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260화 (260/300)

EP.260 참숯 1호 불가마.

“오오, 수하! 어서, 어서 불을 붙여 보거라!”

고미······. 지금 그 불이 붙어야 하는 곳이 내 몸이라는 걸 알고 하는 소리 맞지?

그냥 불장난이 치고 싶은 건 아니지?

“설마 이 몸의 제자가 불꽃 따위를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겠지?”

알고 있구나. 아주 확실히 알고 있어.

그런데도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단 말이지?

나 삐진다. 이러다 정말 비뚤어진다고.

“너는 이미 검은콩의 불꽃을 견뎌내지 않았더냐! 틀림없이 새로운 신검의 불꽃에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음······. 날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거야 온갖 버프를 두른 다음에 아웅이의 냉기 보호막까지 뒤집어 썼으니까 그런 거지.

“야, 빨리해봐. 궁금하잖아. 아까 보니까 타죽지는 않는다고 써있던데, 괜찮은 거 아니야?”

그때, 고미에 이어 친구인지 가족인지 원수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망할 놈이 입을 열었다.

‘이 자식부터 태워버릴까?’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입만큼은 태워버리고 싶다.

결국 숲속 친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나는 아직 이름이 붙지 않은 회색 몽둥이에 검기를 불어넣어 보았다.

‘이렇게 보니까 꼭 숯 같네.’

이런 모양을 만든 장본인이 말하기에는 뭐하지만, 새로운 검의 모양은 꼭 길쭉한 참숯 같았다.

- 화륵!

“오, 오오오오!”

살짝 검기를 불어넣자, 회색 몽둥이가 붉게 달아오르며 훈훈한 열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흐음······. 생긴 건 꼭 참숯 같네요. 백탄.”

아니나 다를까, 이강혁 씨 역시 나와 같은 평을 내놓았고,

“그러게, 빨갛게 변하기까지 하니까 진짜 숯 같다. 앞으로 어딜 가나 항상 숯불에 고기 먹을 수 있는 거냐?”

봉식이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하지만 그 둘이 뭐라고 말하든, 나는 이 새로운 무기의 모양에 조금도 불만이 없었다.

보아라, 보기만 해도 심신에 안정을 가져다 주는 이 형태를.

굳이 능력치 보정이나 스킬 보정이 붙지 않아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을 것 같은 이 환상적인 밸런스.

남들 눈에 숯으로 보이든 말든, 나에게는 꿈에도 그려왔던 이상적인 무기다.

일단 눈에 띄게 휘어진 곳도 없고, 조금 특이하기는 하지만 이런 걸 휘두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의 생김새는 아니라는 사실이 눈물 나게 감격스럽다고.

‘자, 그럼 한번 볼까? 가자, 나의 애검아! 이제부터 네 이름은 참숯 1호다.’

본격적으로 곰기를 불어넣자, 벌겋게 달아올랐던 장작에서 익숙한 검붉은 화염이 피어올랐다.

“오, 오오!”

자신의 새로운 작품이 이상없이 작동하는 것을 확인한 명곰 선생께서는 솜방망이를 두드리며 기뻐했지만,

‘아직이야.’

훗, 나는 아직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고.

한 번 더 곰기를 불어넣자,

- 화르륵!

엄청난 열기가 뿜어져 나오며 검붉은 화염 위로 황금색의 불똥이 튀기 시작했다.

“우, 우우우웃! 후, 훌륭하구나! 훌륭해! 여, 역시 위엄있는 생김새를 가져야만 강한 것은 아니구나!”

으, 으음······. 대체 저 아기곰에게 있어 ‘위엄있는 생김새’의 기준이 뭘까 궁금해지는 발언이군.

뭐, 어쨌든 간에, 이 새로운 불꽃의 화력이 이전 흑염대웅신검의 그것보다 강력하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였다.

게다가 검붉은 화염 위로 은은히 흩날리며 타오르는 황금색 불씨가 자못 아름답기까지 했다.

‘심지어 이게 꺼지지도 않는다 이거지?’

이 정도라면 틀림없이 가짜 고미와의 싸움에서도 엄청난 도움이 되겠지.

그때, 장작에서 피어오른 화염을 홀린 듯 바라보던 아기곰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수하, 그 불꽃을 이 몸에게 뿜어보거라.”

······.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내 몸에 불을 붙여보라고 난리더니, 이번에는 자기한테 불을 붙여보라니······.

화재 예방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는 아기곰이군.

아무리 슈퍼 먼치킨이라지만, 안전의식이 너무 부족하다.

자나 깨나 불조심 모르나.

자나 깨나 불조심, 꺼진 불도 다시 보자!

“어서.”

하지만, 고미의 표정은 더 이상 드립을 칠 수 없을만큼 진지했다.

아무래도 단순히 불장난이 하고 싶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안돼,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너한테 불을 붙여.”

“설마 위대한 이 몸이 한낱 불꽃 따위에 다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냐?”

“아무리 그래도······.”

그 순간, 초콜릿색 아기곰의 솜방망이가 활활 타오르고 있는 칼날을 덥석 붙잡았다.

“고, 고미! 이게 무슨 짓이야!”

한껏 예민해진 나의 오감과 높아진 능력치로도 반응할 수 없는, 엄청난 속도였다.

게다가 예비 동작 하나 없이 갑자기 움직이니, 더더욱 빠르게 느껴졌다.

당황한 나는 황급히 곰기를 거두어 들였지만, 이미 아기곰의 솜방망이에는 금색 불씨를 흩날리는 검붉은 화염이 옮겨붙어 있었다.

“호오, 제법 뜨끈하구나.”

정말이냐, 정말 ‘뜨끈한’ 수준으로 끝이냐고.

설마 이 무기, Ex급 아닌 거 아니야?

“보거라, 아무렇지도 않지 않느냐?”

불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는 슈퍼 아기곰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자신의 솜방망이 위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수하, 정신을 집중해보거라. 이 불꽃과 네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느껴지느냐?”

그리고는 더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일렁이는 화염을 가볍게 흔들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제야 고미의 몸에서 불타고 있는 화염과 내 몸이 미약하게나마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실이 화염과 나를 이어주고 있는 것 같은 감각이라고 해야 하나.

“으, 으음. 그런 것 같아.”

“역시······.”

나의 대답을 들은 고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그곳에 네 곰기를 집중시켜 보거라.”

고미의 말에 따라 손끝에서 느껴지는 미약한 열기에 정신을 집중하고 기를 불어넣자,

“응?”

초콜릿색 솜방망이 위에서 타오르던 불꽃이 내 기에 반응하듯 춤을 추며 화력이 더욱 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내가 기를 조절하지도 않았는데 거짓말처럼 불꽃이 사라졌다.

“응?”

이에 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리고 말았다.

꿀태창의 설명에 따르면, 내가 불을 끄지 않는 이상 절대로 꺼지지 않는 화염이라고······.

설마 허풍이었냐?

“고미, 어떻게 끈 거야?”

농담반 진담반 허풍이냐고 묻기는 했지만, 꿀태창은 지금껏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적어도 이런 옵션에 관해서는 한치도 틀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이것도 고미의 능력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게 내 추측이었다.

“끈 것이 아니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고미의 솜방망이에서 다시 한번 불씨가 피어올랐다.

“이 몸의 기로도 억누를 수 있을지언정 사라지게 할 수는 없는 불씨라니······. 잘하면 가짜 고미를 상대로도 승산이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이어지는 슈퍼 아기곰의 설명에 따르면, 녀석이 한 것은 불을 끈 게 아니라, 자신의 기로 화기(火氣)를 억누른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리고 화기를 억누르고 불에 의해 몸이 다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보신강기(保身剛氣)로 몸을 지켜야 한다고.

보신강기가 아니라 호신강기 아니냐고?

지금 고미가 ‘호’신강기라는 단어를 사용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한입 덥석 베어물면 달달한 설탕물이 주륵, 하고 흐르는 호떡조차도 ‘호’떡이라고 불만을 표하는 녀석에게, 호신강기라니, 택도 없는 소리.

“자, 이제 그 연결을 끊어 보거라.”

고미의 지시에 따라 보이지 않는 그 보이지 않는 실을 끊어내자, 활활 타오르던 불씨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신기하네······.”

“흐음, 이제 네 몸에도 불을 붙여 보거라.”

이어지는 고미의 말에,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불을 붙여보았다.

말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강해지려면 이짓(?)을 해야 한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그냥 궁상 좀 떨어본 거라고.

이해 좀 해주라.

자기 몸에 불 붙이는 게 맨정신으로 가능한 짓은 아니잖아.

‘화력조절, 화력조절.’

게다가 이 불꽃은 흑염대웅신검의 그것과 달리, 화력도 조절할 수 있고, 몸에 보신강기를 두르면 뜨겁지도 않을 테니까······.

“흡······.”

하지만 불씨를 당기는 순간,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을 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헉, 헉······.”

몸에 불이 붙기 무섭게 습식 사우나에 들어온 것처럼 숨이 턱 막히고, 온몸에서 비오듯 땀이 흘러내린다.

숨을 쉴 때마다 뜨거운 공기가 코와 목구멍을 타고 흘러 폐까지 태워버리는 느낌이었다.

“자, 수하. 이제 네 기로 그 불꽃을 억눌러라. 아까 전 청심환으로 손을 보호했던 것과 똑같이 하면 되느니라.”

“아, 알겠어.”

이대로 있으면 백숙(?)이 되버릴 것 같다는 생각에 황급히 운기를 시작하자, 거짓말처럼 불꽃이 잦아들며 서서히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문제는······.

‘더, 더럽게 힘들어.’

가만히 있는데도 전신에서 힘이 쭉쭉 빠져 나간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꼭 행군 막바지에 이른 군인의 그것처럼 무겁고, 잠깐이라도 운기를 멈추면 또다시 몸 안쪽에서부터 열기가 치솟는다.

‘서, 설마······.’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분곰쇄신’을 사용하면, 왜 체력과 기력이 계속해서 소진된다는 것인지를······.

‘이, 이! 관리자 새x가!’

그렇다. 분곰쇄신을 사용하면 지속적으로 체력과 기력이 소모되는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불을 유지하는데도, 그것을 억누르는데도 체력과 기력이 들어가니까.

그리고 불꽃을 억누르지 않으면 아무 곳에서나 어디 아픈 사람처럼 벌겋게 달아오른 채로 삐질삐질 땀을 흘리게 되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공공장소에서 몸에 불이 붙어버리는 거지.

뭐, 그 정도가 되면 불을 끄면 되니까 타죽지야 않겠지만······.

‘설명을 제대로 하라고 설명을!’

그렇게 목구멍 밖으로 욕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눌러 참고 있을 때, 봉식이가 내 주위를 기웃거리며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오, 그래도 막 몸에 불 붙인 채 돌아다니지는 않네. 느낌은 어때?”

“죽을 것 같다.”

“훗, 걱정하지 말거라. 지금 수하 너 정도라면,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화기를 억누르는데 실패하지는 않을 것이니.”

“화기를 누르는데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데?”

봉식이가 피식피식 웃음을 흘리며 악의에 찬 질문을 던지자, 고미는 대답 대신 돌연 나를 향해 솜방망이를 날렸다.

- 캉!

당황한 나는 황급히 참숯 1호를 들어 솜방망이를 막아냈다.

“고, 고미, 갑자기 왜!”

- 깡, 깡깡!

하지만 고미는 여전히 내 말에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솜방망이를 날려댔다.

그리고 대략 열 번 정도 고미의 솜방망이를 막아냈을 무렵,

“헉······.”

돌연 몸 속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기운이 폭발하며 온몸이 걷잡을 수 없이 달아올랐고,

- 화륵!

급기야 피부 위로 벌건 불씨가 날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는 것이다.”

내 몸에서 불이 피어오르는 것을 확인한 웅노사는 그제야 손을 멈추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헉, 헉헉······.”

고작 열 번의 공방만에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는 내 모습에, 이강혁 씨는 할 말을 잃은 듯 두 눈을 끔벅였다.

“새, 생각보다 훨씬 더 체력 소모가 큰 모양이네요.”

“훗, 이제야 조금 이 몸의 제자다운 제대로 된 훈련을 할 수 있게 되었구나.”

반면 간만에 엄격한 스승 모드로 돌아간 아기곰 선생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 슈퍼 먼치킨 기준에서는, 난이도가 이 정도는 되어야 수련다운 수련이라고 할 수 있는 모양이다.

“그럼 동이, 검은콩, 너희들은 용궁을 계속 수리해다오. 나는 수하와 함께 수련을 하러 가야겠구나.”

“알겠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걱정 마십시오, 여기는 저희가 잘 처리하고 있겠습니다.”

두 사람의 대답을 들은 초콜릿색 솜뭉치는 곧장 몸을 날려 나의 어깨 위에 올라탔다.

“어, 어디로 갈 건데?”

“후훗, 일단 용궁 밖으로 나가자꾸나. 마침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올랐으니 말이다.”

* * *

불길한 마음과 불을 안고 화원 앞으로 돌아오자, 고미는 나 대신 이강혁 씨에게 전음으로 소곰소곰 귓속말(?)을 해댔다.

‘대, 대체 뭐야. 설마 이 상태로 던전에 가자는 건 아니겠지?’

이강혁 씨의 반응으로 보아, 목적지가 던전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랬다면 박 실장님이나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넣었을 테니까.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후훗, 걱정하지 말거라.”

짧은 대화를 마친 이강혁 씨는 곧바로 전화기를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이, 이 악마들이!’

차라리 이 상태로 던전에 보내달라고 외치고 싶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