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65 수하를 위한 선물(?)
“응? 선물?”
싸늘하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장이 꼬인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 선물이라는 게, 먹을 건 아니겠지?
실은 ‘왕유’보다 엄청난 무언가를 아직까지 감춰두고 있었다던가?
“후후후, 기대되지 않느냐!?”
일단 입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해야 기대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선물이라는 게 뭔데?”
공포에 떨며 던진 질문에 황천의 약사, 아기곰 선생께서는 눈을 가늘게 뜨며 다시 입을 열었다.
“후훗, 그것은······. 비밀이니라!”
음, 우리 애가 어디서 이상한 밀당을 배워왔군.
요즘 틈틈이 꿀폰으로 뭔가를 보는 것 같던데, 너튜브에서 이상한 걸 보고 배우는 건 아닐까 심히 걱정이 된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거라! 오늘은 제법 힘든 수행이었으니, 어서 들어가서 쉬자꾸나. 내일 이 몸이 준비한 선물을 주도록 하겠다!”
말을 마친 아기곰은 곧바로 나의 어깨 위로 풀쩍 뛰어올랐다.
이 녀석이 ‘제법 힘든’ 수행이라고 말해주면서 휴식 시간까지 챙겨주다니, 새삼 열심히 한 보람이 느껴지는군.
‘응······?’
하지만 고미가 어깨에 올라타는 순간, 뭔가가 이상하다는 게 느껴졌다.
‘원래 이렇게 묵직했나?’
요즘 살이 좀 찐 것 같기는 했지만, 불과 몇 시간 사이에 이렇게 차이가 느껴질 정도로 무게가 늘어날 리는 없는데······.
‘피곤해서 그런가?’
시험 삼아 가볍게 뛰어오른 뒤 걸음을 옮겨보자, 내가 느낀 무게감이 착각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자, 잠깐······.’
게다가 이거······. 걸을 때마다 점점 무거워지는 것 같은데?
“고, 고미, 혹시 지금 뭔가 했어?”
“후훗, 이제 기초는 잘 다져진 것 같으니, 더욱 본격적인 수행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느냐?”
했군, 했어.
그런데, 방금 전에 오늘은 들어가서 쉬자고 하지 않았니?
“뭘 한 건데?”
봉식이의 질문에 아기곰 선생은 꼬리를 빙글빙글 돌리며 특유의 오만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만곰추이니라.”
······.
또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군.
만근추면, 내공을 이용해서 무게를 늘리는 무공으로 알고 있는데······.
그걸 지금 내 어깨 위에서 하고 있다는 거?
‘잠깐만, 지금 내 근력이 얼마인데······.’
그 순간, 뭔가가 이상해도 단단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평소에 이 초콜릿색 솜뭉치를 어깨에 올리고 다닐 수 있는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힘이 세니까.
평범한 사람이라면 아무리 쪼꼬미 사이즈라 해도 매일 어깨에 몇 킬로 짜리 아기곰을 얹고 다니는 것만으로 몸에 무리가 갈 거다.
오십견이 오든 디스크가 오든, 별로 건강에 좋지는 않겠지.
다만 헌터의 힘은 일반인과는 차원이 다르니, 실상 고미의 무게는 거의 느끼지도 못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내가 묵직하다고 느낄 정도면······.’
지금 고미는, 대체 몇 킬로나 나가는 걸까?
“후훗, 놀라지 말거라. 게다가 위대한 이 몸의 만곰추에는 보다 특별한 효과가 있지! 이 몸이 왜 언제나 너의 어깨에 올라타 있었다고 생각하느냐!”
이건 또 신선하다면 신선한 질문이군.
1. 높은 게 좋아서.
2. 목마 타는 게 재밌어서.
3. 내 두상이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제공하는 모양을 띠고 있어서.
이 정도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그런데,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건가?
“왜 그런 건데?”
나의 질문에 적어도 쌀 한 가마니 이상은 나갈 것 같은 꿀꿀이 아기곰은 잔뜩 신이 나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위대한 이 몸과 계속 붙어있다면, 곰의 기운으로 계속해서 너를 단련 시켜줄 수 있다! 이를 통해 너의 기맥은 더욱더 단단하고 튼튼해지는 것이지! 그래, 마치 진정한 곰처럼 말이다!”
······.
그러니까, 일종의 인간, 아니, 아기곰 모래주머니라는 거냐.
“여태 그런 말 없었잖아.”
“흥, 이 몸이 네 위에 타 있는 것만으로도 강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겠느냐!”
음, 날카롭다.
방금 전까지 날먹 어쩌고 했던 입장에서는 심히 양심에 가책을 느끼게 하는 발언이군······.
“흐음······. 일상 속에서 단련이라, 그래서 늘 수하 씨의 어깨에 올라타 계셨던 거군요. 과연 굉장하십니다.”
그 말을 들은 이강혁 씨는 무언가 깨달은 바가 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고,
“후훗, 그렇다. 너무 부러워 하지는 말거라, 이건 오로지 이 몸의 제자인 수하에게만 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고미는 더욱 흡족한 표정으로 솜방망이를 부웅부웅 휘둘러댔다.
“게다가 분곰쇄신과 함께 사용한다면, 더욱 굉장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분곰쇄신에 하나를 더 얹어 주겠다는 소리?
‘하아······. 모르겠다.’
이제 그냥 운명이려니, 하고 순응하련다.
이렇게 나를 단련시키겠다고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었던 녀석에게 힘들다고 불평을 할 수는 없잖아.
그런데, 정말 순수하게 그런 이유로만 내 어깨에 올라타고 다닌 걸까?
그런 것 치고는 지나치게 즐거워했던 것 같은데 말이야······.
‘심히 의심스럽군.’
아니야, 말을 더듬지 않는 걸 보니 거짓말은 아니겠지.
‘괜찮다, 나는 괜찮······.’
그러나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뗄 때마다 도저히 괜찮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고, 고미. 너무 무거워지는 것 같은데?”
“후훗, 걱정하지 말거라. 지금 네 녀석이라면 충분히 견뎌낼 수 있느니라! 본래 이것은 기초가 부실하다면 할 수 없는 수련법이니 말이다. 성급하게 만곰추를 사용했다면 몸이 망가지고 말았을 것이다!”
아니야, 고미. 성급했어······. 나 아직 기초가 부족한가 봐······.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새 내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있었다.
‘시, 실화냐.’
S급 헌터가 10분도 안 돼서 땀을 쏟을 정도의 무게라니, 이게 말이나 되냐고.
아이고 삭신이야, 오십견 온다, 오십견.
아니, 이 정도 무게를 계속 얹고 다니면 목디스크나 허리디스크가 올지도······.
* * *
그렇게 나는 고미를 어깨에 얹고, 분곰쇄신까지 켠 채 집으로 돌아갔다.
정말로 놀라운 건, 만곰추에 분곰쇄신을 더해서 걸어다니는 게 문경준과의 대결보다 더 힘들다는 사실이었다.
불가마를 켠 채 그 무서운 아저씨와 싸우는 게 모래주머니를 차고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 거라면, 만곰추+분곰쇄신 조합은 쌀가마니를 짊어지고 행군을 하는 기분이랄까.
‘주, 죽을 것 같아.’
고작 산책 수준으로 걷고 있을 뿐인데, 관절이 삐걱거리고 온몸의 근육이 쉴 새 없이 비명을 질러댔다.
결국 집에 도착했을 때는, 몸을 씻을 틈도 없이 기절하듯 잠이 들고 말았다.
* * *
다음 날 아침.
나는 또다시 피로를 느끼지 못했다.
상황이 이쯤되니, 이게 좋은 건지 아닌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하아······.’
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면서도 ‘분곰쇄신’을 활성화했다.
몸이 회복됐으니, 또 불꽃 수련을 시작해야지.
하늘은 아직 어스름했고, 부모님도, 봉식이도, 아기곰 삼형제도, 아직 꿈나라를 헤매고 있는 이른 시간이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고작 99일······.
‘아니야, 빠듯하게 날짜를 맞추려고 하면 안돼.’
늦으면 늦을수록 상대도 그만큼 대비를 할 테니, 가급적 빠른 시간 내에 수련을 마치고 선공을 하는 게 좋겠지.
‘가짜 고미의 실력이 무신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라고 했지.’
무서운 손주분께서 손을 보태주기로 했으니, 얼추 무신과 비슷한 수준까지만 강해지면 된다고 보면 되려나?
‘그러려면······. 검법이 필요해.’
지금까지는 아이템 빨과 능력치, 이런저런 스킬을 긁어모아 어떻게든 적들을 상대해왔다.
뭐, 역시 가장 큰 건 수갈량의 지혜였지만······. 후훗.
‘흠흠, 아니지, 이건 아니야. 고미랑 있다 보니 자뻑 증상이 옮은 건가······.’
잠시 헛소리를 했군.
본론으로 돌아가자.
여하튼, 가짜 고미를 상대로 확실한 승리를 거두려면, 조금 더 체계적이고 강력한 검법이 필요하다.
이강혁 씨가 능력치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압도할 수 있었던 건, 역시 검법 덕분이니까.
즉, 그 가짜 녀석과 나 사이의 격차를 조금이라도 좁히려면, 훌륭한 검법이 필요하다.
‘음, 뭔가 좀 약하네. 화력을 좀 올려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괜스레 불안해진 나는 잡생각을 몰아내기 위해 분곰쇄신의 화력을 두 배로 올려보았다.
대책 없이 안 좋은 일에 대해 생각하며 불안에 떠는 건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
마음이 흐트러지면, 판단력도 흐려진다.
이럴 때는 다른 일에 집중을 하는 편이 낫지.
‘아, 앗, 뜨거!’
두 배는 아직 무리.
1.5배로 타협.
나는 김수하, 포기가 빠른 남자지.
“아웅!”
그렇게 몇 분이나 지났을까······.
불가마의 열기로 온몸이 축축하게 젖었을 때쯤, 아웅이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아침을 먹을 시간이 됐다는 신호였다.
눈을 떠보자, 어느새 동이 환하게 터 있었다.
“알겠어, 갈게.”
식탁에 앉기 무섭게, 평소답지 않게 눈치를 살피던 원조 아기곰이 엄마 아빠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 엄마, 아빠, 이, 이 몸이 부탁이 있느니라······.”
“으응? 우리 고미가 왠일로 부탁을 다할까? 말해봐요.”
어머니의 말마따나, 고미가 부모님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는 일은 지극히 드물었다.
좋아하는 음식도 있고, 맛있는 요리를 해주면 리액션이 좋기는 하지만, 정작 이걸 해달라 저걸 해달라 말하는 일은 드문 녀석이니까.
그런 면에서는 또 어른스럽단 말이지.
‘그런데 무슨 부탁이지?’
나에게도 말하지 않고 대뜸 부모님에게 부탁이라니, 처음 있는 일이네.
“오, 오늘 하루만 다, 다웅이를 데리고 가도 되겠느냐?”
이어지는 고미의 말에 부모님도, 나도, 봉식이도, 조금 놀란 듯 눈을 깜박였다.
설마하니 그 부탁이라는 게, 알바생을 빼달라는 것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면 안 된다는 건 아니다.
그저 언제나 자신의 동생들에게 가게를 지키라고 신신당부하던 녀석이 먼저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게 조금 의외였기 때문이다.
“안될 게 뭐가 있어요? 우리 다웅이도 하루 정도 쉬면 좋지.”
어머니가 생긋 웃으며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자,
“고, 고맙다! 반드시 무사히 돌려보내겠다!”
아기곰 선생의 입에서 다소 불안한 말이 튀어나왔다.
“다웅······?”
형이 왜 자신을 찾는 것인지 영문을 알지 못하는 다웅이는 까만 털로 뒤덮인 눈을 천천히 끔벅이며 고미를 바라봤다.
‘설마, 다웅이도 같이 수련을 하려고 그러는 건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갑자기 입맛이 뚝 떨어져 버렸다.
어제 고미는 나에게 ‘선물’을 준다고 했다.
혹시······. 그 선물이 다웅이의 달달한 꿀주먹은 아니겠지?
‘아닐 거야.’
아니, 아니어야 한다.
문경준을 이겼다고 다 건너뛰고 다웅이라니, 진도가 너무 빠르다고.
‘이대로 나도 꿀주먹 체험단에 이름을 올리는 건가······.’
온몸을 엄습하는 공포에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공포 속에서 식사를 마친 뒤, 나는 초코곰과 아기 판다, 봉식이와 함께 집을 나섰다.
여느 때와 같이 게이트를 열고 가게 뒷마당을 지나 저스티스 건물로 가는 길, 고미는 직접 이강혁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 허수아비! 위대한 이 몸이다. 아침은 먹었느냐?”
“네, 회사에서 간단하게 먹고 있습니다. 오늘도 던전에 가실 생각이십니까?”
음, 회사에서 아침 해결하시는구나······. 왠지 모르지만 조금 안쓰럽다.
“아니다. 혹시 어제 멧돼지 녀석과 대결을 했던 연무장 같은 곳을 구할 수 있겠느냐?”
이어지는 고미의 말에, 심장이 쿵, 하고 저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네, 저희 길드에도 연습장이 따로 있습니다.”
“후훗, 좋다. 그렇다면 오늘은 그곳에서 수련을 하자꾸나. 너와 봉식이에게도 가르침을 내려주마. 아, 수수깡 녀석도 데리고 오너라.”
부, 불안하다.
설마 이주혁 씨한테 화살을 쏘게 하고 다같이 나를 구타한다던가······.
‘아니야, 설마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겠지.’
그래, 생각이 너무 간 거겠지.
요즘 너무 삶이 피폐해서, 자꾸만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거야.
* * *
빌딩 앞에 도착한 우리는 곧장 이주혁 씨와 이강혁 씨를 대동한 채 저스티스의 연무장으로 향했다.
저스티스의 연무장은 본사 빌딩과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다만 음습하고 어두운 분위기에 피 냄새까지 나던 패왕의 그것과는 달리, 저스티스의 연무장은 아주 정갈하고 밝은 분위기였다.
굳이 비유하자면, 커다란 태권도나 검도 도장 같은 느낌이랄까.
“자, 그럼 수하. 너는 잠시 운기조식을 하고 있거라.”
체육관에 들어선 아기곰은 곧장 나의 어깨에서 풀쩍 뛰어내렸다.
분곰쇄신에 만곰추까지 더해진 덕에, 고작 30분 정도 걸은 것만으로도 삭신이 쑤시고 숨이 가빠왔다.
“오늘은 봉식이에게 정식으로 권법을 사사하고, 허수아비 너의 검술을 보완해주겠다. 그리고 수하······.”
운기 조식을 하는 사이, 간단하게 오늘의 수련 내용을 읊은 아기곰은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나를 바라보며 자신이 준비한 ‘선물’을 공개했다.
“드디어 너를 위한 검술이 완성되었느니라. 오로지 너만을 위한 검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