그 정도 조언으로 봉식이의 움직임이 빠른 속도로 체계를 갖춰가고, 공격의 위력도 확실하게 올라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진짜 밸런스 똥망이네.’
왜 봉식이는 매번 저렇게 쉽게 강해지는 거냐고! 억울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민봉식만큼은 나처럼 굴려달란 말이다!
“야, 김수하. 저거 보스 같은데. 어떡할래? 내가 할까?”
그렇게 억울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주화입마에 빠지려던 찰나, 봉식이가 대검을 든 채 석상처럼 서 있는 몬스터 하나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아니야, 내가 할게.”
이에 나는 곧바로 불가마의 온도를 조금 낮추며 참숯 1호를 쥔 손에 다시 힘을 주었다.
저거 상대로 검법 수련 좀 해보자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지.
은은한 열기를 발하는 참숯을 손에 들고 앞으로 걸음을 옮기는 순간,
< 새로운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
갑자기 시스템이 퀘스트를 보내왔다.
< 히든 퀘스트 : 죽이는 게 능사는 아니다. >
- 때로는 상대가 몬스터라 해도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게 이득일 때도 있습니다. 검투사의 무덤을 지키는 수호자를 죽이지 말고 제압하세요.
< 달성 조건 >
- 죽이지 않고 보스 몬스터를 무력화 시킬 것.
< 달성 보상 >
- 능력치 강화(+3)
- 스킬 강화(+1)
퀘스트의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통 그 목적을 알 수가 없었다.
‘보스 몬스터를 죽이지 말고 제압하라고?’
그런 게 가능한 건가?
아니, 그보다 왜 그런 짓을 하라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