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259화 (259/300)

EP.259 분곰쇄신.

- 특수 옵션(4) : 분곰쇄신.

진정한 영웅(英熊)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쉬지 않고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강해지기 위해 불꽃에 몸을 던졌듯, 스스로 몸을 불사른다면 계속해서 강해질 수 있습니다.

신검의 불꽃으로 스스로를 태우면 기력과 체력이 계속해서 소진되는 대신 능력치의 성장 속도가 300퍼센트 증가합니다.

비고 : 타죽지는 않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뭐야 이게, 30도 아니고, 300퍼센트라고?

“야, 내가 제대로 본 거 맞냐? 300퍼센트?”

네 번째 옵션을 확인한 봉식이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깜빡이며 몇 번이나 다시 꿀태창에 적힌 메시지를 읽어보았고,

“일회성 버프도 아닌데 300퍼센트라니······. 괜히 Ex급 아이템이 아니군요.”

이강혁 씨 역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어지는 말에 따르면, 그에게 세 번의 삶을 선사해준 ‘회귀자의 회중시계’ 외에 Ex급 아이템을 보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내가 보기에도, 이 새로운 무기의 네 번째 스킬은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한 엄청난 것이었다.

능력치 성장 버프 아이템은 대체로 그 효과가 일시적이고, 300퍼센트는커녕 100퍼센트만 되도 돈 주고는 못사는 아이템이니까.

아니, 애초에 이런 엄청난 수치의 능력치 상승 버프가 존재한다는 이야기 자체가 금시초문이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스킬명이 너무 불길하다.

분골쇄신(粉骨碎身)

뼈가 가루가 되고 몸이 부서진다는 뜻이다.

‘골’이 ‘곰’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그 피로도가 얼마나 높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 소름이 돋는다.

“게다가 얼마 전에 생긴 피로야 가라라는 스킬과의 궁합도 좋군요.”

그때, 신검을 만드느라 파김치가 된 탓에 잠시 주저앉아 있던 이유찬 씨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알고 있어요······.’

이 눈치 없는 드래곤아······. 내가 그걸 몰라서 이렇게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겠냐고요.

‘피로야, 가라’의 효과를 제대로 보려면, 요단강을 건너기 직전까지 체력과 기력을 소진해야 한다.

지금까지 그 효과를 본 건 두 번.

이강혁 씨에게 정신이 흐려질 정도로 맞았을 때가 첫 번째.

고미가 알사탕 까먹듯 미친 듯이 단약을 삼켜가며 아웅이를 치료해줬을 때가 두 번째.

다만 피로 회복 효과는 확실했지만, 아직까지 능력치가 상승하지는 않았다.

가능성은 두 가지다.

1. 능력치 성장 버프가 생각보다 시원치 않다.

2. 더 극한의 피로를 느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이 옵션이라면, 능력치가 아직 성장하지 않은 원인이 1이든 2든 상관이 없었다.

‘분곰쇄신’이라는 살벌한 스킬명에 어울리게 나의 몸과 정신은 넝마가 될 테고, 문자 그대로 영혼까지 불살라 능력치를 성장시킬 수 있겠지.

그 상태로 다시 잠이 들면 완벽하게 회복이 될 테고······.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계속해서 같은 일이 반복되는 거다.

‘그런데, 대체 얼마나 더 피곤해야 하는 건데······?’

아웅이 때는 둘째치고, 이강혁 씨 때는 정말로 내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울고 싶다······.’

강해져야 하는 상황이라는 건 알겠지만, 피로 회복 스킬과 더욱 빠르고 확실하게 몸을 혹사시킬 수 있는 스킬을 같이 던져주다니······.

이건 정말 해도 너무한 거 아니냐고!

“흐으으으음······.”

그렇게 속으로 이를 갈고 있을 때, 고미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긴 탄식을 내뱉었다.

“고미님, 왜 그러십니까?”

지금까지 만든 모든 아이템 중에 가장 훌륭한 결과물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줄곧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고미의 모습에, 동이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정말로 이대로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평소라면 ‘우하하하! 어떠냐! 이 몸의 위대한 솜씨가!’ 같은 말을 내뱉으면서 꼬리를 빙글빙글 돌리는 게 정상일 텐데, 지금 녀석의 반응은 이상할 정도로 차분했다.

아니, 차분한 수준이 아니다.

빳빳하게 일어선 꼬리에 뾰족하게 솟은 두 귀, 살짝 날카롭게 변한 눈매까지.

이건 틀림없이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보이는 반응이다.

‘설마 고미도 이 마지막 스킬은 조금 너무하다고 느끼는 건가?’

그래, 아무리 열정이 넘치는 아기곰이지만, 피로야 가라에 이어서 이런 스킬까지 주는 건 조금 지나치다고 느끼는 거지.

워라밸이 인생의 목표인 순수하고 소박한 나 같은 영혼에게, 이렇게 가혹한······.

“수하! 동이! 검은콩! 너희들은 정말로 이런 개성도 없고, 웅혼한 기상도, 웅장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검으로 만족한단 말이더냐!”

네······?

“보아라! 이 검이 다른 검들과 섞여 있으면, 위대한 이 몸이 손수 만든 검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나 있겠느냔 말이다!”

분노가 가득 어린 고미의 일갈에, 영덕전의 광장에는 짙은 정적만이 감돌았다.

“무릇 진정한 신검이란 그에 걸맞은 위용을 갖춰야 하는 법! 이, 이런 것은 인정할 수 없다!”

그러니까, 지금 이 검의 생김새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러는 거냐······.

“수하! 말해보거라! 이 깎다 만 몽둥이 같은 초라한 생김새가! 정말로 위대한 이 몸의 제자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너는 진정 이런 형편없는 검으로 만족할 수 있느냔 말이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지옥의 대장장이에게 부족한 것은······. 손재주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게다가 어째서 이, 이, 이런 형편없는 생김새를 가진 물건이 가장 훌륭한 능력을 가지고 있단 말이냐!”

말을 마친 지옥의 대장장이는 생각만 해도 분한지 솜방망이를 바르쥔 채 온몸을 바르르 떨며 회색빛이 감도는 찌그러진 검을 노려보았다.

표정만 놓고 보면, 이건 거의 실패한 도자기를 가차 없이 망치로 때려 부수는 장인이라고 해도 믿을 수준이다.

‘아니야! 이게 아니야!’

뭐, 대충 이런 대사를 외치면서 검을 부러뜨리면 딱 맞겠네.

“으, 으음······.”

고미의 기괴한 미적 기준에 이유찬 씨는 할 말을 잃은 듯 침음을 흘렸고,

“허, 허허······.”

고북 대왕 역시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공허한 웃음소리를 냈다.

아무도 자신의 의견에 동의를 표하지 않자, 아기곰의 짤막한 꼬리가 힘을 잃고 달랑달랑 흔들렸다.

작품이 망한 것도(?) 속상한데, 아무도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니 더욱 상심이 큰 모양이었다.

“고미, 그래도 엄청 좋은 아이템이 나왔잖아. 모양이 좀 이상하면 어때. 다 네 덕분이야.”

결국 기분이 상한 아기곰을 달래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내 몫이었다.

“그리고 흑염대웅신검보다 더 위엄이 넘치는 모양을 한 검이라면, 가짜 고미도 보자마자 긴장을 하지 않았을까?”

“우, 우웅?”

화려한 나의 언변에 낚인(?) 아기곰의 귀가 쫑긋, 하고 일어섰다.

“아무리 가짜라고는 해도 나보다는 훨씬 더 강하니까, 그 녀석을 방심시키려면 이런 초라한 무기가 더 나을지도 몰라. 원래 방심보다 무서운 적은 없다잖아.”

“으, 으음······.”

역시, 벌써 거의 다 넘어왔구만.

“무엇보다 이 무기는 네 오랜 친구인 동이님에, 나까지 힘을 합쳐서 만든 무기잖아. 내가 끼어드는 바람에 모양이 조금 망가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 같이 힘을 합쳐 만든 무기인데······. 네가 그렇게 말하면 친구들도 서운하지 않겠어?”

먼저 가벼운 칭찬을 던져주고, 무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고미의 기분에 공감해 준다.

이어서 무기가 망가진(?) 것이 순전히 자신의 잘못은 아님을 언급해주고, 한 번 더 잘난척 하기 좋아하는 아기곰을 추켜 세워준다.

마무리로 감정에 호소하기.

이 정도 콤비네이션이면 승부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이 없지.

“으, 으음······. 그렇구나. 이 몸의 생각이 짧았다.”

역시, 넘어왔군.

“후훗! 그나저나, 수하 너는 참으로 대단하구나! 무기의 모양이 초라한 것을 이용해 상대를 방심시키다니, 과연 이 몸이 인정한 모리배답다!”

기운을 되찾은 아기곰이 다시 평소처럼 눈을 반짝이며 목소리를 높이자, 장내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쏠리는 것이 느껴졌다.

감탄과 당혹감, 약간의 존경심과 안쓰러움이 뒤범벅된 눈빛.

그렇게 쳐다보지 마라.

이 정도는 되야 이 슈퍼 아기곰의 집사가 되는 거니까.

이게 의외로 쉬운 일이 아니라고.

“흠,흠! 동이, 검은콩! 미안하다! 이 몸이 너희들의 노고는 생각하지 않고 무례한 말을 하고 말았구나.”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아기곰은 곧장 함께 검을 만드느라 고생한 두 친구에게 사과의 말을 건넸다.

이런 걸 보면 역시 예의는 바른 녀석이란 말이지.

‘그럼 어디 퀘스트랑 칭호 효과를 확인해 볼까?’

그 사이, 나는 새롭게 완료된 퀘스트와 칭호의 내용을 확인했다.

< 메인 퀘스트 : 고미와 함께 조물조물 >

- 위대한 아기곰은 오랜 세월 외롭게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이어온 위대한 장인입니다. 자신과 함께 위대한 걸작을 만들어 줄 제자를 기다려 온 고미와 함께 직접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어 보세요!

‘음······.’

너무 외롭게 자기만의 세상 속에서 작업을 이어온 나머지 상당히 비뚤어진 예술 세계를 갖게 된 모양이군.

< 달성 조건 >

- 고미가 새로운 아이템을 만드는 것을 돕기.

- 단, 단순한 조언이나 도구를 사용하는 것은 안되며, 직접 손을 대서 함께 아이템을 제작해야 합니다.

‘자, 장난하냐.’

이런 걸 메인 퀘스트로 넣어놓다니, 이런 양심 없는 자식 같으니라고.

언젠가 내가 그 무지막지한 온도를 가진 쇳덩이에 직접 손을 대기를 기대하고 있었다는 소리잖아!

하지만 진짜로 그 짓(?)을 해냈으니······. 할 말이 없군.

그때, 꿀태창을 살피고 있던 나의 귓가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이 들려왔다.

“허허, 아닙니다, 고미님. 저 역시 가끔 아이템을 만들다가 성에 차지 않는 결과물이 나오면 혼자서 끙끙 앓기도 합니다. 충분히 그 마음이 이해가 가는군요.”

“오오, 동이! 역시 너는 내 마음을 알아주는구나!”

······.

정말입니까 동이님. 그 말, 진심입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동이님이 만들어준 대웅전과 꿀 스카프나 이 무기 사이에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라는 게 존재하는 것 같은데요?

아예 기준 자체가 다르잖아요.

당신은 국을 만들려다가 간을 잘못하는 수준이고, 이쪽은 애초에 초콜릿 샤브샤브 같은 요리를 만들려고 하는 거잖아요.

실패한다는 말의 의미 자체가 다르다고.

‘아, 아니야. 지, 진정하자, 김수하.’

간만에 아이템 제작이라, 너무 흥분했다.

그래도 아기곰 선생께서 열과 성을 다해 만들어준 물건인데, 이러면 안되지.

애써 마음을 다스린 나는 다시 퀘스트의 ‘달성 보상’ 란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또다시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 달성 보상 >

- 새로운 칭호

- 위대한 고미님의 고급 견습공(S)

위대한 고미님의 아이템 제작을 도울 수 있습니다. 함께 만든 아이템을 사용하면, 더욱 강력한 효과가 적용됩니다.

‘자, 잠깐······.’

설마 ‘분곰쇄신’의 효과가 더욱 강력해진다는 소리냐?

아니면 아까 확인한 옵션이 이미 이 칭호가 적용된 상태?

‘제, 제발 후자여라.’

아까 전의 설명으로 보나, 분곰쇄신이라는 이름으로 보나, 이 스킬의 효과가 얼마나 끔찍(?)할지는 능히 짐작이 간다.

게다가 최근 진행으로 보아, 시스템은 아주 작정하고 본격적으로 나를 굴리려고 하고 있었다.

‘후자겠지? 후자겠지?’

그렇게 속으로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을 때······.

“수하! 어서 그 분곰쇄신이라는 스킬을 사용해 보거라!”

사형선고와도 같은 한마디가 순진무구한 아기곰의 목구멍에서 흘러나왔고,

“그렇군요. 스킬 효과를 한번 확인해볼까요?”

이강혁 씨 역시 기대에 찬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오, 오지마요’라고, 말하고 싶다.

“수하님, 저도 궁금하군요. 한번 그 이능을 발동해 보시지요.”

이어서 동이님도,

“그래, 빨리 해보자.”

봉식이도,

“제가 시험 상대가 되어드릴까요?”

이유찬 씨까지······.

모두가 하나가 되어 기대감으로 눈을 반짝이며 올망졸망 나에게 다가왔다.

‘나, 나한테 왜들 이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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