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261화 (261/300)

EP.261 봉식이는 강하다.

“하아······. 여보세요?”

굵직하고 낮은 탁성.

목소리 가득 묻어나오는 특유의 오만하고 거친 느낌.

이강혁 씨의 전화를 받은 것은 패왕의 길드장, 문경준이었다.

‘실화냐······.’

그러니까, 지금 나한테 몸에 불을 붙인 상태로 대한민국 최강의 파이터라는 소리를 듣는 양반과 싸움을 붙이겠다는 소리지······?

실제로도 그 무식한 아저씨가 무지막지하게 강하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봉식이는 각성 후에도 거의 일방적으로 얻어터졌고, 이강혁 씨는 세 번의 삶 동안 한 번도 그를 일대일로 꺾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다웅이에게 처참하게 패배하긴 했지만······.

그거야 다웅이가 워낙 먼치킨이라 그런 거고.

“문경준, 지금 잠깐 만날 수 있겠나?”

이강혁 씨의 질문에 문경준은 생각만 해도 넌더리가 난다는 듯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던전 문제라면 됐다.”

“당신답지 않군.”

이어지는 그의 반응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가짜 고미가 나타난 장소는 본래 패왕 소유의 A급 개방형 던전이었다. 우리가 놈을 격퇴하면서 그 던전이 사라졌고.

즉, 패왕 입장에서는 그 사건으로 인해 몇십 억 이상의 손해를 입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문경준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도 눈이 뒤집힐만한 손해였다.

그러니 당연히 그 일로 얼마를 손해 본 줄 아냐며 노발대발 할 줄 알았는데 말이지.

‘역시 무신이 고미한테 무릎을 꿇은 게 타격이 큰 건가?’

베이비 쿵푸 판다의 뒹굴뒹굴권에 굴욕적인 패배를 당한 직후에 자신의 큰형님(?)격인 무신이 원조 아기곰에게 패배했으니, 꽤 기가 질려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다만······.

‘잠깐, 그럼 나랑 붙어도 좀 봐주지 않을까?’

그래, 이래봬도 내가 웅왕의 특별조정 위원이자, 무신을 꺾은 슈퍼 아기곰의 제자인데 말이야.

“시끄럽다. 그냥 그 일은 우리가 손해를 본 걸로 하지. 어차피 던전 내 균열이 생겨서 벌어진 일이니까.”

분을 참지 못하고 가늘게 떨리면서도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말투에, 행복한 기대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이대로 이 아저씨가 싸움을 피해준다면······. 오늘은 무사히 집에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니, 뭐.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그 대결 말이야. 오늘 했으면 하는데.”

“하, 이제와서? 야, 이강혁이. 너 지금 날 가지고 노는 거냐?”

우리가 자신을 도발한다고 생각한 걸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문경준의 목소리에 살기가 가득 묻어났다.

‘자, 잠깐······.’

흐름이 뭔가 이상한데. 이게 아니잖아.

“그건 그쪽 마음대로 생각하고. 설마 천하의 문경준이 겁먹고 도망치는 건 아니겠지?”

문경준의 질문에 이강혁 씨는 평소답지 않게 상당히 날 선 반응을 보였고,

“이놈 봐라? 장소는?”

문경준은 금세 흥분하여 그 도발에 넘어오고 말았다.

‘아저씨······. 성질 좀 죽이면 안돼요?’

이전에 웅왕 연맹이 성립됐다는 걸 알자마자 단신으로 쳐들어온 걸 보고 성격이 보통은 아니라는 걸 느끼기는 했지만······.

대체 이 아저씨는 왜 이렇게 성질이 급한 거냐! 왜 이렇게 화가 많은데!

방금 전까지만 해도 모든 걸 체념한 말투 아니었냐고요!

“우리가 그쪽으로 가지.”

통화를 마친 이강혁 씨는 곧바로 나에게 시선을 돌리며 씨익 웃음을 지었다.

“가시죠.”

이강혁 씨······.

설마 나 괴롭히는데 재미 붙이신 건 아니죠?

‘으으······.’

감정이 격해진 탓일까, 갑자기 참숯 불가마가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잘됐네. 나 오늘 리벤지 매치할래.”

그때, 나의 오랜 벗이자, 가족이자, 의리와 투지 빼면 시체인 멋쟁이, 민봉식이 바위 같은 근육을 꿈틀거리며 입을 열었다.

아아, 그래. 남자는 근육이지, 멋지다 봉식아.

“후훗, 좋다. 어차피 너에게도 가르침을 줄 참이었으니 말이다.”

“정말?”

고미의 말에 나는 저도 모르게 그렇게 반문하고 말았다.

당연히 이제 곧 요단강 유람선 티켓을 들고 그 무서운 아저씨랑 한판해야 할 줄 알았는데.

“그 멧돼지 녀석은 제법 쓸만하니, 지금 상태로 수하 너와 대결을 시키면 너무 불공평하지 않겠느냐? 봉식이가 조금 힘을 빼놓아야 적당한 승부가 되겠지.”

훗, 역시, 그럼 그렇지.

천하의 갓-고미 선생이 그런 무지막지한 사람이랑 나를 대책없이 붙여놓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다.

이강혁 씨랑 다르게 그쪽은 정말 인정사정 안 봐주고 달려들 테니까.

“그래, 그럼 얼른 가보자.”

봉식아, 믿는다.

너라면 틀림없이 그 나쁜 아저씨를 이길 수 있을 거야.

넌 내가 아는 대한민국 최고의 의리남이자, 진정한 파이터니까.

가자! 정의는 승리한다!

* * *

“왔군.”

패왕의 빌딩 앞에 도착하자, 문경준이 홀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음, 이상하네. 부하들을 우르르 이끌고 나와서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할 줄 알았는데······.’

그러나 이강혁 씨는 이미 일이 이렇게 될 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피식 웃으며 또다시 문경준을 도발했다.

“길드원들 앞에서 패배하는 걸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나 보지?”

으으, 평소에는 안 이러던 양반이 왜 이렇게 날이 서 있는 거냐.

문경준에게 별로 감정이 좋지 않은 건 알고 있었지만······.

오늘 싸우는 건 저잖아요. 왜 자꾸 저 양반 성질을 건드리냐구요.

“시끄럽다.”

그러나 막상 싸움을 눈앞에 두자, 문경준은 그리 쉽게 도발에 넘어오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화는 난 것 같은데, 애써 꾹꾹 눌러 참고 있달까.

‘불안하다, 불안해.’

저 더러운 성질머리에 애써 분노를 참는 모습이 더욱더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룰은 기억하고 있겠지? 난 저 곰돌이랑은 싸우고 싶지 않다.”

이어서 문경준은 곧바로 룰에 따라 고미를 자신의 대전 상대에서 제외했다.

“뭐, 뭣이!?”

‘곰돌이’라는 말에 화가 난 초콜릿색 솜뭉치가 목소리를 높이자, 문경준은 덩치가 아깝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움찔거리며 시선을 피했다.

‘안쓰럽네.’

그때, 봉식이가 기다렸다는 듯 가볍게 몸을 풀며 문경준의 앞으로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아저씨, 걱정하지 말고 덤벼. 아저씨랑 붙을 건 나니까.”

그 짤막한 한마디에 문경준의 얼굴이 또다시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이 건방진 애새끼, 또 너냐? 지난 번에 그렇게 쳐 맞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나 보지?”

말을 마친 문경준은 성가시다는 듯 손을 휘휘 저으며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나는 보았다.

그가 안도한 듯 옅은 한숨을 내쉬는 것을.

“따라와라, 오늘 아주 교육을 제대로 시켜줄 테니까.”

조금은 어깨가 움츠러든 것 같은 문경준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기자, 제법 널찍한 체육관 같은 건물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우리 길드 연무장이다. 원래는 우리 애들 훈련하는데 쓰는 곳이지.”

체육관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저도 모르게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체육관의 벽면이나 바닥은 모두 마력철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마 헌터들의 주먹질에도 견딜만한 강도의 훈련을 위해 거액을 들여 만든 시설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나를 긴장하게 한 것은, 이런 커다란 체육관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었다.

저스티스와 용왕에도 이런 비슷한 훈련시설이 있는 걸로 알고 있으니까.

‘피 냄새······.’

나를 긴장시킨 것은, 체육관 곳곳에 스며있는 피 냄새였다.

“호오······.”

고미 역시 그 냄새를 느꼈는지, 가볍게 코를 킁킁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피 냄새가 상당히 옅은 것으로 보아, 지운다고 신경을 쓴 것 같기는 하지만, 그 정도로 고미와 내 후각을 속이기는 어렵지.

‘대체 길드원들 데리고 무슨 짓을 하길래 체육관에서 이렇게 피 냄새가 나냐.’

패왕이 살벌한 길드라는 건 들었지만, 길드내 훈련장에서 피 냄새가 나는 건 좀 심하잖아.

“긴말할 것 없겠지. 덤벼라, 꼬맹아.”

텅 빈 체육관 안에 문경준의 섬뜩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이내 그의 몸이 강철 같은 회색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다 마음에 안 드는데, 특히 그 거만한 성격이 제일 마음에 안 들어.”

이어서 봉식이의 몸 위에도 금색의 갑옷이 덧씌워졌다.

두 사람은 곧장 서로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며 뚜벅뚜벅 체육관 중앙으로 걸어갔고,

- 쾅!

이내 요란한 굉음과 함께 싸움이 시작됐다.

“우웅?”

두 사람의 주먹이 맞부딪히는 순간, 아기곰의 두 눈이 흥분과 기쁨으로 물들었다.

‘뭐야, 이거.’

나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첫 번째 격돌에서, 문경준이 조금이나마 뒤쪽으로 밀려났으니까.

‘그새 이렇게 세진 거냐!?’

저도 모르게 온몸에 닭살이 돋아났다.

“이것 봐라?”

문경준 역시 봉식이의 힘을 느꼈는지, 조금 놀란 듯 두 눈을 치켜떴다.

“왜, 놀랐어?”

반면 상대의 힘이 자신보다 못하다고 판단한 봉식이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피어올라 있었다.

‘뭔데······.’

이전에도 단순한 힘에서 밀리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크게 앞서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건 한눈에 보기에도······.

- 쾅!

놀란 마음을 추스르기도 전에 두 사람의 주먹이 또 한 번 교차했다.

이번에도 상대를 밀어낸 것은 봉식이였다.

하지만······.

- 퍼억!

첫 번째 유효타는 문경준의 몫으로 돌아갔다.

“아, 아웅!?”

봉식이가 얻어맞자, 순둥이 백곰은 주먹을 바르쥐며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것처럼 온몸에 바짝 힘을 줬다.

“힘은 더 세진 것 같은데, 테크닉이 없어, 테크닉이.”

봉식이의 옆구리에 주먹을 꽂는데 성공한 문경준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녀석을 도발했다.

“설마, 솜주먹 한 방 먹인걸로 기뻐하는 거야?”

그러나 봉식이는 전혀 데미지를 입지 않은 듯 곧장 발을 날렸다.

“윽!”

또 한차례 바위가 깨지는 것 같은 둔탁한 소리가 울리며 문경준의 몸이 가볍게 뒤로 밀려났다.

“아자!”

상대를 밀어낸 봉식이는 그대로 뛰어올라 문경준의 머리 위에 주먹을 내리꽂았고,

“이새끼가!”

문경준 역시 통나무 같은 팔뚝을 휘둘러 녀석의 공격을 막아냈다.

‘대체 언제 이렇게 강해진 건데?’

상대와 비등하거나 그 이상으로 보이는 봉식이의 모습에, 나는 잠시 넋을 잃고 말았다.

“역시 봉식이는 대단하네요.”

그때, 말없이 팔짱을 낀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던 이강혁 씨가 입을 열었다.

“아, 아웅!”

아웅이 역시 봉식이가 우위를 점한 것을 느꼈는지, 불안한 표정을 거두고 꼬리를 빙빙 돌려댔다.

“그러게 말이다. 이 몸도 봉식이가 벌써 이 정도로 강해졌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는데 말이다. 과연 위대한 이 몸의 가족답구나.”

심지어 고미마저 봉식이의 성장에 놀랍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아마 그 괘씸한 가짜 녀석과의 싸움이 봉식이에게 도움이 된 모양이다.”

정말? 그 싸움 한 번으로 저렇게 강해질 수 있다고?

‘저 자식, 나 몰래 살육창 같은 거라도 가지고 있는 거 아니야?’

나에게 꿀태창이 있듯이, 저 녀석에게 살육전차 전용 상태창이 있지 않은 이상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성장 속도였다.

‘아니, 이게 말이 되냐고.’

나는 꿀태창과 고미 덕분에 빠르게 SS급이 됐다고 치지만, 저놈은 왜 저렇게 빨리 강해지는 건데.

“아저씨, 어째 주먹이 예전만 못하네.”

우리가 잠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문경준의 몸 곳곳에는 시커먼 멍자국이 생겨나 있었다.

물론 봉식이의 몸에도 군데군데 붉게 달아오른 곳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주 일방적인 승부는 아니었다.

하지만 불과 몇 주전 벌어진 싸움에서 비오는 날 먼지나게 두들겨 맞았던 것과 비교하자면, 정말이지 믿을 수 없는 결과였다.

‘잠깐, 이러면······.’

봉식이의 강함을 두 눈으로 목도하자, 내 마음속에서 저도 모르게 스멀스멀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이대로 간다면, 오늘은 맞지 않고 끝날 수 있지 않을까.

‘봉식아, 사랑한다.’

언제나 그랬지만, 난 네가 너무 좋다.

너의 친구라는 게 자랑스러워.

너무 재능이 있어서 조금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친구가 잘 되면 진심으로 기뻐하는 게 진짜 친구 아니겠니?

“흐으음······.”

바로 그때, 불길한 침음이 나의 귓구멍을 파고 들었다.

살짝 누운 두 귀와 불규칙한 리듬으로 흔들리는 짤막한 꼬리, 옅은 주름이 잡힌 미간······.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나오는 반응이다.

‘아, 안돼.’

설마 여기서 래프리 스탑시키는 건 아니지?

그건 아니라고 해줘.

봉식이에게 복수를 허락해 달라고!

그렇게 마음속으로 간절히 이 싸움이 봉식이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길 바라고 있을 때,

“아웅이.”

원조 아기곰의 시선이 솜방망이를 휘두르며 열심히 봉식이를 응원하고 있던 백곰에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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