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51 수하는 은근히 깡이 좋다.
“아, 아웅!?”
높다란 빌딩 앞에 도착하자, 아웅이는 놀란 표정으로 새하얀 솜방망이를 들어 몇 번이나 자신의 눈을 비벼댔다.
- 괴, 굉장해! 이런 곳에서 일하는 거야?
라고, 말하고 있군.
“후후, 어떠냐? 위대한 이 몸의 집무실이. 참으로 웅장하지 않느냐?”
“아웅! 아웅, 아웅!”(굉장해! 역시 형은 위대한 진짜 곰이었어!)
잔뜩 흥분한 백곰은 커다란 눈망울을 데록데록 굴려대며 저스티스의 빌딩과 고미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봤다.
한눈에 보기에도 존경심이 가득 묻어나는 그 반응에, 원조 아기곰의 작은 콧대가 하늘을 꿰뚫을 듯 치솟았다.
“후훗, 아웅이. 놀라기는 아직 이르다.”
말을 마친 고미는 곧바로 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전진을 명령했다.
“가자꾸나, 수하. 아웅이에게 이 몸의 웅장한 집무실을 보여줘야겠다.”
한편, 아웅이의 몸짓과 표정은 평소보다 더욱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갑자기 이렇게 큰 건물에 들어가려니, 조금 긴장이 되는 모양이었다.
“아, 아웅······.”
긴장한 백곰은 낯선 곳에 온 어린아이처럼 내 손을 꼭 잡은 채 끊임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열심히 발걸음을 옮겼다.
음······. 어깨에는 아기 불곰을 얹고, 아기 백곰의 손을 잡고 출근이라니, 다웅이까지 데리고 나왔으면 꼼짝없이 곰 사육사로 오해받기 좋은 그림이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교관님이다!”
커다란 문을 열고 로비 안으로 들어가자, 안에 있던 길드원들이 큰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응? 오늘은 다른 분도 계신데?”
“고미 님이랑 엄청 비슷하게 생겼네. 가족이신가?”
“불곰이랑 북극곰이 가족인게 말이 되냐.”
“아기곰이 초월자를 이기는 건 말이 되고?”
“그건 또 그렇네······.”
천마를 물리친 이후, 고미의 주가는 문자 그대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덕분에 이제는 마주치는 길드원들마다 이 슈퍼 아기곰에게 깍듯이 예의를 갖추며 호감을 표하고 있었다.
저스티스와 패왕은 오랜 앙숙이었다.
그런데 이 초콜릿색 솜뭉치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문경준도 아니고 패왕의 후원자인 무신을 박살내 버렸으니, 이강혁 씨의 뒤를 잇는 광신도들이 속출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교, 교관님! 단 음식을 좋아한다고 하셔서 초콜릿 선물 세트를 사왔습니다!”
“교관님! 저는 꿀을······.”
“교관님!”
심지어 몇몇 길드원들은 고미가 출근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선물까지 들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어······. 음······. 이건 예상 못 했네.’
내가 생각한 것보다 그날 일의 파장이 훨씬 더 큰 모양이군.
보통 너무 강한 힘을 가진 대상은 자연스레 동경과 공포를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하지만 고미의 어린애 같은 성격과 귀여운 외모 덕인지, 공포보다는 순수한 호감을 느끼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초콜릿이나 꿀, 과자 선물 세트 같은 걸 들고 아이돌 팬처럼 줄을 서서 기다리지는 않겠지.
“오, 오오······.”
쏟아지는 선물 공세에 정신이 혼미(?)해진 아기곰은 금방이라도 나의 어깨에서 뛰어내릴 듯 엉덩이를 들썩였다.
“흠, 흠흠.”
하지만 결국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짐작건대, 아웅이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마 동생 앞에서 무게 있고 능력 있는 형의 모습을 연출하고 싶은 거겠지.
“아, 아웅!” (대, 대단해! 형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이런 대우를 받는 거야!?)
고미의 그 어설픈 연기가 먹힌 걸까?
아웅이는 더욱 존경심이 가득 묻어나는 시선으로 내 어깨 위에 올라탄 원조 아기곰을 올려다보았다.
“고, 고맙구나. 머, 먹을 것은 허, 허수아비나 다른 녀석들을 통해 이 몸의 집무실로 올려보내거라. 이, 이 몸이 들고 가기에는 너무 많으니 말이다.”
가까스로 체통을 지키는 데 성공한 아기곰은 애써 담담한 척 손가락을 들어 엘리베이터를 가리켰다.
물론 자리에 있던 누구라도 알아챌만한 어설픈 거짓말이었다.
극한의 자제력을 발휘해 고개를 돌리는 것만큼은 참아냈지만, 눈은 선물 꾸러미에 못 박힌 듯 고정되어 있으니까.
게다가 계속해서 군침을 삼키며 말을 더듬어대니, 누가 봐도 거짓말인게 빤히 들여다 보였다.
‘으이그, 눈 돌아가겠다, 눈 돌아가겠어.’
하지만 속는 사람이 아웅이다 보니, 이 허술하기 짝이 없는 거짓말이 먹힌 것 같았다.
‘으음, 이래서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하는 거구만.’
어설프게 멋진 형을 연기하는 고미와, 그것에 깜빡 속아 입을 헤 벌리고 있는 아웅이를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봉식이 역시 고미의 차도남 연기와 아웅이의 반응이 못내 귀여웠는지, 계속해서 피식피식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집무실에 들어가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네.’
나는 그렇게 속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 * *
“아, 아웅!?”
집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아웅이의 입에서 경탄에 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입구에 있는 리벤저스의 피규어부터 시작해서 로봇 피규어, 전동 카트까지······.
아웅이와 다웅이의 취향은 대체로 원조 아기곰과 비슷하니, 이 집무실은 유토피아나 다름이 없겠지.
어찌나 놀랐는지, 지금 아웅이는 꼬리를 돌리는 것조차 잊고 멍하니 서 있었다.
“후후, 아웅이. 어떠하냐? 네가 원한다면 다웅이와 함께······.”
그 모습을 본 원조 아기곰은 마치 자신의 외제차나 호화저택을 자랑하는 랩퍼처럼 잔뜩 우쭐거리며 나의 어깨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러나 말을 채 맺기도 전에 녀석의 초콜릿색 솜털이 바짝 곤두섰다.
“우, 우웃! 수, 수하!”
그리고는 애써 유지해왔던 시크하고 자신감 넘치는 차도곰의 이미지마저 포기하고 한달음에 집무실 안으로 달려갔다.
“아, 아웅!”
아웅이 역시 새하얀 궁둥이를 씰룩거리며 열심히 그 뒤를 따라 달렸다.
‘왜 저러지?’
아기곰 형제의 뒤를 따라 집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저도 모르게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아, 곰 선생님, 수하 씨 오셨습니까?”
집무실 안에는 이제 막 장난감 기차 트랙을 완성한 것으로 보이는 이강혁 씨가 웃음을 머금은 채 서 있었다.
‘무려 저스티스의 길드장이 새벽 출근을 해서 한다는 일이······.’
고맙기는 한데, 정말 이래도 되는 거냐?
“오늘은 아웅이님도 함께군요.”
이강혁 씨는 마치 대단한 일을 마친 사람처럼 뿌듯한 표정으로 고미와 아웅이를 바라봤다.
“오, 오오오! 허수아비! 이, 이것은 비엔나 버스가 아니더냐!”
“곰 선생님께서 기차를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바로 주문해서 만들어 봤습니다.”
평지 트랙은 물론이고 교각에 빙글빙글 돌아가는 코스까지······.
게다가 보통 유아용 장난감과는 달리 기차도, 트랙도, 주위 시설물도 상당히 정교하다.
‘이거 어린이용 기차놀이 세트가 아니라 성인용 철도 모형 같은데······.’
이 정도 크기의 트랙을 완성하려면 몇 시간은 걸렸을 것 같은데, 대체 몇 시에 출근해서 이걸 만들고 계셨던 걸까?
“역시 너는 최고다! 훌륭하구나! 훌륭해!”
“아웅! 아웅!”
한편, 탈 것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순진무구한 아기곰 형제는 연신 솜방망이를 두드려대며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고, 고생하셨습니다.”
나의 칭찬 아닌 칭찬에, 이강혁 씨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곰 선생님이 기뻐하실 걸 생각하니 만드는 내내 기분이 좋더군요. 좋아해 주셔서 다행입니다.”
으음······. 항상 느끼는 거지만, 정말 사람이 좋단 말이지.
“자, 곰 선생님. 이게 끝이 아닙니다. 이 기차를 트랙 위에 올려놓고 이 리모콘을 누르면······.”
이어서 이강혁 씨가 손에 들고 있던 기차를 트랙 위에 올려놓자,
“우, 우웃!”
“아웅?!”
아기곰 형제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트랙 위를 달리는 기차를 홀린 듯 바라봤다.
‘방금 전까지 저 기차를 시험 운행해보고 있던 건가.’
내 귀가 틀리지 않았다면, 사무실에 들어왔을 때, 분명히 뭔가가 ‘찰칵, 찰칵’하는 소리가 들렸던 것 같다.
그러니까, 한번 시범 운행을 해보고 고미가 들어온 타이밍에 맞춰 기차를 멈추신 거겠지.
고미는 그 소리를 듣고 이강혁 씨가 뭔가 새로운 장난감을 사 왔다고 생각해서 달려온 걸 테고.
‘그나저나, 엄청 정교하게 만들어졌네. 이런 건 얼마나 하려나.’
새집으로 이사가면 곰돌이 삼형제 방에 이런거 하나 놔줄까······.
‘아, 안돼. 말리고 있어.’
오늘부터 본격적인 수련을 해야 하는데, 나까지 기차놀이에 빠져 버리면 안되지.
이대로 가다가는 꼼짝없이 사무실에서 몇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다고 판단한 나는 얼른 내선 전화를 들었다.
“네, 김수하입니다. 신 팀장님이랑 이주혁 씨 좀 사무실로 올려보내 주세요. 그리고 C급 던전 세 개 정도만 수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요.”
“오올, 조정위원님 포스 보소. 좀 있어 보인다?”
통화를 마치자, 봉식이가 피식 웃으며 나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게, 자리가 사람 만든다고 금방 적응되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 팀장님과 이주혁 씨가 사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아, 아, 안녕하십니까!”
사무실로 들어온 이주혁 씨는 목각 인형처럼 뻣뻣한 자세로 우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음······. 저분은 언제쯤 우리 앞에서 긴장하지 않게 되는 걸까.’
이주혁 씨의 뒤를 이어 신 팀장님은 특유의 그 무뚝뚝한 태도로 꾸벅 인사를 건넸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 우선 이거 받으세요.”
나는 곧바로 이주혁 씨와 신팀장님에게 수다르님의 약을 내밀며 복용법을 설명해 주었다.
“이주혁 씨는 매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한알씩. 신 팀장님은 아침, 저녁으로 한 알씩 드시고 포션 한 모금. 약 다 드시기 전까지는 절대로 스킬 사용하시면 안되고요.”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산신령님의 특제 단약과 포션을 받은 두 사람은 곧바로 뚜껑을 열어 그 안에 든 내용물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흐음······. 맛이 조금 독특하군요.”
수다르 님의 약을 처음 맛 본 신 팀장님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고,
“아으!”
이주혁 씨는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온몸을 바르르 떨며 혀를 내밀었다.
그 반응으로 미루어 보건대, 아마 이번 단약은 엄청나게 신맛이 나는 모양이었다.
“던전은 모두 수배해 두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곳은 차로 20분 거리 내에 있는데, 바로 출발하시겠습니까?”
단약 복용을 마친 신 팀장님은 칼같이 본론으로 들어갔고,
“그렇게 하죠.”
나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 황혼의 평야 >>
<< 몬스터 등급 C~B >>
<< 클리어 조건 >>
평야에 존재하는 모든 몬스터를 제거하세요.
<< 클리어 보상 >>
???의 정수, ???의 조각.
던전의 지형은 평야.
특이한 점이라면, 던전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사방에 옅은 어둠이 깔려있다는 것 정도였다.
오늘의 목표는 간단했다.
만천화웅의 위력을 확인해보고, 용궁 수리에 필요한 마정석을 확보하는 것.
덤으로······. 최대한 두들겨 맞아보고 아웅이의 치료 스킬과 의원 콤비가 만든 단약의 효과를 확인해 보는 것.
“후······.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이주혁 씨는 중간중간 안전한 거리에서 화살을 쏴주세요. 고미, 이주혁 씨 수련은 너한테 맡길게. 부족한 거 있으면 잘 알려줘.”
던전에 들어선 나는 곧바로 고미에게 이주혁 씨를 맡기고 터벅터벅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실 C급 마정석 정도는 직접 구할 것 없이 웅왕 연맹에 부탁해서 수량을 채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시스템이 굳이 C급 마정석부터 구하라고 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믿으니까.
‘애초에 숫자가 그렇게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게 말이 안되지.’
S급 5개, A급 50개, B급 100개, C급 150개.
시스템이 요구한 마정석의 숫자였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건 정말로 필요한 마정석의 숫자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가짜 고미에게 맞서기 위해 이 정도 몬스터는 잡아봐야 한다는 의미겠지.
“우웅? 수하, 무기는 쓰지 않는 것이냐?”
맨손으로 저벅저벅 걸음을 옮기는 내 모습에, 고미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심각한 부상은 없도록 친절하게 강도를 조절해 두들겨 패주는 이강혁 씨와 달리, 몬스터들은 내 목숨을 뺏을 각오로 달려들 테니까.
“응, C급이잖아. 이 정도는 맨손으로 해결해야지.”
하지만 나는 정말로 무기를 쓸 마음이 없었다.
그보다는 지금 내가 가진 스킬과 능력치를 하나하나 시험하고, 그 위력을 극한까지 끌어내 볼 생각이다.
“후우······.”
잠시 숨을 고른 뒤, 나는 맨주먹으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몬스터를 향해 달려들었다.
심지어 허곰답보도, 곰기도 사용하지 않고.