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56 진정한 신검을 만들어 보자.
“수하? 뭘 하고 있느냐? 어서 용궁으로 가는 통로를 열거라.”
엄격한 곰 선생님의 한마디에, 나는 속으로 옅은 한숨을 내쉬며 ‘토끼굴’을 활성화했다.
이것은 용궁으로 가는 통로인가, 아니면 지옥으로 가는 통로인가.
적어도 지금 내 눈에는 후자로 보인다.
“저, 저도 가도 되는 건가요?”
그때, 우리 곁에서 쭈뼛대고 있던 이주혁 씨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음······. 어차피 드라고니아로 갈 때는 다 같이 용궁에 타고 가야 하니, 지금 간다고 문제될 건 없을 텐데 말이지.
“너도 허수아비의 부하 중 하나이니, 당연히 함께 가야 하지 않겠느냐?”
매사 거칠 것이 없는 아기곰 선생께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이주혁 씨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그렇군요.”
이에 이주혁 씨는 특유의 소심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아웅, 아웅!” (빨리, 빨리 가자! 형!)
용궁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잔뜩 흥분한 아기 백곰은 나의 손을 꼭 붙잡은 채 황급히 게이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게이트를 지나자, 용궁의 대전인 영덕전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의 손목을 잡아끌고 게이트에 들어왔던 아웅이는 용궁의 환상적인 전경에 취해 완전히 굳어버린 상태였다.
“아웅아, 아웅아?”
심지어 손을 잡고 흔드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후훗, 아웅이, 어떠하냐? 다음에 다웅이와 엄마 아빠도 함께 이곳에 오면 아주 즐겁지 않겠느냐?”
나의 어깨에 올라타 있던 고미가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광장 위로 풀쩍 뛰어내리며 말했다.
“아, 아웅! 아우우웅!” (응! 굉장해! 역시 형은 최고야! 다음에 꼭 같이 오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아웅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섬주섬 고미에게 콜라 한 병을 내밀었다.
용궁에 데려와 줘서 고맙다는 나름의 감사표시인 것 같았다.
“오, 오오. 고맙다! 아웅이. 마침 목이 탔는데 말이다. 자, 너도 배가 고플테니, 이것을 먹거라.”
아웅이의 콜라를 받은 원조 아기곰은 곧바로 자신의 숙성 초코바로 화답을 해주었다.
“자, 그럼 얼른 가보자.”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나는 두 아기곰을 이끌고 영덕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허허, 고미님, 수하님, 오셨군요.”
그때, 커다란 등껍질을 짊어진 거북 하나가 날 듯이 광장을 가로질러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음, 몇 번을 봐도 적응이 안 되네.’
아무리 그래도 거북이치고는 너무 날렵한 거 아니냐고.
“아, 아웅!?”
무협 영화에서 나오는 전설 속의 고수처럼 미끄러지듯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는 거북이의 모습에, 아웅이의 눈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둥그렇게 변했다.
“오오, 고북! 혹시 이곳에 동이와 이 몸의 친구들이 와 있더냐?”
“허허, 네. 이른 시간부터 찾아오셔서 용궁을 수리해주고 계십니다. 수다르님과 토생원님은 제자들까지 데리고 오셔서, 어떻게 사례를 해야 할지 고민 중 이었습니다.”
으음, 굉장하군.
그새 제자들까지 이끌고 와서 같이 실습(?)이라니······.
“그럼 우선 이걸 좀 전해주시겠어요? 용궁 수리에 필요한 재료들을 좀 모아왔거든요.”
이에 나는 인벤토리를 열어 곧바로 우리가 모아온 마정석들을 쏟아냈다.
동굴로 향하는 길에 처리한 몬스터들에게서 채취한 마정석까지 합쳐 C급 161개, B급 21개.
돈으로 따지면 몇 억은 너끈히 넘는 양이었지만, 아까운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음, 이제 마음이 좀 편하네.’
용궁에 도착하자마자 보물창고에서 아이템을 잔뜩 받은 데다가, 삼색 영지버섯의 재료가 된 용왕의 갑주 값을 이제야 치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속 짐이 적잖이 덜어지는 것 같았다.
‘역시 사람은 빚지고 살면 안 된다니까.’
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북 대왕이 또 다시 사례를 하겠다는 말을 꺼내는 것을 막으려 황급히 대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고북 대왕 역시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무언가 말을 하려다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사례를 대신했다.
“오, 고미님. 어쩐 일이십니까? 수하님과 함께 수련에 집중하고 계실 줄 알았거늘.”
고미가 나타나자, 용궁의 옥좌에 앉아 화면을 넘기며 이곳저곳을 살피고 있던 동이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분이 아웅이님 이십니까?”
아웅이를 발견한 동이님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고,
“아, 아웅!”
예의 바른 백곰 역시 넙죽 허리를 숙여 동이님에게 배꼽 인사를 했다.
“후후, 아웅이. 이 녀석이 바로 동이이니라. 수하를 만나기 전까지는 이 몸의 유일한 친구였던 녀석이지.”
“아웅!”
고미의 말을 들은 아웅이는 한 번 더 해맑게 웃으며 예의바르게 인사를 올렸다.
형과 친구가 되어줘서 고맙다는 의미인 것 같았다.
“허허, 언젠가 제가 직접 한번 살펴보고 싶었는데······. 잠시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동이님이 토실토실한 아기 백곰의 상태를 유심히 살펴보며 말했다.
“후훗, 안될 것이 무엇이더냐! 이 녀석들은 이제 이 몸의 동생이나 다름이 없으니, 잘 부탁하마!”
그 제안에 고미는 기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아웅이를 이리저리 살펴보던 동이님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흐음······. 그 날 가져간 선과를 아웅이님과 다웅이님에게 먹이셨군요.”
한눈에 아웅이가 선과를 먹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동이님은 걱정할 것 없다는 듯 웃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선과에 담긴 생명력과 천지의 기가 온몸에 녹아들어 더욱 건강해지셨습니다. 다만 그 생명력으로 인해 이제는 고미님의 분신이라기보다는 거의 별개의 생명체로 거듭난 것 같군요.”
음, 정말로 그런 게 가능한 건가?
너무 신기한 이야기라 조금 믿기가 어려웠지만, 아웅이 다웅이를 처음 만들 때 한유진 씨를 통해 조언을 해준 사람도 동이님이니, 녀석의 상태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많겠지.
적어도 나보다는 정확히 아실 거다.
“아마 단순히 강해진 게 아니라, 이전과는 다른 면이 조금 생기셨을 겁니다. 다만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는 저도 확신할 수 없으니, 천천히 확인해 보시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웅이가 만든 정교한 얼음칼과 얼음방패의 모습이 머리를 스쳤다.
‘역시, 갑자기 손재주가 발전한 건 선과 덕분이구나.’
아무래도 동이님의 추측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나저나, 얘기를 듣고 보니, 다웅이는 어떤 면이 변했을지 궁금해지네······.
조만간 한번 데리고 다니면서 확인해 봐야겠다.
“후훗, 고맙다, 동이. 네 덕분에 이 몸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언제나 너에게는 고마운 일뿐이구나.”
진심이 가득 담긴 고미의 감사 인사에, 동이님의 입가에 온화한 미소가 번졌다.
“허허, 고미님이 행복하시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나저나, 오늘은 어쩐 일로 이리 급하게 찾아오신 것 입니까?”
동이님의 질문에, 초콜릿색 솜뭉치는 곧바로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나를 가리켰다.
“후후, 사실 이 비실이 녀석이 이제 제법 쓸만해져서 말이다. 검은콩과 함께 만든 무기에 금이 가고 말았느니라.”
내가 S급 무기를 망가뜨릴 정도로 강해졌다는 사실이 못내 기분이 좋은지, 녀석의 꼬리는 쉴 새 없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허허, 그거 참 굉장하군요. 축하드립니다. 그럼 지금 제르날을 이곳으로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동이님이 가볍게 고목처럼 바싹 마른 손을 들어 손가락을 튕기자,
- 우우웅······.
작은 게이트가 열리며 그 안에서 흑룡 셰프가 걸어 나왔다.
“주군,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오오, 검은 콩! 위대한 이 몸이 너에게 부탁할 것이 있어서 왔느니라!”
빠르게 용건을 밝힌 초콜릿색 솜뭉치는 곧바로 나를 바라보며 자신의 걸작을 넘겨주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 죄송합니다.”
이에 나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칼날 전체에 잔뜩 균열이 생겨난 흑염대웅신검을 꺼내 이유찬 씨에게 내밀었다.
“이런, 검이 부서지셨군요. 수련 중에 강적을 만나신 겁니까?”
“아뇨, 그게 아니라······. 제 기를 칼이 버티지를 못하더라고요.”
“호오······.”
내 대답을 들은 이유찬 씨는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흑염대웅신검을 만지작거리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잘 됐군요. 이번 기회에 검을 강화해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는, 예상치 못한 제안을 꺼냈다.
“정말요? 강화도 가능한가요?”
“흑염대웅신검의 심지로 쓰인 제 뿔에는 제 마력이 깃들어 있지 않습니까? 제가 강해졌으니, 이 뿔 안에 더 강한 마력을 불어넣는 것도 가능하지요.”
이유찬 씨는 부서진 칼날의 일부를 툭툭 손가락으로 떼어내며 말을 이어나갔다.
“검을 다시 고친다 해도, 이전과 같은 성능이라면 또다시 부서질 가능성이 높을 테니, 이번 기회에 흑염대웅신검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이유찬 씨의 말은, 나 역시 생각해 본 적이 있는 문제였다.
다만 이제와서 흑염대웅신검을 강화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 무기 강화권을 사용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강화권을 사용하지 않고도 등급을 올릴 수 있다면 한 번 더 무기를 강화할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니,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오, 오오오! 그렇다면 어서! 어서 해보거라!”
내가 한 번 해보자는 말을 해보기도 전에, 명곰, 고미 선생의 눈이 반짝 반짝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으음······.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제 뿔에 더 많은 마력이 담기면, 그만큼 나머지 부분도 견고해져야 하는데······. 그러려면 최소한 S급의 마정석 몇 개 정도는 필요할 것입니다.”
음, 생각지도 못 한데서 난관에 부딪혔네.
지금 당장 나가서 S급 마정석을 구해와야겠다.
“그럼 지금 나가서 마정석을······.”
바로 그때, 고북 대왕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허허, 전에 동료분에게 드리려 했던 검이 아주 쓸만한 철과 마정석을 녹여 만든 것인데, 그것을 녹여서 검의 재료로 쓰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말을 마친 고북 대왕은 곧바로 용궁의 대신 하나를 불러 명령을 내렸다.
“지금 당장 응벽궁으로 가서 청룡의 보검을 가져오거라.”
이미 사양이나 반론 따위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태도.
받지 않겠다고 말해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겠지.
그냥 앞으로 퀘스트를 수행하면서 마정석 몇 개라도 더 캐서 가져다 드리는 걸로 퉁쳐야겠다.
‘던전 돌다 좋은 아이템 얻으면 좀 가져다 드리고······.’
그래,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고래처럼 생긴 어인 하나가 번쩍 번쩍 빛나는 보검 하나를 들고 잽싸게 영덕전 안으로 달려왔다.
“여기 있사옵니다.”
“그래, 고맙구나.”
청룡의 보검을 받아든 고북 대왕은 더할 나위 없이 능숙한 자세로 검집에서 검을 빼들어 가볍게 휘둘러 보았다.
“호오······.”
유려하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자세에, 천하무적 아기곰 역시 조금 놀랐다는 듯 나지막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역시, 고북 대왕의 정체는 닌자고북이였군.’
검을 휘두르는 모양새로 보나, 자연스레 흘러 나오는 기세로 보나, 상당한 수준에 이른 검사라는 걸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검술이었다.
“여기 있습니다. 다행히도 녹은 슬지 않은 것 같군요. 이것을 녹여 새로운 검을 만드는 데 써주시지요.”
“고맙다, 고북.”
청룡의 보검을 받아든 명곰, 아기곰 선생은 간만에 자신의 손재주(?)를 자랑할 생각으로 두 눈을 빛냈다.
“자, 그럼 시작해 보자꾸나.”
고미의 한마디에 이유찬씨 역시 잔뜩 기합이 들어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부, 불안하다.
왠지 불안해.
곰 앤 더머 콤비가 다시 손을 잡았어.
이거 정말 강화할 수 있는 거냐?
그냥 녹였다가 다시 붙이는 걸로 해결하면 안 되냐?
그렇게 속으로 합리적인 불안에 떨고 있을 때······.
“고미님, 제가 손을 보태도 되겠습니까?”
한줄기 구원과도 같은 목소리가 나의 귀를 잡아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