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57 불꽃 속으로.
“오오, 동이! 네 녀석도 이 몸과 함께 위대한 걸작을 만들어 보겠느냐!?”
함께 흑염대웅신검 Mk.2를 만들어 보자는 말에, 무언가 만드는 걸 좋아하는 아기곰의 두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하지만 신이 난 것도 잠시, 이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동이님을 훑어보았다.
“흐음······. 하지만 조금 걱정이구나. 동이 너도 제법 손재주가 있기는 하지만······. 무기를 만드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니라. 특히 흑염대웅신검처럼 위대한 걸작은 그리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음······. 아이템 제작에 자신감이 붙은 건 좋은 일이지만, 어째 점점 양심을 잃어가는 것 같은 발언이군.
아니나 다를까, 다른 숲속 친구들 역시 자신이 무언가 잘못 들은 건 아닌지 의심하는 듯한 눈길로 고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코, 콜록!”
심지어 숲속 친구들 제일의 광신도, 이강혁 씨마저 이것만큼은 차마 쉴드를 칠 수 없다는 듯 사레가 들린 사람처럼 마른 기침을 해댔다.
“하하, 걱정 마십시오, 고미님. 이래 봬도 보구 제작에는 꽤 자신이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동이님은 공포스럽기 짝이 없는 곰손의 존재를 아는지 모르는지, 즐겁게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아니야, 그래도 알틴의 눈을 통해서 종종 현세의 상황을 살펴봤다고 하셨으니까······. 게다가 삼룡이 패밀리한테 들은 것도 있을 테고.’
무엇보다 고미의 가장 오랜 친구인데, 곰손의 존재를 모르지는 않겠지.
제발,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서 고미, 아니 나를 돕기 위해 나선 거였으면 좋겠다고.
“고, 고미 교관님은 무기도 만들 수 있으신 건가요?”
그때, 이 자리에서 곰손의 공포를 모르는 유일한 사람인 이주혁 씨가 어리석은 질문을 던졌다.
“후훗, 수수깡. 설마 너도 위대한 이 몸이 만든 무기를 써보고 싶은 것이냐?”
이에 지옥의 대장장이, 아기곰 선생은 한껏 오만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끌어올렸고,
“아, 아닙니다. 어떻게 제가 감히······.”
이주혁 씨는 황송하다는 듯 말을 더듬으며 고개를 떨궜다.
“게다가 저는 제 기로 활을 만들어야 해서······. 무기는 쓸 수가 없습니다.”
말을 이어나가는 그의 표정에서는 숨길 수 없는 진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뭐, 저 아쉬움이 안도감으로 변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지는 않다만.
“후훗, 아쉬워도 할 수 없다. 이 몸의 신병은 오직 수하만이 다룰 수 있으니 말이다. 뭐, 네 녀석도 정 원한다면 기념으로 하나 정도는 만들어주마.”
말을 마친 아기곰은 있지도 않은 소매를 걷어붙이며 더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젤리를 달구기 시작했다.
- 치이이익······.
대장간의 쇠처럼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젤리의 모습에, 이주혁 씨는 긴장한 표정으로 마른 침을 집어삼켰다.
“고북! 검을 넘겨라!”
고미의 짤막한 호령에, 닌자, 아니, 고북 대왕은 공손한 자세로 용궁의 보검을 넘겨주었다.
붉게 달아오른 두 개의 젤리가 은은한 푸른빛을 머금은 칼날을 붙잡는 순간······.
- 치익, 치이이익······.
달아오른 강철을 얼음물에 집어넣는 것 같은 소리가 장내에 가득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우, 우웅!?”
평소처럼 재료가 쉽게 녹아내리지 않자, 지옥의 대장장이는 조금 당황한 듯 두 귀를 쫑긋거렸다.
“제, 제법이구나. 이 몸의 조물조물을 견뎌낼 수 있는 철이라니······!”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 지옥의 대장장이에게 저항하는 보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깝다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수하, 기대해도 좋겠구나! 이 정도라면 틀림없이 엄청난 물건이 나올 것이다!”
그래, 나도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만······.
‘저 정도로 강한 검이라면, 틀림없이 S급 이상일 텐데······.’
정말 저걸 녹여서 재료로 써도 되는 걸까.
아니, 검을 완성할 수는 있을까.
고미의 손길에 저항할 정도로 뛰어난 검이라면 그냥 저걸 써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그럼 저도 시작해 보겠습니다.”
그때,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동이님의 손에서 금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미, 믿을게요, 동이님.’
꿀 스카프로 보나, 대웅전으로 보나, 이쪽은 아이템 제작에 상당히 조예가 깊은 것 같으니까.
동이님이 있다면 저 명검도 억울하게 명을 다하지는 않겠지.
- 챙강!
이어서 동이님은 힘껏 주먹을 내리쳐 거미줄 같은 균열이 가득한 흑염대웅신검을 산산이 부숴버렸다.
“그 뿔은 네 것이니, 이제부터 있는 힘껏 마력을 불어넣거라.”
단숨에 심지를 분리해낸 동이님은 신속하게 그것을 이유찬 씨에게 넘겼다.
그리고는 황금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불꽃으로 흑염대웅신검의 파편을 감싸자, 부서진 마력철과 마정석이 빠르게 녹아내리며 액체로 된 검은 구체로 변했다.
‘빠, 빨라.’
그리고, 능숙하다.
한눈에 보기에도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게다가 고미와는 다르게 형태도 지극히 안정적이고.
‘원래 아이템 제작이라는 건 이렇게 하는 거구나.’
아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쪽이 정상이지.
고미처럼 점토 놀이하듯 조물딱 거려서 만드는 게 이상한 거고.
‘이 정도면 정말로 기대해 봐도 되겠는데?’
나도 드디어 제대로 된 검이라는 걸 쓸 수 있게 되는 걸까?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재앙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으니······.
“우, 우웃! 동이, 아주 제법이구나!?”
동이님의 능숙한 손놀림이, 지옥의 대장장이의 승부욕을 자극하고 만 것이다.
‘아, 안돼.’
지금까지 문제가 일어났던 과정을 떠올려보면······.
아기곰의 의욕이 강해질수록 작품의 완성도에는 심각한 하자가 생겼다.
그리고 지금, 동이님의 멋진 모습은 아기곰의 승부욕에 불을 지펴버렸고.
즉, 새로운 무기의 제작이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수직으로 상승했다는 소리지.
“좋다! 위대한 이 몸도 질 수는 없지!”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동시에, 고미의 전신에서 금빛 섬광이 흘러나오며 주위가 환하게 밝아졌다.
반대로, 내 마음은 칠흑처럼 어둡게 내려 앉았다.
‘어, 어째서, 가짜 고미와 싸울 때와 같은 상태가 될 필요까지 있는 건데!’
- 치이이이익!
고미가 제대로 힘을 쓰기 시작하자, 격렬하게 저항하던 청룡의 보검이 마침내 힘이 다한 듯 붉은 액체로 변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문제는······.
“검은콩! 아직이더냐! 이제 제작에 들어가야 한다! 이대로 두면 형태를 잡기도 전에 쇳물이 다시 굳어버리고 말 것이다!”
화력이 너무 강한 탓에, 이유찬 씨가 자신의 뿔에 충분한 마력을 불어넣기도 전에 검을 녹여버린 것이다.
“기, 기다려 주십시오!”
한편, 이유찬 씨의 손에 들린 뿔은 이미 두 배 가까이 자라난 상태였다.
전에는 검의 아랫부분만 심지로 쓸 수 있었지만, 이제는 뿔 위에 쇳물을 덧씌우기만 해도 검이 완성될 것 같은 크기.
저 안에 담긴 마력도 당연히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겠지.
자꾸만 덧없는 기대(?)가 자라난다.
“서둘러라!”
아직 심지가 완성되지 않은 듯 하자, 아기곰의 목소리에서는 초조함이 잔뜩 묻어났다.
정확한 상황은 모르겠지만, 이대로 두었다가는 애꿎은 명검 하나만 날려 먹을 게 분명해 보였다.
‘여, 역시, 의욕이 과했어.’
어째서, 어째서 매번 이 패턴을 벗어나지 못하는 거냐!
- 치이이익······.
아니나 다를까, 젤리를 벗어나 흘러내린 쇳물이 모락모락 김을 피워올리며 망가진 쇳조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바로 그때, 동이님이 자신의 앞에 둥둥 떠 있던 검은 액체를 날려 보냈고,
“오, 오오, 동이!”
그것이 카펫처럼 펼쳐지며 솜방망이 사이로 흘러내리는 쇳물을 받아냈다.
이어서 동이님은 오른손을 휘둘러 고미의 젤리에 의해 녹아내린 쇳물과 검은 액체를 뒤섞어 안정적인 구(球)의 형태로 만들었다.
‘괴, 굉장해.’
차기 드래곤 로드의 활약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제르날! 내가 도와주마!”
지금 동이님은 오른손으로 쇳물을 뒤섞는 동시에 왼손에서 마력을 뿜어내 이유찬 씨의 뿔을 안정화시키는 작업까지 해내고 있었다.
‘여, 역시 차기 드래곤 로드!’
드디어 지옥의 곰손을 물리칠 정의의 사도가 나타난 건가!
“돼, 됐습니다!”
동이님의 도움을 받아 심지를 완성한 이유찬 씨는 다급하게 그것을 들고 두 사람에게 달려왔다.
“자! 어서, 심지를 바닥에!”
고미의 명령에 따라 완성된 뿔이 바닥에 떨어지자,
“자, 간다! 고미류 제작술, 조물! 조물!”
드디어 공포의 곰손이 본격적으로 활약을 하기 시작했다.
“아, 아웅!?”
“으, 으응?”
바닥을 굴러다니는 블랙 드래곤의 뿔 위에 대충 쇳물을 붓고 대충 굴려버리는 아기곰의 모습에, 조물조물을 처음보는 아웅이와 이주혁 씨의 표정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물론, 대충 굴리는 건 아니다.
저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거라고.
“이야아아압!”
······.
그렇게 힘차게 굴리지 마.
벌써부터 모양이 망가지고 있잖아.
“고, 고미! 지, 진정해!”
“아니다! 검은콩과 동이의 힘이 들어간 보검이다! 절대로 이 녀석들의 수고를 허사로 만들 수는 없느니라!”
아, 안돼.
오랜 친구가 자신을 도와준다는 사실이 가뜩이나 의욕이 넘쳐서 문제인 아기곰의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어!
하지만 나는 잊고 있었다.
흑염대웅신검이, 어떻게 완성되었는지를.
그리고 진정한 재앙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 검은콩! 뿜어라! 너의 영혼을!”
그래······. 이게 남아있었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다리지마!
당신까지 열정을 불태우지 말라고!
- 화륵!
하지만 내 마음속 외침이 들리지 않는지, 언제나 열정이 넘쳐서 문제인 초콜릿색 솜뭉치는 이미 검은 화염에 뒤덮인 상태였다.
“우오오오오!”
함성을 내지를 때마다, 검의 형태가 망가진다.
“이야아압!”
저 목소리에는 강철조차 휘게 만드는 의지가 깃든 걸까.
어째서 심지가 들어있는데도 저렇게까지 모양이 망가지는 걸까.
그나마 다행인 건, 검이 휘어질 때마다 동이님이 어떻게든 모양을 바로잡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이런······.”
하지만 동이님의 서포트에도 한계가 온 것인지, 고미의 열정이 그만큼 강력했던 것인지, 칼날의 모양은 점점 더 엉망진창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제는 시스템이 장님이라 해도 이걸 검이라고 해주기는 어려운 지경.
“아, 아우우웅······.”
그 순간······. 금방이라도 얼음을 뿜을 것처럼 손에서 흰빛을 내뿜으며 초조한 표정으로 자신의 솜방망이와 불꽃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형을 번갈아 바라보는 백곰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용광로처럼 뜨거운 화염 속에서 작업을 이어가는 동이님과 고미의 안위가 적잖이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물론 차기 드래곤 로드에 고미라면 저것보다 더 뜨거운 불꽃 속에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잠깐······.’
그때, 나의 머릿속에 지극히 위험하지만,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 하나가 떠올랐다.
‘드래곤 스케일은 화염 저항이 붙어있잖아. 곰강불괴에는 모든 속성에 대한 저항이 붙어있고······. 그렇다면······.’
장담은 할 수 없다.
하지만 가능할지도 모른다.
아니, 충분히 가능하다.
가자, 김수하. 너는 이미 흑염대웅신검을 망가뜨릴 정도로 강해졌잖아.
가짜 고미에게 대항할 무기가 망가지는 걸 보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아웅아! 혹시 나한테 냉기 마법을 걸어줄 수 있어?”
“아, 아웅······?”
“부탁할게!”
말을 마친 나는 곧바로 해피곰 포인트를 활용해 드래곤 스케일와 곰강불괴의 등급을 S급까지 끌어올렸다.
‘내가 들어가서 저 지옥의 곰손을 조금만 컨트롤 해주면······. 분명 동이님이 어떻게든 해줄 거야.’
결심을 굳힌 나는 곧바로 아웅이에게 냉기 마법을 걸어달라고 부탁했다.
꿀태창에서 봤던 아웅이의 스킬 중에는, 틀림없이 냉기 보호막이 있었으니까.
“아웅아! 망설일 시간 없어! 얼른!”
“아, 아우우우웅!”
반복되는 나의 재촉에 아웅이는 눈을 질끈 감으며 새하얀 빛을 내뿜었다.
아웅이의 냉기 보호막이 몸을 뒤덮자, 거짓말처럼 화염의 열기가 잦아드는 것이 느껴졌다.
“수, 수하! 무, 무슨 짓이냐!”
내가 조물조물, 아니, 고물고물이 한창인 화염 속으로 다가오자, 지옥의 대장장이는 당황한 듯 눈을 치켜뜨며 손을 내저었다.
‘괜찮아. 이 정도면 충분히 괜찮아.’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 흐른다.
하지만 도저히 손을 못 댈 정도는 아니다.
기껏해야 불 한증막에 들어간 정도의 느낌······ 이라고 생각하자.
‘안 뜨겁다, 안 뜨겁다. 이건 전기 장판이다, 이건 전기 장판이다.’
살갗을 타고 전해지는 화염의 열기보다 두려운 건, 화염이 주는 공포였다.
이글거리는 화염이 주는 시각적인 효과는 내게 본능적인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심장이 바짝 졸아들고, 전신의 피가 마르는 것 같은 감각.
‘에잇, 가자!’
이에 나는 눈을 질끈 감고 화염 속으로 몸을 내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