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58 진정한 신검의 탄생.
“어, 어!”
화염 안으로 걸음을 옮기는 내 모습에, 흑룡 셰프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멈추지 마요, 유찬 씨! 계속해요!”
나는 손을 들어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지만, 순식간에 화력이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하, 하지만······.”
“괜찮아요!”
걱정해 주는 건 고맙지만, 그러다 불이 꺼지면 용궁산 보검이랑 아까운 흑염대웅신검만 날아간다고요.
‘그건 절대 안되지.’
가짜 고미에게 맞서려면 반드시 새 무기가 필요하다.
그러니까 절대로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
게다가 예전처럼 직접 손을 대는 건 생각도 못 하는 상태도 아닌데, 가만히 손가락만 빨면서 기다릴 수는 없잖아.
“괜찮아요! 얼른 불 지펴요!”
“거, 검은콩! 어서 화력을 올려라!”
나의 굳은 결의가 전해진 걸까?
화염 속에서 궁둥이를 씰룩거리며 신검을 망가뜨리고 있던(?) 아기곰도 결심을 굳힌 듯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스스로도 망했다는 걸 직감한 건지,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던 지옥의 대장장이의 꼬리와 귀에는 숨길 수 없는 당혹감이 진하게 묻어나고 있었다.
“그, 그럼 다시 화력을 올리겠습니다!”
이유찬 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숨이 턱 막히며 온몸에서 비 오듯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후우······. 괜찮아, 이 정도면 조금 뜨거운 불가마 수준이야.’
사우나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도저히 못 견딜 수준은 아니다.
스스로도 믿을 수 없지만, 지금 내 몸은 흑염룡의 불꽃을 견뎌낼 정도로 강해져 있으니까.
하지만 막상 화염 속에 몸을 던지자, 한 가지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이런······.’
눈앞의 모든 것이 일그러지며 시야가 검붉은 색으로 물들기 시작한 것이다.
“수, 수하! 괘, 괜찮느냐!?”
‘타닥, 타닥’하고 불꽃이 터지는 소리 사이로 고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전히 시야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다.
무기는 손으로 만드는 거지, 눈으로 만드는 게 아니니까.
“괜찮아. 얼른 시작하자.”
나는 애써 태연한 척 웃음을 지으며 갈색 솜뭉치를 향해 다가가 흑염룡의 뿔 주위로 흘러내리고 있는 쇳물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아, 안 되겠어. 너무 뜨거워.’
흑염룡의 화염은 어떻게든 견디겠는데, 고미의 조물조물과 동이님, 이유찬 씨의 화염에 의해 거의 액체가 되어버린 쇳덩이는 도저히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다.
마치 작은 태양이 눈앞에 놓여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느껴지는 끔찍한 열기.
하지만······. 이 정도는 나도 생각했다.
당연히 대책도 있고.
“고미, 청심환.”
“아, 알겠느니라!”
나의 요구에 고미는 다급히 주먹만한 청심환 하나를 만들어 내밀었다.
잽싸게 청심환을 흡수한 나는 곧바로 온 정신을 집중해 청백색의 기운으로 손바닥을 감쌌고,
‘틀림없이 될 거야······.’
천천히 녹아내린 쇳덩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역시!’
여전히 뜨겁기는 하지만, 아까처럼 손을 대기도 전에 화상을 입은 것처럼 화끈거리지는 않는다.
고미의 모든 능력은 결국 기곰술의 응용이니까, 이렇게 하면 틀림없이 견딜 수 있으리라던 생각이 맞아떨어졌다.
‘가자, 김수하. 용기를 내는 거야.’
손이 타버리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을 얻은 나는 조심스레 회색빛 반죽(?)에 살짝 손을 대 보았다.
- 치이이이이익!
그러자, 섬뜩한 소리와 함께 새하얀 연기가 치솟았다.
‘괘, 괜찮아.’
시각적인 효과와 소리가 상당히 공포스럽기는 하지만, 손은 멀쩡하다.
조금 뜨겁기는 하지만, 충분히 견딜 수 있을만한 수준.
‘청심환의 기로 만든 보호막이 다 타서 날아가기 전에 끝장을 보는 거야.’
결심을 굳힌 나는 곧바로 고미의 젤리로 인해 처참하게 짓눌린 반죽(?)들을 다시 심지에 붙인 뒤 주물거리기 시작했다.
“동이님! 제가 어떻게든 형태를 잡아볼게요! 세세한 부분은 동이님이 마무리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러나 방금 전에 했던 말이 무색하게, 심지에 붙인 반죽이 자꾸만 모양을 잃고 흘러내렸다.
“우, 우웅? 수하?”
그 모습을 본 아기곰은 ‘이럴 거면 왜 불꽃 속에 들어오신 거예요?’하고 묻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어, 어째서?’
예상 밖의 상황에, 순간적으로 정신이 멍해졌다.
늘 고미가 조물거리는 걸 옆에서 보기만 했지, 직접 반죽에 손을 대는 건 처음이라 이게 이렇게 어려운 걸 줄은 몰랐다.
‘다, 단순히 고미가 곰손이라 그랬던 게 아닌 건가?’
그럴 리가 없다.
주먹밥을 만들 때도, 그림을 그릴 때도, 조각상을 만들 때도, 점토로 연습을 했을 때도, 고미의 손은 한결같은 망작을 만들어냈다.
즉, 지금까지 만든 작품들의 생김새가 그랬던 건, 틀림없이 곰손의 영향이다.
‘그럼 뭔가가 평소와 다른 건가?’
설마 재료에 따라 반죽의 성질에도 차이가 있는 거라던가······.
‘아닌데······. 핵빠따를 만들 때도, 흑염대웅신검을 만들 때도, 영지버섯을 만들 때도 반죽의 상태는 비슷했잖아.’
문제는 그것뿐이 아니었다.
아직 1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슬슬 손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역시 무리인가?’
아직 지옥의 대장장이가 부침개처럼 뭉개서 펼쳐놓은 쇳덩이를 심지 근처에 뭉치는 것도 성공하지 못했는데······.
“수, 수하. 안되겠다. 너는 다시 나가거라, 이 몸이 어떻게든······.”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당황한 아기곰은 기곰술을 펼쳐 나를 다시 불꽃 밖으로 밀어내려 했다.
“기다려, 고미.”
그러나 나는 나갈 마음이 없었다.
아직 몸도, 손도, 견딜만 하니까.
‘김수하, 생각해라. 생각.’
어째서 반죽이 이렇게 녹아내렸을까.
정말 재료에 문제가 있어서 반죽이 망한 걸까?
‘잠깐!’
그 순간, 머릿속에 번뜩 한가지 생각이 스쳤다.
“이유찬 씨! 화력을 조금만 낮춰주세요!”
이어서 나는 고미에게도 화력을 낮출 것을 요구했다.
“고미, 황금 곰 상태로는 안돼! 평소대로!”
그래, 평소에는 조물조물을 시작할 때 아까처럼 재료가 완전히 녹아서 액체가 되지는 않았다.
용궁산 보검이 평소에 쓰는 재료보다 단단하다고 화력을 너무 높여버린 거라면?
그래서 반죽이 너무 묽어진 거라면?
“우, 우웅?”
“지금 화력이 너무 센 거야! 틀림없어!”
“하, 하지만······.”
“괜찮아! 날 믿어!”
“아, 알겠다!”
아니나 다를까, 고미의 털이 평소 같은 초콜릿색으로 돌아오기 무섭게 실수로 물을 한 컵 정도 더 부어버린 것처럼 묽었던 반죽이 적당히 되직하게 변하는 것이 느껴졌다.
문제는 손에 두른 보호막이 거의 다 타버렸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화상을 입은 것처럼 따끔한 느낌마저 든다.
결국 나는 어떻게든 신검을 완성하기 위해 한 번 더 약(?)에 의지하기로 결정했다.
“고미! 청심환, 하나 더!”
그러나 아기곰 선생은 선뜻 청심환을 제조하지 못했다.
지금까지는 한 번도 두 번 연속으로 청심환을 먹지 않았다.
내 기맥이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만큼 튼튼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두 개까지는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거다. 틀림없이. 아니, 그래야 한다.
“수, 수하······.”
“괜찮아! 얼른!”
두 번째 청심환을 삼킨 나는 곧바로 동이님에게도 화력을 조절해 달라고 말했다.
“동이님! 동이님도 화력을 천천히 낮춰주세요! 쇠가 너무 단단해지면 미세하게 화력을 높여주시고요!”
지금 이 작업에 관여하고 있는 사람은 총 셋.
그 중에 가장 섬세한 화력 조절이 가능할 것 같은 사람은, 동이님이다.
그러니까 반죽의 묽기는 동이님에게 맡겨야 한다.
“알겠습니다!”
흑룡 셰프와 아기곰이 화력을 낮추자, 물을 너무 많이 부은 부침개 반죽 같았던 쇳덩이가 순식간에 굳어가며 단단하게 변했다.
‘안돼, 이번에는 너무 단단해.’
이렇게 딱딱하면 모양을 잡을 수가 없다.
“화력 올려주세요!”
동이님이 서서히 화력을 올리자, 반죽이 적당한 수준으로 말랑해졌다.
그래, 이거야.
이 정도가 최상의 반죽이야.
“고미, 됐어! 반죽 발라!”
“우, 우웅!? 알겠다!”
고미와 나는 힘을 합쳐 흑룡 셰프의 뿔에 반죽을 치덕치덕 덧바르기 시작했다.
“우, 우웃! 수하! 되, 되고 있다! 되고 있느니라!”
줄곧 흘러내리기만 하던 반죽이 제대로 심지에 들러붙자, 아기곰의 목소리에도 흥분이 잔뜩 묻어났다.
그 순간, 나는 직감했다.
성공이다.
이번만큼은 진짜 제대로 된 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
* * *
그렇게 몇 분이나 지났을까······.
마침내 흑염룡의 불꽃이 잦아들고, 완성된 신검이 사람들의 앞에 그 우아한 자태를 드러냈다.
“아, 아웅!”
미친 듯이 열기를 뿜어내던 검붉은 화염이 사라지자, 아웅이는 황급히 달려와 나에게 냉기를 뿜어댔다.
“후우······. 고마워, 아웅아.”
나는 그 서늘한 감촉을 만끽하며 눈앞에 놓인 무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남몰래 치료 스킬을 사용해 가벼운 화상을 입은 양손을 치료했다.
큰 부상도 아닌데, 괜히 사람들한테 걱정을 끼칠 필요는 없겠지.
‘조금만 더 했으면 진짜로 손이 타버렸겠네.’
스스로 생각해도 미친 짓이었지만, 어떻게든 해냈다.
“흐음······. 지금까지 만들었던 것 중에 가장 안정적인 형태를 가진 무기군요.”
이강혁 씨가 진지한 표정으로 신검을 훑어보며 말했다.
그래, 이건 누가 봐도 검이다.
중간중간 찌그러진 곳도 있고, 날이 제대로 서지 않기는 하지만, 어쨌든 대충 목검 같은 형태를 하고 있기는 하니까.
굳이 비유하자면, 조금 부서진 목검이랄까.
남들이 보기에는 여전히 망작이지만, 지금까지 사용했던 무기와 비교하면 이건 명실공히 세기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지.
‘흑염대웅신검도 검으로 인정해줬는데, 이 정도는 합격점을 넘고도 남지.’
그렇게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신검의 손잡이를 움켜쥐자,
< 검의 달인(SS)가 활성화됩니다. >
역시나, 이 물건을 검으로 인정한다는 메시지가 날아왔다.
‘이제 문제는 감정인데······.’
적어도 SS급 검일 테니, 감정하려면 해피곰 포인트가 좀 들어가겠거니 생각하고 있을 때······.
< 축하합니다. 새로운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
< 축하합니다. 새로운 칭호가 부여되었습니다. >
< 직접 검을 완성하였으므로 해당 아이템의 옵션과 능력치 정보를 제공합니다. >
반가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저, 정말?!’
한편, 아기곰 선생은 전에 없이 심각한 표정으로 완성된 신검 주위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꼬리는 바짝 서 있고, 귀는 살짝 누워있고, 솜방망이를 턱에 괸 것이, 아무래도 이 검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고미, 왜 그래?”
나의 질문에 명곰 아기곰 선생은 잠시 망설이며 입술을 달싹이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다.”
뭐지······.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 표정인데.
‘검에 문제가 있는 건가?’
명곰 선생의 미묘한 반응에 괜스레 불안한 마음이 든 나는 빠르게 꿀태창을 열어 신검의 옵션을 확인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 이강혁 씨. 혹시 Ex급 아이템 보신 적 있어요?”
더듬더듬 내뱉은 말에, 이강혁 씨는 황급히 달려와 나와 함께 꿀태창을 확인했다.
< 사제간의 열정과 친구들의 뜨거운 우정으로 벼려낸 신검(Ex) >
- 위대한 곰과 숲속 친구들, 그 제자의 열정과 우정이 담긴 진정한 걸작입니다. 검 안에 담긴 우정도, 열정도, 영혼도, 근성도, 모든 것이 불꽃처럼 뜨겁습니다.
- 힘(+20), 민첩(+15), 체력(+15), 마력(+20)
- 특수 옵션 (1) : 불굴의 투혼 (Ver.2)
사용자의 투혼이 직접 녹아들며 더욱 강력해진 불굴의 투혼입니다. 이제 검이 부서진다면 치료 스킬을 통해 검을 부활시킬 수 있습니다. 치료 스킬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검이 회복됩니다.
‘저, 정말이냐!?’
불꽃에 넣지 않고도 되살아나는 검이라고?
하지만 놀라기에는 아직 일렀다.
아직 이름을 붙이지 않은 이 새로운 검에는, 또 다른 옵션들이 가득했으니까.
- 특수 옵션 (2) : 식지 않는 열정
한층 더 뜨거워진 열정으로 적을 불태울 수 있습니다. 검기를 불어넣으면, 흑룡과 동이, 고미의 기운이 담긴 불꽃으로 변화합니다. 이 불꽃은 시전자가 스스로 사라지게 하지 않는 한, 적을 멸할 때까지 꺼지지 않습니다.
- 특수 옵션 (3) : 불꽃 망토.
진정으로 뜨거운 영혼을 가진 자는 불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마력을 소모해 Ex급 이하의 모든 불꽃을 차단하는 불꽃 망토를 소환할 수 있습니다.
불꽃 망토는 등급이 상승한 것 외에 특별한 변화는 없지만, 흑염대웅신검의 핵심 옵션인 ‘타오르는 정열’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해졌다.
그리고 네 번째 옵션으로 시선을 옮기는 순간······.
“수, 수하님! 이건······.”
“아, 아우우웅!”
“허, 굉장하군요.”
“야, 김수하! 너 대박났다.”
숲속 친구들의 입에서 약속이나 한 듯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명곰, 아기곰 선생은 여전히 미묘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