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266화 (266/300)

EP.266 탄생! 영웅(英熊)검법!

“내 전용 검술?”

나의 질문에 초콜릿색 솜뭉치는 커다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자신을 찬양하라는 듯 빳빳하게 곤두선 솜털과 거만하게 치켜든 턱을 보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정말 굉장하네. 그런 것도 만들 수 있는 거야?”

이에 나는 그 속이 빤히 보이는 몸짓에 기꺼이 응해주었다.

실제로 대단하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무협지에서도 새로운 무공을 창안하는 건 한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무인들 중에서도 소수의 천재들 뿐이니까.

내 기억이 맞다면 기연을 얻어 신공을 익히는 주인공들은 많아도, 자신이 직접 신공을 창안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었다.

“후후, 사실 진정한 달인이라면 어떤 무공이든 자신에게 맞게 바꾸어 사용하는 법이지. 하지만 너는 아직 그럴 능력이 없으니, 위대한 이 몸이 특별히 네 녀석에게 딱 맞는 검술을 만들어 준 것이다!”

원하던 반응을 얻어내자, 칭찬받기를 좋아하는 아기곰의 꼬리가 봄바람을 맞은 풀잎처럼 살랑살랑 춤을 췄다.

‘음······. 대체 이 녀석이 말하는 달인은 어느 정도 수준을 말하는 걸까?’

S급이 된 이강혁 씨도 천마의 무공을 자신에게 맞게 바꾸지 못하고 그대로 썼으니까, 역시 천마 정도는 되어야 달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건가.

여하튼, 한 가지는 확실했다.

고미가 직접 만든 검술은 천마의 검술을 개량한 이강혁 씨의 SS급 검술, ‘파천대웅검결’보다 훨씬 더 대단할 거라는 것 말이다.

게다가 ‘오로지 나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검술이라는 점이 더욱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런데······. 다웅이는 왜 데리고 온 거야?”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아무리 봐도 검술을 전수하는데 다웅이를 데려올 이유는 없어 보였으니까.

“후후, 아웅이 녀석을 밖에 데리고 나오니, 무척 좋아하더구나. 그래서 다웅이도 한 번 바깥에 데리고 나오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느니라.”

늘 막내 대접을 받기를 좋아하더니, 어느새 동생들을 챙기는 형이 된 고미의 모습에 왠지 모르게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흐음, 내 수련하고는 무관하게 데리고 온 건가? 그럼 부모님에게 무사히 돌려보내겠다는 말은 왜 한거지?’

그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 언행에 약간의 의문을 느끼고 있을 때,

“그리고 이 몸과 함께 검술을 가르칠 수 있는 녀석은 오로지 다웅이 뿐이니 말이다.”

곰돌이 삼형제의 장남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다웅이, 네 녀석의 방망이를 나에게도 나누어 줄 수 있겠느냐? 네가 쓰는 길쭉한 것 말고, 수하나 허수아비가 쓰는 정도의 길이로 말이다.”

고미가 그렇게 말하며 도톰한 솜방망이를 내밀자,

“다웅!”

줄곧 축 늘어진 채 봉식이에게 안겨있던 다웅이가 느릿하게 오죽(烏竹)으로 된 죽검 하나를 고미에게 건넸다.

다웅이가 쓰는 것은 검보다는 창에 가까운 길이에, 끝도 상당히 뾰족하다.

하지만 지금 녀석이 만든 죽검은 길이도 더 짧고, 끝이 뾰족하지도 않았다.

“잘 보거라, 수하.”

장난감 칼 같은 검은 죽검을 손에 든 고미는 우선 그것을 가볍게 빙글빙글 돌려보았다.

“하압!”

그리고는 힘찬 기합과 함께 뒤쪽으로 물러나며 부드럽게 죽검을 휘둘러 옆으로 누운 8자를 그렸다.

“응?”

“흐음······.”

그 모습을 본 나와 이강혁 씨는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강혁 씨도 나와 같은 생각인가?’

뒤이어 검술, 아니, 곰술의 대가 고미 선생께서는 우아하게 몸을 회전시키며 더욱 부드러운 기세로 검을 휘둘렀다.

‘괴, 굉장하네.’

언제봐도 대단한 녀석이기는 하지만, 오늘은 특히 더 대단해 보인다.

대체 저 동글동글 토실토실한 체형으로 어떻게 하면 저렇게 유연하고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는 걸까?

“뭔가 평소랑 다른 거 같은데?”

한 동작, 한 동작, 고미의 시연이 이어지자, 검술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봉식이도 뭔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확실히 그렇네.’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평소 고미는 딱히 초식이라고 할만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대충 휘두르고, 대충 때리고, 대충 막는다.

하지만 지금, 저 초콜릿색 솜뭉치는 짤막한 팔다리로 상당히 명확하게 틀이 잡힌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녀석이 선보이는 초식의 대다수는······.

“이강혁 씨, 지금 저거, 거의 다 수비 위주의 초식이죠?”

“그런 것 같습니다.”

역시, 잘못 본 게 아니구나.

내가 초식을 잘못 이해한 건 아닌가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고미는 언제나 압도적인 무력으로 상대를 때려 잡아왔으니까.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봐도 저 슈퍼 아기곰이 수비를 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반면 지금 녀석의 움직임은, 아무리 봐도 공격보다는 수비가 우선이고, 힘보다는 부드러움과 유연함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후훗, 수하, 어떠냐!?”

가벼운 시연을 마친 고미는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으음, 어떻냐고 물어봐도······.’

솔직히 저렇게 봐서는 잘 모르겠다.

이는 상당히 기이한 일이었다.

SS급 검의 달인 스킬이 있는데, 어째서 저 검술에 대해서 단박에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답은 간단했다.

고미가 만든 검술이, 스킬 등급으로 따지자면 그 이상으로 난해하고 어려운 것이라는 의미겠지.

“미, 미안해. 잘 이해가 안 가. 그냥 수비 위주로 만들어진 검술이라는 것 밖에는······.”

“후훗, 그 정도면 잘 알아보았구나. 걱정하지 말거라. 그래서 다웅이를 데리고 온 것이니 말이다!”

이에 고미는 이미 모든 걸 예상했다는 듯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체육관 한쪽에 축 늘어져 있는 아기 판다를 바라보았다.

“다웅이! 수하는 이제 큰 싸움을 앞두고 있다! 강해지기 위해서는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

“다웅······?”

고미에게 죽검을 넘겨준 뒤 다시 바닥에 드러누워 반쯤 졸고 있던 다웅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귀찮기는 하지만, 나를 도와줘야 한다고 하니 애써 의욕을 끌어올리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 모습을 본 고미는 할 수 없다는 듯 다웅이를 컨트롤할 수 있는 마법의 약(?)을 꺼내 들었다.

“흐음, 오늘도 기운이 없구나! 자, 이것을 먹고 힘을 내거라!”

“다웅!”

갓-고미 특제 숙성 초코바를 내밀자, 다웅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의욕을 활활 불태우며 자세를 고쳐잡았다.

어찌나 각이 잡혔는지, 눈과 귀, 팔다리의 검은 털이 아니라면 눈앞에 있는 게 아웅이는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나저나, 점점 다웅이를 다루는 게 익숙해지네.’

어째 고미랑 만난지 얼마 안 지났을 때의 내 모습이 겹치는 것 같네.

게다가 요즘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마냥 즉흥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어느 정도는 계획이라는 걸 세우고 움직이는 느낌이다.

내가 고미를 닮아가듯, 고미도 나를 닮아가는 걸까?

물론 노는 것과 먹는 것에 있어서는 여전히 무계획 행동파에, 무조건 몸부터 움직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자, 이제 나를 공격해 보거라. 수하도 이 몸이 이 초식들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지 직접 본다면 조금 더 이해가 빠르겠지.”

고미의 요구에 다웅이는 조금 당황한 듯 초코바와 자신의 죽창을 번갈아 바라보며 고민에 빠졌다.

“다, 다웅?”

아무리 그래도 형을 어떻게 공격하냐는 듯한 반응.

“괜찮느니라. 그 괘씸한 가짜 녀석과 가장 움직임이 비슷한 것은 너이니, 네가 시범을 보여야 한다.”

나는 그제야 고미가 왜 검술 전수를 위해 다웅이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는지,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가짜 고미의 움직임과 기술은 모두 고미의 그것을 흉내낸 것이다.

그리고 다웅이 역시 고미의 분신 출신(?)이니, 원조 아기곰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물론 원조 아기곰만큼 비슷하지는 않겠지만, 녀석은 검술 시범을 보여주어야 하니까.

‘그러니까, 이건 가짜 고미와 내 가상대결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검법이기도 하다는 의미인가?’

언제나 그렇지만, 이런 쪽으로는 정말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구나.

“다, 다웅!”

고미의 설명을 들은 다웅이는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겨있다가 마침내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웅!” (갈게, 조심해!)

그리고는 이내 시커먼 죽창을 번개처럼 앞으로 내질렀다.

“우웃!”

선과를 먹고 파워업을 한 덕일까, 다웅이의 움직임은 이전보다 훨씬 더 힘차고 민첩했다.

심지어 그 대단한 원조 아기곰마저 놀란 듯 두 눈을 치켜뜰 정도였다.

- 쾅!

단 한 번의 격돌로, 체육관 전체가 뒤흔들리며 마력철로 만들어진 바닥에 커다란 균열이 생겨났다.

“다, 다웅이! 잠깐! 멈추거라!”

당황한 원조 아기곰은 황급히 솜방망이를 들어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다웅?”

“이, 이렇게 세게 하면 허수아비의 연무장이 남아나질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너무 빠르면 수하가 새로운 검법을 배우기 어렵지 않겠느냐? 처음에는 천천히 뜯어보며 검술을 이해해야 하니 말이다.”

고미의 설명을 들은 다웅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뭐야, 이 정도 속도도 못 따라오는 거야?’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

미안하다, 다웅아······.

그런데, 정말로 내가 약한 게 아니라 네가 너무 센 거야. 나, 어제 한국 최고의 싸움꾼을 이기고 왔다고······.

“다웅······.” (할 수 없지, 그럼 약하게 갈게······.)

조금 풀이 죽은 듯 살짝 누운 다웅이의 귀를 보고 있자니, 미안할 일은 아니지만 미안하다고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자, 다시 와보거라!”

“다웅!”

좋아, 집중하자, 김수하.

다웅이도 고미도 나 때문에 이렇게 애를 쓰고 있는데, 나도 강해져서 보답해야지.

- 쿵!

검은 죽창이 직선으로 날아들자, 죽검이 어지러이 춤을 추며 초콜릿색 솜뭉치가 퇴보를 밟았다.

- 캉, 캉캉!

‘저렇게 뒤로 물러나면서 위력을 줄이고, 검으로 힘의 방향을 바꾸는 건가?’

죽검에 가로막힌 죽창이 뱀처럼 휘어들며 고미의 몸통을 향해 날아들자,

“하압! 영웅검법, 제2초식! 영웅유운!”

힘찬 기합 소리와 함께 고미의 죽검이 부드러운 호를 그리며 공격을 그대로 흘려냈다.

아마도, 새로운 검법의 이름은 영웅검법인 모양이었다.

당연히 한자는 영웅(英雄)이 아니라, 영웅(英熊)일 테고.

날 진정한 곰 중의 곰으로 만들어 줄 모양이군.

- 캉!

물 흐르듯 이어지는 검격은 죽창의 기세를 고스란히 살려 다시 다웅이의 몸을 노렸고,

<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새로운 스킬이 추가됩니다. >

내가 그 움직임을 이해함과 동시에 시스템 창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렇구나. 영웅유수는 상대의 공격을 이용해 반격하는 초식인가?’

반격을 당한 상대의 자세가 살짝 흐트러지자, 고미의 죽검이 사방에서 다웅이를 압박해 들어갔다.

마치 순식간에 팔이 여덟 개로 늘어난 것처럼 화려한 움직임이었다.

‘저, 저걸 나보고 따라 하라고?’

내 전용 검술이라며······.

지금 팔이 여덟 개로 보이는데?

그것도 한 손으로?

그래도 SS급의 검술 스킬 덕분인지, 대충 저 초식이 뭘 의미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저건······. 진짜로 타격을 주려고 하는 공격이 아니야.’

겉보기에는 화려하지만, 상대를 현혹해서 빈틈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초식 같은데······.

<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

그 순간, 시스템 창이 내가 고미의 움직임을 제대로 이해한 거라는 확신을 주었다.

“하압!”

“다웅!”

“이얍!”

“다웅!”

그렇게 두 아기곰은 계속해서 우렁찬 기합을 내뱉으며 화려한 시연을 이어나갔고, 나와 이강혁 씨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두 슈퍼 아기곰의 대결을 지켜 보았다.

하지만 그 중 어떤 움직임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고, 어떤 초식은 두 번, 세 번을 반복해서 보고 나서야 어렴풋하게 윤곽을 잡을 수 있었다.

<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

그나마 다행인 건, 나에게는 최고의 해답지가 있다는 점 정도였다.

시스템 창이 새로운 스킬을 추가해 준다는 건, 내가 고미의 움직임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몇 분이나 지났을까.

토실토실 살이 오른 두 아기곰이 약속이나 한 듯 손을 멈췄고, 동시에 시스템 창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 새로운 깨달음들을 통합합니다. >

< 새로운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

‘됐어!’

아마도 고미가 가르쳐준 초식들이 모여 나의 새로운 검법이 완성된 모양이었다.

“고미, 됐어! 검법 스킬이 생겼어!”

“우웅?”

“다웅?”

바로 그때, 다웅이와 고미가 약속이나 한 듯 거대한 체육관처럼 생긴 연무장의 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어서 굳게 닫혀있던 연무장의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가 쏜살같이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호오······. 마침 잘 됐구나.”

그 ‘누군가’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잠깐 놀란 표정을 짓고 있던 고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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