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263화 (263/300)

EP.263 수하는 쑥쑥 자란다.

또 한차례 커다란 주먹이 코앞을 스쳐 지나는 순간,

‘불가마를 해제하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잘난 척이 아니라, 사실이 그랬다.

나는 지금 불가마 때문에 제 실력을 낼 수 없다.

심지어 참숯 1호도 단단한 몽둥이 정도로만 사용하고 있다. 잘못하면 저 아저씨를 태워 죽일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분곰쇄신 상태를 해제하고 참숯 1호의 화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면······.

“어이, 꼬맹이. 너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니냐?”

내가 자신보다 강하다고 생각하는 걸 눈치챈 걸까, 문경준의 몸이 봉식이와 싸울 때처럼 회색으로 물들었다.

‘어쩐지, 너무 쉽다 했다.’

나는 그제야 상대 역시 전력을 다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 쉭!

다음 순간, 문경준의 공격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바람을 가르는 섬뜩한 소리를 통해, 그 주먹에 맞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맞으면 진짜 골로 가겠네.’

민봉식 이 미친 자식.

이런 무식한 아저씨를 상대로 정면으로 치고 받았다고?

진짜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니냐?

- 콰지직!

주먹이 방패를 후려치는 순간, 팔 전체가 마비되는 감각과 함께 두 발이 살짝 지면에서 떠올랐다.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섬뜩한 위력.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뜨, 뜨거워.’

기가 흐트러지자, 또다시 피가 들끓는 것 같은 감각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아, 안 되겠어.’

이대로 가다가는 결국 몽둥이찜질 엔딩이라고.

이에 나는 곧바로 수갈량의 꾀주머니 1번을 열었다.

< 노화의 손길(B)를 사용합니다. >

흑암에게 받은 저주 스킬.

나에게 걸었던 S급 저주에 비하면 효과는 부족하겠지만, 약간이라도 속도를 늦출 수 있을 거다.

“재미있네. 꼬맹이, 너 검사 아니었냐?”

스킬이 발동하자, 문경준은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음을 지었다.

“이런 허접한 저주 스킬을 믿고 까분 거라면, 날 너무 우습게 본 거다!”

말을 마친 문경준이 다시 나를 향해 돌진했다.

예상대로, 그의 속도는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전혀 효과가 없는 건 아니다.

‘이 정도면 흘리기도 가능할 거야.’

나는 곧장 방패를 든 왼팔에 평소보다 조금 많은 기를 흘려보냈다.

‘대충 이 정도면······.’

- 쾅!

그리고는 살짝 몸을 비틀며 상대의 다리를 향해 참숯 1호를 휘둘렀다.

‘역시. 미리 대비하면 어느 정도 견딜만 해.’

다리를 맞은 문경준이 잠시 주춤하는 순간, 나는 츤데레 두더지가 해주었던 설명을 떠올렸다.

「 처음에는 대범위로 사용해라. 빗나갈 수 있으니까. 그리고 한 명에게 범위를 좁혀 사용하면 더 강한 효과를 볼 수 있지. 」

‘한 번 더······!’

< 노화의 손길(B)을 발동합니다. >

“이 새끼가, 날파리마냥!”

또다시 저주에 걸린 문경준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내 턱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느려졌어.’

그러나 그의 주먹은 조금 전보다 확연히 느려져 있었다.

- 붕!

“오, 오오! 수하! 흑암의 스킬을 사용한 것이냐!”

“아, 아우웅!”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차린 아기곰 형제는 잔뜩 흥분해 솜방망이를 두드렸다.

그 반응을 통해, 내가 제법 잘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긴장을 풀 수는 없다.

‘정타 한 방이면 바로 불지옥행이니까.’

미리 움직임을 읽고 대비하고 있는데도 공격을 받아낼 때마다 온몸이 후끈거린다.

즉, 펀치든 킥이든 정타를 허용하는 순간 내 안의 흑염룡이 봉인을 풀고 뛰쳐나오겠지.

그럼 게임오버다.

‘그래도 지고 싶지는 않아.’

봉식이는 꿀태창과 고미없이도 이 무식한 아저씨를 꺾을 만큼 성장했다.

그런데 고미의 제자인 내가 일방적으로 얻어터질 수는 없지.

‘나도 자존심이라는 게 있다고.’

게다가 내가 지면······.

저 사람 눈에 나는 고미와 봉식이를 믿고 까부는 무능한 놈으로 보일 거다.

그건 죽어도 싫다.

맞지 않고, 내가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해 서로 진이 빠질 때까지 싸운다.

그럼 지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고, 분곰쇄신과 피로야 가라의 스킬 효과도 최대한으로 누릴 수 있을 테니까.

‘조금만 더 하면 돼······.’

이후 싸움은 비슷한 양상의 반복이었다.

문경준은 정면에서 힘을 믿고 공격하고, 나는 그걸 피하고, 막고, 흘린다.

그 와중에도 나는 계속해서 저주를 걸었다.

그러나 세 번째 이후부터는 속도도, 힘도, 떨어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그냥 지속시간만 길어지는 건가 보네.’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됐다.

그 사이 두 번째 책략을 사용할 준비가 끝났으니까.

“언제까지 감질 맛나게 깔짝거릴 거냐!”

- 우우우웅!

그 순간, 낮은 소리와 함께 그의 주먹에서 섬뜩한 기운이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왔다!’

기회를 포착한 나는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방패를 쳐들었다.

이 사람은 성질이 급하다.

자신의 강함을 과시하는 걸 좋아하고, 정면 승부를 선호한다.

이런 사람에게 수비와 반격만 반복하는 내 싸움방식은 상당한 짜증을 유발하겠지.

무엇보다 나를 얕보고 있다.

그러니까, 정면으로 막으려 해도 의심을 하기는 커녕 옳다구나 하고 달려들 거다.

“그래, 남자답······”

역시.

- 콰아아앙!

“컥!”

방패가 갑자기 폭발을 일으키자, 문경준의 거구가 뒤쪽으로 튕겨 나갔다.

그의 입에서는 처음으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 이 꼬맹이가······. 방패에······. 무슨 짓을 해놓은 거야······.”

데미지를 입은 듯 비틀거리는 문경준의 모습에, 아기곰 형제는 또다시 흥분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우, 우웃! 수하! 후, 훌륭하다! 마, 마치 슈퍼 솔져 같구나!”

“아웅!”

하지만 나 역시 무사하지는 않았다.

방금 전 충돌로 인해 간신히 억제하고 있던 화기가 폭발했다.

덕분에 가만히 서 있어도 숨이 차고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이 자식, 그건 무슨 스킬이냐?”

갑자기 헉헉거리며 땀을 흘려대자, 문경준은 내가 무언가 스킬을 사용했다고 착각한 것 같았다.

“버프 스킬이냐? 부작용이 있나 보지?”

말하는 꼴을 보니, 나에게 데미지를 입은 걸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모양이다.

그러니 내가 부작용이 있는 버프 스킬로 잠깐 힘을 끌어올렸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열 받는 소리 하고 있네······.’

버프가 아니라 셀프 너프 스킬입니다, 이 아저씨야.

“후우······.”

나는 문경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천천히 숨을 골랐다.

영지버섯의 충격파는 A급 몬스터도 한 방에 보내버릴 정도로 강력하다.

뭐, 저 아저씨는 그것보다 훨씬 튼튼하니 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곧바로 달려들 수는 없겠지.

“하아, 이런 꼬맹이에게 개망신을 당할 줄이야.”

잠시 몸을 추스른 근육 괴물은 이마에 핏대를 세운 채 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왔다.

‘생각보다 훨씬 빨리 회복하네.’

하지만 움직임이 조금 어색한 걸 보니, 제대로 들어간 게 확실하다.

‘그럼 마지막······.’

슬슬 체력이 달리는 것을 느낀 나는 곧장 마지막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저주와 기습으로 둔해진 저 아저씨의 신체 능력을 더욱 떨어뜨릴 한 방을.

그리고 내 계산대로라면, 이거 한 방으로 저 아저씨도 끝이다.

나도 끝이고.

아니, 제발 그렇게 해주세요.

“후우우······.”

손바닥에 기를 끌어모으자, 몸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불씨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더이상 화기를 억누를 수가 없다는 신호였다.

‘하아······. 이걸로 안 끝나면······.’

할 수 없지. 두들겨 맞아야지.

맞는 게 싫다고 분곰쇄신을 꺼버리면 강해질 수 없다.

강해질 수 없으면 가짜 고미도 물리칠 수 없다.

이 김수하, 삼도천에 발을 담그는 한이 있더라도 그 꼴은 못 보지.

“이, 이 자식······.”

그 순간, 문경준의 시선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이어서 맞은 편에 앉아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아기곰이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수, 수하! 피, 필살기를 쓰는 것이냐!”

“아, 아우웅! 아웅!” (수, 수하 형도 저런 멋진 필살기를 쓸 수 있는 거야!?)

지금 내 손에는 슈퍼 아기곰의 그것과 똑같은 푸른 빛이 모여들고 있었다.

이전에는 청심환까지 먹고 몇번이나 연습을 하고 나서야 간신히 빔을 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나 혼자서도 충분히 쓸 수 있다고.’

무신의 절초를 산산이 부숴버린 ‘웅왕빔’의 등장에, 문경준의 얼굴에서는 점점 더 핏기가 사라졌다.

“너, 너도 그걸 쓸 수 있는 거냐?”

역시, 무신이 고미에게 패배한 날의 기억과 아기곰 공포증이 되살아난 모양이다.

심지어 줄곧 나를 내려다 보는듯한 표정마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지만 그 반응이 전혀 반갑지가 않다.

공포로 몸이 굳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무서워할 줄이야.

이러면 피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에게는 뒤가 없다.

난 지금 가만히 놔둬도 체력이 쭉쭉 빠지는 상태라고.

‘할 수 없네.’

이럴 때는 진부하지만, 한 가지 방법밖에 없지.

“안 죽게 살살 쏠게요. 쫄리면 피하시든가.”

“뭐, 뭐가 어째?”

역시, 저런 사람은 무시당하는 걸 견디지 못한다.

특히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던 상대에게 그런 일을 당하면, 절대로 못 참지.

‘이런 뻔한 도발에 걸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우우우웅!

온 힘을 다해 ‘수하빔’을 발사하는 순간, 머리 꼭대기까지 열기가 치솟으며 눈앞이 흐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웅아! 나 회복 시키지마!”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정신을 잃었다.

* * *

“수하, 수하! 괜찮느냐?”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방금 전 일이 꿈이었던 것처럼 몸이 멀쩡했다.

‘성공이다.’

모든 게 완벽하다.

맞지도 않았고, 스킬빨도 제대로 받았다.

이 수갈량, 지모와 기지로 지옥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왔소!

승리다, 승리! 완벽한 승리!

풍악을 울려라!

‘흠, 흠······.’

이런, 너무 흥분했군.

체통을 지키자.

“응, 괜찮아. 회복 스킬 쓴 거 아니지?”

나의 질문에 아웅이와 고미, 이강혁 씨와 봉식이는 모두 약속이나 한 듯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 봐, 가만보면 이놈도 보통 미친 게 아니라니까.”

봉식이가 못 당하겠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쓰러지자마자 바로 분곰쇄신 스킬이 꺼졌습니다. 딱히 부상을 입으신 것도 없어서 회복 스킬을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

이강혁 씨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타죽지는 않는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기력을 다 써버리면 자동으로 불이 꺼지는 시스템이구나.’

하긴, 애초에 내 기로 내 몸을 태우는 건데, 기를 다 쓰면 불도 꺼지는 게 정상이지.

“후훗, 수하. 참으로 훌륭하구나. 설마 영웅검의 이능을 사용한 상태로 저 멧돼지를 쓰러뜨릴 줄은 몰랐느니라.”

그때, 아기곰 선생이 대견한 듯 나를 바라보며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이 녀석을 만난 이후로 지금까지 가장 흡족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정말? 쓰러졌어? 내가 이겼다고?”

“그렇다, 저 멧돼지 녀석은 네 빔을 맞고 쓰러져 버렸다!”

고개를 돌려보자, 잔뜩 풀이 죽은 채 체육관 벽에 기대어 고개를 떨구고 있는 문경준의 모습이 보였다.

“멀쩡한데?”

그러나 빔을 맞고 쓰러졌다는 것 치고는 너무 상태가 좋아 보였다.

“아웅!”

그렇게 문경준을 바라보고 있을 때, 새하얀 아기곰이 번쩍 손을 치켜들며 한껏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웅이 네가 치료해 준거야?”

“아웅!”

음······. 그렇군.

확실히 아웅이의 치료 스킬은 효과가 굉장한가보다.

저렇게까지 멀쩡하게 만들 필요는 없는데 말이야.

“그냥 수다르님 약으로 치료해주지 그랬어. 숙제해야 하는데.”

아쉬운 마음에 던진 말에, 이강혁 씨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약을 먹일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얘기였다.

“제 빔이 문경준한테 중상을 입힐 정도로 강했다고요?”

“네, 꽤 부상이 심했습니다. 죽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한가하게 약효를 실험하기는 조금 어려운 수준이라고 할까요.”

순간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고, 심장이 정신없이 두방망이질을 해댔다.

‘희망이 보여.’

아무리 정상적인 대결은 아니었다고 해도, 문경준에게 중상을 입혔다.

그것도 상당히 능력을 제한당한 상태로.

‘이대로 쭉쭉 성장해 나간다면······.’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던 가짜 고미에게 맞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더 강해져서 가짜 고미를 맡을 사람들의 숫자가 줄어든다면, 그만큼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을 테고.

생각을 마친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시스템 창을 열었다.

능력치가 올랐는지, 새 스킬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꿀태창을 여는 순간······.

저도 모르게 ‘응?’하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지금 꿀태창은 평소 같은 금색이 아니라, 붉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래, 꼭 관리자를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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